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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78화 (178/219)

178

수평선 너머로 태양이 떠오르며, 길었던 밤이 가고 아침이 찾아왔다.

지난밤은 고작 몇 시간이었지만, 그 몇 시간 사이에 많은 게 바뀌었다.

인류 기술의 집약체라고 불리던 스카이 아일랜드가 무너졌고, 수많은 사상자가 생겼다.

각 국가는 수습을 위해 총력을 기울였으나 사상자의 숫자는 좀처럼 파악되지 않았다.

무너진 건물 사이에서는 끊임없이 시체가 나왔으며, 짐승에게 먹혀 사라진 이들도 존재했다.

하나 확실한 건, 인류 역사에 기록된 재해와 테러로 발생한 사상자의 숫자를 아득히 뛰어넘을 것이라는 사실.

수색은 절반도 채 진행되지 않았지만, 이미 집계된 숫자만으로도 그간의 기록을 상회했다.

-통탄스럽습니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각 국가의 원수들은 TV에 모습을 드러냈다.

짙은 슬픔이 드리운 얼굴로 국민과의 담화를 이어간다.

누군가는 사과를, 누군가는 복수의 의지를, 누군가는 앞으로의 해결책을.

국가에 따라 담화의 내용은 제각각이었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반응은 엇비슷했다.

이제 와 사과하면 뭐가 달라지나.

그깟 테러 단체에 겁먹고 숨어 있는 꼴이라니.

모두가 분노했고, 그 화살은 국가와 헌터들에게 향했다.

왜 명령을 거부하고 나서지 않았는지, 정말 그게 최선이었는지 등.

프랑스나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국가들부터, 미국까지.

동아시아의 중국과 일본도 비난을 피할 수는 없었다.

세계적인 분노를 더 거세게 만든 데는, 쿠로가네의 인터뷰가 한몫했다.

-당신들이 진정 지켜야 할 게 무엇인지 안다면 당장 사람을 보내세요! 아직도 섬에는 사람들이 남아있단 말입니다! 유현님 혼자서 그 많은 사람을 구할 수는 없다고요!

구출된 직후 진행되었던 인터뷰.

그 인터뷰 영상은 테러가 끝난 이후 더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나는 돕고 싶었지만, 능력을 사용할 수 없어 돕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당신들은...!

울분에 찬 그의 외침은 전 세계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갔다.

분노했던 사람들은 더욱 격앙되어 국가를 비난했다.

그 탓일까. 단순히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에서도 시위가 일어났다.

"......"

유현은 침대에 가만히 앉아 TV 화면을 바라보았다.

한 일본인이 관청을 향해 계란을 투척하고 있었다.

"저런 인터뷰는 언제 했대."

룬석의 힘이 다하며 쓰러진 직후. 유현은 이니티움에 의해 고국으로 옮겨졌다.

그 뒤, 다시 눈을 뜬 곳은 병원의 입원실이었다.

"몇 시간이나 지난 거야."

한참을 누워있다가 막 일어나서 TV를 켠 상황. 유현은 휴대전화를 찾아 병실을 두리번거렸다.

일단 이곳이 한국이고, 세계적으로 난리가 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쿠로가네의 인터뷰는 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들은 알지 못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이니티움은 어디에 있는지, 바깥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등.

드르륵.

한창 휴대폰을 찾던 그때, 병실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일어났군?"

낯이 익은 노인. 대한민국 헌터 협회의 수장인 협회장 최칠기였다.

그 손에는 과일 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

"표정에 뭐라고 말하는지 쓰여있군. 한 여자가 집에 찾아왔네. 그녀가 자네를 내게 넘겨주었고."

직접 병원에 데려가거나 간호하는 것 보다는 그 편이 나을 거라고 생각한 건가. 나쁜 판단은 아니었다.

"그렇군요."

"물어볼 게 많지만, 우선은 안정을 취하게."

"저는 듣고 싶은 게 많은데요."

"...뭐가 궁금한가?"

최칠기가 구석에 놓여 있던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시간 많습니까?"

"뉴스를 보고 있었으니 알겠지."

"바쁘면 휴대전화만 주고 가셔도 됩니다."

"괜찮네."

뭐부터 물어봐야 할까.

먼저 생각난 건 역시 시간이었다.

"며칠이나 지났습니까?"

"며칠이라니. 몇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어."

"......"

이렇게 빨리 깨어날 리가 없는데. 유현은 그제야 자신의 몸 상태를 체크했다. 옅게 느껴지는 마법의 기운. 이니티움이 무언가 수를 쓴 것 같았다.

'활기 마법인가.'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빨리 깨어날 수는 없었겠지.

"바깥 상황은 어떻습니까?"

"날씨가 맑군. 구름이 좀 있지만, 금방 걷힐 것 같아."

