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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지수와 유현은 함께 게이트 토벌을 시작했다.
정확히는 두 개의 역할로 나뉘었다. 채지수는 먼저 앞장서서 몬스터를 몰고왔고, 유현은 그녀가 데려온 몬스터들을 죽였다.
"미친년아!!!"
물론 유현의 의지가 관여된 선택은 아니었다.
"이런 또라이 같은...!"
수백이 넘는 몬스터에 둘러싸인 유현은 어디 있는지도 모를 그녀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하하하하! 다 죽여버려~!"
긴 머리칼을 휘날리며 바람처럼 뛰어다니는 채지수.
유현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에 이를 악물었다.
"갑자기 왜 뛰쳐나가나 했다."
채지수의 목적은 유현의 실력을 직접 눈으로 보는 것과 게이트 클리어 랭킹에 길드의 이름을 올리는 것.
직접 몬스터를 몰고 오는 건 그 두 가지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빠르긴 더럽게 빠르네."
채지수는 날렵한 몸놀림으로 몬스터들의 공격을 회피했다.
A+등급의 게이트지만, 어떤 몬스터도 그녀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스피드스터]
그게 세간에 알려진 그녀의 특성이었다.
전력으로 달리면 총알이나 전투기는 우습게 뛰어 넘는 속도.
유현조차도 그녀의 움직임을 제대로 쫓을 수 없었다.
"후후. 몬스터가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나오려나~?"
그들이 위치한 곳은 숲의 공터.
기본적으로 던전형 게이트에도 이곳 같은 숲처럼 지형이 탁 트인 곳이 존재한다. 정해진 길도 없고, 어디서 몬스터가 튀어나올지 몰라 5대 길드라도 쉽게 도전할 수 없는 곳이다.
지형이 넓은 만큼 등장하는 몬스터도 많다.
유현을 둘러싼 숫자가 그것을 증명한다.
유현이 삐끗한다면, 둘 다 죽을 수도 있는 장소.
하지만 채지수의 얼굴에는 조금의 긴장감도 없었다.
거대한 나뭇가지에 앉아 여유롭게 공터를 내려다보는 그녀.
그녀에게는 믿음이 있었다.
유현이라면, 어떤 시련이라도 훌륭하게 돌파해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네 실력을 아낌없이 보여줘."
채지수는 기본적인 목적 외에도 유현의 끝을 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그동안 봐왔던 그의 무력은 무척 강했지만, 석연치 않은 부분도 존재했다.
처음에는 1이 그가 낼 수 있는 힘의 한계라고 생각했는데, 그다음에는 2가 존재했다.
그다음에는 2를 뛰어넘은 3. 3을 넘어 4.
그렇게 유현은 그녀가 한계라고 생각한 자리에서 끊임없이 나아갔다.
어느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이 맴돌았다.
-정말 그게 유현이 가진 힘의 끝일까?
그 의문이 바로, 이 자리의 진짜 목적이었다.
"캬아아아아아!"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피해, 유현은 제자리를 박차고 뛰어올랐다.
한 번의 도약으로 하늘 높이 뛰어오른 유현.
발아래로 던전의 정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저 멀리까지 끝없이 펼쳐진 드넓은 녹음.
그 사이사이에는 동굴이나, 현재 자신이 위치한 넓은 공터 같은 곳들이 있었다.
'보스는 저쯤인가.'
아득히 먼 곳이지만, 유현은 단번에 보스의 위치를 알아냈다.
'언제 또 저기까지 가.'
유현은 머릿속으로 술식을 그렸다. 그의 엄청난 점프력은 여전히 그의 몸을 상승시켰다.
술식이 완성된 건, 중력이 그를 땅으로 잡아당기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좌표는 이 정도로 하고.'
유현이 보스가 있는 방향으로 팔을 뻗었다.
손가락으로 총을 쏘듯 조준한다.
기다란 중지와 검지의 끝에 맺히는 밀도 높은 마나.
마나는 서서히 구체가 되었고, 유현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빵."
총을 쏘듯 외운 구동어가 마법의 기폭제가 되었다.
뭉쳤던 마나가 폭발하며 푸른 빛 한줄기가 단숨에 허공을 갈랐다.
하늘에 떠돌던 구름을 헤집고, 경로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꿰뚫으며 날아가는 마나의 결정체.
어떤 장애물도 탄환의 속도를 늦추지 못했다.
마법, [스나이핑].
마나를 한 점으로 응축하여, 조준하고 터뜨린다.
