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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83화 (183/219)

183

'생각보다 잘 뛰네.'

뜀박질이 멈출 때까지 낙오하는 사람은 없었다.

과연 5대 길드라는 명성에 어울리는 길드원들이었다.

"적 등장이여!"

얼마나 지났을까.

첫 번째 전투가 시작되었다.

공격대의 앞을 막아선 몬스터는 용암 골렘. 전신이 바위로 되었으며, 바위에 난 균열 사이로 혈액처럼 용암이 흘렀다.

쿵! 쿵! 쿵!

용암 골렘 세 마리가 곧장 선두를 향해 달려들었다.

"짧게 막아여!"

박정환이 소리치자 선두에 서 있던 탱커 하나가 들고 있던 방패를 투척했다.

깡!

맹렬하게 날아간 방패가 골렘 한 놈의 머리를 두드렸다.

하지만 방패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깡!

깡!

머리를 맞고 튕긴 방패가 차례로 다른 골렘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쾅!

머리에 가해진 강한 충격에 바위로 이루어진 골렘들도 버티지 못하고 순간적으로 무릎을 꿇었다.

박정환이 곧장 소리쳤다.

"스턴 10초! 공격해여!"

그의 명령을 들은 공격대가 골렘을 향해 공격을 쏟아부었다.

근접 계열은 접근하여 균열 사이에 무기를 꽂아 넣었고, 원거리 계열의 헌터들도 지원 사격을 날렸다.

"5초! 기술명 외쳐도 돼여!"

박정환이 남은 시간을 소리쳤다.

길드원들이 반응한 건 그 뒤에 따른 말이었다.

"헥토파스칼 킥!"

"엑스칼리버어어어어!"

"슈퍼 매지컬 파이어 볼!!"

왜인지 이전보다 더 날카롭고 강력해진 공격들.

어처구니가 없는 광경이었지만,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

'이름을 외치면서 무의식적으로 더 많은 힘을 쏟아붓고 있어.'

이게 바로 이상향과의 일심동체라는 걸까.

유현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무언가에 몰입하면, 이런 일도 가능한 거구나.

쿵.

세 마리의 골렘은 스턴 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완전히 쓰러졌다.

사망이 확인되자 마석을 담당하는 짐꾼이 잽싸게 뛰어와 노련하게 마석을 회수했다.

'짐꾼 수준도 꽤 높은걸.'

A+ 등급의 게이트에는 일반적인 짐꾼이 들어올 수 없다.

예를 들어, F등급이나 E등급 같은 짐꾼들 말이다.

최소한 C등급 이상은 되어야 하는 게 업계의 일반적인 상식.

하지만 C등급이라는 중간 수준의 등급을 가진 이가 굳이 짐꾼을 선택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길드에서는 자체적으로 짐꾼을 고용하고 관리한다.'

그들은 길드에 소속된 짐꾼이지만, 동시에 해당 길드의 헌터로도 활동할 수 있다.

게이트 토벌 일정이 잡히면, 자신의 사냥 활동은 미루어야 하지만, 길드의 소속으로 누리는 이득이 많기에 거부하는 이는 없었다.

"움직여여!"

박정환이 다시 여정을 재개했다.

유현은 계속 후방 부대에 섞여 이동했지만, 그의 신경은 온통 벽에 쏠려 있었다.

거북하리만치 선명하게 느껴지는 몬스터의 기운.

워낙에 벽이 두꺼워 유현이 아니라면 감지할 수 없었다.

'역시 계속 쫓아오는군.'

숫자가 상당하고, 속도도 빠르다.

저 많은 개체가 움직이는데도 땅이 울리지 않는 걸 보면, 그리 큰 놈들은 아닌 것 같다.

"전방에 적!"

그때, 2차전이 시작됐다.

박정환에게 이 사실을 알려줄까 싶었던 유현은 우선 뒤로 물러났다. 전투가 시작되었으니, 지금 가서 말을 거는 건 방해였다.

"숫자는 많은데 종류는 똑같아여! 전처럼 갈게여!"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펼쳐진 전투. 애니동은 가볍게 승리했다.

