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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82화 (182/219)

182

아카데미의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기까지 앞으로 며칠.

아직 방학 기간이었지만, 학생들은 미리 기숙사로 나와 짐을 정리했다.

"끙차."

유현 역시 집에서 며칠을 보내고 기숙사로 거처를 옮겼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단출한 내부. 다른 이들과 달리 정리할 짐도 없었다.

"인마, 좀 움직여봐."

그런 그가 미리 기숙사에 나온 이유. 바로 거실의 중앙에서 유현의 말에 반항하고 있는 미르 덕분이었다.

"크흐흐흥."

몇 달 사이에 제법 몸집이 커진 미르는 바닥에 엉덩이를 붙인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너무 무거워져서 억지로 옮기는 것도 어려웠다.

"더럽게 무겁네."

고작 몇 달이 지났을 뿐이다.

인간으로 치면 신생아나 다름없는 기간인데, 몸집 크기가 처음 봤을 때보다 두 배는 커졌다.

"좀 있으면 타고 다녀도 되겠다, 야. 좀 일어나 보래도."

"크흐응."

끝까지 말을 듣지 않는 미르.

미르를 방으로 옮기려던 유현은 한숨을 쉬며 그 옆에 벌렁 드러누웠다.

"그래. 그냥 네 알아서 해. 대신 똥오줌은 잘 가려라."

그가 포기하자 미르가 수면을 취하려는 듯 엎드렸다.

이내 두 눈이 스르륵 감겼다.

미르가 잠든 사이.

유현은 다시 몸을 일으켜 미르의 전체적인 형태를 살폈다.

제법 커진 날개와 몸뚱이.

머리의 뿔도 꽤 자랐고, 똘망똘망하던 눈동자도 날카롭게 변했다.

"성장이 빠르단 말이지."

전장에서 목도했던 성체 신룡의 크기를 생각하면, 그리 이상한 속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설마 이렇게 빠르게 자랄 줄은 몰랐는데.

"뭐, 빨리 크면 나야 좋지."

벌써부터 신룡의 몸에서 신성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 신성력이 있다면, 마나로 할 수 없는 것들을 할 수 있다.

신성 회복이라든가, 생명 탐지라든가.

"여러모로 쓸 곳이 많아."

유현은 미르에게서 시선을 떼고, 베란다 너머로 눈을 돌렸다.

곳곳에 보이는 아카데미 상급반의 학생들. 왜인지 하나같이 커플뿐이었다.

"짜식들. 연애하러 학교 다니나."

문득 한서희의 얼굴이 그의 머릿속에 그려졌다.

어울리지 않게 볼을 붉히며 드러내던 연심. 여전히 당황스러웠다.

"내가 왜 좋다는 건지 모르겠네."

뭔가를 특별히 해준 적도 없는데, 어디가 좋다는 걸까.

여전히 이해되지 않았다.

"참 새삼스럽구만. 고백을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날이 올 줄이야."

고백을 받아본 적은 몇 번 있다.

다만 그 장소가 모두 판대륙이었다. 싸우기 바쁜 전쟁터에서는 이런 사사로운 감정에 사로잡혀 있을 틈이 없었다.

"본인은 그냥 좋다고 말한 거라는데…. 그냥 평소처럼 대해도 상관없겠지."

그녀의 고백에 유현은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의 눈에 한서희는 단순한 친구이며, 이끌어야 할 어린 존재일 뿐이었다.

"이 문제는 됐고."

진짜 문제는 그녀의 삼촌에게 있었다.

지난번, 한상용은 5대 길드를 한 번씩 돌아가며 실습하겠다는 제안을 유일하게 거절했다.

"왜 반대하는 걸까."

그 자리에서 이유를 물어봤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반대한다고 딱히 이득 될 게 없을 텐데."

소나무 길드는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상위 전력의 상당수가 구조대로 파견되었다가 사망했고, 그들의 자리는 아직 공석이었다.

그 정도 되는 전력을 쉽게 채울 만큼 인재가 넘쳐나지는 않았다.

'빈자리라도 채워야 할 거 아니야.'

