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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213화 (외전 2) (213/219)

외전 2

유현은 세오와의 대화를 통해 판대륙의 정보를 습득했다.

현재 대륙의 정세는 어떻고, 어떤 국가들이 남아있는지 등.

그러다가 듣게 된 충격적인 이야기에 유현은 잠시 얼어붙었다.

"......칼리안 제국은 마법의 발달로 마도 제국이 되었다."

"예. 맞습니다."

"그리고 그 힘으로 대전쟁을 일으켜 전 대륙을 통일, 모든 종족은 인간의 노예로 분류되었다…?"

"예, 그것도..."

세오는 대답을 끝맺지 못했다.

유현이 발산한 기세가 그의 말문을 덜컥 막아버렸다.

"인간이 모든 종족을 지배한다라..."

몇 번을 되뇌어도 입에 달라붙지 않는 단어들의 조합이었다.

유현은 그만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게 말이 되나? 누가 누굴 지배한다고?"

"인간이 모두를..."

"그런 발상을 한 게 어떤 정신 나간 놈이지?"

유현은 주먹을 꽉 쥐었다.

모든 종족과 함께 싸웠던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종족 간의 차이를 우월함이라고 느낄 멍청한 놈들이나 할 법한 바보 같은 짓이었다.

"종족 지배의 시작은 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제국의 황제였던 카프 3세가 전쟁을 일으켜..."

"카프? 아니지. 3세면 그놈의 손주뻘인가."

"예. 용사님과 최선두에 섰던 기사 카프님의 자손입니다."

"그 새끼는 자식 교육을 어떻게 했길래..."

유현은 한숨을 내쉬고는 손을 흔들었다. 더 이야기해보라는 뉘앙스였다.

"카프 3세는 '인간이 가장 우월하다'라는 가치관을 가졌다고 전해집니다. 그래서 전쟁을 일으켰고 승리한 뒤, 계급 제도를 새롭게 개편하여 모든 이종족을 노예로 편성했습니다."

"......얼마나 죽었지?"

"전쟁과 이종족 말살 정책으로 이종족의 절반 이상이..."

세오는 유현의 눈치를 살피며 말끝을 흐렸다.

그의 살벌한 분위기는 당장이라도 제국에 쳐들어가 황가를 끝장낼 기세였다.

"지금도 카프 놈의 손자가 살아있지는 않을 테고. 그런데도 제도가 유지되는 건 다들 그 뜻에 동의한다는 건가?"

"그렇습니다만, 반대 세력도 존재합니다."

"그게 너희라고 했었지."

이종족 노예 제도를 반대하고, 나아가 폐지하여 600년 전의 종족 평등 사회 재건을 위해 뭉친 이들.

통칭 아퀄리타스.

이 파티는 바로 그 세력에서 나온 근원 파괴 결사대였다.

늘어나는 마물들과 점점 커지는 마족들의 기세에도 제국은 미온적인 대책만을 펼쳤기에 직접 마계로 들어왔다고 한다.

"그리 큰 세력은 아닌가 본데. 이 정도 레벨로 마계에 들어오다니."

"뭐, 이 자식아! 말 다했냐!"

늑대 수인이 화를 냈다.

드워프와 엘프도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우리는 강하다. 여기까지 온 것만 봐도 모르나?"

"모욕적인 언동은 삼갔으면 좋겠군요."

"잡혀서 죽을 뻔 해놓고 큰 소리는."

"......"

유현의 말에 결사대는 침묵했다.

반박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으니까.

"또 내가 들어야 할 게 있나? 없다면, 판대륙으로 가고 싶은데."

"오히려 이쪽에서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너 진짜 용사야?"

세오와 꽤 오랜 대화를 나누었지만, 아직 결사대의 의문은 해소되지 않았다.

그래도 그 대화 속에서 미심쩍음을 느꼈는지 아까보다는 의심하는 기색이 많이 누그러졌다.

"몇 번을 말해?"