다시 움직이는 공격대를 보며 유현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이건, 뭐. 내가 할 일이 거의 없군."

그 뒤로도 전투는 몇 번이고 이어졌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까지.

모두 깔끔하고 쉽게 처리했다.

"이거, 이거! 너무 쉽군여! 역시 우리 애니동 제군들, 대단합니다."

쉼 없이 달려온 애니동은 일곱 번째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이후 잠깐의 휴식을 취했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물을 마시거나 요기를 때우는 길드원들.

유현도 뒤에 앉아 목을 축였다.

환경이 환경인지라 뛰는 것만으로도 수분의 손실이 상당했다.

'슬슬 언질을 줘야겠는데.'

유현이 입가에 묻은 물기를 닦고 일어났다.

저쪽에 혼자 앉아 쉬고 있는 박정환이 보였다.

'참견인가.'

다른 길드의 일에 지나친 참견이 아닐까, 걱정이 들었다.

그래도 역시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에게 다가갔다.

"마스터."

박정환이 고개를 들었다.

"유현씨군여. 뒤에서 너무 할게 없었져?"

"뭐, 그건 그렇긴 한데 다른 게 아니고..."

유현은 아무래도 통로가 합쳐지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의 말에 박정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몬스터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 데여?"

"저는 느껴집니다. 아마 저 통로로 들어가면 도중에 몬스터가 쏟아질 거에요."

"흐음. 근거는여?"

"몬스터들이 쫓아오는 게 느껴졌습니다. 이건 분명 저 끝에 무언가 있다는 소리겠죠. 설마 멍청하게 막다른 길인데 계속 쫓아 올 리는 없고."

박정환이 눈썹을 구부리며 고민했다.

상대가 상대이니 쉽게 넘길 수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막 실습을 나온 학생의 감을 믿는 것도 영 이상했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면, 다시 길을 되돌아가서 다른 통로를 처음부터 공략해야 하는데여."

"위험을 피하고 싶다면, 그게 낫죠."

"투표를 해볼까여?"

"마음대로 하세요."

유현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믿든 말든 결국 선택은 그들의 몫. 자신은 이미 위험을 감지한 자로서 책임을 다했다.

"자! 여러분 주목!"

박정환이 길드원들을 향해 물었다. 유현의 의견을 알려준 뒤, 그게 사실이라고 가정했을 때 되돌아가서 통로를 처음부터 다시 격파할지 아니면, 이대로 나아갈지에 관한 질문이었다.

"에이, 이제 실습 나온 앤데. 뭘 좀 착각한 거 아니에요?"

"위험한 부분이 있는 건 분명해요. 선발대도 돌아오지 않았으니까요."

"선발대랑 우리 숫자 차이를 생각해 봐."

"반대요. 언제 또 처음부터 다시 돌파하고 있어요?"

문제를 제기한 게 유현이라 그런지 찬반이 팽팽하게 이어졌다.

하지만 최종적인 결론은 반대였다. 박정환이 유현을 돌아보자, 유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자, 그럼 다시 움직일게여!"

박정환이 다시 공격대를 일으켰다. 재정비로 체력을 회복한 공격대는 다들 고양감에 들떠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파악하지 못한 구간이에여. 선발대가 돌아오지 않아 보고받지 못 했어여."

쉬고 있던 통로에서 다시 다른 곳으로 이어지는 더 높고 넓은 통로. 지금껏 지나왔던 붉은 바위로 이루어진 통로와는 사뭇 달랐다.

'불길한 색이군.'

붉은색 위로 검은색이 섞였다.

척 보기에도 무척이나 불길한 모양새였다.

"위축되지 말고 전략적으로 가봐여! 긴장은 풀지 말고여!"

한 차례 경고를 전했지만, 그들은 결국 전진을 선택했다.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은 아니었다. 여러 손익이 얽혀 있으니, 고작 자신 하나의 반대로 그걸 이겨낼 수 없는 게 당연했다.

