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
폭발과 화재로 하늘이 붉어졌다.
새파랗게 뒤바뀐 게이트에서는 끊임없이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왔다.
사람들은 도망치고, 또 도망쳤다.
대다수는 아무런 능력도 없는 평범한 시민이었다.
두 다리로 괴물의 마수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했다.
콰직!
도로에 버려진 흰색 자동차의 보닛 위로 피가 튀었다.
육중한 손에 쥐어짜인 육신이 바닥에 툭 떨어진다.
"우워어어어어어!"
쩌렁쩌렁한 포효가 차를 버리고 달아나는 사람들의 고막에 꽂혔다.
버려진 차량으로 꽉 막힌 고속도로. 누군가는 가드레일을 넘어 논을 달리고, 누군가는 도로를 직선으로 달렸다.
방향은 달랐지만, 그들의 마지막은 똑같았다.
"끼에에에에엑!"
"크아아아아!"
온갖 종류의 몬스터들이 도로를, 논밭을 질주하며 사람들을 습격했다.
그들은 손에 피를 묻힌 채, 본능적으로 더 많은 사람이 모인 곳으로 향했다.
서울, 부산, 인천, 대구, 대전, 광주, 울산, 경기도 등.
도시는 몬스터들의 타겟이 되었다. 그리고 이는 대한민국에 국한된 일이 아니었다.
-오클랜드가 무너졌습니다. 시 경계에 군대와 헌터들이 전선을 세웠지만, 도시의 내부에서도 게이트가 나타났습니다. 미 정부는 최대한 빠르게 이재민들을 구출하고 새로운 헌터를 파견한다는...
-부룬디가 멸망했습니다.
거점 헌터가 존재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게이트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다음은 헌터 인프라가 존재하지 않는 국가들이 될 것입니다. 이들을 위한 국제 사회의 지원이...
절망(絶望).
인류의 미래는 어두웠다.
헌터들이 사투했지만, 몬스터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A등급 게이트다!"
"S등급도 나왔어!"
협회의 관리실에서는 쉴 새 없이 경보가 울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크고 긴 경고음이 울렸다. 다른 경보와는 확연히 다른 경고였다.
"저, 저건 뭐야 대체!?"
직원 모두의 시선이 전방의 전광판에 꽂혔다.
게이트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측정하는 기기의 수치가 계속해서 올라갔다.
현재 체계에 존재하는 가장 높은 등급을 돌파하고도 멈추지 않는 상승세.
이내 그 숫자는 물음표로 바뀌었다. 시간이 멈춘 듯 사람들이 얼어붙었다.
S+등급으로도 표시할 수 없는 수준. 전 세계에서 지금껏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레벨의 게이트.
인류가 대항할 수 있는 레벨을 초월한 게이트가 대한민국에 나타났다.
***
"일단 섬멸에만 집중해!"
기존에 나타난 게이트를 닫는 것도 불가능하거늘, 게이트는 계속해서 나타났다.
어쩌면 무의미할지도 모를 싸움.
하지만 한상용은 포기하지 않고 길드원들을 진두지휘했다.
"마, 마스터! 저기에!"
그때, 한 길드원이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귀에 착용한 인이어로 협회가 발송한 소식이 전해졌다.
"뭐? 그게 무슨..."
한상용은 눈앞의 몬스터를 죽이고는 허공으로 시선을 돌렸다.
게이트의 등급과 크기는 하등 관련이 없건만, 세상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측정 불가의 게이트는 거대했다.
"허..."
눈앞에 있는 63빌딩과 맞먹는 게이트의 크기.
한강 위에 나타난 게이트가 어둡고 짙은 푸른색 빛을 발하고 있다.
마치 세상을 죽음으로 뒤덮겠다는 듯이.
"저, 저게 무슨..."
"......다 죽으란 건가."
헌터들은 게이트의 크기에 눈을 빼앗겼다. 멀리서도 느껴지는 막강한 기운. 측정 불가 게이트는 그 존재만으로도 모두를 압도했다.
"끄아아악!"
"뭐, 뭐야! 갑자기 빨라졌어!"
게이트의 등장과 함께 몬스터들이 강해진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강력한 게이트의 등장은 곧 두 세계의 구분이 흐릿해졌다는 뜻.
몬스터들 역시 본연의 힘을 되찾기 시작했다. 단순히 거기서 그치지 않고, 더 강한 힘을 얻는 개체들도 있었다.
"......"
불리한 전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체력의 한계가 오고 마나 코어는 바닥을 드러냈다. 그런데도 싸울 의지를 버리는 이는 없었다.
