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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99화 (199/219)

199

대한민국은 사망자를 제외한 모든 헌터를 구한 첫 번째 나라가 되었다.

그 사실이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공표되자 세계의 관심이 한국에 쏠렸다.

헌터는 세금으로 육성하는 귀중한 자원. 국가의 요인들이 직접 나서 한국에게 효과적인 구조법의 공유를 요청했다.

협회에서 그들에게 건넨 건 짧은 메시지였다.

-특별한 방법은 없습니다. 단지 여러 길드가 활약했을 뿐입니다.

유현의 공로가 지대했지만, 그를 언급하지 않은 건 작은 배려였다.

하지만 그런 배려가 무색하게도 유현의 활약은 세상에 알려졌다.

주위를 둘러싼 입과 눈이 너무나도 많은 탓이었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게이트 사태로 고립된 헌터들을 모두 구조한 국가가 되었습니다.

여러 길드의 활약이 있었지만, 가장 뛰어난 성과를 보인 건 유현이 속한 마망 길드였습니다.

뉴스를 통해 드러난 게이트 사태 해결의 주역. 그 이후, 협회는 여러 국가의 지원 요청으로 마비되다시피 했다.

마망 길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무실에 위치한 하나밖에 없는 전화기에서는 연신 벨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이걸 좋아해야 해. 말아야 해?"

"네 표정이 굉장히 무의미한 고민이라는 걸 말해주는군."

콧구멍을 벌렁거리던 강찬성이 씩 웃었다.

"당연하지, 인마! 이게 꿈이야, 생시야!? 우리 길드의 이름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고!"

유현은 귀찮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사태가 종결된 다음 날.

유현은 새로운 포션 제작을 위해 공장으로 내려와 있었다.

아카데미의 실습은 잠시 중단된 상태였다.

헌터들을 구조했을 뿐, 아직 모든 게 끝난 건 아니었다.

"며칠이나 걸리려나."

끝없이 강해지는 게이트의 출몰.

더 강해지기 전에, 그리고 게이트의 테두리가 버티는 동안 게이트를 제거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던전형 게이트에만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었다.

"너 오란 소리는 안 해?"

"그렇게 부려 먹었는데 하겠냐?"

"나라님들 양심 팔아먹은 거 한두 번이어야지."

뒤처리에 동원된 건 모두 정식으로 자격증을 발급 받은 헌터들이었다.

구조 작업과 달리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참가하지 않았다.

"협회에서 그러더라. 게이트가 강해졌으니, 등급도 재편성할 필요가 있다고. 이러다 우리 길드가 갈 게이트가 사라질지도 몰라."

던전형 게이트가 어느 정도 해결되고 나면, 게이트의 등급은 전체적으로 상향될 것이다.

낮은 등급의 헌터들은 수준에 맞는 게이트가 새로 등장하기 전까지 꼼짝없이 일자리를 잃는 셈이었다.

"네가 걱정할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이게 길드냐? 그냥 물약 파는 업체지."

유현의 말에 강찬성은 반박할 수 없었다.

그 말대로 마망은 포션 판매 업체로 전락한 지 오래였다.

"그래도 길드원들 들어왔으니까 한 번은..."

"쓸데없는 짓 말고 포션이나 만들어."

강찬성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포션 주문량이 몇 배는 뛰었어. 해외에서도 들어온다니까?"

"슬슬 공장을 옮겨야 할 것 같은데..."

점점 늘어나는 포션의 수요.

포션의 종류 역시 처음 시작과 달리 많아졌다.

포션의 특성상 독립된 공간이 아니라면, 한 종류의 포션 밖에 제작할 수 없다.

지금이야 시간 간격을 두고 공정을 바꾸고 있지만, 너무나도 비효율적인 방법이었다.

경쟁력 확보를 위해 포션의 종류를 늘린 게 오히려 악수가 된 셈이었다.

'그렇다고 하나에만 집중할 수는 없어.'

차라리 이사를 가면 모를까.

더 효율적인 포션의 생산을 위해서라도 넓은 공장과 새로운 설비가 필요하다.

"돈은 충분해."

"그건 나도 알지."

문제는 설계였다.

건축과 관련해서는 아는 게 없으니 선뜻 시작하기가 어려웠다.

"어디에 지어야 할까?"

"근처에 널린 게 땅인데 뭐."

쉽게 나온 결론. 하지만 유현의 생각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해외에도 하나 세우자."

강찬성이 눈을 크게 떴다.

"공장을?"

"그래."

마망이라는 길드와 함께 세계에 알려진 포션 브랜드 유마망.

출시 초기에는 국내에서 알음알음 가성비 포션으로 유명세를 탔다.

그러나 지금은 글로벌 제약 기업인 메디컬과 함께 국내 시장을 양단하다시피 했다.

그 말은 즉, 유마망의 포션이 해외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미 홍보는 됐어. 수출하는 것 보다는 해외에 정식으로 출시해야 더 많은 사람이 찾겠지."