"여긴 엄청 으스스하네."

"왜 춥지?"

"아까까지는 더웠는데."

곳곳에서 길드원들이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줄곧 걸어왔던 통로는 제법 기온이 높았지만, 새로운 통로는 그렇지 않았다.

단순히 덥지 않은 걸 떠나서 춥기까지 했다. 오죽하면, 입김까지 나왔다.

"......"

선두를 걸어가던 박정환은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저 어둠 너머에 무언가가 있는 듯한 느낌이 그의 온몸을 찔러왔다.

철퍽.

바로 그 순간.

무언가가 박정환의 발치에 치였다. 그가 걸음을 멈추고 손전등을 아래로 내렸다.

"...!"

밝은 빛줄기 아래로 드러난 것은 누군가의 잘린 팔이었다.

옷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선발 조사대 중 한 사람 같았다.

"크르르..."

어둠 속에서 낮은 으르렁거림이 들려왔다. 상당히 가까운 거리. 하지만 누구도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다, 다들 조..."

조심하라고 소리친 그 순간.

어둠 속에서 살벌한 안광이 번뜩였다.

챙!

그와 동시에 번개가 튀었다.

박정환이 부릅 뜬 눈으로 전방을 응시했다.

"어, 어떻게..."

최후방에 있던 유현이 어느새 자신의 앞까지 튀어나와 적의 공격을 막아냈다.

"이놈은 내가 맡을게요. 나머지만 상대해요."

"예? 그게 무슨 말이에여?"

나머지라니?

지금 보이는 적은 하나 뿐이었다.

"크르르!"

손전등 아래로 반짝이는 날카롭고 기다란 손톱.

냉혹한 한기처럼 새하얀 털을 가졌고, 두 다리로 땅을 딛고 섰다.

화이트 웨어 울프.

인간형 늑대 몬스터라는 카테고리 내에서 상위급에 속하는 존재였다.

"우리도 도울게여!"

박정환이 공격대에 명령을 내리려던 그때.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 뭐야?"

"뭔가 온다!"

"다들 긴장해!"

웨어울프의 등 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어둠 속에서 진동이 다가오고 있었다.

-크아아!

멀리서 들려오는 포효에 공격대가 자세를 다 잡았다.

박정환은 그제야 유현이 했던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대체 어떻게 저걸 미리 알고...'

자신을 비롯한 공격대의 누구도 파악하지 못했다.

그걸 고작 실습 나온 아카데미 학생이 알아내다니.

실로 경악스러울 정도로 날카로운 감각이었다.

"다들 준비해여! 웨어울프는 유현씨한테 맡기고여!"

박정환이 스크롤을 찢었다.

어두운 통로의 허공으로 밝은 빛무리가 떠올라 내부를 밝혔다.

저 멀리서 달려오는 몬스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파이어 랩터."

양옆 갈림길에 있다고 보고 되었던 몬스터, 파이어 랩터. 몸뚱이가 작지만, 불을 다룰 수 있고 그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으며, 이빨도 무기처럼 사용할 수 있어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진짜였어."

유현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정확히 어디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통로가 하나로 합쳐지는 부분이 존재했다.

그게 아니라면 파이어 랩터가 이곳에 있을 리 없을 테니까.

"원형으로 뭉쳐여! 랩터니까 일당백으로 가야해여!"

순조롭게 대응하는 걸 확인한 유현은 다시 눈앞의 적에게 시선을 돌렸다.

헥톨의 검으로 막아낸 웨어울프의 발톱. 검을 살짝 비틀어서 빼내지 못하게 만들었다.

"크르르르!"

움직임이 제한된 웨어울프가 손 대신 발을 뻗었다.

유현은 복부를 향해 날아오던 발차기를 가뿐하게 피하고는, 검을 쥐고 있던 손을 놓았다.

"크아아!"

구속이 풀리자 곧장 달려드는 웨어울프.

땅으로 떨어지던 단검이 위로 솟구치며 웨어울프의 턱을 스쳤다.

"아깝네."

