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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208화 (208/219)

208

신성한 불길은 페데리코를 집어삼키며 지상까지 작렬했다.

유현은 강렬한 빛에서 눈을 돌렸다. 대각선으로 내려꽂히는 빛줄기 속에서 서서히 어둠이 사라진다.

"그만."

유현은 손을 들어 미르에게 신호를 보냈다.

불길이 사그라들고, 빛의 잔흔이 허공으로 흩어진다.

"크릉!"

미르가 지상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한때는 공원이었던 공터 위에 페데리코가 걸레짝 같은 꼴로 뻗어 있었다.

유현은 지상으로 내려갔다.

페데리코는 언제 숨이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가쁘게 호흡을 뱉어냈다.

마기를 흡수한 상태로 홀리 브레스에 직격당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신성력은 마기를 상대하는 데 특화된 힘. 하지만 필승은 아니다.

강하게 타오르는 불꽃을 물 양동이 한 통으로 끌 수 없듯이 말이다.

"마왕은 본인이 가진 막대한 양의 마기로 모든 신성 공격을 막아냈지."

유현이 페데리코의 팔을 지그시 지르밟았다.

길었던 호흡이 실처럼 가늘어졌다.

"네가 흡수한 어둠은 위험한 힘이야. 만약 이곳에 신룡이 없었다면, 널 막을 수도 없었겠지."

페데리코가 흡수한 마왕의 힘.

세상에 위험이 될 만큼 강한 힘이었지만, 신룡인 미르가 가진 신성력을 이겨낼 정도는 아니었다.

"쿨럭!"

그 차이가 지금의 결과를 만들었다. 페데리코가 신성력의 존재를 몰랐다는 점도 한몫했다.

"하하..."

페데리코가 허탈한 눈으로 하늘을 응시했다.

그의 입에서는 조금 전의 각혈로 솟구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렇게 당할 줄이야."

유현은 여유롭게 중얼거리는 페데리코의 복부를 걷어찼다.

그의 몸이 모로 꺾이며 저 멀리 날아가 무너진 빌딩의 잔해에 처박혔다.

"엘리스의 몫."

유현은 발을 튕겨 쇄도했다.

충격으로 일어난 먼지가 가라앉기도 전에 더 큰 충격이 대지를 울렸다.

쾅!

몇 번이고 반복되는 굉음.

먼지가 가라앉았을 때, 페데리코의 몸뚱이는 땅에 처박혀 있었다.

"이건 이니티움의 몫이다."

유현이 페데리코를 내려다보았다. 전신의 뼈가 부러졌고, 내부의 장기는 터지고 일그러졌다.

"......아프군."

페데리코는 격통을 느끼며 말을 토해냈다.

"아픈 건 아네."

"앞으로 조금이었다. 조금의 힘만 더 있었더라면..."

"죽을 놈이 말이 많군."

유현이 허공으로 손을 뻗었다.

지상으로 추락하고 있던 뭉툭한 창이 그의 손으로 날아왔다.

"죽일 건가?"

"당연한 소리를."

"아직 죽고 싶지는 않은데..."

주변의 마나가 요동쳤다.

유현은 혀를 찼다. 끈질긴 새끼. 뒤지기 직전까지 포기하지 않는구나.

"으아아아아악!"

"사, 살려줘어어!"

주변에서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더 많은 게이트를 만들었다. 어서 저들을 구해라."

"쓸데없는 짓 하기는."

"그대로 죽게 둘 건가?"

유현이 페데리코의 가슴팍을 창끝으로 짓눌렀다.

"크으으...!"

"내가 너처럼 혼자는 아니라서."

"...그렇군."

유현은 멀리서부터 다가오던 헌터들의 기운을 느꼈다.

몬스터들의 고통스러운 포효가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들었지? 이제 네 차례야."

유현이 창을 치켜들었다.

뭉툭한 창끝에 푸른 빛의 마나가 서린다.

"벌써 퇴장하기에는 이른 배역이다."

그의 심장을 내려찍으려던 순간.

페데리코의 손가락에서 마나가 번쩍였다.

펑!

강한 충격과 함께 유현의 몸이 뒤로 날라갔다.

유현은 급히 자세를 다 잡았다.

페데리코가 어느새 하늘 위에 떠 있었다.

"...끈질긴 새끼."

뼈를 마디마디 부러뜨리고, 치명적인 내상을 입혔는데도 움직인다.

방심했다기에는 놈이 가진 능력이 기괴하리만치 강했다.

"회복할 시간을 줘서 고맙군."

페데리코가 목을 꺾으며 몸을 풀었다.

"오늘은 이만 물러가겠다."

"지랄하지 마!"

유현은 들고 있던 창을 던졌다.

하지만 페데리코는 이미 포탈을 열었다.

창은 힘껏 던졌지만, 타이밍이 찰나의 차이로 어긋날 것 같았다.

아드득.

유현이 분한 마음에 이를 갈던 그때. 페데리코의 몸이 포탈 너머로 넘어가려던 그 순간이었다.

빠각!

하늘에서 날아온 거대한 무언가가 페데리코와 충돌했다.

