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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88화 (188/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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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회장에서 담판을 짓고 이틀 뒤. 엘레나에게 한국의 아카데미에 입학해도 좋다는 영국 정부의 공식적인 허가가 떨어졌다.

그 이틀 동안 유현도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

단순히 영국 정부의 허가만 떨어진다고 아카데미의 입학이 가능한 건 아니었으니까.

유현은 안칠성을 통해 교장과 연락하고, 입학 절차를 밟았다.

필요조건은 넷.

영국 정부의 허락.

학기 시작후 한 달이 지나지 않았을 것.

증명된 추천인이 존재할 것.

입학 테스트에 통과할 것.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이미 충족되었고, 영국 정부의 허락이 떨어지며 첫 번째 조건도 충족되었다.

남은 건 입학 테스트.

그리 어려울 건 없는 테스트였다.

"와아아!"

입학 허가가 떨어지기도 전에 국내에 들어와 있던 엘레나는 허가가 나오자마자 아카데미로 달려갔다.

이어서 교장을 비롯한 다른 선생들의 참관하에 입학 테스트가 진행되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재능을 아낌없이 뽐냈으며, 높은 성적으로 입학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었다.

"이제 저도 아카데미 학생이에요!"

테스트 통과 당일.

학교생활과 관련된 서류가 그녀에게 도착했다.

조금 전의 탄성은 유현의 기숙사에서 그 서류를 열어보고 나온 기쁨의 탄성이었다.

"축하한다."

유현의 담백한 인사에 엘레나가 볼을 부풀렸다.

"그게 다예요?"

"응. 이제 들었으니까 나가봐."

"싫어요. 갈 데가 없는걸요."

"거기 기숙사 서류도 있을 거야. 거기로 가."

"혼자 있는 건 무서워요."

몇 년의 수면.

그녀의 정신연령이 아직 그 시절에 머물러 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그럼 익숙해질 때까지는 있어도 돼. 알려줄 것도 많고."

"와! 고마워요!"

3학년으로 입학한 엘레나에게는 해당 학년이라면 응당 갖춰야 할 헌터에 관한 소양이 상당히 부족했다.

그래서 유현은 이왕이면 1학년으로 입학하는 게 낫지 않을까 했는데, 그건 엘레나가 싫다고 했다.

자기보다 어린 애들이랑 친구 먹기에는 뭐하다나.

'영국인이 장유유서를 챙기다니.'

참으로 기묘한 일이었다.

"바로 공부 시작하자."

"네!"

유현은 그 뒤로 엘레나를 가르치는 데 힘썼다.

아카데미에서 배웠던 이론과 실전 학문 외에도 한국의 생활이나 문화와 관련된 여러 가지들을 말이다.

가끔 이론적으로 모르는 게 있을 때는 안칠성이나 안도경 같은 다른 선생들에게 도움을 받기도 했다.

그동안 학교 측의 배려로 실습은 잠시 뒤로 미룰 수 있었다.

"오늘은 학교에 갈 거야."

실습 기간이라고 하여 매일 같이 길드에 나가는 건 아니었다.

헌터들이 게이트를 돌고 며칠의 휴식을 취하듯 학생들 역시 비슷했다.

길드에 익숙해지기 위하여 휴식을 취하는 동안 길드의 다른 업무를 배우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필수 등교 일수는 채워야 했기에 정해진 등교일에는 등교하는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바로 첫 번째 정기 등교일. 엘레나 역시 처음으로 학교에 왔다.

"점마는 뭔데 유현이 뒤만 졸졸 따라다니나."

"새로 입학했다고 하던 것 같은데."

"3학년에? 그게 가능해?"

엘레나를 향해 여럿의 시선이 쏠렸다. 호기심, 경계, 질투 등, 여러 감정이 담긴 시선이었다.

"와타시, 오늘 이상형을 만난 것 같군."

"...안 돼, 철용아. 하지 마."

불순한 감정 역시 존재했다.

순간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걸 느낀 엘레나는 정신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유현에게 가까이 달라붙었다.

"왜 그래?"

"뭐, 뭔가 절 노리고 있는 것 같아요."

그 말에 유현 역시 경계심을 높였다. 이곳이 학교라고 하여 페데리코가 습격하지 말라는 법은 없었으니까.

다만 사정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그 모습은 사뭇 다르게 보였다.

청춘의 마음을 자극하는, 두 이성의 애정표현이랄까.

"야!"

서혜빈이 유현의 앞을 막아섰다.

어느샌가 나타난 한서희도 유현과 엘레나 사이의 자신의 팔을 끼워넣었다.

"......?"

엘레나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두 사람을 번갈아보았다.

"왜?"

유현의 물음에 서혜빈이 땀을 삐질거리며 입을 열었다.

"여, 여긴 신성한 학교잖아? 그렇게 남녀가 붙어 다니면 안 된다고."

