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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데리코의 목적은 두 사람을 납치하는 것.
마나의 흐름을 느낀 유현은 일대에 방어 마법을 펼쳤다.
쾅!
괴물이 휘두른 거대한 팔이 반투명한 방어막에 저지당하며 굉음이 일었다.
"유, 유현! 이게 대체..."
"가까이 붙어!"
유현의 고함에 세 사람이 황급히 유현의 뒤로 모였다.
서혜빈은 어리둥절했지만, 다른 두 사람은 그렇지 않았다.
"저놈이..."
엘레나의 눈빛에 적의가 가득 담겼다.
언니를 죽음으로 이끈 남자.
아카데미 입학의 계기가 된 복수의 대상이 눈앞에 있었다.
"함부로 나서지 마."
유현이 엘레나를 미리 제지했다.
엘레나는 애써 마음을 다스렸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가까스로 이성을 지켰다.
"엘레나. 가면 안 돼."
"유현 말대로 하자."
한서희와 서혜빈도 그녀를 붙잡았다. 두 사람 모두 대충 사정은 알고 있었기에, 저 남자가 엘레나에게 어떤 대상인지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것 같나?"
"그게 유언이냐?"
"건방진 놈. 입만 살아서는."
페데리코가 다시금 공격하려 했다. 유현은 기존에 사용한 방어 마법을 제거하고, 서클 베리어로 세 사람을 감쌌다.
"엘레나, 이니티움한테 연락해."
다음 순간, 유현의 모습이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 건 페데리코의 앞이었다.
페데리코는 유현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마법으로 강화된 주먹이 유현에게 적중하기 직전.
유현의 모습이 한순간 사라졌다가 그의 뒤에서 나타났다. 푸른 빛이 발에 감돌았다.
빠각!
페데리코의 주먹은 허공을 갈랐지만, 유현의 발등은 그대로 놈의 관자놀이에 작렬했다.
적중과 동시에 불이 튀기듯 터진 푸른 빛 에너지.
페데리코가 화려한 이펙트와 함께 저편으로 날아갔다.
"......제법이구나."
강력한 공격이었으나 페데리코는 날아가면서도 여유롭게 밸런스를 되찾았다.
그의 옆을 따라가던 괴물이 페데리코의 몸을 붙잡아 멈춰 세웠다.
"내가 오늘 왜 이곳에 왔는지 아는가?"
페데리코가 허공에 떠오른 채 유현을 내려다보았다.
"닥쳐."
"그 두 사람 때문만은 아니야."
[체인 라이트닝]
페데리코를 향해 유현이 마법을 날렸다.
허공을 가르며 뻗어나간 쇠사슬이 그의 팔다리를 옭아맸다.
쇠사슬을 통해 뻗어나가는 푸른 빛 뇌전. 파직거리는 전기가 페데리코의 전신을 뒤덮었다.
"차원의 문을 여는데 필요한 건 강한 힘. 지금까지 그 힘을 위해 각성 코마에 빠진 매개체를 찾아다녔지."
공격당하고 있음에도 페데리코는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둘 다 너에게 빼앗겼어. 코마에서 깨어나도 어느 정도의 힘은 존재하지만, 코마 상태에 빠져 있을 때만큼은 아니지."
페데리코가 손가락을 튕기자 그의 뒤에 부유하던 괴물이 커다란 손을 휘둘렀다.
마나로 형성된 단단한 쇠사슬이 일격에 끊겼다.
"물론 있으면 좋긴 해. 그래서 그 둘도 데려갈 거야. 그리고."
페데리코가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와 동시에 유현은 마나의 흐름이 그곳에 집중되는 걸 느꼈다.
이건 페데리코의 힘이 아니다.
익숙하고 낯익은 감각.
"......이니티움."
페데리코와 유현의 시선이 맞닿은 허공에 포탈이 열렸다.
이니티움이 그곳에서 걸어 나왔다. 페데리코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플레임 캐논]
페데리코의 계략을 눈치챈 유현이 그를 공격했다.
페데리코는 가뿐하게 화염의 광선을 피해냈다.