페데리코는 그대로 땅바닥에 처박혔다.

"......?"

유현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몸은 생각보다 먼저 움직였다.

급하게 달려왔지만, 페데리코는 그 자리에 없었다.

"유현! 저쪽이야!"

낯익은 목소리가 창공 아래 울려 퍼졌다.

유현은 고개를 쳐드는 대신 목소리가 알린 방향으로 달렸다.

[가속]

추진력을 활용하여 있는 힘껏 창을 던졌다.

포탈을 열려던 페데리코는 이를 악물며 유현이 던진 창을 튕겨냈다.

"어딜 도망가려고, 이 개자식아!"

로켓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지상으로 날아들었다.

유현은 그게 마나로 이루어진 미사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설마 호야?"

"등신아! 한눈팔지 마!"

호야가 검은색 기체에 탄 채 하늘을 비행하고 있었다.

틸칸이 이니티움을 위해 남겨두었던 인간형 메카닉이었다.

휘이이잉!

메카닉의 팔이 프로펠러처럼 회전하며 연기를 몰아냈다.

유현은 호야의 힘이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음을 느꼈다.

막힌 혈을 뚫은 것처럼 개화의 끝과 동시에 몇 단계의 상승이 이루어졌다.

무거운 기체를 움직일 만큼의 마나가 있는 것도 그 덕분이었다.

"너는..."

페데리코도 그제야 그게 호야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지금의 상황이 우스워서 견딜 수 없다는 듯한 웃음이었다.

"그토록 찾았는데, 제 발로 기어오는구나."

"닥쳐, 이 쓰레기 자식아! 다 봤어! 네가 그 사람을 죽인 거!"

"개화의 과정에서 핏줄의 기억 일부를 공유하기도 한다던데, 그게 정말이었군. 하하하! 혈족의 죽음은 즐거웠나!"

호탕하게 웃는 페데리코를 향해 호야가 공격을 퍼부었다.

마나로 된 무기들의 공격이 그에게 쏟아졌다.

미사일이 터지고, 총탄이 전장을 뒤덮는다.

메카닉의 기능은 화약 무기의 모방뿐만이 아니었다.

하늘로 발사된 마나들이 허공에서 칼날의 모양을 갖춘 채 지정된 범위로 낙하했다.

슈슈슉!

듣기만 해도 살벌한 파공음과 함께 내려꽂히는 칼날들.

유현은 바람을 일으켜 폭발의 잔연을 몰아냈다.

호야의 맹공도 페데리코가 만들어낸 배리어 앞에서는 큰 효과가 없었다.

"이게 다인가. 싱겁군."

"이런 개자식이..."

호야가 메카닉의 양손에 긴 검을 뽑아냈다.

푸른 빛으로 형상화 되어 마치 광선검처럼 보였다.

"하하! 어디 한 번 와보거라! 네놈도 똑같이 보내줄 테니까."

"닥쳐, 개새끼야!!!"

척 보기에도 의도적인 도발.

하지만 호야는 그대로 도발에 휘둘렸다.

"안 돼! 멈춰!"

유현이 급히 메카닉을 붙들려 했지만, 기체의 속도는 유현의 생각보다도 더 빨랐다.

쾅!

격돌. 그리고 폭발.

사방으로 튀어 오른 메카닉의 부품. 시야를 가리는 숨 막히는 회색빛 연기.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연기보다 높이 떠오른 호야의 몸뚱이.

"호야!"

유현은 허공을 향해 발을 튕겼다. [에어] 마법으로 공기를 뭉쳐 발판을 만들며, 가속하고, 또 가속했다.

호야를 붙잡아야 한다.

지금 당장 잡지 않으면, 페데리코가 선수를 칠 것이다.

그다음은? 흡수되겠지.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한 몸부림. 유현은 호야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와 동시에 연기 속에서 페데리코가 솟구쳤다.

주마등처럼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늦었다.

유현의 머릿속에 그 단어가 메아리치고, 시간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페데리코는 호야를 품에 안은 채 하늘을 날았다.

"끝이다."

페데리코의 손이 호야의 가슴을 꿰뚫었다.

곧장 숨이 끊기지는 않았지만, 페데리코에게서 빠져나온 마나가 호야의 능력을 빠른 속도로 흡수했다.

"그래, 이거야! 이 힘이라고!"

페데리코가 만족한 얼굴로 팔에 힘을 풀었다.

유현은 황급히 달려가 지상으로 추락하는 호야를 붙잡았다.

"......"

호흡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가늘었다.

구멍이 뚫린 심장에서 울컥거리며 피가 치솟았다.

"그 아이를 안고 지켜보아라. 세상의 붕괴를."

유현은 페데리코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미르를 불러들였다.

"미르. 호야를 살려."

"크릉!"

"빨리 해! 못 싸워도 상관없어!"

신성력은 회복에 시간이 걸린다.

죽기 직전인 호야를 회복시키면 신성력의 전부를 사용해야 했다.

그 말은 즉, 호야를 치료하면 미르가 더 싸울 수도 없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유현은 망설임 없이 호야의 목숨을 선택했다.

그게 죽은 이니티움을 위한 마지막 배려였다.

