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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204화 (204/219)

204

눈앞이 캄캄하다.

엘리베이터에 탄 건지 가만히 서 있는데도 미세한 진동이 느껴진다.

"다 왔냐?"

"아직요."

두 눈을 가린 유현은 새삼스레 시각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밝힐 수 없는 어둠은 생각보다 더 답답했다.

"얼마나 더 가는데?"

"거의 다 왔어요."

유현은 두 눈을 가린 채 한서희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목적지는 바로 호야와 미우가 머무는 곳.

'대체 애들을 어디다 쳐박아 둔 거야?'

어디냐고 물어봐도 알려줄 수 없다는 대답만 한다.

그게 길드의 규칙이라나 뭐라나.

하기야, 일부 길드원을 제외하고는 이곳의 존재조차 모른다고 하니, 외부인에게 공개하는 건 언감생심이었다.

'다행이군.'

이곳이 만약 공개된 장소였다면, 호야와 미우에 관한 이야기가 새어나갈 수밖에 없다.

그건 가장 피하고 싶은 상황이었다.

'페데리코가 호야를 노리고 있을 거야.'

단순한 예상이었지만, 몇 가지 근거가 있다.

우선 호야가 가진 핏줄.

호야의 능력은 격세 유전되어 나타났다.

그 점을 미루어 보아, 그가 가진 잠재력은 감히 예상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일 것이다.

'마족과 드래곤의 혼혈.'

이종 간의 혼혈은 결코 쉽게 탄생하지 않는다.

두 종족이 가진 힘이 합쳐졌으니, 호야 역시 페데리코가 노리던 각성 코마 상태의 인간과 별 차이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

'왜 지금까지 흡수하지 않은 거지?'

아마 나이 때문이 아닐까.

마족과 드래곤은 한 가지 특징을 공유한다.

바로 일정 나이가 되면 그 힘이 본격적으로 개화된다는 것.

인간의 피가 섞였지만, 유전적 특징이 세대를 뛰어넘어 나타났으니 호야 역시 그런 특성을 가졌을 가능성이 크다.

'개화할 거야. 드래곤과 마족의 핏줄이라기에는, 너무 약해.'

지금은 좋게 쳐줘 봐야 중상급 헌터 수준, 두 종족의 피가 섞였다면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

만약 호야가 개화할 가능성이 없다면,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다.

'그러면 페데리코도 흡수할 생각은 안 하겠지.'

설령 흡수한대도 큰 힘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개화의 시기인데.'

호야에게는 인간의 성질도 섞여 있다. 그 점까지 감안하여 여러 가설을 펼쳐보았을 때,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성년이 된 시점이다.

'지금 몇 살이지?'

비슷한 또래처럼 보이던데.

"내릴게요."

한서희의 목소리가 상념에 끼어들었다.

곧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게 느껴졌다.

한서희가 내리자 유현의 몸이 스르륵 움직였다.

서로의 손목을 짧은 끈으로 묶어두어 앞이 보이지 않아도 이동에 제약은 크지 않았다.

"준비는 됐나요?"

전방으로 퍼지는 목소리.

앞쪽에서 한서희가 아닌 다른 이의 기척이 느껴지는 걸 보니 다른 사람에게 질문한 것 같았다.

"그럼 바로 들어갈게요."

곧 기계음이 들렸다.

발을 타고 작은 진동이 느껴진다.

유현은 손목을 당기는 팽팽한 느낌에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밀폐된 공간.'

유현은 피부에 닿는 공기가 달라진 걸 느꼈다. 환기는 되지만, 어딘가와 연결되지 않은 독립된 공간이었다.

'문이 닫히는군.'

이곳이 어딘지 대강 예상이 됐다. 문이 있고, 밀폐되어 있으며, 몇몇을 제외하고는 모르는 비밀스러운 장소.

"아무리 범죄자라도 그렇지. 창고에 처박아두면 어떡하냐?"

유현의 말에 한서희가 흠칫 몸을 떨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뻔하잖아."

한서희는 유현에게 가까이 다가가 까치발을 들었다.