"예로부터 드래곤 하트는 무한한 마나를 가진 아티팩트로 통했지."
쫙 펼쳐져 있던 페데리코의 손이 무언가를 움켜쥐듯 콱 주먹을 쥐었다.
다음 순간, 이니티움의 모습이 뒤틀렸다. 괴이하게 어그러진 팔다리. 이니티움조차 반응하지 못한 불의의 습격이었다.
"룬석, 드래곤 하트. 그 정도면 차원의 경계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해. 코마를 겪었던 두 명은 보험이다. 혹시 몰라? 힘이 부족할지."
"이니티움!"
엘레나가 절규에 가깝게 소리쳤다. 만류를 뿌리치고 페데리코를 공격하려는 엘레나. 하지만 유현이 선수를 쳤다.
[먹구름]
들숨 한 번에 하늘이 어두워졌다.
[기가 라이트닝]
날숨과 함께 세계가 섬광으로 물들었다.
가장 단순한 마법인 라이트닝을 원형으로 한 마법 중 최고위의 마법.
한 줄기만으로 대부분의 몬스터를 절명케 할 강력한 전격 수백 줄기가 페데리코의 몸뚱이에 집중되었다.
번개가 멎고 먹구름이 걷혔다.
총구에서 피어난 포연처럼 페데리코의 몸에서 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페데리코는 쓰러지지 않았다. 그 얼굴에는 여전히 웃음이 걸려 있었다.
"크하하하하!"
페데리코가 웃는다. 배를 부여잡고, 바닥을 뒹군다. 그 공격에도 아무렇지 않은 듯 보였다.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용사의 힘을 완전히 회복했구나."
바닥을 구르던 페데리코가 몸을 일으켜 양반다리를 했다.
"아무리 나라도 이런 공격을 맞고 멀쩡할 수는 없군."
아예 타격이 없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주저앉은 페데리코는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혹시 네가 대신 끌려갈 생각은 없나? 너라면 매개체로 충분할 것 같은데. 너만 온다면 네 친구 말고 다른 각성 코마 환자를 찾아보마."
유현은 다시 마법을 준비했다.
페데리코가 피식 웃었다.
"내 마음을 조금도 이해해주지 않는군."
"얌전히 뒈져라."
유현의 코어에서 대량의 마나가 빠져나왔다.
[그래비티]
범위의 중력을 강화하는 마법이 페데리코를 잡아당겼다.
땅이 깊이 파이며, 원형으로 된 구덩이가 생겼다.
땅과 함께 페데리코의 몸뚱이가 한없이 아래로 내려간다.
[아이언 프레스]
허공에 거대한 쇳덩이가 나타났다. 유현의 손짓에 따라 더 높이 올라가는 쇳덩이.
제어를 멈추자 작은 건물 크기의 쇳덩이가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가속]
중력의 속도에 가속 마법이 곁들여졌다. 마치 대기권을 뚫고 낙하하는 우주선처럼 쇳덩이가 맹렬한 속도로 내려꽂혔다.
콰과과광!
쇳덩이가 구덩이 속으로 떨어지며 지축을 뒤흔들었다.
끝없이 아래로 내려가는 쇳덩이.
페데리코가 중력 마법을 이겨내지 못했다면, 결코 무사할 수 없을 공격이었다.
하지만.
"매섭구나."
페데리코는 다시 땅 위로 올라왔다. 외형에는 아무런 손상도 보이지 않았다.
"반항이 거세니 나도 조금 서둘러야겠군. 더 지체했다가는 저 여자도 가세하겠어."
이니티움은 자신의 몸을 조이고 있는 투명한 무언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안간 힘을 쓰고 있었다.
"......"
유현은 새삼스레 페데리코의 힘을 체감했다. 이니티움조차 간단하게 제압한 힘. 아무리 코어의 마나를 전부 회복했다고 하더라도,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너무 강해.'
페데리코. 용사의 힘을 가졌으며, 타인의 힘을 흡수하는 특성을 가진 남자. 둘 중 하나만 있어도 위험한 상대에게 그 두 가지가 모두 있다.
마나 코어를 모두 회복했다고 해도 승산이 높지 않은 이유였다.