당장 5대 길드라는 명성을 지키기도 어렵게 됐는데 왜 그런 고집을 부린 걸까.

결국 실습은 소나무 길드를 제외한 다른 4개 길드를 번갈아가며 진행하기로 했다.

"쩝.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

걱정은 되지만, 결국에는 타인의 일이었다.

유현은 한상용을 향한 생각을 접어두고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미리 자료를 좀 봐야겠군.'

길드 실습은 학기가 시작되는 당일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이미 일정이 잡혀 있었다. 그 첫 번째는 바로, 오철용이 소속된 애니동.

"어디 보자."

유현은 강찬성에게 조사를 지시했던 길드들의 자료를 살폈다.

'애니동. 창단자는 박정환.'

학창 시절부터 돈을 버는 능력이 남달랐으며, 그 자금을 토대로 직접 길드를 창단.

애니동은 그 뒤로 엄청난 성장세로 5대 길드라는 자리에 오르게 된다. 요약하면, 머리가 뛰어난 사람이다.

"처음부터 난감한 사람이 걸렸네."

유현은 자료 파일을 다시 집어넣었다.

"뭐, 나쁜짓 하려는 것도 아니고, 서로 이득이니까 상관없겠지."

그가 정말 순수한 목적으로 길드 실습에 참여하는 건 아니었다.

애초에 그럴 생각이었다면, 강찬성의 길드로 갔을 터.

진짜 목적은 게이트에 있었다.

A급 게이트, 나아가 S급 게이트도 가능하면 좋고.

일반 길드에 있어서는 들어가기 힘든 게이트지만, 5대 길드라면 얼마든 게이트의 토벌권을 손에 넣을 수 있다.

'덤으로 대형 길드는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봐야지.'

언젠가 직접 길드를 운영하게 될 때를 대비하여 경험을 쌓기 위함이었다.

그들의 운영 방식이나, 준비 과정, 토벌 방식 등.

예전에 의뢰로 들어갔던 게이트에서 이미 비슷한 경험을 해봤지만, 대형 길드는 방식이 다를지도 모른다.

'잘 봐둬야겠어.'

그게 바로 유현의 본 목적.

상대에게는 자신이라는 전력을 제공하고, 자신은 쾌락과 정보를 얻는 일종의 등가교환이나 다름없었다.

***

개학 당일.

학생들은 개학식을 위해 학교에 잠시 모였다가, 실습을 신청한 길드의 본부로 향했다.

유현은 빌딩의 꼭대기에 선 채 대학가를 내려다보았다.

"대학교라."

현재 그의 위치는 홍대입구.

애니동의 길드 본부가 위치한 지역이었다.

"청춘이야, 청춘."

유현은 건너편 빌딩으로 뛰어내리며 조금씩 고도를 낮춰 지상에 착지했다.

"여기군."

얼마 걷지 않아 도착한 커다란 빌딩. 입구부터 범상치 않은 장소였다.

"......코스프레 축제?"

입구 앞에 그런 현수막이 세워져 있었다.

그 주변을 배회하는 일반적이지 않은 차림의 사람들.

누군가는 철 갑옷을, 누군가는 마법사의 복장을 입었다.

순간 유현은 자신이 판대륙에 다시 돌아온 게 아닌가 착각이 들었다.

'엄청나군.'

코스프레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기에, 유현은 다시 현실감을 되찾고 건물 안으로 움직였다.

애니동의 위치는 8층.

총 12개 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에서 가장 상층부인 4개의 층을 사용하고 있었다.

'여기도 많군.'

건물 내부에도 코스프레한 사람들이 많았다.

유현은 잠시 그들을 구경하다가 도착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가 8층에 도착하고 문이 열렸다.

"......"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유현은 엘리베이터의 층수를 확인했다.

8층. 정확히 도착했다.

그런데 대체 왜….

"어이어이! 퀄리티 뭐냐고오~!"

"네놈의 의상도 장난 아니라굿!"

개성넘치는 옷차림과 말투.

유현은 한 차례 심호흡하고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외부인의 방문이었지만, 누구도 그의 등장에 신경쓰지 않았다.

