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97화 (197/219)

197

"이번 게이트는 산악 지대입니다.

기존 등급은 C등급이었으며 현재는 B+에서 A-등급 사이로 추정됩니다."

"방금 갔다 온 곳이랑 똑같네."

"예. 다만 산악 지대다 보니 저희가 따라갈 수 있을지..."

유현이 앞장서서 구조자들을 찾으면, 길드원들은 꼼작없이 거기까지 달려가야 했다.

스크롤, 포션, 마나 강화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여 어떻게든 속도를 내고는 있지만, 산악지대에서도 그 속도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흠. 어쩐다."

유현은 짐짓 고민하는 척했다.

따라오지 못할 사람들을 데려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혼자 가는 게 낫다.

게다가 길드원들의 역할은 수습이나 포션 운반 같은 잡다한 역할들. 혼자 하려면 못할 것도 없는 일들이었다. 다만 귀찮을 뿐.

"몇 명만 갈까?"

유현이 천천히 길드원들을 훑었다. 그의 시선을 피하는 길드원들.

다들 쉼 없는 구조 활동에 상당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유현님!"

그때, 협회의 직원 하나가 휴대전화를 들고 브리핑 자리에 끼어들었다. 상당히 다급한 일이 생긴 듯한 얼굴이었다.

"왜요?"

"생화 길드의 도움 요청입니다. 귀환 스크롤로 구조된 헌터가 내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했습니다."

"다른 길드는요?"

유현은 게이트를 쓱 바라보았다.

당장 마망 길드도 게이트의 구조 활동을 앞두고 있었다.

"잉여 인력이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낮은 등급의 헌터들을 보낼 수도 없어서..."

"게이트 등급은 어떻게 됩니까?"

"기존에는 B등급이었지만, 계속해서 바뀌고 있습니다. 들어간 시점에서는 B-였고, 지금은 A등급이라고 합니다."

생화 길드의 A등급 게이트.

유현의 머릿속에 자연스레 한 사람이 떠올랐다.

"거기 혹시 서혜빈도 들어갔대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쪽이랑 전화 연결 중이죠?"

유현이 휴대전화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 예. 빠른 대답을 위해서 생화 길드의 마스터분과..."

"줘 봐요."

유현이 직원의 손에서 휴대전화를 낚아챘다.

귀를 가져다 대자 곧장 서동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이야기가 들렸던 모양이다.

-들어갔다.

"딸이 사지로 들어가는데 안 말렸어요?"

-말렸으면 퍽이나 받아들였겠군.

그것도 그렇네.

유현은 서동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녀의 성격을 생각하면, 아무리 아빠의 말이라도 따르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원칙상에 문제는 없었다. 다만 게이트의 등급이 계속 올라갈 거라는 건 예상하지 못했다. 무척 당황스럽군.

차원의 경계에서 계속해서 판대륙의 힘이 흘러나오고 있다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위치가 어디에요?"

서동철이 게이트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이곳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곳이었다.

"갈 테니까 다른 사람 들여보내지 마요."

-알겠다. 최대한 빨리 와라.

유현이 전화를 다시 직원에게 넘겨주었다.

김주식이 눈치를 살피더니 물었다.

"그럼 이 게이트는 스킵합니까?"

유현은 고개를 저으며 귀환 스크롤이 담긴 가방을 챙겼다.

"혼자 갔다 온다. 포션 대기하고 있어."

그 서동철이 최대한 빨리 와달라는 말까지 했다.

유현은 그 말대로 할 생각이었다.

***

유현이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고, 첫 번째 구조자가 나온 건 고작 2분이 지난 뒤였다.

저마다 손에 컵라면을 들고 있던 길드원들은 멍청히 입을 벌렸다.

"뭐, 뭐야?"

"왜 이렇게 빨라?"

"아직 라면 익지도 않았는데..."

구조된 헌터가 털썩 쓰러졌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김주식이 급히 컵라면을 내려놓았다.