'오늘 반드시 죽여야 해.'
페데리코의 강함에는 한계가 없다. 당장 지금만 봐도, 지난 번보다 더 강해졌다.
대체 그사이에 어디서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른다. 허나 하나 확실한 게 있다.
'오늘이 바로 놈이 가장 약한 때다.'
이 자리에서 죽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디선가 힘을 얻어 몇 번이고 찾아올 것이다. 그 성장을 따라잡을 방법은 없다.
그러니 반드시, 반드시 오늘 죽여야 한다.
'저놈을 막을 수 있는 건 나뿐이야.'
설령 동귀어진이 되더라도 상관없다. 모든 힘을 조금도 아낌없이 퍼붓자.
마나가 유현의 전신을 질주하며 육체를 강화했다.
이어서 마법이 몸에 깃들며 육체의 성능을 한계까지 끌어올렸다.
[강화]
[헤이스트]
[신속]
[과열]
아공간에서 빼든 수십의 무기가 머리 위를 부유한다.
창, 검, 둔기 등.
판대륙에서 전설로 내려오던 무기부터 유명한 장인의 무기와 군단장들이 사용하던 아티팩트까지.
마족의 아티팩트에는 페널티가 따르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놈을 막기 위해서라면 어떤 페널티든 부담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하하하! 너의 아공간에는 참 재밌는 게 많구나!"
이니티움의 아공간과 달리 유현의 아공간은 마법적으로 독립된 공간에 위치해 있었다.
그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존재하지 않는 이상 타인의 간섭은 불가하다.
따라서 이니티움의 아공간을 강제로 열어젖혔던 페데리코도 유현의 아공간을 볼 수는 없었다.
"이거 참, 나를 얼마나 진심으로 만들 생각이냐. 그것들을 보니 이제는 더 참을 수가 없군."
탐욕으로 물든 페데리코의 눈동자. 호선을 그린 입술이 달싹이며, 일대의 마나가 요동쳤다.
펑!
공사중인 건물이 폭발했다.
대피를 위해 막 정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온 인부들의 머리 위로 건물의 자재들이 추락했다.
'이런 비겁한...'
곧장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 페데리코. 자신의 시선이 저곳에 팔린 틈을 노리고 공격할 생각이었겠지.
용사이니 타인의 죽음을 그저 지켜보지는 않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실제로 유현은 그 판단대로 행동했다. 다만 그 방식은 페데리코의 예상외였다.
쾅!
인부들의 머리 위로 날아간 방패가 반투명한 돔 형태의 방어막을 펼쳤다.
지상으로 추락한 낙하물들은 그대로 방패에 막혔다.
쐐애애액!
직후, 여러 자루의 무기가 파공음을 내며 페데리코에게 쇄도했다.
회피 기동을 펼치며 균형을 잃은 탓에 페데리코가 준비한 마법은 허공을 강타했다.
방어와 공격을 동시에 성공한 유현. 그의 머릿속은 어느 때보다도 분주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대지의 쇠사슬]
땅에서 솟구친 굵은 나무 뿌리가 페데리코의 팔다리를 붙잡았다.
[블리자드 애로우]
페데리코의 몸뚱이에 얼음의 화살이 틀어박혔다.
그의 몸을 중심으로 주변이 얼음에 뒤덮였다.
화르륵!
얼어붙은 페데리코가 거센 불길을 일으켜 몸에 자유를 되찾았다.
유현을 향해 거대하고 뾰족한 송곳이 쇄도했다.
챙!
유현의 주위를 부유하던 무기들이 송곳의 방향을 틀었다.
유현은 재차 마법을 발동했다.
[플레임 퍼니셔]
큼지막한 바위 크기의 불덩이 몇 개가 페데리코를 향해 날아간다.
페데리코는 회피하기 위해 더 높이 날아올랐으나 플레임 퍼니셔는 유도 마법이다.
펑!
적중과 함께 폭음이 일었다.
허공을 가리는 짙은 연기.
유현은 멈추지 않고 공격을 이어갔다.
[쥬피터 썬더]
마법의 발동과 동시에, 수십 자루의 무기가 허공을 날아 페데리코의 주변을 부유했다.
