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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206화 (206/219)

206

빛이 약해지며 시야가 돌아왔다.

마치 스피커처럼 지도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편지가 재생된다는 건 그대가 지도를 보고 잘 찾아왔다는 뜻이겠지. 대단해. 누군지는 몰라도 판대륙과 관련된 사람일 테지?

틸칸의 목소리는 무척 중후했다.

겨우 목소리 뿐이었지만,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왜 하필 이곳에 연구실이 있는지 궁금하지 않나? 이 첨탑은 또 뭐고?

녹음된 내용이기에 대화가 이루어지는 건 아니었겠지만, 유현은 틸칸의 물음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진 답변 역시 마치 대화처럼 들려왔다.

-이 첨탑은 판대륙에 있던 마탑이었다. 오랫동안 방치된 건물이지.

"마탑?"

이런 느낌의 마탑이 있었던가.

잠시 고민하던 유현은 이내 피식 웃었다.

"마탑 생긴 게 다 거기서 거긴데 고민은."

처음 봤을 때, 첨탑의 생김새가 판대륙에 더 어울린다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게 정말 마탑이었을 줄은 몰랐는데.

-여긴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혼자 게이트 실험을 진행한 장소다. 마탑도 그 과정에서 이곳에 나타났다.

그간 틸칸의 연구와 실험에는 항상 이니티움이 함께했다.

그래서 혼자 실험을 진행했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미련이 남아 도전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더군. 이 첨탑이 그 증거다. 두 세계는 서로의 이면에 존재하는 세계. 두 차원을 연결하는 건 위험한 짓이다.

"...미련이라."

오랜 시간을 연구에 투자했으니, 쉽게 포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부분을 제외하면, 이니티움에게 들었던 이야기와 같았다.

이런저런 복잡한 이야기는 접어두고, 결과만 말하자면 두 세계의 연결은 결국 세계의 붕괴를 낳는다는 것. 페데리코와 달리 모두의 이익을 추구했던 틸칸은 그 사실을 알고 연구를 포기했다.

-아마 오늘이 연구실을 방문하는 마지막 날이 될 것 같군. 이걸 보고 있는 그대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 남은 연구자료를 잘 써주기를. 그건 나의 전부이자, 마법 공학의 결정체다. 암호를 해석했을 테니,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참고로 자료는 이곳에 있는 모든 것에 존재한다.

유현은 책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다음에는 책상, 그다음에는 지도였다.

그렇게 방에 있는 물건을 하나하나 전부 훑었다.

여전히 유현의 눈에는 단순한 물건들로 보였다.

"...메시지는 이걸로 끝인가."

하지만 지도는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유현이 지도에 손을 뻗은 그때.

-...마지막으로 바라건대, 그대가 악인이 아니기를, 죽음을 추모하고 축제를 즐길 줄 아는 자이기를.

그 말과 함께 지도의 빛이 사라졌다. 지도가 나풀거리며 유현의 손바닥 위로 안착했다.

이전과 달리 지도는 더 이상 지도가 아니었다.

대륙과 바다의 그림이 사라진 빛바랜 종이 위에는 글씨가 빼곡했다.

필기체로 적혀진 판대륙의 제국 공용 문자였다.

"기초 마법의 해부와 결합, 원소 마법의 상용화, 마법진 영구 보존 및 세부 구조 변화 실험, 단거리 다발 순간이동 실험, 원소 탄두 실험, 마법의 캡슐화, 마나의 연료화..."

하나 같이 연구에 관련된 내용들이었다.

유현은 책장으로 다가갔다.

책에 적힌 제목들과 지도 위에 적힌 것들이 대부분 일치했다.

"이걸 혼자 다 했단 말이야?"

커다란 책장에 가득한 책들.

모두 틸칸이 남기고 간 연구의 흔적들이었다.

"얼마나 똑똑했던 거야..."

유현은 그의 천재성에 혀를 내두르며 다른 것들도 살폈다.

책상 위에는 잡동사니가 많았다.

쓰다 만 볼펜, 도형을 그리는 데 사용하는 도구, 누런색 재생지 등.

유현은 볼펜을 손에 들었다.