허공을 비행하던 단검이 다시 유현의 손으로 들어왔다.

헥톨의 검. 특별한 능력은 없지만, 마나의 감응력이 뛰어나 마나만 있다면 이런 식의 활용도 가능했다.

"크르르..."

그가 범상치 않은 상대라는 걸 깨달았는지 웨어울프가 그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유현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별 시답잖은 놈도 싸워보겠다고..."

그 용기는 가상하나, 애석하게도 꼴같잖았다.

힘을 회복하기 전이라면 몰라도 지금 유현에게 눈앞의 존재는 손짓 한 번에 죽일 수 있는 존재였다.

"크아아!"

살기를 흘렸건만 놈은 달아나기는커녕 유현을 향해 쇄도했다.

"쯧."

유현이 허공으로 검을 던졌다. 그리고 검지를 까딱였다.

쐐애액!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던 검이 공간을 양단하며 웨어울프를 향해 쇄도했다.

푸확!

단숨에 놈의 모을 꿰뚫는 검.

유현은 손가락을 멈추지 않았다.

검은 그의 손가락에 맞춰 춤을 추듯 웨어울프의 몸을 헤집었다.

어찌나 빠른지, 이미 숨통이 끊어진 웨어울프는 쓰러지지도 못한 채 공격에 시달려야 했다.

"이미 죽었군."

유현이 검을 다시 손으로 불러들였다.

뒤쪽에서는 전투가 한창이었다.

마치 스파르타의 전사들처럼 방패에 둘러싸인 공격대 전원.

다수인 적의 공격을 피하는 최선의 대형이었다.

"물리 공격해여!"

방패 사이로 화살이 튀어나와 적들의 몸에 처박혔다. 하지만 절반이 넘게 빗나갔다. 방패 탓에 시야가 좁아졌고, 적들이 워낙에 날렵한 탓이었다.

"끄아아악!"

박정환이 홱 고개를 돌렸다.

탱커 하나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왜 그래여!?"

"틈새로 불꽃이 들어왔습니다!"

적의 크기가 작은 탓인지 방패의 좁은 틈새 사이로도 공격이 가해졌다.

"2차 방어진이랑 교체해여!"

명령을 내린 박정환이 입술을 잘근거렸다.

전황이 좋지 않다.

이대로 가면 설령 승리한다고 해도 피해가 크다. 토벌의 진행이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

'하필이면 저런 놈들이라...'

차라리 골렘이었다면 훨씬 쉬웠을 터. 랩터는 신경을 긁기로 유명한 놈들이었다. 하나하나의 공격력은 별 볼일 없지만, 모이면 그것만큼 까다로운 게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유현씨 말을 들었을 텐데.'

설마 랩터가 나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와서 후회한들 무슨소용이랴.

최선을 다해 주어진 상황을 돌파하는 수밖에 없다.

"다시 온다!"

"버텨여! 버티고 난전으로 가여!"

난전. 지금으로서 승리하려면 서로 뒤엉켜 싸우는 방법이 최선이었다. 피해는 조금 생길지 몰라도 앞으로 나아갈 인원 정도는 남길 수 있으리라.

쐐애애액!

바로 그때.

파공음과 함께 파육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쏟아지지 않는 공격과 느닷없는 소리에 전사들이 하나둘 방패를 내렸다.

박정환도 바깥으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

짧은 검이 허공을 날아다니며 랩터들의 목을 꿰뚫었다.

일격필살의 공격처럼, 랩터들은 그대로 쓰러졌다.

그 상태로 1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살아남은 랩터는 없었다.

"와..."

"대박."

사람들 사이로 옅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모두의 시선이 검을 들고 태연한 얼굴로 다가오는 유현에게 쏠렸다.

"좀 답답해서 끼어들었는데 괜찮죠?"

아카데미의 실습생이 하기에는 부적절한 언행.

하지만 누구도 그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그가 보여준 무력은 말 그대로 탄산음료처럼 시원한 맛이 있었다.

"그럼 계속 갑시다."

유현이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박정환은 홀린 듯 그 뒤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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