마치 페데리코를 포위하는 듯한 포지셔닝.
유현은 무기를 향해 번개의 구체를 발사했다.
치지직!
마법이 무기에 적중한 순간.
전도체가 된 무기를 타고 끝없는 전격의 향연이 펼쳐졌다.
일명 라이트닝 필드.
중첩될수록 강해지는 필드에 적을 속박하는 연계 기술이었다.
아무리 페데리코라고 해도 한동안은 꼼짝할 수 없을 공격. 유현은 곧장 필드를 향해 몸을 날렸다.
-천둥 악마의 갑옷.
어느새 그의 몸에는 군단장의 아티팩트가 걸쳐져 있었다.
감전에 면역이 있는 갑옷으로 전기 계열이라면 어떤 공격이든 무시할 수 있다.
[윈드]
헥톨의 검을 들고 필드로 들어온 유현은 바람을 일으켜 폭발의 잔연을 몰아냈다.
"크으으...!"
예상대로 페데리코가 전격에 얽매인 채 고통을 흘리고 있었다.
움직이려 시도하지만, 쉽게 움직이지 못한다.
"뒤져라."
유현이 검을 휘두르려던 순간.
서늘한 감각이 그의 전신을 휘감았다.
문득 위화감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옆을 떠다니던 괴물은 어디로 간 걸까.
『키아아아아!』
어디선가 들려온 쩌렁쩌렁한 포효. 그 음색에 담긴 깊은 분노가 유현에게도 느껴졌다.
유현은 지체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 공격에 맞은 건 페데리코가 아니었다.
『키아아!』
어느새 날아온 괴물이 거대한 두 손으로 페데리코를 보호했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유현을 공격했다.
벌어진 거대한 입에서 고주파가 쏟아졌다.
"크윽!"
유현이 귀를 막는 사이 괴물은 페데리코를 필드 밖으로 끌어냈다.
괴물 역시 필드의 전격에 데미지를 입었지만, 몸이 지져진 것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거침없이 행동했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몰아쉬는 페데리코.
줄곧 웃음기가 있던 페데리코의 표정은 이전과 달리 굳어 있었다.
"정말 죽을 뻔했군. 대체 동시에 마법을 몇 개나 준비하는 건가? 과연 용사라 이건가?"
죽이려면 상태가 나빠진 지금이 기회다.
그 생각으로 유현이 달려들려던 그때.
푸확.
페데리코의 주먹이 괴물의 머리통을 관통한다.
"이게 뭔지 아나?"
괴물이 형태가 서서히 작아진다.
반면, 페데리코의 안색은 조금씩 좋아졌다.
"알 게 뭐야?"
"정령이다."
정령.
그게 무엇인지는 유현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멍청히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정령이라고?"
"몇 번인가 게이트를 열었는데 튀어나왔지."
판대륙에 존재하던 정령.
게이트를 열었다가 튀어나왔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지만, 경우의 수를 따지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저렇게 그릇된 생김새의 정령은 처음 본다.
무릇 정령이란 자연에 가까운 존재. 대개 자연의 형태에 머물지 이런 식으로 끔찍한 모습이 되지 않는다.
"네가 알던 정령과는 다르겠지.
이놈은 마계의 근원에서 나온 놈이니까. 내 생명력을 활동의 동력으로 삼지."
"마계에는 정령이 없어."
"없었겠지. 하지만 생겼다. 죽어가던 마왕과 살아남은 마족들의 간절한 염원이 마계의 근원에 닿았어. 본래 정령의 탄생은 그러한 법이니."
마계의 근원.
태초의 마족이 그곳에서 탄생했으며, 마왕이 힘을 얻는 곳.
그곳을 파괴한 기억이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근원은 내가 전부 파괴했을 텐데."
"근원은 총 여섯 개다."
"마왕 성의 최심부, 동, 서, 남, 북..."
"마지막 하나는 마왕이 태어난 마계 최남단의 가정집에 있다만. 신성 교회도 그쪽까지 찾아볼 생각은 못 한 것 같군. 하기야, 나 같아도 그랬겠지. 누가 그런 변방에 그 중요한 근원을 방치하겠나?"