사용자가 가진 마나의 수준에 따라 효과가 달라지는 마법으로, 코어의 모든 마나를 회복한 유현은 누구보다도 효과적으로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됐고."
허공에 길게 그려진 탄환의 푸른 빛 꽁무니가 서서히 잔향처럼 흩어지기 시작한다.
그때까지도 탄환은 질주했다.
바위도, 나무도, 허공을 날던 몬스터를 꿰뚫고도, 계속 나아간다.
"다음은..."
유현이 아래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넓은 공터에 가득 깔린 몬스터들. 그들은 허공으로 사라진 유현이 다시 내려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워어어어!"
"크아아아아아아!"
그 열렬한 환영에 유현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꺼져."
마법의 발현은 무엇이 되든 상관 없다.
단어로 된 구동어, 손가락을 활용한 트리거 등.
핵심은 두 가지다. 행동에 마나가 담겨있어야 하며, 그 행동이 자그마한 충격이라도 발생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꺼져- 순식간에 완성된 술식이 그 한마디와 함께 발현되었다.
그의 몸뚱이에서 빠져나간 대량의 마나가 순식간에 공터를 뒤덮었다.
그와 동시에 푸른 빛의 에너지에 형태가 생겼다. 손으로 잡을 수는 없지만,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또렷한 형태.
화르륵!
맹렬한 화마(火魔)가 숲을 집어삼켰다.
지상에서 치솟은 불길은 한순간이지만, 유현의 발아래까지 타올랐고 불은 빠르게 저편으로 번졌다.
찢어질 듯한 비명이 숲으로 울려 퍼졌다. 빽빽한 초록색 나무 사이로 붉은색이 뛰어다니는 게 언뜻언뜻 보였다.
백날 뛰어봐라. 몸에 붙은 불이 꺼지는지.
"아, 그러고 보니..."
채지수가 아직 숲에 있었을 텐데. 불길이 갑자기 피어오른 탓에 어쩌면 그녀도 휘말렸을지 모른다.
물론 그 역시 자업자득이겠지만.
"알아서 도망쳤겠지?"
유현은 숲을 훑었다.
그의 예상대로 인근의 높은 나무에서 채지수의 기운이 느껴졌다.
유현은 하강의 속도를 늦춰 천천히 그녀가 머문 나무 위로 착지했다.
"무사히 도망..."
"꺅! 깜짝이야!"
채지수가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유현의 코앞에는 어느샌가 날 선 단검이 겨냥되어 있었다.
"......"
"어머, 너였구나. 놀랐잖니~"
싱글생글 웃으며 검을 거두는 채지수. 단검을 다시 허리춤에 매달린 혁대의 칼집에 넣었다.
유현은 새삼스레 그녀의 실력을 깨달았다. 긴장하지 않으면, 반응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속도의 발검이었다.
"대단한데?"
채지수는 스카이 아일랜드에서 찍혔던 영상을 떠올렸다.
자연재해 수준의 퍼포먼스를 선 보인 유현. 그 힘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게 되니 자연스레 감탄이 튀어 나왔다.
"하지만 기대에는 못 미쳐."
"뭐? 대체 뭘 기대한 거야?"
유현이 어이가 없다는 투로 물었다. 채지수는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네가 가지고 있는 힘의 전부? 이건 영상에서 본 거랑 비슷하단 말이야~"
유현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당신이 몰고 온 적이 몇백이나 되는지 하나하나 헤아려보라고 하고 싶었지만, 어이가 없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흐음~ 그래도 대단한 건 맞아! 이 정도면 세계 정상급 헌터랑 한 번쯤은 붙어도..."
유현은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가 그녀와의 거리를 좁혔다.
그 갑작스러운 접근은 채지수의 입을 막았다. 신장의 차이로 채지수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내 힘의 전부가 궁금해?"
채지수의 눈빛이 번뜩였다.
"보여주는 거야?"
"왜 있을 거라고 확신하지?"
"직감?"
유현은 씩 웃으며 그녀의 머리통을 붙잡았다.
"밑에 가서 확인해 봐."
유현이 그녀의 머리를 밀었다.
강한 힘에 균형이 무너진 몸뚱이가 뒤로 넘어간다.
채지수는 밸런스를 되찾기 위해 본능적으로 발을 디뎠지만, 그곳은 허공이었다.
채지수가 추락했다.
"헛소리한 대가다."
그녀가 직감적으로 예상한 대로 이게 자신의 전부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걸 보고 싶다고 이 사단을 벌인 게 얄미워 사소한 복수라도 하지 않으면 참을 수 없을 거 같았다.
쿵!