"포션 가져와! 응급처치도 해야 해! 한 명 나왔으니까 계속 나올 거야!"

김주식의 명령에 분주히 움직이는 길드원들.

김주식은 어처구니없는 눈으로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아니, 혼자서도 이렇게 하실 수 있으면서..."

대체 왜 자신들을 끌고 다닌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단순히 응급처치 때문일까?

'하기야, 그렇겠지. 빠른 응급처치가 안 되면, 구해도 금방 죽을 수 있으니까.'

스스로 납득한 김주식은 막 게이트에서 나온 또 다른 헌터에게 다가갔다.

헌터는 온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걱정스레 묻는 김주식.

헌터가 침을 꿀꺽이며 게이트를 가리켰다.

"아, 안에 괴물이..."

***

"크와아아아아!"

미르가 마법을 쏘아대며 절벽을 타고 도망치는 몬스터들을 죽였다.

움직이는 타겟을 맞추는 게 놀이처럼 느껴졌는지 제법 즐거워 보였다.

"야! 적당히 해, 적당히!"

몬스터들을 추격하던 유현이 비행중인 미르에게 소리쳤다.

"능력 좀 써보려니까 죄다 죽여버리네."

유현은 혀를 차며 장소를 옮겼다. 헌터들을 찾는 과정에서 유현은 여러 몬스터를 상대로 새롭게 얻은 능력을 테스트했다.

우선 흑마법. 흑마법은 일반적인 마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비 같은 간단한 마법부터 정신 지배나 환각 같은 정신 계열 마법까지 그 종류가 다양하다.

'악마의 힘을 빌린다고 하여 판대륙에서는 금기시 되었었지.'

그런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흑마법은 마나의 힘을 사용하며, 단지 술식을 거쳐 마법이 발현되는 과정에서 그 색이 바뀔 뿐이다.

'오해할 만도 해.'

검은 마나는 마족들이 사용하는 마기와 비슷해 보였다.

당시의 시대상을 생각하면, 검은 마나를 사용하는 흑마법사들이 핍박받는 게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나도 그래서 흑마법은 안 배웠었지.'

정확히는 못 배웠다.

다양한 분야의 마법을 탐구하기 시작한 시기에는, 이미 흑마법이 고대 역사와 비슷한 처지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참 신기한 마법이야. 이런 것도 가능하고."

[비행] 마법으로 날아다니던 유현은 허공에 우뚝 멈췄다.

그 손가락이 아래로 향하더니, 이윽고 손가락의 끝에서 검은빛깔이 발사됐다.

"죽여."

헌터를 공격하려던 몬스터는 유현의 말에 따라 옆에 있던 다른 몬스터를 공격했다.

서로 싸우기 시작하는 두 몬스터. 유현은 소란스러운 싸움의 현장으로 내려가 헌터를 챙겼다.

"유, 유현?"

"혼자에요?"

"아뇨. 동료들이 더 있는데..."

그때, 헌터가 두 눈을 부릅떴다.

유현은 곧장 반원형 방어막을 펼쳤다.

쿵!

어느새 주변으로 모여든 몬스터들. 방어막 위로 놈들이 휘두른 몽둥이가 동시에 내려꽂혔다.

"떼로 몰려왔구만."

하나의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거인형 몬스터, 에틴.

놈들은 유현의 정신 지배에 걸린 녀석을 합공하여 죽였다.

마나로 연결된 기다란 줄기가 끊기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에는 조금 전처럼 가볼까."

사령마법.

흑마법과 달리 이 마법은 정말로 위험하여 금지된 마법이었다.

지금까지 몇 번 써보며 그 사용법을 터득했다.

"제일 덩치가 큰 게..."

유현은 손가락을 튕겼다.

아무것도 없던 허공이 일렁거렸다. 이윽고, 아공간에 들어가 있던 기다란 창이 튀어나왔다.