"...대박."

"둘 다 동시에 진행하면 좋을 텐데. 일단 가장 큰 문제는 설계야."

그때, 관리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유마망의 부사장이나 다름없는 왕대길이었다.

"맡겨주시죠."

"듣고 있었어요?"

"예. 사장님이 오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니 무언가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았습니다."

왕대길이 안경을 고쳐 썼다.

"그간 사장님이 알려주신 포션 제조 시의 주의사항과 고려해야 할 점, 포션 간의 차이 등. 여러 정보를 고려하여, 포션 제조에 최적의 구조인 공장의 설계를 미리 맡겨 두었습니다."

"오."

"이게 바로 그 내용입니다."

왕대길이 들고 있던 서류를 유현에게 건넸다.

유현은 곧장 서류를 살폈다.

무척이나 디테일하게 짜여진 설계도.

공장뿐만 아니라, 그 외의 공간에도 심혈을 기울인 티가 났다.

연신 감탄하던 유현은 왕대길에게 다시 서류를 돌려주었다.

"손색이 없는데요? 당장 이대로 해도 되겠어요."

"저, 정말입니까?"

"예. 바로 진행해요."

왕대길이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급히 뛰쳐나갔다.

강찬성은 활짝 열린 문을 보며 헛웃었다.

"저 사람도 진짜 대단하다니까."

왕대길. 만약 그가 없었다면, 유마망은 진즉에 강한 풍파에 부딪혔으리라.

"일단 하나는 해결했네."

"해외는 어쩌려고? 위치는 정했어?"

"일단 유럽으로 하려고."

"유럽 좋지. 헌터 인구도 많고, 이동도 편리하니까. 문제는..."

"어떻게 진입하느냐지."

이것도 왕대길에게 맡기면 편하겠지만, 당장 그에게 일을 하나 줬으니 나중으로 미뤄두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뭐, 이건 나중에 생각하고. 슬슬 가봐야겠다."

"기숙사로?"

유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포탈을 열었다.

"그럼 포션 잘 만들고. 알려준 대로만 해. 괜히 실험 정신 발휘하면 큰일 난다. "

유현이 포탈 너머로 사라지고, 강찬성은 한동안 굳어 있었다.

"......지금 그거 포탈이지?"

유현이 포탈을 사용하는 걸 처음 본 탓이었다.

***

"유현님!!"

기숙사로 돌아온 유현을 엘레나가 열렬히 환대했다.

유현이 이니티움의 시신을 처리하기 위해 잠시 기숙사에 들렀을 때, 그녀는 자고 있었기에 며칠 만에 다시 만나는 것이었다.

"뉴스에서 봤어요! 대단해요!"

"계속 기숙사에 있었어?"

엘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밝은 그녀의 모습에 유현은 내심 안도했다.

"이니티움은 묻어 줬어."

아예 함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유현은 조심스레 이야기했다.

"고마워요."

"보고 싶으면 말해. 데려가 줄 테니까."

엘레나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괜찮아요. 보면 또 울 것 같아요."

제 나름대로 이겨낸 걸까.

유현은 새삼스레 엘레나가 대견스러웠다.

"그래도 궁금하니까 물어볼래요. 어디에 묻었어요?"

"아주 좋아하던 장소에."

지구에서의 삶이 시작되었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낸 장소.

동굴의 구덩이를 파서, 그곳에 이니티움을 묻었다.

"좋아하던 장소...?"

"이니티움이 알았으면, 분명 웃었을 거야."

그 말에 엘레나가 싱긋 미소 지었다.

"그럼 다행이네요."

"밥 먹었어?"

"아뇨. 중요한 일이 있어서 나가보려고요."

"중요한 일?"

엘레나에게 중요한 일이 있을 이유가 없을 텐데.

아카데미 학생이긴 하지만, 그녀는 실습생이 아니다.

고작 며칠 전에야 이론 학습 기간이 종료되었는데, 시국이 시국인지라 실습을 진행할 길드조차 선택하지 못했다.

그런 그녀에게 중요한 일이라니.

유현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영국에서 불렀어요. 와서 도와달래요."

"......뭐?"

"영국에서..."

"아니, 알아듣긴 했어."

단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반문했을 뿐이다.

엘레나는 지금 한국 아카데미의 학생. 제 마음대로 정한 것도 아니고, 영국 정부에서 정식으로 허가한 입학이었다.

'부를 권한은 없는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마음 속에 한 가지가 걸렸다.

지금 세계는 게이트로 몸살을 앓고 있고, 영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만약 영국 정부가 고유한 권한으로 자국민을 소환한 거라면, 따를 수밖에 없다.

"전화라도 온 거야?"

"네. 대사관에서 연락이 왔어요. 영국에서 국외 거주 중인 능력자들을 소집했으니 귀국하라고요."

"안 가면?"

"아카데미를 강제로 옮긴대요."

유현은 이마를 짚었다.

말이 국외 거주 능력자들의 소집이지 사실상 그녀를 본국으로 데려오게 하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였다.