'이상하네. 아무리 봐도 뚫린 곳은 없는데.'

혹여 안대 사이에 틈이 있는 건가 싶어 유심히 살폈지만, 그런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뭐해?"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한서희가 얼굴을 붉히며 뒤로 물러났다. 짐짓 헛기침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창고 외에는 공간이 마땅치 않았어요. 그렇다고 감옥에 보낼 순 없잖아요. 여긴 경보장치도 있고 벽도 단단해서 오히려 감옥보다 나을걸요?"

"......그 말이 아니잖아."

한서희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럼 뭔데요?"

"됐어. 그냥 안내나 해 줘."

한서희는 유현을 창고의 구석으로 데려갔다.

그곳에 작게 마련된, 직사각형의 공간.

컨테이너를 두려고 했지만, 들여올 방법이 요원하여 철제 칸막이로 창고와 분리된 공간을 만들었다.

-오늘 생일이잖아. 간식 나온 걸로 만들었어.

-너나 먹지 뭐 이런 걸 만들어?

-고마울 때는 고맙다고 하는 거야.

-......고, 고맙다. 잘 먹을게.

안쪽에서 그런 대화가 들려왔다.

유현은 피식 웃었다.

'아예 처박아 둔 건 아닌가 보네.'

목소리를 들어보니 나름 살만 한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만약 상태가 좋지 않았다면, 앞으로의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었을 테니.

"문 열게요."

"이거 이제 벗어도 되지?"

"네. 괜찮아요."

유현은 손목의 끈을 풀고 안대를 벗었다.

곧장 눈에 들어온 건 회색빛 벽이었다.

천장에서 백열등이 밝게 빛나고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칙칙한 느낌이었다.

"크네."

"보지 말아요."

"보이는데 어떻게 안 보냐?"

"...열게요."

한서희가 문에 걸려 있던 전자 잠금장치를 해제했다.

암호를 푸는 소리가 들리자 안쪽에서 들려오던 두 사람의 대화가 잠잠해졌다.

덜컹.

문이 거친 소음을 내며 옆으로 밀렸다.

한서희가 먼저 들어가라며 옆으로 몸을 비켰다.

유현은 안으로 들어갔다.

천장에 박힌 주황빛 전구가 내부를 밝혔다.

"유, 유현?"

왼쪽 구석에 멀찍이 떨어져 있던 호야가 유현을 알아보고는 벌떡 일어났다.

"둘이 생일 축하 하더니 왜 또 그렇게 떨어져 있어?"

유현이 오른쪽 구석에 박힌 미우를 돌아보았다.

호야와 달리 미우의 눈빛에 적의는 없었다. 오히려 유현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이기까지 했다.

"너, 너 이 새끼! 너만 아니었으면..."

"나한테 잡힌 걸 다행으로 생각해."

"......"

호야는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유현에게 잡혔으니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지, 그게 아니었으면 이미 스카이 아일랜드에서 죽었을지도 모른다.

'살았어도 지금보다는 못했겠지.'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에서의 생활은 제법 만족스러웠다.

처음에나 조금 힘들었을 뿐, 적응하니 할 만 했다.

밥도 제때 주고, 간식도 주고.

또 책이나 게임기 같은 시간을 죽일만한 것들도 넣어 주었다.

게다가 침대도 푹신하고, 화장실에 샤워실도 붙어 있으니 생활에 어려움도 없다.

해달라는 것도 웬만해서 다 해줬으니, 감옥이 아니라 호텔이라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내 피 때문이겠지만...'

그걸 우려하여 주어진 것들을 누리지 못하는 건 원치 않았다.

이렇게 편하게 지내는 편이 미우에게도 좋았으니까.

"잘 지냈냐?"

유현은 친근하게 말을 붙였다.

마지막에 봤을 때와는 사뭇 달라진 태도에 호야는 떨떠름했다.

"뭐, 나름."

"그럼 다행이고."

호야가 눈을 가늘게 떴다.

유현의 말투나 눈빛에서 왠지 모를 친밀함이 느껴졌다.