[아공간 전이]

이니티움이 가지고 있던 마법 중 하나였다.

푹!

아공간에서 튀어나온 창은 맹렬하게 가속하여 그대로 가장 덩치가 큰 에틴의 머리를 관통했다.

일격에 사망한 에틴.

쓰러진 에틴의 주위로 짙은 검은색 테두리가 나타났다.

사령 마법으로 되살릴 수 있는 대상에게만 보이는 특수한 효과였다.

"좋았어."

사령 마법은 무척이나 단순한 구조다. 그저 죽은 것을 되살리는 마법과 그에 관련된 마법들 뿐이었다.

[언데드]

시체의 깃드는 칠흑빛의 에너지. 흑마법의 마나와는 사뭇 다른 색감이었다.

좀 더 사악하고, 어두운 느낌이다.

"크으으..."

죽음의 생명을 부여받은 에틴이 비척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우워어!"

"우어!"

부활한 동족을 보며 몬스터들이 술렁거렸다.

하기야 당황스럽겠지.

머리에 창을 꽂은 놈이 다시 일어났으니.

'지금까지 사령 마법을 쓰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지.'

사령 마법은 대상을 되살리지만, 대상을 원하는 대로 조종할 수는 없다. 난폭한 맹견을 다루는 것과 비슷했다.

명령은 내릴 수 있어도, 결국 그걸 따르는 건 대상의 마음이었다.

'힘으로 찍어누를 수는 있지만, 그러면 굳이 사령 마법을 쓰는 이유가 없단 말이지.'

그래서 생각한 방법이 있다.

바로 흑마법과의 연계.

흑마법에는 정신 지배와 비슷한 마법이 여러 종류 있었다.

'정신 지배를 사용하면, 내가 일일이 움직여 줘야 해.'

여유로운 전장이면 몰라도, 난전에서는 어림도 없는 방법이었다.

'먹히면 좋을 텐데.'

흑마법을 써본 건 어디까지나 살아있는 생물에 한정해서다.

언데드에게도 통할지는 의문이었다.

[세뇌]

【너의 적은 인간이 아닌 몬스터다. 죽을 때까지 전력을 다해 싸워라.】

유현은 언데드 에틴에게 세뇌를 걸었다.

다행스럽게도 효과가 있었다.

"우워어어어어어어!"

세뇌 마법에 걸린 언데드 에틴이 포효했다.

우악스러운 손이 머리에 박힌 창을 단숨에 빼냈다.

"어우."

유현조차 기겁한 광경.

이어진 건 끔찍한 학살이었다.

에틴의 무기술은 조잡하기 그지없었으나 세뇌에 담긴 명령 덕분인지 죽기 살기로 싸웠다.

"우워어!"

살갗이 찢겨나가고, 피가 터졌다.

동료의 변절에 당황한 몬스터들은 대처할 새도 없이 죽어 나갔다.

에틴 역시 팔다리가 잘려 나가고, 목덜미가 땅에 떨어졌지만, 끝까지 쓰러지지 않았다.

"잘 골랐군."

세뇌의 효과도 효과지만, 가장 덩치가 큰 놈을 고르길 잘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정리된 전장.

홀로 우뚝 선 상처투성이의 에틴은 유현에게 다가갔다.

"수고했다."

유현은 몬스터에게 걸린 언데드 마법을 해제했다. 그와 동시에 에틴은 다시 시체가 되어 쓰러졌다.

'여러모로 아쉽단 말이지. 저장 같은 걸 할 수 있었으면 좋을 텐데. 게다가 제한 시간도 짧고.'

죽은 시체를 되살리는 건 일정 시간 이내에만 가능했다.

테스트해 본 결과 대략 5분 남짓. 그 뒤가 지나면, 언데드 마법의 사용은 불가능하다.

"으, 으아아아아아악!"

유현은 그제야 뒤를 돌아보았다.

헌터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고 있었다.