"도망칠 바에야 서서 죽겠다!"
"사람들을 지켜!"
서서히 조여오는 죽음의 공포.
삶과 죽음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줄을 타는 게 곧 헌터들의 일상이었다.
"으아아아악!"
"도망쳐!"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죽음에 가깝다고 해도, 죽음에 의연한 사람은 없다. 다만 참고 견딜 뿐이다.
"무섭다고 도망치지 마라! 우리가 도망치면 인류에 미래는 없다!"
깊은 절망이 드리워 비관뿐인 미래가 펼쳐지리라는 걸 알아도 물러날 수 없는 이유가 그들에게는 있었다.
"끄아악!"
"커헉!"
"크아아아악!"
쓰러지는 헌터들이 서서히 늘어갔다.
그 시체 위를 또 다른 게이트가 채운다.
게이트의 군청색으로 온통 물들어가는 도시.
그 절망에 쐐기를 박듯, 측정 불가 게이트에서 무언가가 나타났다.
쿵.
그것이 게이트 바깥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게이트의 크기보다 살짝 작은 거대 몬스터. 두 다리로 땅을 딛고 선 새파란 피부의 몬스터가 지상을 훑었다.
[우워어ㅡ!]
크기만큼이나 우악스러운 포효가 도시에 울려 퍼졌다.
놈은 그대로 앞에 있던 63 빌딩을 양손으로 쥐었다.
쿠과과광!
힘없이 뽑히는 빌딩.
높이 솟아있던 서울의 랜드마크는 괴물의 손에 장난감처럼 들렸다. 빌딩이 서 있던 자리에는 초라한 토대와 철골밖에 남지 않았다.
"아-"
괴물은 본능적으로 가장 강한 적을 조준했다.
한상용은 자신을 향해 팔을 치켜드는 괴물을 보며 멍하니 입을 벌렸다.
피할 수 없다. 막을 수도 없다.
남은 것은...
"삼촌!"
그때, 뒤통수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상용의 미간이 기이하게 뒤틀렸다.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삼촌! 피해야 해요!"
"너, 네가 왜 여기에..."
함께 싸웠지만, 두어시간 전 쯤에 피신을 명령했다.
어딜 가든 안전하지 않다는 건 알아도, 적어도 사람이 많은 도시에서 벗어나기를 바랐다.
"그런 건 나중에 이야기하고 어서..."
다급하게 한상용의 팔을 잡아 당기는 한서희.
한상용이 급히 괴물을 돌아보았다. 여전히 치켜들고 있던 팔이 가차 없이 아래로 휘둘러진다.
눈을 감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은 찰나의 시간.
눈으로 보고 나서도 공격에 당한다는 인식이 뒤늦게 따라올 만큼의 짧은 시간.
던져진 빌딩은 순식간에 떨어졌다.
쾅!
굉음이 울렸다.
그와 동시에 한상용은 몸을 돌려 한서희를 감싸 안았다.
"......?"
한상용은 자신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질끈 감았던 눈을 떴다.
돌이 떨어지는 등 충격의 잔향이 들려왔다. 공격에 당했다면, 들려오지 않았을 소리. 느끼지 못했을 감각.
'천국인가?'
하지만 시간과 공간의 흐름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는데.
"안 늦었네요."
한상용이 고개를 들었다.
그 앞에는 유현이 서 있었다.
여기저기 상처가 났고, 입고 있는 헤져 있었다.
그걸 제외하면, 평소와 다름 없는 모습이다.
그런데 왜인지, 이전에 봐오던 유현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너..."
"준비한다고 시간이 좀 걸렸어요."
한상용이 무어라 되물으려는 순간, 무언가가 팔을 두드렸다.
한서희의 숨통을 조이고 있던 한상용은 급히 팔에 힘을 풀었다.
"하아, 죽는 줄 알았어요."
"미, 미안하다."
한서희가 숨을 내쉬며 유현을 돌아보았다.
유현은 한상용에게 건네주려던 지도를 한서희에게 내밀었다.
"여기에 가족들이 있어. 나중에 꼭 구해줘."
"당신은요?"
"할 일이 있어서."
"무슨 일이요?"
"나 밖에 할 수 없는 일."
"그게 뭔지 묻는 거잖아요."
유현의 정체를 알고 있는 한서희는 불안한 얼굴로 덧붙였다.
"혼자 모든 걸 짊어질 필요는 없어요."
그녀의 말에 유현은 씩 웃었다.
"안 그래도 그럴 거였어. 나도 두 번은 싫으니까."
유현이 살짝 시선을 올렸다.