"그냥 닮은 사람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동의합니다."

유현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뭘 어떻게 해야 믿을 건데? 이 정도 보여줬으면 된 것 아닌가?"

유현이 불타는 숲을 가리키며 말했다.

드워프와 엘프가 짐짓 헛기침하며 시선을 돌렸다.

"말했잖아. 그냥 대마법사일 수도 있다고."

"알테어. 그만 해요. 이분은 용사님이 맞아요."

"넌 입 다물고 있어. 내가 직접 확인..."

알테어가 마법을 발동하려는 순간.

유현이 그의 뒤에 나타났다.

헥톨의 검이 알테어의 목에 닿은 채 날카로운 빛을 냈다.

"...!"

알테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가만히 있었다.

공중에서 움직이는 게 익숙치 않았기에, 제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대단하군요.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엘프는 순수하게 감탄했으나 드워프는 그렇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검에 향해 있었다.

"그 무기, 혹시 헥톨의 검인가?"

"아는 사람이 있군."

유현이 검을 알테어의 목에서 떼어내자 알테어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자기도 모르게 다리가 풀린 것이다.

"죄, 죄송합니다! 용사님!"

세오가 철퍽 엎드렸다.

"알테어는 죽이지 말아주십쇼! 아퀼리타스에 얼마 없는 마법사입니다!"

"안 죽여."

"아아아!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유현은 한숨을 쉬었다.

세오의 반응도 이해는 가는 게, 그 책에서 묘사된 자신은 광기에 가득 찬 인물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죽는 줄 알았어."

"알테어! 뭐해요! 어서 인사드려요!"

알테어는 유현의 눈치를 살피더니 침을 꿀꺽였다. 그의 고개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더니 바닥에 붙었다.

그 뒤를 이어 드워프가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었다.

"아이젠 코스트코입니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이제 믿는 거야?"

"용사와 함께 사라진 전설의 무기 헥톨의 검. 수백 년간 찾아 나서겠다고 떠난 이들이 수두룩했지만, 누구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 검을 지닌 자가 곧 용사라는 뜻이지요."

다음으로 엘프 전사가 오른 무릎을 부복했다.

"저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정령 왕께서 알려주셨습니다."

"그런 것치고는 의심이 많던데."

"매사에 신중하다는 소리를 듣곤 합니다.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오."

"뭐, 믿기만 하면 됐어. 중요한 건 아니니까."

유현은 세오에게 다가갔다.

세오는 동료들이 용사임을 받아들이는 것을 보며 실실 웃고 있다가 유현이 다가오자 표정을 굳혔다.

"바로 제국으로 가자고. 싸그리 다 조져버려야지."

"...예?"

세오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농담으로 생각하기에는 유현의 말투와 표정이 너무나도 진지한 탓이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농담이 아니었다.

"그게 제일 빠르잖아. 전부 감옥에 가둬버릴 테니, 아퀼리타스인가 뭐시긴가. 너희가 제국의 주권을 잡아. 그리고 모든 종족을 독립시켜라."

유현은 서슴없이 포탈을 열었다.

목적지는 기억 속에 남은 제국의 한 장소.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장소였기에 포탈을 여는 데 성공했다.

"먼저 갈 테니까, 한 놈만 따라와."

"요, 용사님! 잠깐...!"

세오가 무어라 소리치려 했지만, 유현은 순식간에 포탈 안으로 사라졌다.

"아, 안 돼!"

세오가 단말마와 같은 비명을 지르며 포탈 너머로 몸을 던졌다.

다음 순간, 포탈이 사라졌다.

"......"

허공에 덩그러니 남겨진 셋은 포탈이 사라진 자리를 보며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

마도 제국 칼리안의 국립묘지.

수도의 외곽에 있어 사람의 통행이 적은 곳이었다.

특히나 지금처럼 달이 뜬 한밤중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여기도 변한 게 없구만."

유현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렸다.

천년이 넘는 시간동안 묘지는 줄곧 이 자리에 있었다.

