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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209화 (209/219)

209

페데리코의 몸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몸뚱이에서 흘러나오는 마나가 자연의 마나와 하나로 뒤엉킨다. 페데리코의 마나 코어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곁에 머무는 것만으로 느껴지는, 실로 위험한 양의 에너지.

유현은 황급히 페데리코의 아래에 포탈을 열었다.

그가 다시 나타난 건 드넓은 하늘. 다음 순간, 먹구름 속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

세상의 붕괴.

이 광경을 가장 명확하고 정확하게 압축한 표현이었다.

"......"

유현은 허망한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페데리코의 몸뚱이가 폭발한 지점에서 검푸른 빛의 기둥이 솟아올랐다. 그 기둥의 끝은 먹구름 너머 더 높은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유현은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먹구름을 뚫고, 검푸른 기둥을 쫓아 비행했다.

높아질수록 점차 밝아지는 하늘.

하지만 빛의 기둥은 태양 앞에서도 그 빛을 잃지 않았다.

유현은 상승을 멈췄다.

허공에서 무언가에 막힌 듯 어색하게 질주를 멈춘 빛줄기.

그 이유는 빛의 끝에서 시작된 균열이 말해주었다.

"경계..."

차원의 경계.

손을 대는 것만으로 그 존재가 지워질 막대한 양의 에너지가 차원의 경계를 관통했다.

그 결과, 판대륙과 지구를 구분하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유리창에 금이 가듯, 균열이 세상으로 서서히 번져간다.

"막아야 하는데."

막을 방법이 없다.

빛줄기에 손을 댈 수도 없고, 균열을 멈출 수도 없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방법이..."

안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유현은 포기하지 않았다. 지키고자 했던 세상을 끝까지 포기할 수 없었다.

"......젠장."

간절한 마음과는 달리, 머리를 굴려봐도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희망찬 미래를 그려보았지만, 결국에는 끝없는 어둠과 지독한 절망만이 남았다.

유현의 눈동자에 좌절과 비관이 스며들었다.

그 시선은 이내 지상으로 향했다. 그의 몸이 아래로 낙하한다.

"우워어어어어어!"

지상과 가까워지자 이전보다 더 많은 몬스터들의 포효가 들려왔다.

사람들의 절규와 비명이 한데 뒤섞여 도시의 재가 되어 사라진다.

한 번 열린 게이트에서는 끝없이 몬스터들이 쏟아져나왔다.

헌터들이 혈투했지만, 압도적인 물량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크아아아!"

유현은 자신을 향해 달려들던 몬스터 한 마리를 단칼에 베어 넘겼다.

주변에는 몬스터와 사람들의 ㅣ시체가 한가득 널브러져 있었다.

유현은 무거운 숨을 내쉬고는 진격하는 몬스터들을 돌아보았다.

실의에 차 있던 눈동자에 작은 불꽃이 일었다.

"끝까지 몸부림은 쳐봐야지."

어두운 무저갱 같은 미래.

그 끝이 예견되어 있기에 의미가 없을지도 모를 투쟁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손 놓고 최후를 기다리는 것보다 꼴사납게 바둥거리는 편이 더 의미 있을 테니까.

[언데드]

머리가 터지거나, 신체의 일부를 잃거나, 목이 덜렁거리는 몬스터의 시체들이 죽음에서 돌아왔다.

[세뇌]

【인간을 위해 죽음으로부터 발버둥 쳐라.】

[우워어어어어어어어!!!]

되살아난 수백 마리의 몬스터들이 저마다의 포효를 내질렀다.

우렁찬 군단의 함성에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로 진격하던 몬스터들이 몸을 돌렸다.

"돌격해라!"

멈춰선 몬스터들을 향해 유현이 손을 뻗었다.

언데드들이 대지를 울리며 달려 나갔다. 적의와 확신이 담긴 그들의 돌진에 몬스터들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들이 더는 자신들과 같은 목적을 가진 동족이 아니라는 것을.

쾅!

몬스터와 언데드 군단의 격돌.

유현은 그들을 뒤로하고 도시로 나아갔다. 나아가는 동안에도 균열은 멈추지 않고 세상을 뒤덮어 갔다.

"......하아."

유현은 입술을 깨물며 포탈을 열었다. 남은 미래가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여 있다고 해도 반드시 챙겨야 할 사람들이 있었다.

"어머니! 아버지!"

유현은 가게의 홀에서 쓰러진 부모님을 발견했다.

반쯤 무너진 천장.

그나마 가게가 도심의 외곽에 있어 다행이었다.

유현은 부모님의 상태를 체크하고 틸칸의 비밀 연구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 두 사람을 눕혀두고는 곧장 동생들을 찾아 나섰다.

"오빠!"

유희연이 허공에서 나타난 유현을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학생들은 넓은 체육관에 피신해 있었다.

유현은 학생들을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뷔페도 아니고 이렇게 모여 있으면..."