"맞아요. 그리고 전학생이면 다 같이 친해져야죠."

한서희가 억지로 엘레나를 떼어 내 저쪽으로 데려갔다. 서혜빈도 우물쭈물하며 유현의 눈치를 살피더니 저쪽으로 멀어졌다.

"뭐야?"

친하게 지내서 나쁠 건 없으니 유현도 굳이 두 사람을 말리지는 않았다.

또, 학교라면 아무리 멀리 떨어져도 거리상 한계가 있다. 설령 페데리코가 습격하더라도 금세 찾을 수 있으니 큰 문제는 없었다.

'한서희한테도 페데리코에 관해서 언질은 해두었고.'

한상용의 귀에도 그 이야기가 들어갔을 테니 한서희 쪽은 조금 걱정을 덜었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아무 일 없으면 좋을 텐데.'

아쉽게도 그럴 일은 없겠지.

***

한 달이 지났다.

엘레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남들이 시간을 들여가며 쌓을 지식을 모두 받아들였다.

스승의 덕도 있지만, 그녀의 머리가 탁월한 게 컸다.

"밖에는 웬만하면 나가지 마. 남자 기숙사에서 나오면 괜히 사람들이 수군거릴 테니까."

"얌전히 공부할게요!"

엘레나는 공부를 이유로 자신의 기숙사에 입주조차 하지 않았다.

그녀가 남자 기숙사에 사는 게 들킨다면, 서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거리야 그리 멀지 않으니 유현에게는 상관 없었지만, 엘레나가 그걸 원치 않았다.

'실습도 한 달만인가.'

오늘은 한달간 미루어두었던 실습을 다시 시작하는 날이었다.

엘레나의 적응이 끝날 때까지 더 미루고 싶었으나 길드의 요청으로 연기는 불가능했다.

"오늘 꼭 해야 할 일이 대체 뭐길래."

금일 실습이 예정된 길드는 단델리온. 집합 위치는 특이하게도 포탈 관제소 앞이었다.

그것도 국내 포탈이 아닌 국외 포탈이었다.

'어디 해외라도 나가나?'

유현은 의문을 가진 채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단델리온 길드의 사람들을 찾으려는데, 저 멀리 웬 깃발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

단델리온 길드의 문양인 민들레 꽃이 새겨진 깃발이었다.

그리고 그걸 들고 있는 사람은 길드 마스터 한송이였다.

기다란 깃발을 들고 있는 게 여간 힘든지 작은 몸이 이리저리 비틀거렸다.

"어! 여기! 여기에요!"

유현을 발견한 한송이가 손을 흔들었다.

두 손으로 아슬아슬하게 지탱하고 있던 깃발이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어어어!"

다행스럽게도 깃발은 아무도 없는 곳으로 넘어졌다.

유현은 피식 웃으며 한송이에게 다가갔다.

"다른 길드원한테 맡기지 왜 직접 나와 있어요?"

한송이가 낑낑거리며 깃발을 다시 들어올렸다.

"다른 사람은 없어요. 오늘은 우리 둘이 갈거에요."

"......"

채지수가 생각났다.

성격은 정 반대로 보이는데, 한송이도 그녀에게 물들어 버린 걸까.

"그쪽도 뭐, 랭킹 같은 거 노려요?"

"네?"

고개를 갸우뚱하는 한송이.

붉은 장미 길드가 게이트 클리어 속도 랭킹 1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을 리는 없고.

그렇다면 이건 시치미를 떼는 게 분명했다.

"그게 무슨 말..."

한송이가 아차하며 말을 멈췄다.

뒤늦게야 그녀의 머릿속에 채지수의 소식이 떠올랐다.

"그, 그런 거 아니에요!"

한송이가 당황하며 손을 휘저었다. 하얀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그냥 둘이서 가도 충분한 게이트라서 그래요. 괜히 다 데려가면 전력 낭비잖아요."

"...별 차이 없는 것 같은데."

이미 A+ 게이트를 채지수와 둘이서 클리어한 마당에 한송이의 말은 변명도 되지 않았다.

한송이도 그 점을 알았는지 입술을 잘근거리며 말을 고민했다.

"일단 가요. 가면 알게 될 거예요."

유현은 얌전히 그녀를 따라갔다.

사실 그녀의 목적이 채지수와 같아도 유현에게 선택지는 없다.

뭘 하든 결국 실습은 실습이니까. 다만 그 불온한 마음이 거슬릴 뿐이다.

'대체 무슨 게이트길래 해외까지 가는 거야.'

헌터는 단순히 국내의 게이트만 소탕하지 않는다.

물론 대부분은 국내에 집중하지만, 간혹 의뢰가 들어올 경우 해외에 나가기도 한다.

즉, 지금 이건 한송이의 길드가 어딘가에게 의뢰받은 게이트일 확률이 높다.