'대체 왜? 법적으로 아카데미의 동의 없이는 입학을 철회할 수도 없을 텐데.'

물론 외교적인 압박을 통해 아카데미의 선택을 강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엘레나를 데려올 근거가 빈약하다.

"보호자랑 같이 오래요."

"......그렇구만."

엘레나가 덧붙인 말로 유현은 깨달았다.

그들이 노리는 건 애초에 엘레나가 아니라 자신이었음을.

아마도 엘레나를 인질로 자국의 게이트 사태에 도움을 달라는 것이겠지.

"짐 싸."

"같이 가주세요?"

"내가 아니면 누가 가냐."

진퇴양난이다.

엘레나만 보내면 영국 정부에서는 엘레나를 강제로 계류시킬 게 뻔하다.

그렇다고 엘레나를 보내지 않으면, 외교적인 압박이 들어와 엘레나는 꼼짝없이 영국으로 끌려갈 것이다.

'이게 최선이야.'

놈들의 요구대로 영국에 가는 방법뿐이었다.

물론 그들이 원하는 바를 맨 입으로 들어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

"흠~"

차를 홀짝이며 따사로운 오후의 여유를 만끽하는 영국의 총리.

바깥은 게이트 사태로 난리였지만, 집무실에서의 짧은 티타임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모든 것이 무너져도 내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되는 그만의 루틴이었다.

"으음~"

달콤 쌉싸름한 액체가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접시 위에 올려둔 쿠키를 집어 들어 살짝 베어 물었다.

"살판났다."

총리가 다시 찻잔을 들었을 때, 느닷없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총리는 화들짝 놀라며 유리잔을 떨어뜨렸다.

"뭘 그렇게 놀라?"

유현은 손가락을 까딱여 찻잔을 다시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내용물은 조금도 흐르지 않았다.

"어, 어떻게 여기에..."

"저번에도 이렇게 왔잖아.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되지 않았어?"

그 말에 총리는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다.

한 번 도둑이 들었다고, 도둑에 익숙해지지 않았냐는 말과 다를 바 없었다.

"대체 여긴 무슨 일이요?"

"그쪽에서 불렀잖아."

유현의 등 뒤에서 엘레나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에, 엘레나 양?"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엘레나를 보며 총리는 깨달았다. 회의에서 그녀를 빌미로 유현을 호출하자는 의견이 게이트 대책 중 하나로 채택되었다는 것을.

"......다음부터는 정식 입국 절차를 밟아줬으면 좋겠소."

"시간도 없는데 언제 그러고 있어?"

"한 번 더 그러면 내 심장이 멎을지도 모르오."

"그건 좀 그러네. 조심할게."

총리는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입을 열었다.

"엘레나를 불렀지만, 사실상 당신을 부른 거라는 점은 알고 있소?"

유현이 미간을 구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불쾌하다는 감정을 여지 없이 드러냈다.

"영국의 헌터들을 도와 게이트의 처리를 도와주길 바라오. 돈은 얼마든지 줄테니."

"흐음..."

유현은 짐짓 고민하는 척하더니 말했다.

"돈 말고 이건 어때?"

"말해 보시오."

"유마망은 들어봤지?"

"당신이 만든 포션 브랜드 말하는 거요?"

"맞아. 알고 있네."

"모르는 게 간첩이지. 지금 얼마나 유명한데."

유현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럼 이야기가 쉽겠군."

유현은 원하는 바를 총리에게 말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요구사항.

총리는 그것들을 모두 수첩에 메모했다.

"...이제 여기서 하나씩 줄여가면 되는 거겠지?"

총리가 유현의 눈치를 살폈다.

종이 몇 장을 잔뜩 채운 요구사항들. 이걸 다 들어주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기에 적절한 타협점이 필요했다.

"줄이긴 뭘 줄여?"

"...진심이요?"

"난 거기 있는 거 다 안 주면 안 도와줘."

"무,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억지가...!"

"억지는 그쪽이 부린 게 억지고. 빨리 정하쇼. 안 그러면 그냥 돌아갈 테니. 어지간한 멍청이가 아니면, 헌터들 목숨이랑 거기 적힌 것 중에서 뭐가 더 중요한지 잘 알 듯한데."

유현은 여유롭게 집무실 소파에 앉았다. 처음부터 타협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 적어도 그것들을 받아내지 않으면, 심술을 참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무리한 요구라는 걸 알면서도 모두 말했다.

'그러니까 누가 잔머리 굴리래?'

차라리 정정당당하게 대가를 지불하고 도와달라 했으면 몰라.

어쭙잖게 머리를 굴려 자신을 속이려던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이건..."

"엘레나, 가자."

"네!"

"기, 기다리시오! 다른 인사들과 논의를 해봐야 하오!"

유현은 다시 소파에 드러누웠다.

"불러서 떠들어. 기다릴 테니까."

총리는 입술을 꽉 깨물며 집무실의 전화기를 손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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