유현은 코웃음을 쳤다.
"그런 헛소리를 믿으라고?"
"눈앞에 그 증거가 있다. 믿든 말든 네 자유지."
유현이 검을 더 단단히 움켜쥐었다. 머릿속으로는 언제든 발동할 수 있도록 몇 가지의 술식을 동시에 그렸다.
"설령 근원이 있든 없든 아무래도 상관없어. 난 더 이상 그 세계와 상관없으니까."
"잔인한 용사로군. 구한 세계가 멸망해도 상관없나?"
"내 동료들이 멸망하게 두지 않을 거다."
페데리코가 웃음을 터뜨렸다.
"대단한 신뢰야! 정말이지 감동이다!"
유현은 준비한 마법을 동시에 발동했다.
그러나 페데리코가 펼친 반투명한 보호막 앞에 힘없이 막히고 말았다.
페데리코가 포탈을 열며 말했다.
"네 반항이 너무 거세니, 오늘은 이만 물러나마. 하지만 다음에는..."
다음. 다음은 없어야 했다.
유현은 페데리코를 향해 발을 튕겼다.
그의 의지를 따라 수십의 무기가 페데리코를 향해 쇄도했다.
[가속]
무기들의 속도가 더욱더 빨라지고, 날카로워졌다.
"다음에는 나를 막지 않았으면 좋겠군."
바로 그때, 뒤쪽에서 응축된 마나의 힘이 느껴졌다.
이어서 비명이 들려왔다.
"꺄아아아악!"
유현은 홱 몸을 돌렸다.
허공에 붙들려 있던 이니티움이 힘없이 추락하고 있다. 그 몸의 상태는 이전보다 더 너덜너덜해졌다.
"그냥 가긴 아쉽잖아?"
유현이 잠깐 눈을 판 사이, 페데리코가 한 마디를 툭 남기고는 포탈 너머로 사라졌다.
허탈함이 앞섰지만, 그런 감정에 사로잡혀 있을 때가 아니었다.
유현은 방향을 선회했고, 떨어지던 이니티움을 허공에서 낚아챘다.
"......"
안색이 좋지 않았다.
입술은 푸르고, 얼굴은 창백하다.
숨은 쉬고 있지만, 봄의 진눈깨비만큼이나 옅었다.
이니티움이 살며시 눈을 떴다.
"......고작 이런 공격에 당하다니."
온몸이 부스러졌다. 뼈는 물론이고, 내부의 장기들까지 모두 뒤틀렸다.
하지만 그녀는 드래곤이다.
폴리모프 하여 인간의 모습이 되었어도, 드래곤은 쉽게 죽지 않는다.
그런 그녀가 죽어가는 이유.
"너 대체, 심장으로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녀와 접촉한 순간.
유현은 이니티움의 드래곤 하트가 반토막밖에 남지 않았음을 눈치챘다.
괜히 아무런 반항도 못 하고 당한 게 아니었다.
"......미르에게 줄 성장 촉진제를 만들었어."
"등신아!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왜 심장을..."
"반쪽만 있어도,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지. 근데 설마, 놈이 처음부터 나를, 노릴 줄이야."
호흡이 달리는지 중간중간 말을 끊는 이니티움.
유현은 그녀의 숨이 머지않았음을 알았다. 그녀를 살릴 방법 같은 건 없다.
"지난번보다, 더 강해졌어. 룬석, 때문일 거야."
"말하지 마."
"나머지, 반은, 네가... 가져가..."
드래곤이 죽어도 그 심장은 마나의 근원으로서 세상에 남는다.
이니티움은 스스럼없이 자신의 가슴팍에 있던 드래곤 하트를 꺼냈다.
한순간, 그녀의 호흡이 가늘어진다.
"세상을, 지켜. 놈이, 얼마나, 강해져도, 너라면..."
이니티움의 눈이 감겼다.
그 입은 마지막 말을 발음하지 못한 채 뻐끔거리기만 했다.
"......"
할 수 있어.
그 말 만큼은, 귀에 닿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