'반드시 지키겠어.'

호야를 미르에게 맡긴 유현은 페데리코에게 시선을 돌렸다.

페데리코는 아직 흡수한 호야의 힘을 몸에 적응하는 중이었다.

그 많은 힘을 흡수했으니, 꽤 시간이 걸릴 터. 기회를 노린다면 지금이었다.

'곱게 뒤질 생각은 말아라.'

유현은 발을 튕겼다.

***

팽팽한 힘의 격돌.

충돌 한 번에 산 하나가 사라지고, 대지에 커다란 분화구가 뚫렸다. 하지만 그 기세는 시들 줄을 몰랐다.

근접전을 시작으로 마법을 활용한 전투까지.

그 사이, 아카데미의 학생들과 헌터들은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몬스터들을 정리했다.

"스파르타!"

스파르타의 길드원들은 전장이 된 도시를 맨몸으로 누볐다.

신가온 역시 그 속에 섞여 검을 휘둘렀다.

"저거 안 도와줘도 되나?"

"괜히 방해만 될 거야."

"...그렇네. 저 정도 수준이면… 온다!"

격돌하는 유현과 페데리코를 보며 이야기하던 서혜빈과 한서희는 다시 적에게 시선을 돌렸다.

"마루야! 죽여!"

김풀잎은 커다란 몬스터에 등에 탄 채 다른 몬스터들을 사냥했다.

날카로운 이빨에 찢겨진 몬스터들의 시체가 허공에 흩날리며 도심 곳곳에 쌓인다.

펑!

폭발이 일어난 곳에는 오철용이 있었다. 그의 폭탄은 일발 백중의 사수처럼 적들에게 정확히 명중했다.

"으아아아! 튀어라! 튀어라!"

한주석은 몬스터에게 쫓기고 있었다. 하필 그가 맞닥뜨린 몬스터는 혼자 죽일 수 있는 레벨의 몬스터가 아니었다.

학생들의 고군분투가 이어지는가 하면, 길드들의 활약도 있었다.

"생화 길드는 북쪽으로 향한다."

서동철은 방향을 잡고 나아갔다.

그 길에 나타난 몬스터들은 그의 가차없는 검격 아래 부질없이 스러졌다.

"지금 뭐하세여! 바쁘세여! 안 바쁘시면 종말인데 구해주실 수 있나여!!"

"우워어어어!"

박정환을 필두로 한 애니동은 군단의 기세로 적들을 섬멸했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건 시체뿐이었다.

"다, 다들 조심해요!"

한송이가 소심하게 소리쳤다.

그러나 길드원들의 기세는 그렇지 않았다.

"길드장님이 조심하라신다!"

"우랴아아아!"

"산불조심! 몬스터 조심!"

폭발적인 분위기로 나아가는 민들레의 길드원들.

마치 전차를 연상케 하는 에너지였다.

"호호. 잘하면 상을 줄지도 몰라요~"

채지수의 붉은 장미 길드원들은 그녀를 흘깃거리고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가, 가자!"

다른 곳과 달리 그들의 진격에는 힘이 없었다.

하지만 그 검과 창끝에 어린 날카로움은 확실하게 적의 목을 베어냈다.

"시민들을 구해."

한상용은 짧은 한마디만을 남겼다. 무장한 길드원들은 고요 속에서 규칙적인 걸음으로 나아갔다.

고귀함 마저 느껴지는 묵직한 돌격이었다.

***

지독하리만치 오랜 시간 지속된 싸움이었다.

달 밤이 되고 나서야, 싸움의 결판이 났다.

먼저 바닥에 누운 건 페데리코였다.

"......더럽게 끈질기군."

"누가 할 소리를."

유현은 어깨에 걸친 뭉툭한 창을 내려 지팡이처럼 바닥에 기대었다.

그가 사용했던 수십의 무기들이 페데리코를 겨냥했다.

"네 놈이 방해만 하지 않았더라도..."

페데리코의 몸에 호야의 힘이 흡수되며, 그는 단신으로 차원의 경계를 붕괴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유현의 방해로 그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제 그에게 남은 건 죽음뿐인 것 같았다.

"얌전히 죽어라."

유현은 뭉툭한 창을 치켜들었다.

쾅!

심장을 내려찍자 대지가 울렸다.

페데리코의 입 안에서 피가 솟구쳤다.

"한 번 더."

유현이 다시 한 번 그의 심장을 내려찍은 순간. 페데리코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그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 대신 튀어나온 건, 의미심장한 한 마디였다.

"내 목숨을 바치고 싶지는 않았다. 두 세상을 연결하는 의미는 오직 나의 힘을 키우는 데 있었으니."

피 칠갑 된 입술이 달싹였다.

질긴 생명력의 모든 걸 털어 넣은 듯한 음색.

순간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이젠 아무래도 좋다. 너를, 이 세상을 엿 먹일 수 있다면..."

유현은 한 번 더 페데리코의 심장을 내려찍었다.

천지가 진동하고, 피가 튀어 올랐다.

얼굴에 번진 붉은 유혈 사이로 페데리코의 하얀 이빨이 드러났다.

"무너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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