단지 다른 이들의 옷차림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을 뿐.

'확실히 퀄리티는 좋군.'

애니동 역시 코스프레 삼매경이었다. 게다가 그 수준이 아래에서 보던 이들 보다 한 단계 높다.

다들 돈 좀 만지는 헌터라서 그런가.

유현은 사람들을 구경하며 로비를 지나 애니동의 본부 안으로 들어갔다.

본부 내부 역시 소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바깥보다는 덜 했다.

유현은 주변의 모습이 익숙하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앉아 있는 리셉션의 직원에게 다가갔다.

"길드 실습 때문에 왔는데요."

유현이 얼굴을 가리기 위해 쓰고 있던 안경을 벗었다.

그가 유현이라는 걸 알아차린 직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직원을 따라 길드원들 사이를 지나 길드 마스터의 방으로 향했다.

"바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유현이 문을 열려던 그때.

안쪽에서 누군가 나왔다.

"오, 빨리 왔네여."

박정환이었다.

"들어와여, 들어와."

유현은 대표실로 들어갔다.

대표실의 풍경이 곧장 그의 시선을 빼앗았다.

벽에 잔뜩 걸린 포스터와 태피스트리. 천장 역시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온갖 그림이 붙여져 있었다.

"......"

유현은 굳이 그것에 관해 캐묻지 않기로 했다.

박정환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났기 때문이다.

만약 하나라도 관련된 걸 물어보면, 꽤 오랜 시간을 설명에 시달리리라.

"오늘 토벌 아닙니까?"

의자에 앉자마자 본론을 꺼냈다.

"맞져."

"근데 왜 다 놀고 있어요?"

"놀다녀? 이건 일종의 테라피에요. 토벌 전에 긴장을 풀어주는거져."

그렇다기에는 오히려 사람들을 더 흥분하게 만든 것 같은데.

"딱 유현씨 올때까지만 하려고했어여. 오늘이 아니메이트 정기 코스프레 축제라 겸사겸사하기도 했고."

박정환이 책상에 붙은 스위치를 눌렀다. 문밖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코스프레 종료종이에여. 다들 파블로프의 개처럼 저 소리만 들으면 알아서 토벌 준비를 시작하져."

"이제 시작하면 한참 걸리는 거 아니에요?"

"하... 우리 애니동을 뭘로 보고? 우리가 어디 길에서 굴러다니는 중소 길드인줄 알아여?"

박정환이 의자에서 내려와 외투를 입었다. 작은 키와 펑퍼짐한 몸을 커버하는 적절한 사이즈의 코트였다.

"바로 가져."

"그렇게 입고요?"

"이게 그냥 코트로 보여여? 한 번 때려봐여."

퍽!

유현은 망설임 없이 주먹을 뻗었다. 박정환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너, 너, 너무 빨리 때렸잖아여. 때릴 준비 하고 있었어여?"

"꽤 쌔게 떄린 것 같은데 멀쩡하네요."

"단순한 코트가 아니에여. 웬만한 갑옷보다 단단하져."

유현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옷의 내구도는 차치하고, 그 주먹에 맞고도 꼼짝도 않는 걸 보면 그 역시 상당한 실력자였다.

'괜히 길드 마스터가 아니군.'

두 사람은 함께 사무실을 나왔다. 사무실 앞 복도에는 어느새 길드원들이 오와열을 맞춘 채 늘어서 있었다.

조금 전의 헤픈 모습은 어디 가고 모두 헌터의 복장을 한 채 진지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 갭에 유현은 당혹감마저 느꼈다.

"다들 바로 출전하져."

박정환이 출발을 명령하자, 잘 훈련된 군인들처럼 깔끔한 동작으로 단번에 몸을 돌렸다.

이내 앞으로 나아가는 선두.

"따라와여."

박정환은 행렬의 사이를 가로질렀다. 유현 역시 그 뒤를 따라갔다.

"오늘 게이트는 A+급 게이트에여. 진짜 게이트에 처음 들어가보는 사람한테는 무리일 텐데 어쩔 수 없져. 이번이 유현씨 써보는 마지막 기회인데."