"쯧. 시간 없는데."

***

"도망쳐!"

헌터들이 다급하게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늪 속에 발이 푹푹 빠졌다.

"젠장!"

"그새 차올랐어!"

처음 싸울 때까지만 해도 평평한 바닥이었던 땅.

그러나 어느새 질척이는 늪이 되어 있었다.

"발판을 만들게요!"

서혜빈은 기다란 검을 소환하여 늪 위에 고정했다.

길드원들이 그 검을 밟으며 황급히 늪을 빠져나갔다.

"전원 발판을 밟고 후퇴해라!"

생화 길드의 제2 토벌대로 구성된 구조대.

정예 부대에는 못 미치나 웬만한 공격대의 메인 토벌대만큼 강한 공격대였다.

그들은 헌터들의 구조를 위해 들어온 던전형 게이트에서 큰 위기에 봉착했다.

"오, 온다!"

늪을 빠져나온 거대한 악어 몬스터가 빠른 속도로 헌터들의 뒤를 쫓았다.

"끄아아아악!"

구조한 헌터 중 한 사람이 악어에게 붙잡혔다.

하지만 누구도 망설이지 않고 줄행랑을 계속했다.

길드원은 물론 구조한 헌터들의 목숨까지 숱하게 잃은 상황.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주춤거려선 안 된다는 교훈을 얻은 그들이었다.

"허억, 허억."

제법 멀리 도망친 이들은 밀림의 그루터기에 숨어 숨을 골랐다.

토벌대의 대장은 사람들을 훑었다. 살아남은 인원은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그마저도, 토벌대가 반, 구조한 헌터들이 반이었다.

"시발. 구하러 와서는 다 뒈지게 생겼네."

"우리 좆됐어요. 저 새끼들 자꾸 강해진다고요."

헌터들을 구하기 위해 몬스터들과 싸웠다.

분명 승기가 기운 싸움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몬스터의 모습이 사뭇 달라졌다.

덩치가 커지고, 이빨은 날카로워지고, 속도는 더 빨라졌다.

갑자기 강해진 악어 몬스터에게 토벌대는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지금의 상황에 이르렀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귀환 스크롤이라도 여러 장 가지고 오지."

길드원 하나가 원망스러운 투로 말했다.

챙겨온 귀환 스크롤은 고작 세 장. 그마저도 응급 상황인 헌터 둘과 그 헌터들을 이끌 한 사람을 보내는 데 사용했다.

"내가 말했잖아. 진즉 좀 철저하게 준비하자고."

"개소리하고 있네. 너 같으면 B 마이너스 등급 게이트가 이렇게 될 줄 알았냐? 에휴, 빡대가리 새끼."

"뭐? 이 새끼가..."

"둘 다 그만."

서혜빈이 두 사람을 말렸다.

아직 아카데미의 학생이지만, 그녀가 풍기는 카리스마에 두 사람은 싸움을 멈췄다.

"여기서 게이트까지는 얼마나 되죠?"

"대충 1시간 거리는 될 겁니다."

서혜빈은 눈앞이 캄캄해지는 걸 느꼈다.

한 시간. 걸어서 한 시간이니 그리 먼 거리는 아니다.

문제는 그동안 과연 저 몬스터들에게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였다.

몬스터들은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다. 더 강하게, 더 빠르게.

게이트까지 걸어가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가요."

"걸어서?"

"방법이 없잖아요. 구조대 올 때까지 버티지도 못할 것 같고."

토벌대의 대장은 그녀의 말에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지. 다들 최대한 조심해서 이동하자."

대장을 선두로 토벌대와 헌터들이 이동을 시작했다.

살금, 살금.

나뭇가지 하나 밟지 않기 위해 최대한 조심히 걸어갔다.

마치 작품에 심혈을 기울이는 장인들처럼 신중했다.

"크아아아!"

하지만 그런 노력은 별 성과가 없었다.