"제가 물어본 건, 그 바깥이 아닙니다만."

"......농담 좀 해봤네. 소나무의 마스터가 구속됐어. 그를 비롯하여 포탈 점거에 참여한 모두가 붙잡혔지."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사안이 중대하네. 그 의도는 좋지만, 대통령이 직접 내린 명령을 어겼으니 벌을 피할 수 없을 걸세..."

유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

말을 잇는 최칠기의 모습이 왜인지 어색하게 느껴졌다.

마치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뭔가 있습니까?"

"뭘?"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제게는 보입니다. 뭔가 숨기고 있는 것 같은데요."

"......"

최칠기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자네의 친구들도 붙잡혔네."

"친구요?"

"S반의 아이들 말이야. 그 아이들도 포탈 앞을 지키고 있었다더군."

"......"

이걸 좋아해야 할까. 슬퍼해야 할까. 아이들이 도와주려고 한 마음은 기특하지만, 벌을 받는 건 원치 않았다.

"아이들은 어떤 벌을 받을 것 같습니까?"

"국가 위기 상황에서 사령관의 명령을 위반하는 행위는 중범죄로 분류되니 최소한 아카데미에 계속 재학할 수는 없겠지."

"그말은..."

최칠기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헌터가 될 수 없다는 말이야."

"방법이 없습니까?"

"법에는 예외를 둘 수 없다는 것 알잖나."

유현이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누군가를 돕기 위해 나선 이들이, 도리어 피해를 보게 된 상황.

그게 친구들의 문제인 만큼, 그냥 지나갈 수는 없었다.

"찾아보면 있을 겁니다."

"자네의 마음은 잘 알겠지만..."

그때, 유현의 귓가에 TV의 소리가 스몄다. 대통령의 담화 방송이었다.

"......"

그의 머릿속에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

국민들과의 담화 방송이 한창 진행 중인 청와대의 내부.

원활한 방송을 위해 숨죽이듯 조용하던 공간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어어! 막아!"

"끄아악!"

수많은 경호원을 뚫고, 유현은 단숨에 방송이 이루어지던 대통령의 집무실에 입성했다.

"피해 복구에 최선을…."

스크립트를 보며 말을 잇던 대통령의 시선이 집무실에 막 들어온 유현에게 꽂혔다.

병원에서 뛰쳐나왔다고 주장하듯 환자복을 입고 있는 모습.

대통령은 멍하니 눈을 깜빡이다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 여긴 어떻게..."

유형는 성큼성큼 걸어 대통령의 앞으로 향했다.

경호원들이 그 앞을 막아서려고 했지만, 대통령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그는 자국의 국민은 물론 타국의 사람들까지 구한 영웅.

함부로 대하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었다.

"한 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부탁이라면 나중에라도..."

"단순히 한 사람의 동의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유현은 카메라를 흘끗였다.

카메라를 담당한 감독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촬영을 중단하지 않고 이어갔다.

"불법으로 관제소를 점거했던 이들에게 선처를 베풀어주십쇼."

"그건 여기서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데..."

"저는 스카이 아일랜드에서 많은 사람을 구했습니다. 자국민은 물론이고, 다른 국가의 사람들도요. 그 과정에서 많은 적을 죽였죠. 특수하게 개량된 짐승. 그리고 케이디라는 조직의 핵심이 되는 간부들까지."

대통령의 눈이 크게 뜨였다.

간부들과 관련해서는 명확한 소식이 없던 상황.

그들의 시체가 남아있던 자리에 거대한 불덩이가 떨어지고 벼락이 떨어지던 영상만이 널리 퍼져 있었다.

그 영상을 접한 많은 이들이 궁금해했다.

과연 케이디를 궤멸에 가깝게 무너뜨리고, 이 테러의 종지부를 찍은 이가 누구인지.

누군가는 유현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다른 사람임을 주장했다.

그런데 지금, 세계 최초로 그 진실이 밝혀진 것이다.

"그, 그게 정말인가?"

"예."

곳곳에서 탄성이 터졌다.

인터넷에 올라온 서부 구역의 전투 영상.

비록 먼 거리였지만, 그 싸움의 규모가 워낙에 큰 탓에 멀리서도 확실히 찍혔다.

거리가 있음에도 느껴지던 파괴적인 힘.

그 주인이 유현이었다니.

다들 그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

대통령은 그의 손을 덥썩 붙잡았다.

"자네가 세계를 구했어."

"예?"

"만약 그들의 사망이 보고되지 않았다면, 지금도 세계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겠지. 이런 담화는 꿈도 못 꾸었을 거야. 정말 고맙네."

꾸벅 고개를 숙이는 대통령.

뜬금없는 언사에 유현은 뒤통수만 긁적였다.