척 보기에도 오래된 볼펜이었다.

"평버맣ㄴ 볼펜이 아니군."

유현은 볼펜의 잉크 카트리지를 살폈다.

그곳에 무척 작은 크기의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이건 처음 보는 마법진인데."

유현은 머릿속으로 마법진을 뜯어 보기 시작했다.

비슷한 구조의 마법진을 찾고 둘 사이에 어떤 점이 다른지를 비교했다.

"......일종의 잉크 충전 마법이군."

잉크가 다 떨어졌을 때, 마나를 주입하면 그 마나가 잉크로 바뀌는 구조였다.

"이런 마법을 개발하다니."

기존에 존재하던 마법에서 상당 부분을 차용하긴 했지만, 지금까지 본 적 없던 새로운 마법임은 틀림없었다.

"이건 또 뭐지?"

유현은 다음으로 재생지를 살폈다. 재생지의 오른쪽 위 구석. 마치 점처럼 작은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어떻게 그렸는지 의문스러울 정도의 크기였다.

"이건 좀 쉽네."

볼펜에 그려진 마법진과 달리 종이 위에 그려진 마법진은 [클린] 마법과 거의 비슷했다.

볼펜으로 종이 위에 글씨를 적은 뒤, 재생지에 마나를 주입하자 글씨가 깨끗하게 지워졌다.

"이야..."

유현은 그 뒤로 방을 돌아다니며 물건들을 살피는 데 몰두했다.

그러다가 하얀 천에 덮인 무언가와 마주쳤다.

"이건 뭐지?"

중형 차량 정도의 크기였다.

유현은 허리를 숙여 천 아래쪽에 삐져나온 종이를 주웠다.

"탑승형 메카닉?"

탑승형 메카닉이라는 타이틀 옆에 작은 글씨로 [이니티움 전용] 이라고 적혀 있다.

"이니티움을 위해 만든 무기 같은 건가."

종이에는 이걸 만들게 된 계기가 적혀 있었다. 게이트 실험을 이어가는 동안 언젠가 찾아올지 모르는 위기에서 그녀를 돕기 위해 만들었다고 적혀 있었다.

그 외에, 그녀에게 전하는 편지 역시 함께 쓰여 있다.

유현은 편지를 읽지 않고 종이를 주머니에 접어 넣었다.

"......"

실험이 흐지부지 되며, 병기가 사용될 일도 사라졌고, 덩달아 편지 역시 이곳에 남게 됐다.

조금 더 이곳을 빨리 찾아왔더라면, 이니티움에게 이 편지를 전해줄 수 있었을 텐데.

"하아."

유현은 한숨과 함께 무거운 마음을 털어내고는 천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건, 과연 메카닉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형태를 가진 기계 장치였다.

"와. 뭐야 이게?"

온갖 기계 부품들이 복잡하게 연결된 탑승형 기계. 마치 로봇을 보는 것 같았다.

커다란 몸체의 양옆으로는 육중한 기계팔이 붙어 있고, 몸체의 중앙에는 탑승석이 있었다. 드래곤이 아닌 인간을 위한 형태였다.

"폴리모프 했을 때 쓰는 용도인가."

메카닉의 외적인 구조는 인간과 비슷했다.

탑승석 아래에는 허리와 비슷한 부분이 있고, 그 아래로 기계 다리가 달려 있다.

"엄청 튼튼해 보이네."

유현은 메카닉 기체 위에 손을 올렸다. 틸칸이 직접 만들었다면, 외형으로 보이는 것처럼 단순한 기계 장치는 아닐 터.

아니나 다를까, 기체에서 마법의 힘이 느껴졌다.

"하지만 내 마나에는 반응하지 않는군."

이니티움을 위한 기체이기에 그녀만이 이용할 수 있는 걸까.

유현은 이니티움의 드래곤 하트를 흡수했지만,

그렇다면 결국에는 고철덩이에 지나지 않았다.

"음?"

기체 곳곳에 그려진 마법진을 살펴보던 유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마법진에 하나 같이 공통으로 들어가 있는 표식. 바로 피를 의미하는 표식이었다.

이게 뜻하는 바는 한 가지.