자신의 공격을 막은 거대한 방어막을 향해 또 다른 건물을 투척하는 괴물.
그 몬스터의 정체를 유현은 알고 있다.
마물 중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웠던 거대 몬스터. 녀석이 나타나면, 전장은 곧장 초토화 되고는 했다.
"저놈부터 잡고 알려줄게."
유현의 모습이 사라졌다.
한서희가 괴물을 돌아보았을 때, 놈의 가슴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됐어."
유현은 어느새 돌아와 있었다.
괴물이 쓰러지며 굉음이 울렸다.
"어,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그게 궁금해? 시간이 많지 않은데."
한서희가 급히 고개를 저었다.
지금 중요한 건 유현의 행보였다.
"페데리코가 죽었어."
"그럴 것 같았는데 역시..."
"놈은 자신의 몸을 바쳐 차원의 경계선에 간섭했지. 저 빛을 없애지 못하면, 두 세계는 합쳐질 거야."
유현의 말에 한상용이 미간을 구기며 끼어들었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냐? 페데리코? 경계선?"
"삼촌! 제가 나중에 설명할게요. 지금은 그냥 듣기만 해요."
유현은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내가 저 힘을 흡수할 거야."
"그게 가능해요?"
"예전이면 불가능했지. 지금은 달라."
두 사이의 경계가 흐릿해지며 목소리가 접촉해왔고, 그것과 협력하기로 했으며, 자신의 몸에는 지금 목소리의 힘이 함께 하고 있다고, 유현은 이야기했다.
"진짜 양심 없네요. 자기가 필요할 때만 찾고."
한서희는 목소리를 욕하고는 유현의 손을 붙잡았다.
세계를 구하기 위해 결국에는 자신을 희생할 수밖에 없는 유현.
안타까웠고, 화가 나기도 했다.
"정말 다시 돌아오는 거 맞죠?"
"그렇다니까."
하지만 그게 이 이야기의 결말은 아니었기에 한서희는 조금이나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언제 돌아오는지는 정확히 몰라요?"
"100년 뒤에 돌아올 수도 있고, 더 빠를 수도 있고."
"최대한 오래 살아볼게요."
유현은 피식 웃다가 다시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설명도 끝냈겠다, 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다른 애들한테도 말해줘. 가족들한테도. 이왕이면, 세상 사람들이 전부 알게 해줘. 그래야 좀 덜 억울하지."
"꼭 그럴게요."
"하아."
유현이 깊이 한숨을 쉬었다.
또 내가 희생해야 한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도 별 수 없어.'
할 수 있는 게 나밖에 없잖아?
마음 같아서는 직접 전 세계에 생중계라도 하고 싶은데...
그래야 조금이라도 덜 억울할 것 같은데!
"꼭 돌아와야 해요. 죽을 때까지, 죽어서도 계속 기다릴 테니까."
한서희가 손을 뻗어 유현의 머리를 붙잡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직선으로 교차했다.
"......"
유현은 마음이 한결 누그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기다리는 이 없이 싸워야 했던 그때와는 다르다.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기다려준다는 사람이 있다.
가족들도, 친구들도, 모두 자신을 그렇게 기다려 줄 것이다.
벅차오르는 감정을 참지 못한 유현은 눈물이 맺힌 얼굴로 웃고 말았다.
"고맙다."
그 말을 끝으로, 유현은 포탈을 열어 사라졌다.
더 남아 있다가는 미련이 남을 것 같았다.
지구고 뭐고, 어떻게 되든 상관없으니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걸 선택해버릴 것 같았다.
"안 되지, 안 돼."
나는 용사니까.
세상을 구한 용사니까, 이번에도 세상을 구해야지.
이번만큼은 목소리의 의지가 아닌, 직접 정한 운명이다.
미련은 남지만, 후회는 없다.
[구원자 유현. 서두르십시오.]
"거, 더럽게 보채네."
빛줄기를 눈앞에 둔 유현은 천천히 빛의 안으로 향했다.
"흡수하면 세상은 안전해지는 거 맞지?"
[그렇습니다. 다만 당신은 차원의 경계에서 모든 균열을 닫기 위해 싸워야 합니다.]
"혹시 판대륙으로는 못가나?"
[왜 가려고 합니까?]
"그쪽 마무리도 확실하게 해야지."
유현의 모습이 빛줄기 안으로 사라졌다.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흡수한다는 것은 몹시도 고통스러운 과정.
격통의 신음은 빛줄기 사이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내 빛줄기가 세상에서 사라졌다. 균열도, 게이트도, 몬스터도 모습을 감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