꼭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고 말하는 것 같았다.

"왜 갑자기 친한 척이야?"

호야는 그런 가식을 참을 수 없었다. 죽이려고 들던 놈이 친하게 지내려 하다니.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아도 그 속셈을 알 수 있었다.

"내 피 때문에?"

"......"

"흥. 그런 거면 꺼져. 너도 밖에 있는 그 여자도."

"호야. 입 조심해."

미우가 호야에게 경고했다.

몇 마디 더 하려던 호야는 그 경고에 코를 찡그리며 입을 다물었다.

"뭐, 틀린 말은 아니네."

"그럼 그렇지."

"친근한 게 싫으면, 이야기 방식을 바꿔 볼까?"

호야가 움찔 몸을 떨었다.

물감이 번지듯 말하는 도중에 스르륵 바뀐 유현의 분위기.

친근함은 사라지고 살벌함이 감돌았다.

"아, 아니. 딱히 친한 척해도 상관은 없는데..."

"진즉에 그럴 것이지."

유현이 호야의 옆에 앉았다.

호야가 긴장한 얼굴로 유현의 눈치를 살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네 피가 문제는 맞아. 하지만 그것 때문에 친하게 지내려는 건 아니야."

"그럼 뭔데?"

"설명하려면 긴데..."

유현은 전부 털어놓을 생각이었다. 거짓을 늘어놓고 이런저런 변명을 가져다 붙이는 것보다 그편이 오히려 편하다.

"설명하기 전에 물어볼 게 있는데, 너 몇 살이냐?"

"19살인가?"

"응. 19살."

미우가 호야의 의문을 확인시켜주었다.

'열 아홉...'

성년의 나이다. 하지만 아직 개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걸 보면 생일까지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다.

"생일은?"

"오늘인데."

아, 그러고 보니 아까 생일 축하를 했었지.

"태어난 시간은 모르지?"

"그걸 어떻게 알아?'

유현은 침음했다. 오늘이 생일이라면, 언제 개화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개화가 일어나면, 페데리코가 눈치챌 가능성도 있어.'

개화는 엄청난 마나 파동을 동반한다. 페데리코가 집중한다면 지구 어디에 있든 눈치챌 것이다.

'오늘이 생일이라는 건 그놈도 알고 있겠지.'

그렇다면 어딘가에 있을 아지트에서 마나 파동을 기다리고 있겠지.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잠깐. 오히려 놈을 불러올 수 있잖아.'

조금 위험한 시도지만, 페데리코를 이곳으로 불러들일 수 있다.

잘만 준비하면, 놈을 이곳에서 끝장낼 수 있다.

'시간이 그렇게 많진 않은데.'

유현이 고민을 이어가던 그때였다.

"크악!"

앉아있던 호야가 고통을 토하며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잔뜩 찡그린 표정과 입에서 튀어나오는 고통에 찬 신음.

멀찍이 떨어져 있던 미우가 한달음에 달려왔다.

"호야! 괜찮아!?"

옆으로 쓰러진 호야를 보며 유현은 한숨을 쉬었다.

개화가 시작되었다. 준비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바깥에 있던 한서희가 안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무슨 일이에요?"

"별일 아니야."

"엄청 아파 보이는데요?"

유현은 그녀의 말을 한 귀로 흘리고 호야를 일으켜 다시 의자에 앉혔다. 기절한 건지 자꾸만 옆으로 넘어간다.

"호야가 왜 이러죠?! 어떡해요!"

"쉿. 그렇게 큰 일 아니야."

"이렇게 아파하는데..."

"안 죽어."

유현이 확신을 담아 말하자 미우는 입을 다물었다.

여전히 불안하긴 마찬가지였지만, 유현이 그렇게 까지 말하는 데 다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예상 개화 시간은 여섯 시간.'

유현은 호야의 주변에 마나를 펼쳤다.

개화가 시작된 시점에서 이미 페데리코는 대략적인 위치를 알아차렸겠지만, 이런 식으로 상세한 위치에 혼란을 줄 수는 있었다.