'가보면 알겠지.'

***

포탈을 통해 도착한 곳은 이집트에 있는 아프리카 포탈 관제소였다.

그곳에서 몇 시간을 더 이동하여 진짜 목적지에 도착했다.

본래 계획대로 차를 타고 이동했으면 며칠은 걸릴 거리였지만, 유현은 차를 렌트하려는 한송이를 등에 업고 두 발로 메마른 사막을 달렸다.

"이제 내려줘도 돼요."

목적지에 도착한 유현은 한송이를 내려놓았다.

두 사람이 현재 위치한 곳은 콩코와 탄자니아 사이에 있는 작은 국가 부룬디. 적도의 근처였지만, 국가 전체가 고지대에 위치하여 날씨는 그리 덥지 않았다.

"우선 관계자부터 만날게요."

부룬디의 옛 수도 부줌부라.

두 사람은 부줌부라에 있는 행정청으로 찾아갔다.

"잠깐 기다려요."

한송이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유현은 바깥에서 기다렸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그를 쳐다보았다. 알아보는 건 아닌 듯했고, 단지 이방인이 신기한 것 같았다.

"아프리카라길래 엄청 덥고 매마른 곳인 줄 알았더니 그렇지만도 않네."

조금 시선을 돌리면 저 멀리 호수가 보였다. 반대를 돌아보면 경작지나 목초지도 있었다.

사람들의 생활은 그리 풍족해 보이지 않았지만, 아주 나쁘지만도 않은 것 같다.

"근데 이런 곳에도 헌터가 있나?"

생활 수준이 나쁘지 않다는 건 말 그대로 최소한의 의식주가 유지되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카데미가 운영되는 데에는 그 이상이 필요하다. 여긴 어떻게 봐도 아카데미가 있을 만한 국가가 아니었다.

"%@#$#!"

갑자기 건물 안쪽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유현은 잡념을 떨쳐내고 다시 건물 앞으로 돌아갔다. 누군가가 한송이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

상황을 모르는 유현은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혹여나 폭력을 사용할까 싶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공무원으로 보이는 이에게 잔뜩 잔소리를 들은 한송이는 의기소침한 얼굴로 건물을 나왔다.

"뭐에요?"

"둘이서 무슨 게이트를 소탕하냐고 하시네요. 자기들이 그렇게 우스워 보이냐고..."

"여기서 직접 요청한 거 아니에요?"

"어... 반은 맞고 반은 틀린데..."

한송이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유현 학생은 아카데미도 없고 헌터도 없는 약소국이 어떻게 게이트에 대처하는지 아시나요?"

"다른 나라에 부탁한다?"

한송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세계 연합에 요청을 보내요. 그러면 연합 측에서 가맹국 중 하나에게 그 요청을 하달하고요."

"그게 한국이었고, 정부에서는 단델리온 길드에 맡긴 거군요."

"오! 똑똑한데요? 정확히는 협회에서 맡긴 거예요. 보통은 협회에서 직접 처리하는데 인력이 부족할 때는 이렇게 길드를 활용하기도 하거든요."

"저 사람은 지금 그게 마음에 안 든 건가요?"

한송이가 건물 앞에서 씩씩거리는 남자 공무원을 흘끗 보더니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뿐이라 미덥지 않은 것 같아요."

"우리가 누군지도 모르죠?"

"아마도요. 이곳은 아직도 재래식 무기를 활용한 내전이 일어나는 곳이니까요. 능력자라든가, 헌터라든가, 관심이 생길 수가 없죠. 또 세계 최빈국이기도 하고."

아무리 작고 가난한 나라라도 능력자가 아예 안 태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돋보이지 않는 이유는 인프라 자체가 형성되지 않은 탓이리라.

"그나저나 저런 반응이면 게이트는 못 가나요?"

"네."

"예? 진짜요?"

"위치를 저 사람이 알고 있어서요."

유현은 어이가 없어 탄식했다.

그럼 담판을 지어야지, 이사람은 왜 그냥 돌아온 걸까.

"이따가 선물이라도 사서 다시 갈까 봐요."

"선물 같은 소리 하네. 따라와서 통역이나 해줘요."

"이런 일은 최대한 평화롭게..."

유현은 깊이 숨을 들이쉬며 한송이의 머리에 딱밤을 때리고 싶은 욕구를 참았다.

그리고 그녀의 뒷덜미를 번쩍 들어 억지로 끌고 갔다.

"유, 유현 학생?"

"알려주든가, 뒤지든가. 고르라면 알려주겠죠."

유현이 공무원에게 다가가 말했고, 한송이가 망설이더니 통역했다.

뇌물을 바라며 소리쳤던 부줌바라의 행정 공무원에게는 씨알도 안 먹힐 말이었지만, 유현이 살기를 담아 재차 물었기에 위치를 실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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