"마지막이 아닐 수도 있죠."

"우리 길드 들어올 거에여?"

유현은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의 관심은 길드보다 게이트에 향했다.

'A+ 게이트.'

현재 대한민국에 등장한 S등급 게이트가 없으니, 사실상 가장 높은 수준의 게이트라고 볼 수 있다.

서서히 빨라지는 유현의 심박.

드디어 기나긴 수련으로 되찾은 힘을 시험해 볼 때가 왔다.

"너무 긴장하지 마여."

그의 표정을 오해했는지 박정환이 유현을 토닥였다.

"긴장은요."

긴장은커녕, 당장이라도 게이트에 뛰어 들어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

게이트는 깊은 산 속에 있었다.

혹여나 게이트의 이상 현상이 발생할 걸 우려하여 경비를 서던 길드원들이 그들을 맞이했다.

"아무 이상 없습니다."

"수고했어여."

금일 레이드에 동원된 길드원은 50여명. 정예로만 이루어진 것 치고는 상당한 숫자였다.

박정환은 그들을 직군별로 구분하고 전열을 재분배했다.

탱커 라인은 최전방에 근접 계열은 전후 이동이 비교적 자유로운 중간, 원거리 라인은 후방이었다.

"내부 탐사대는 나왔나여?"

입구를 지키고 있던 길드원이 착잡한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초반부는 파악하는 데 성공했지만, 중반부부터는 실패했습니다."

"초반 내용 알려주세여."

유현은 가까이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내용을 전달받은 박정환이 그 내용에 맞게 전열을 가다듬었다.

'지난번 봤던 길드랑 큰 차이는 없네.'

게이트의 입장을 앞두고, 박정환이 길드원들의 앞에 섰다.

"이번 게이트는 많이 위험해여. 다들 긴장하세여. 지휘는 제가 맡고여, 전략은 기본 전략으로 갈게여. 그리고 유현씨."

박정환이 앞으로 나오라며 손짓했다.

그가 모두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자 복도에서와는 달리 여기저기서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오늘은 유현씨가 실습으로 함께할 거에여. 다들 실습으로 A+급 게이트 들어가는 게 오바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유현씨니까 예외로 하자구여. 인정?"

"인정합니다!"

길드원들이 즉각 호응했다.

그만큼 유현을 향한 신뢰는 대단했다.

"자, 그럼 유현 씨는 일단 후방에서 원거리랑 같이 있어여."

"앞장서면 안 됩니까?"

"그건 안 돼여. 여긴 A+ 급 게이트에여. 아무리 유현씨라도 혼자 나가는 건 위험해여."

유현은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위험한 게이트라니까 나설 기회는 언제든 있겠지.

"자, 그럼 들어갈게여!"

***

게이트 내부는 화산지대였다.

암석이 사방을 꽉 막았고, 천장과 벽을 타고 붉은빛 용암이 흘러내렸다.

"따라와여!"

박정환이 당당하게 앞장섰다.

길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었는데, 이미 정답을 알고 있는지 망설임 없이 중앙의 통로로 움직였다.

"아까도 말했지만, 초반부에는 전투 없이 돌파할 수 있는 구간이 있어여! 뛰어서 통과할게여!"

공격대의 속도가 서서히 빨라졌다. 이내 전력 질주하기 시작하는 공격대.

하지만 유현은 그 뒤를 쫓아가지 않았다.

'뭔가 석연찮은데.'

유현이 세 개의 갈림길 앞에 섰다. 박정환의 말대로 왼쪽과 오른쪽 길에서는 각각 몬스터의 기운이 느껴졌다.

'문제는 멀어지고 있다는 것.'

몬스터의 기운이 서서히 멀어진다. 마치 저 앞을 뛰어가는 공격대를 쫓아가는 것처럼.

'설마 중간에 갈림길이 합쳐지는 지점이 있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몬스터들이 있던 곳에서 멀어질 이유가 없다.

'확실해.'

초반부를 지난 어딘가에, 갈림길이 하나로 합쳐지는 지점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단독 행동을 할 수는 없고."

유현은 우선 앞서간 이들을 뒤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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