같은 피를 공유하는 이라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호야라면..."

유현은 등에 매고 있던 호야를 내려놓았다.

개화가 시작되고 몇 시간.

앞으로 또 몇 시간만 더 지나면, 개화가 종료된다.

"바로 시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유현은 호야를 뒤로하고는 다시 내부를 돌았다.

벽에 걸린 커다란 지도에도 마찬가지로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잠시 살펴보던 유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건 좀 위험한 것 같은데."

위치추적 마법과 대상 기억 마법 등 여러 가지 마법의 핵심이 얽히고설킨 새로운 마법이다.

어떤 대상을 떠올리며 지도에 마나를 주입하면 그 대상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는 지도 같았다.

"......발전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군."

단순히 마나를 주입하기만 하면 누구라도 사용할 수 있는 도구들.

하지만 어떤 도구는 누군가를 위험에 빠뜨리게 하는 위험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틸칸이 추구한 연구의 방향성이 마냥 좋다고만은 할 수 없었다.

"뭐,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거겠지."

유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페데리코를 떠올리며 지도에 마나를 주입했다.

그가 아지트에 있다면, 표시되지 않을 것 같았다.

아지트가 이런 간단한 마법조차 막지 못할 리는 없을 테니까.

"음 역시 없군."

유현은 책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언제 싸우게 될지 모르니, 아까 전 양피지를 보면서 당장 도움이 될 것 같았던 연구를 찾아 책을 꺼냈다.

"확실히 이런 방법이라면..."

모든 연구가 마법과 현대 과학이 결합된 건 아니었다.

어떤 연구는 단순히 마법에 대한 탐구뿐이었다.

유현이 뽑아든 책은 후자였다.

"배리어를 쉽게 관통하는 것도 불가능한 건 아니겠군."

조금 더 책을 읽어볼까 싶었던 그때. 유현은 곁눈에 있는 지도 위에 무언가 그려지고 있는 걸 발견했다.

"......"

지도에 그려진 대한민국.

서울이 위치한 부근에 검은색 점 하나가 종이에 잉크가 번지듯 서서히 나타나고 있었다.

"...나왔구나."

아지트 바깥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유현은 호야를 뒤로하고는 곧장 바깥으로 나갔다.

***

"크하하하하하!"

페데리코의 손짓 한 번에 땅이 솟구치고 건물이 붕괴한다.

엄청난 굉음 사이로 그의 웃음소리가 흩어졌다.

"어서 나와라, 유현!"

페데리코는 사방으로 마법을 난사했다.

학생과 헌터들이 이를 악물고 반항했지만, 페데리코에게는 벼룩의 공격과 마찬가지였다.

"벌레 자식들이 따로 없구나."

페데리코가 가소로운 듯 웃으며 사람들을 공격했다. 그들의 비명은 마법의 소음에 묻혔다.

매 공격이 이어질 때마다 수많은 생명의 불씨가 꺼졌다.

그나마 아카데미의 위치가 도심이 아닌 것과 3학년 학생들이 실습으로 자리를 비운 덕에 피해가 최소화되었다.

"유현! 어서 나오지 않으면..."

소리치던 페데리코는 전방으로 손을 뻗었다.

그의 손 위로 나타난 또 다른 방어막.

퓨숙!

어디선가 날아온 날카로운 송곳이 서클 배리어를 뚫고 방금 막 만들어낸 방어막의 절반을 관통했다.

"제법..."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시간차를 두고 날아온 송곳들이 서클 배리어와 방어막을 뚫었다.

쨍그랑!

방어막이 부서졌지만, 송곳의 공세는 멈추지 않았다.

이전보다 더 빠르게 날아와 페데리코의 몸뚱이를 노렸다.

시간을 둔 공격에 방심했던 페데리코는 황급히 회피 기동을 펼쳤다.

"쯧. 어디서 이상한 걸 배워왔군."

페데리코는 유현의 마나를 쫓아 순간이동했다.

활에 시위를 매기고 있던 유현은 황급히 몸을 돌렸다.

뒤에서 나타난 페데리코가 내지른 칼날은 그대로 허공을 갈랐다.