밀림의 몬스터는 하나가 아니었으며, 개중에는 나무를 타며 높은 시야를 확보한 녀석들도 있었으니까.

"뛰, 뛰어!"

네 개의 팔을 가진, 원숭이와 닮은 몬스터들이 거대한 밀림의 나무를 타며 구조대의 뒤를 무섭게 쫓아갔다.

"커헉!"

몬스터가 던진 거대한 돌덩이에 헌터 하나가 깔렸다.

푸욱!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지 뾰족한 나무 창이 멀리서 날아와 헌터 하나의 등을 관통했다.

하나둘 쓰러지는 사람들.

마치 인간을 가지고 노는 원숭이들의 모습 같았다.

"시발, 시..."

욕을 지껄이던 대장마저 돌덩이에 깔려 사라졌다.

하지만 서혜빈은 멈추지 않았다.

머리 끝까지 공포가 차올랐지만, 계속해서 달렸다.

심장이 요동치는 건 두려움 때문일까, 호흡 때문일까.

모르겠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오직 생존을 향한 욕구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쾅!

돌덩이가 그녀의 뒤에 떨어졌다.

서혜빈의 몸이 붕 떠올랐다가 전방으로 크게 날아갔다.

"크흐흐!"

"크흐흐흐!"

그녀의 모습을 보며 웃는 몬스터들.

거칠게 바닥을 구른 서혜빈은 황급히 바닥을 기었다.

적들의 공격으로부터 우선 몸을 감춰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허억, 허억."

서혜빈은 가까스로 커다란 바위 뒤에 몸을 감췄다.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다들..."

그녀가 주변을 둘러본다.

한 사람 정도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따라온 사람은 없었다.

"......"

홀로 남았다는 걸 자각하자 참을 수 없는 공포감이 그녀의 정신을 집어 삼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가까워지는 몬스터들의 움직임.

이해할 수 없는 울음 소리 사이로, 웃음이 들려온다.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던 이성이 송두리째 날아간다.

"하악, 하악."

숨이 거칠어진다. 힘들어서가 아니었다. 심장을 조여오는 공포감에 호흡조차 유지하기 어려웠다.

"도와줘, 제발, 아무나..."

가지런히 모은 다리 사이로 서혜빈이 머리를 파묻었다.

그녀의 온몸이 몹시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압도적인 공포 앞에서 반항의 의지는 떡잎조차 내밀지 못했다.

"케흐흑."

몬스터들이 앞에 도착했다.

보이지 않았지만, 그 시선이 뚜렷하게 느껴졌다.

'죽는구나.'

헌터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언제나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죽음이 다가오니 두려움을 참을 수 없었다.

삶이 끝난다.

그려왔던 꿈도, 바라왔던 미래도.

모두 부질없이 사라진다.

왜 하필이면 지금일까.

하고 싶었던 일들이, 하고 싶었던 말들이 얼마나 많은데.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원망스러웠다.

'......아빠, 엄마, 할아버지.'

추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머리에 이질적인 촉감이 느껴졌다. 몬스터의 손이겠지.

'유현...'

가족의 다음으로 생각난 건, 어느 순간 마음에 들어온 동급생이었다.

한 번만이라도, 그 마음을 전할 수 있었다면, 이렇게 가슴 아프지도 않았을 텐데.

"흐으으으..."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와 동시에, 털이 수북한 손이 머리칼을 덥썩 붙잡았다.

고개가 억지로 치켜들어졌다.

"크흐흥!"

"크크흐흥!"

눈물이 맺혀 시야가 뿌옇다.

하지만 서혜빈은 알 수 있었다.

몬스터의 손에 들린 기다란 무언가가 곧 자신의 몸을 가격하리란 것을.

그리고 그게 자신의 마지막이 되리라는 것도.

'정말...'

끝이구나.

서혜빈이 두 눈을 감으려던 그때. 뿌연 시야 너머로 붉은색 빛이 맺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