자신을 향해 소리치거나 손을 흔드는 학생들.

그들을 모두 이곳에서 빼내고 싶었지만, 시간이 부족하다.

유현은 급한 대로 동생만을 챙겼다.

"대체 밖에 무슨 일이야? 인터넷도 안 되고, 전화도..."

"나중에 얘기해줄게."

"희연아!"

유현과 유희연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일전에 백화점에서 만났던 유희연의 친구 김다정이 학생들 사이에 파묻힌 채 간신히 손만 내밀고 있었다.

"먼저 가 있어."

"뭐? 같이..."

유현은 허공에 열어둔 포탈에 유희연을 내던졌다. 비명이 들렸지만, 포탈 너머로 사라진 순간 뚝 끊겼다.

"친구! 잡아!"

유현은 김다정까지 구출하고는 포탈을 통해 연구실로 돌아왔다.

뒤통수로 들려오는 학생들의 외침이 귓전에 남았다.

'어쩔 수 없어.'

다음은 유하연.

이번에도 포탈을 통해 유치원으로 간 유현은 동생만을 데리고 연구실로 복귀했다.

갑작스레 무너진 평화로운 일상.

다른 선생들과 아이들의 시선이 발목을 붙잡았지만, 애써 무시했다.

"여, 여기가 어디야?"

"안전한 곳."

지구에 이제 안전지대는 없다.

틸칸의 연구실은 사방이 꽉 막혀 그나마 안전하다고 볼 수 있다.

"또 어디가 오빠!"

"데리러 올게. 혹시 못 오면..."

유현은 유희연에게 스크롤 몇 장을 건넸다.

통신 스크롤을 비롯한 탈출에 도움이 되는 마법이 담긴 스크롤들이었다.

"이걸 찢어."

"이, 이거 스크롤이잖아. 마나 없으면 못 쓰는 거 아니야?"

"내가 만든 거야. 너도 쓸 수 있어."

유희연은 스크롤을 던져주고 떠나려는 유현을 급히 붙잡았다.

"어디 가는데? 왜 다시 못 올 사람처럼 그러는 거야!"

"걱정 마. 그건 만약을 위한 거니까. 무조건 돌아올게."

유현은 끝까지 붙잡는 동생의 손을 떨쳐내고는 포탈을 열어 밖으로 나왔다.

'어떻게든 돌아갈 거야.'

차원의 경계가 무너지면 두 세계는 하나가 된다.

바다가 땅이 될 수도, 땅이 바다가 될 수도 있다.

지금으로서는 어느 곳이 안전할지 알수 없는 상황.

스크롤을 넘겨주긴 했지만, 최선은 직접 가족들을 챙기는 것이다.

모든 사람을 구할 수는 없어도, 가족들의 안전 정도는 책임질 수 있다.

'바다가 되든, 땅이 되든, 화산 속에 처박히든.'

어떤 상황이 되든 가족들만은 보호할 것이라고, 유현은 다시 한번 다짐했다.

"전황은..."

마음을 다잡은 유현은 불타는 도심을 내려다보았다.

언데드들은 파죽지세의 기세로 적들을 토벌했다.

이미 죽은 몸뚱이에 두려움을 비롯한 본능은 존재치 않는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오직 세뇌로 내려진 한 가지 명령 뿐.

한 마리 한 마리가 일당백의 전사나 다름없었다.

"하아."

전장의 경과는 나쁘지 않았지만, 유현은 한숨을 참지 못했다.

아까보다 더 늘어나고, 더 벌어진 균열. 이제는 균열 사이로 판대륙의 마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식의 재회를 원치는 않았는데."

언젠가는 다시 보고 싶었던 판대륙. 하지만 이런 방식을 원하지는 않았다. 절망감이 눈 앞을 가리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봐야지."

몬스터로부터 사람들을 구하는 게 원초적인 해결책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이 몬스터에게 살아남는다면, 그만큼 세계의 격돌에서 살아남을 사람도 늘어날 것이다.

만약 경계선의 붕괴 이후에도 세계가 멀쩡하다면, 생존자들은 문명 재건의 발판이 된다.

그러니 최후의 최후까지 최선을 다해 싸우는 수밖에.

[......현]

그때였다. 머릿속에 웬 소리가 울렸다.

"뭐야?"

고개를 갸우뚱하는 유현.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환청이라도 듣게 된 걸까.

[......자 유현.]

또다시 소리가 울렸다.

이번에는 조금 더 확실히 들렸지만, 여전히 아리송했다.

"누구야? 누가 장난치는 거야?"

[구원자 유현.]

세 번째로 들려온 음성은 또박또박했다.

그 목소리가 내뱉은 말이 유현의 뇌리에 틀어박혔다.

구원자, 유현.

판대륙에서 오랜 시간 들어왔던 그 목소리처럼 딱딱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을 구원자라고 부를 만한 건 하나밖에 없었다.