두 사람의 전투는 그대로 근접전으로 이어졌다.

주먹과 주먹이 오가고, 허공에서 나타난 무기가 서로의 뒤를 노린다.

서로의 주먹이나 발이 맞부딪칠 때마다 둔중한 타격음이 울려퍼졌다. 마나와 마법으로 강화된 두 사람의 육체는 세상의 무엇보다도 단단했으며 강력했다.

"크아악!"

계속되던 근접전의 흐름을 먼저 깨뜨린 건 유현이었다.

페데리코는 유현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는 속담처럼 그의 등으로 벼락이 작렬한 까닭이었다.

"이런 비겁한..."

"너보다 비겁할까."

유현은 [에어] 마법으로 허공을 박차고 다시금 쇄도했다.

그 돌격과 동시에 허공에 수십 개의 아공간 포탈이 나타났다.

유현의 명령을 받고 [아공간 전이]로 모습을 드러낸 수십 자루의 날붙이들.

[가속]

유현의 뒤를 이어 무기들이 질풍처럼 페데리코를 향해 날아들었다.

페데리코는 그 무기들을 보며 조소했다.

"어림도 없는 공격을 하는군."

더 강화된 원형 방어막이 그의 몸을 감쌌다.

이어서 그의 마나가 유현의 몸뚱이를 휘감았다.

"얌전히 호야나 데려와라."

대상의 중력을 강화하는 마법이 유현을 지상으로 추락시켰다.

그와 함꼐 날아오던 무기들은 모두 방어막에 막혀 튕겨 나갈 터였다.

하지만 페데리코의 예상과 결과는 달랐다.

"크아아아악!"

거침없이 방어막을 뚫고 페데리코의 몸뚱이에 처박히는 수십 자루의 무기들.

아래로 추락하던 유현은 페데리코의 압박이 사라지자 단숨에 같은 높이 까지 뛰어 올랐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지."

처음에는 실패했지만, 두 번째에는 성공했다.

만약 틸칸이 살아서 두 눈으로 이 광경을 지켜봤더라면, 유현을 천재로 묘사했을지도 모른다.

연구자료를 훑은 것만으로 마법의 핵심을 잡고 모방하는 뛰어난 재능.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틸칸의 비밀 연구실이 있었다는 걸 알고 있나?"

"...뭐라?"

"나는 적어도 기본적인 형태는 갖춰야 마법이 된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그의 연구는 다르더군.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그만이라는 말처럼, 어떤 구성을 이루든 마법으로서 발현되기만 하면 상관없는 유동적인 학문이야."

유현은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푸른색 마나가 난잡하게 새겨진다. 그간 알고 있던 마법진이라는 개념과는 다른 형태. 하지만 유현은 큰 고민 없이 그림을 완성하고, 마나를 부여했다.

"나는 이걸 마법의 진화라고 생각하려고."

바닥에 널려있던 건물의 잔해가 허공으로 치솟았다.

수백, 수천 개의 크고 작은 덩어리들. 유현이 손가락을 튕기자 공격이 시작되었다.

빠각!

돌덩이 하나가 페데리코의 몸뚱이를 가격했다.

이어서 커다란 콘크리트가 페데리코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단단한 덩어리들은 그렇게 페데리코의 몸을 두들겨 팼다.

돌덩이가 망치의 역할을 하여 몸에 틀어박힌 무기를 더 깊숙이 처박거나 아예 반대쪽으로 관통시키기도 했다.

"크아아아악!"

페데리코는 벗어나려했지만, 유현은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이미 펼쳐놓은 돌의 지옥은 일종의 자동화 마법. 굳이 시전자가 집중하지 않아도 모든 돌덩이가 떨어질 때까지 페데리코를 공격한다.

[지옥의 사슬]

흑마법으로 만들어낸 검붉은 쇠사슬이 그의 몸을 단단히 조였다.

뜨거운 지옥의 불꽃이 그의 몸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뇌전]

[압착]

[스피어 워터]

수많은 마법이 페데리코의 육신에 내리꽂혔다.

유현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아무리 페데리코의 허점을 노렸다지만, 이렇게 쉽게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는데.

곧 그 예상은 현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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