직접 동료들을 묻었고, 따르던 병사들을 묻은 곳이기도 했다.

"스산한데."

이전에 찾아왔을 때보다 몇 배는 많아진 묘석의 숫자.

하지만 6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는 걸 생각하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었다.

'노예 제도의 영향이겠지.'

본래 국립묘지에는 이종족도 묻혔다. 하지만 그들을 모두 노예로 전락시켰으니, 같은 취급을 할리 만무했다.

"허억, 허억."

뒤에서 들려온 신음에 유현은 고개를 돌렸다.

세오가 바닥에 누워 있었다.

"빨리 왔네? 고민 좀 할 줄 알았는데."

"허억. 용사님을 모실만한 사람은 저밖에 없습니다. 아니, 그것보다 용사님. 일단 제 이야기를..."

"나중에. 지금은 보고 싶은 게 있어서."

묘지는 계단식으로 되어 있었다.

유현은 계단의 꼭대기로 시선을 돌렸다. 왕의 묘지가 이곳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있다면 저곳에 있지 않을까.

유현은 하늘을 가로질러 꼭대기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유현을 맞이한 건 초대 황제의 비석이었다.

비석에는 황제의 뜻대로 그의 묘를 이곳에 세운다고 적혀 있었다.

"너답군."

카프와 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전장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궁금하지 않았던 것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권위적인 걸 싫어하던 놈이었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정의감에 똘똘 뭉친 자였다. 왕의 자리를 받아들인 것도 그 때문이었다.

불안정한 대륙에 다시금 정의를 되찾기 위해서.

"......젠장."

정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작금의 현실. 카프가 만약 대륙의 꼴을 보면 뭐라 생각할까. 몹시 분노할 게 분명했다.

"항상 매몰차게 대해서 미안했다."

유현은 묘석 위에 조심스레 손을 올렸다. 까슬까슬한 돌의 감촉이 느껴졌다.

"말없이 떠난 것도 사과하지."

유현은 비석에서 손을 뗐다.

뒤늦게야 주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오랜 시간 방치된 건지 비석 주변에는 풀이 무성하다. 어디에도 초대 황제를 향한 존중은 보이지 않았다.

"......"

카프는 모든 이종족을 받아들이고 살았다.

지금 제국이 취하는 스탠스와는 반대이니, 이렇게 방치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유치하기는."

유현은 비석을 두드리며 나지막이 한 마디를 뱉었다.

"내가 다시 네 정의를 바로잡으마."

유현은 그 길로 미련 없이 몸을 돌려 세오에게 돌아갔다.

유현을 찾아 헤매던 세오는 앞에 나타난 유현을 보며 화들짝 놀라 뒤로 자빠졌다.

"요, 용사님! 어디 갔다 오셨습니까!"

"잠깐 옛 동료를 만나고 왔어."

"아..."

용사의 광적인 추종자인 만큼, 세오는 그게 누굴 말하는지 곧장 알아차렸다.

"카프님과 같은 인간 동료 분들을 제외한 다른 분들의 묘는..."

세오가 말끝을 흐렸다.

듣지 못한 뒷말이 무엇인지 유현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굳이 더 묻지 않았다.

"괜찮아. 내가 그들을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유현은 세오에게 손을 내밀었다.

"잡아."

"아, 감사합니다!"

세오는 유현의 손을 붙잡고 일어났다. 하지만 유현은 손을 놓지 않았다.

"용사님?"

"꽉 잡아."

직후, 두 사람의 모습이 사라졌다.

***

수도의 외곽부터 중심부까지는 말을 타고 반나절이 걸린다.

유현은 그 거리를 단숨에 주파했다.

"우, 우웨에에엑."

세오는 벌써 다섯 번째 속을 게워냈다. 원래도 멀미를 심하게 하는 체질이었지만, 이번에는 특히 더 심했다.

처음에는 사과하던 유현도 이제는 개의치 않았다.