"목소리?"

[구원자 유현. 나의 소리가 들립니까?]

"너 목소리냐?"

잠시 소리가 끊겼다가, 유현이 되물으려는 찰나 답이 돌아왔다.

[균열이 벌어지니, 이제야 닿는군요.]

"너, 너 진짜 내가 아는 그 목소리냐?"

[그렇습니다. 구원자 유현.]

유현은 지그시 두 눈을 감았다.

속에서 분노가 끓어오르고, 그걸 참기 위해 몇 번인가 심호흡했다.

주먹에 힘이 가득 실렸다가 풀기를 두어 번 반복하기도 했다.

끝내, 유현은 화를 다스리고는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넌 진짜 개새끼다. 망할 것 같으니까 또 도와 달라는 거야?"

[이건 한 세계에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목소리의 의사 표현은 이전보다 조금 더 다채로워졌다.

판대륙에 있었을 때는 질문에도 답하지 않고, 딱딱한 목소리로 할말만 하던 녀석이었는데.

"네가 도움을 요청한다는 건,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있다는 거냐?"

[그렇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말해봐."

[차원의 경계에 간섭하는 힘을 차단하고, 균열을 닫아야 합니다.]

유현이 미간을 구겼다.

차원의 경계를 관통하는 빛줄기.

아무리 자신이라도 쉽게 손댈 수 없는 막대한 양의 에너지였다.

"불가능 해."

[돕겠습니다.]

"......하, 진짜 위기가 찾아오니 말이 많아지는구만. 내가 그렇게 물어볼 때는 입 꾹 닫고 있더니만."

유현의 불평에 목소리는 대꾸하지 않았다.

"또 그러네. 불리하면 입 다물기냐?"

[시간이 없습니다, 구원자 유현.]

"그놈의 구원자, 구원자!"

유현은 구원자라는 명칭 아래 감내해야 했던 지난 고통을 떠올리며 분통을 터뜨렸다. 격앙된 감정. 이성적으로 행동해야 할 때였지만, 그의 신경은 온통 목소리에 쏠렸다.

"너 대체 정체가 뭐냐? 뭔데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냐고!"

[차원의 조율자. 그게 나의 역할입니다.]

"그럼 진즉에 페데리코 족치던가."

[나의 힘은 직접적으로 세상에 작용하지 않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은 간접적인 방법뿐입니다. 용사를 소환하여 마왕을 구원하는 것처럼요.]

유현은 마른 세수를 했다.

뒤늦게 이럴 때가 아니라는 걸 인지했지만, 그의 욕심은 자꾸만 새로운 질문을 만들었다.

"왜 페데리코는 진즉 막지 않았지?"

[알고는 있었지만, 말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나는 판대륙에 소속된 존재. 이면 세계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만능은 아니구만."

차원의 경계선이 무너지며 목소리도 지구로 의사를 전달할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왜 하필 용사로 소환된 게 나였지? 운이 나빠서였나?"

[당신에게 불굴의 자질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

불굴의 자질. 그런 쓸데없는 것 때문에 그 고통을 참았어야 했나.

[시간이 없습니다. 균열이 더 벌어지기 전에...]

"좋아. 그 부탁을 받아들이지."

목소리의 요구대로 하는 것은 원치 않았지만, 애초에 선택지는 없었다. 그게 지구를 구할 유일한 방법이었다.

"대신 조건이 있어."

[힘이 닿는 한 그 부탁을 이행하겠습니다.]

"날 죽게 해라."

유현은 언젠가의 기억을 떠올렸다. 용사는 늙지 않는다는 사실의 편린을 알게 된 날. 그것을 토대로 생각이 이어진 결과, 결국 또다시 모두를 잃은 미래가 그려졌다.

그건 원치 않았다.

세상에 혼자 남고 싶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당신의 수명을 인간 평균으로 제한하겠습니다.]

"좋아. 그나저나 에너지는 어떻게 차단하지?"

[온몸으로 흡수하면 됩니다.]

"......죽는 거 아니냐?"

[제가 함께 버티겠습니다.]

감정이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 믿음이 생겼다.

"바로 시작하자고."

[에너지를 차단한다고 해도, 균열을 닫는 건 무척 긴 싸움이 될 겁니다.]

"몇 년이나?"

[인간에 따라 100년 이상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한층 깊어지는 유현의 눈동자.

그 눈빛에 잠시 망설임이 어렸지만, 다시 뚜렷함을 되찾았다.

"그동안 지구는 안전한 거지?"

[모든 균열은 닫힐 것입니다.]

"그럼 상관없어."

홀로 고통받을지라도, 가족의 일상을 위해서라면 참아낼 수 있다.

각오를 다진 유현은 빛줄기를 향해 비행했다.

[힘의 전승을 개시합니다.]

날아가는 그의 몸에 환한 빛줄기가 내려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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