1분도 되지 않는 시간. 하지만 추락에는 한참이라는 말이 붙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녀의 추락이 종료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아아아아아!!!!"
곧장 울려 퍼지는 쩌렁쩌렁한 고성. 유현은 그녀의 뒤를 따라 나뭇가지 아래로 뛰어내렸다.
떨어지는 그의 모습을 보며 채지수가 후다닥 자리를 피한다.
쿵.
착지한 직후, 유현은 몸을 비틀었다.
멀어졌던 채지수가 순식간에 가까워지며 내찌른 단검이 그의 옆구리를 스쳤다.
"호오. 피했어?"
"미친 짓 그만해."
"왜 떨어뜨려 그럼!"
"누가 먼저 잘못했지?"
"......미안."
채지수 역시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호기심을 참을 수는 없었다.
"그럼 이걸로 쌤쌤치자고."
"그래! 이 누님이 이번에는 보스까지 데려오마!"
보스라는 말에 유현이 저편으로 시선을 돌렸다.
"슬슬 죽을 때가 됐는데."
유현의 알쏭달쏭한 말에 채지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죽어?"
대답 대신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유현.
집중력을 한껏 끌어올리자 그의 정신이 아까 전 발사한 스나이핑 마법의 탄환으로 옮겨간다.
그의 예상대로 탄환은 보스와 가까워졌다.
"보스."
보스의 두개골을 관통한 탄환은 멈추지 않고 나아갔다.
유현은 거기서 눈을 떴다.
두 사람의 앞에는 바깥으로 나가는 게이트가 일렁거리고 있었다.
"......엥? 뭐, 뭐, 뭐야? 이게 왜..."
채지수가 심하게 말을 더듬었다.
게이트가 나타났다는 건 보스가 죽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자신들은 보스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유현의 힘을 어느 정도 알아냈으니, 지금부터는 보스 찾기에 집중하여 본격적으로 움직일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보스가 죽었다.
자연사? 아니면, 다른 몬스터랑 싸웠나?
"안 가?"
혼란스러운 그녀의 귓가에 유현의 목소리가 파고 들었다.
마치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게이트 앞에 선 유현.
그 표정 역시 머리가 복잡한 자신과 달리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너, 뭔가 알고 있구나."
"내가 죽였으니까."
채지수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보스를 죽였다고? 어느 사이에?
그 진위가 의심되는,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거짓이 아니다.
그 담담한 목소리에 담긴 사실이 거짓이라기에는 유현의 표정 어디에도 흔들림이 보이지 않았다.
"말도 안 돼."
그러면서도, 그녀의 입은 의심의 말을 뱉어냈다. 그게 이성의 판단이었다.
"대체 어떻게?"
"설명할 생각은 없는데."
말하자면 복잡하다.
"그냥 자연사한 걸로 하자."
"미, 믿을게! 설명해봐!"
유현은 귀찮다는 듯 혀를 차더니 입을 열었다.
"마나를 쐈어."
"뭐?"
"뭐."
"아, 아니. 그게 다야?"
고개를 끄덕이는 유현.
채지수의 입에서 탄성이 새어나왔다.
마나를 쏘는 게 가능하기는 하다. 하지만 특성이 아닌 만큼, 그 한계는 명확하다.
기껏해야 가까이에서 합 판 몇 개를 관통할 수 있는 정도의 기술.
그걸로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보스를 잡았다니.
'적어도 근처에는 없었는데.'
말이 되지 않았지만, 왜인지 유현이 그랬다고 하니 수긍이 갔다. 채지수의 얼굴에 활짝 미소가 번졌다.
"그거야! 그거라고! 내가 바라던 거! 너의 한계!"
어울리지 않게 방방 뛰며 좋아하는 채지수.
그녀의 기대를 충족시켰다는 사실에 유현이 인상이 구겨졌다.
"젠장."
까놓고 말해 그게 한계는 아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자기 마음대로 하기 좋아하는 여편네가 신나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 진짜 물건이구나! 이건 아무도 가지면 안 되겠는데?"
"먼저 간다."
유현은 괴상한 소리를 나불대는 채지수를 두고는 게이트를 나왔다.
입장하고 30분도 지나지 않아 다시 나타난 그를 보며, 현장이 얼어붙은 건 덤이었다.
우우우웅.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울리기 시작하는 진동.
유현은 경악한 일꾼들 사이를 지나며 휴대전화를 꺼냈다.
"누가 이렇게..."
게이트에 들어간 동안 송신되었던 메시지가 한 번에 그의 휴대전화에 도착했다.
그 내용을 확인한 유현은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