"괜히 마도 제국이라는 게 아니군."

유현은 첨탑의 꼭대기에 선 채 수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늘에는 달이 떴지만, 도시는 마치 낮처럼 밝았다.

광장과 거리를 밝히는 환한 불빛들. 멀리 보이는 황궁 역시 환한 빛을 내고 있었다.

예전에도 마법으로 어둠을 몰아내긴 했지만, 이렇게 광범위하지도, 밝지도 않았다.

"이봐, 세오. 아직 제국에 도로 시스템은 없나?"

유현은 광장을 나다니는 수십 대의 마법 수레를 보며 물었다.

승객을 태운 채 스스로 길을 나아가는 바퀴 달린 수레들.

말이나 사람 같은 동력원은 없었으며, 오직 마나의 힘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게다가 그걸 조종하는 사람도 없었다. 단지 승객이 전방에 있는 판자 위에 무언가를 적을 뿐이었다.

"마법 수레 말씀이시군요... 아직은 한시적 운용 중이라 명확한 도로 체계 같은 건 없습니다..."

세오는 파리해진 안색으로 질문에 답했다.

"원리는 모르겠지만, 대단하긴 하군. 혹시 비행기 같은 것도 있나?"

"전투용 비공정이라면 있습니다만... 몸이 이래서 제대로 된 설명은 나중에... 우웨에에엑!"

유현은 한 번 더 세오에게 [활력] 마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상태가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다.

"기절할 것 같아?"

"예... 슬슬 한계입니다..."

"쉴 곳을 찾아야겠군."

유현이 세오를 등에 업었다.

귓가로 세오가 쥐어 짜낸 목소리가 들려왔다.

"용사님. 미리 말씀드리는데 이름은 밝히지 마시고, 얼굴도..."

유현은 첨탑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몸이 붕뜨는 아찔한 추락의 감각. 어두운 뒷골목에 착지하기 직전, 세오의 정신은 아득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름을 밝히지 말라고?"

기절한 세오에게서 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유현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천천히 골목을 벗어났다.

첨탑에서 본 것처럼 거리는 밝았고, 수많은 사람이 거리를 오갔다.

유현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제국 수도의 위치는 과거와 같았지만, 수도를 구성하는 구역들은 기억 속과 완전히 달랐다.

'여관은 대체 어디야?'

무턱대고 걷던 유현은 중앙 광장에 도달했다.

밤인데도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과 마법 수레들.

광장의 중앙에는 커다란 동상이 있었다.

위에서는 뚜렷하게 보이지 않던 동상. 유현은 호기심에 이끌려 가까이 다가갔다.

"누구 동상이지?"

혹시 내 동상?

마왕을 죽이고 판대륙을 구원했으니 동상 하나 정도는 세워 줄만 한데.

유현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동상을 올려다보았다.

한 손에는 검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누군가의 머리를 들고 있는 남자의 동상이었다.

'모르는 얼굴인데.'

유현은 동상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는 실망했다.

그의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동상 아래에 제국의 공용언어로 이름이 적혀 있다.

그 이름을 읽은 유현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카프 3세]

카프 3세의 동상.

노예의 제국을 만든 왕.

이종족을 차별하지만, 제국인들에게는 역사적 영웅이나 다름없는 존재.

그의 행적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동상이 세워진 이유는 알 것 같았다.

"그럼 이건..."

유현의 시선이 동상의 손에 들린 머리통으로 돌아갔다.

그 얼굴을 확인한 순간, 유현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뜬 눈으로 삶을 마감한 머리통.

카프의 머리라고 생각했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말이 되지 않는다. 방치한다고 해도 초대 황제의 무덤까지 만든 주제에 모욕할 리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런 건 상상하지 못했는데.

"......"

유현은 머리통을 응시했다.

지나치게 낯이 익었다.

이목구비는 물론이고 굳은 입꼬리와 턱선까지.

카프 3세의 오른손에 들린 머리.

용사였던 자신의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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