'개화가 이루어지는 동안 호야를 지킨다.'

개화가 완료된 이후에는 호야가 직접 자신의 힘을 감추면 된다.

그러면 아무리 페데리코라도 그를 찾지 못한다.

"둘 다 잘 들어."

유현은 이 틈을 타 미우와 한서희에게 설명했다.

호야의 핏줄. 그리고 지난 번 공사장에서 있었던 사태에 관해서도.

자연스레 그 뒷배경에 관한 이야기도 할 수밖에 없었다.

판대륙이나, 마법, 용사 같은 것들 말이다.

이곳에 오기로 한 시점부터 모든 걸 말하기로 결정했다.

점차 커지는 페데리코의 영향력.

그에 대해 함구하는 건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리는 짓이었다.

"......"

모든 이야기를 들은 두 사람은 한동안 침묵했다.

처음부터 예상했던 반응이다.

마왕이니, 이세계니, 용사니.

누가 쉽게 믿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 한 말 전부 진짜에요?"

먼저 침묵을 깬 건 미우였다.

"판대륙이라는 이세계가 있고, 당신은 거기에 용사로 소환됐고..."

"그런 건 차치하고. 지금 중요한 건 페데리코가 호야를 노리고 있다는 거지."

"그 이유가 호야의 핏줄 때문이란 거잖아요. 마족과 드래곤의..."

미우는 말하면서도 믿어지지 않는지 연신 호야를 쳐다보았다.

"진짜 안 믿기는데 저번에 호야랑 그 여자 손에서만 돌이 빛난 걸 보면 믿을 수밖에 없네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무턱대고 부정하지도 못했다.

유현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가정 아래에서 지금껏 품어온 의문이 모두 해소되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그동안 써왔던 능력. 특성이라기에는 그 종류가 너무 많았어요. 공사장에서의 일도 그렇고, 섬에서 생긴 일들도 그렇고. 무엇보다 실종된 지 1년 만에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온 것도..."

한서희는 혼란스러운지 연신 무어라 중얼거렸다.

"대장, 아니, 페데리코는 결국 지구의 멸망을 바라는 건가요?"

"그게 놈의 소망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겠지."

미우가 고통스럽게 끙끙거리는 호야의 손을 붙잡았다.

"그럼 반드시 호야를 지켜야겠네요."

"그래야지."

호야의 손을 붙잡은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간다.

반드시 지켜내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엿보였다.

"저는 삼촌한테 가볼게요. 우리만 알고 있어선 안 되는 내용이에요."

유현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알려봤자 혼란만 가중될 뿐이었다.

"나중에 내가 직접 말할게."

"그럼 옆에서 거들게요. 저야 이것저것 많이 봤으니 믿지만, 삼촌은 아닐 테니까."

작은 공간에는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다들 저마다의 생각에 집중한 채 자리를 지켰다.

긴장감이 흐르는 내부. 그 상태로 몇 시간이 지났지만,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안 오는 건가.'

그때였다.

유현은 무언가가 신경에 걸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 원인은 이곳이 아니다.

이건 기숙사의 주변에 펼쳐 두었던 경계 마법의 반응이었다.

'설마.'

한 사람이 아니다.

몇 명, 몇십 명.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우우웅!

휴대전화의 진동이 울렸다.

이번에는 강찬성이었다.

유현은 급히 전화를 받았다.

-야! 좆됐어!

흥분한 목소리가 귓전을 파고들었다.

-시발! 이게 몇 명이야 대체!

스피커로 들려오는 주변의 소음.

무언가 파괴되고, 무너진다.

"......"

유현은 전화를 끊었다.

기숙사를, 공장을 습격한 게 누구의 소행인지는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페데리코.'

으드득.

하필 이때가 아니라, 놈은 애초에 지금을 노렸다.

내가 호야를 지키고 있을 거라는 것까지 예상한 것이다.

[수면]

유현은 미우와 한서희를 재우고는 호야를 들쳐 멨다.

"네가 원하는 대로는 안 될 거다."

포탈 너머로 유현의 모습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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