"자네가 말한 부탁. 확신은 할 수 없지만, 긍정적으로 논의 해보겠네."

"감사합니다."

유현은 카메라 밖으로 걸어 나왔다. 대통령은 잠시 그의 등을 바라보다가 다시 자리에 앉아 담화를 재개했다.

"......"

이걸로 끝난 걸까?

유현은 멍청히 두 눈을 깜빡였다.

이렇게 쉽게 이야기가 될 줄은 몰랐다.

애초에 당장 달려온 것도, 이야기가 풀리지 않을 때를 대비하여 국민들의 감정에 호소하기 위함이었다.

담화는 전국에 생중계되고 있을 테니, 효과는 확실했을 것이다.

'대사도 다 생각해 뒀었는데.'

생각한 것들을 말할 틈도 없이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다.

간부들을 죽인 게 자신이라는 사실이 아직 세상에 보도되지 않았을 줄은 몰랐는데.

'뭐, 그래도 그 덕분에 잘됐네.'

유현은 조용히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다른 사람들이 그를 연신 돌아보았으나, 다가오는 이는 없었다.

'다시 병원으로 가야겠군.'

돌아가기 위해 복도를 걷던 유현은 순간 느껴진 현기증에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가까스로 벽을 짚어 중심을 잡는다.

"......"

몸에서 느껴지던 옅은 마법의 기운이 사라졌다.

활기 마법의 효과가 끝난 것이다.

"젠장."

활기 마법으로 어느 정도 활력이 돌아왔지만, 독살 검에 빼앗긴 활력에 비하면 콩알만한 양이었다.

마법의 효과가 사라지니 금세 몸이 무거워졌다.

감겨오는 눈동자.

유현은 억지로 몸을 움직이려고 했으나, 이내 철퍽하며 앞으로 넘어졌다.

'하필이면 여기서….'

그의 시야가 암전했다.

***

그가 다시 병원에서 깨어났을 때. 그를 둘러싼 세상은 한 번 더 변해 있었다.

"야아아아아!"

눈을 뜨자마자 덮치듯 안기는 누군가.

유현은 잠에서 막 깨 비몽사몽 한 상태로, 자신을 껴안은 상대의 등을 더듬었다.

'작고, 가녀린….'

코끝으로 채취가 스며든다.

익숙하고 향긋한 냄새였다.

자연스레 한 사람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서혜빈."

그가 이름을 부르자 서혜빈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져 있었다.

"너, 너는 왜 사람을 당기고 그러니!?"

"......뭔 소리야. 네가 먼저 안겼잖아."

"내가 언제 그랬는데?"

"언제냐니 방금..."

"현아!"

그때, 또 누군가 그를 덮쳤다.

"커억."

느닷없는 습격에 유현이 숨을 토해냈다.

"넌 정말이지...! 사람을 얼마나 감동받게 만드는 거야!! 덕분에 살았잖아!"

이번에는 신가온이었다.

무척이나 잘생긴 얼굴이지만, 그리 환영할 만한 포옹은 아니었다.

"좀 나와봐."

유현이 그를 밀어내며 몸을 일으켰다.

아까와 같은 병실이었지만, 풍경은 달랐다.

저쪽 구석에는 김풀잎이 서 있고, 옆에 놓인 보호자 침대에는 오철용이 코를 골며 자고 있다.

안칠성과 메이블도 보였다.

"일어났구나."

안칠성이 인자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네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곧장 찾아왔다. 왔으면, 왔다고 말이라도 했어야지."

"휴대전화가 안 보여서요."

그때, 훌쩍거림이 들려왔다.

어느새 메이블이 안칠성의 옆에 서 있었다.

"훌쩍. 여기, 훌쩍. 있어."

울음기가 가득한 얼굴로 말을 잇는 메이블.

평상시에는 그토록 아름다운 얼굴이 울음을 참느라 잔뜩 망가져 있었다.

"왜 그렇게 울어?"

유현이 메이블에게서 휴대전화를 받아들며 물었다.

"나, 나는... 너... 주, 죽은 줄 알았단 말이야..."

메이블은 목이 메는지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내가 죽긴 왜 죽냐?"

"우흐으응... 몰라아... 흐어어어엉."

해괴한 소리를 내던 메이블은 결국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에 유현은 싱긋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 손길에 메이블이 자연스레 유현의 품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걱정하더니만, 결국에는 감정이 터졌나 보군."

"뭐, 장례식장에서 우는 것보다는 낫죠."

유현의 자조적인 유머에 안칠성이 그의 팔을 툭쳤다.

"농담으로라도 그런 소리는 마라."

"블랙 코미디 몰라요? 완전 노땅이네."

"뭐? 노땅? 이 자식이."

안칠성이 유현을 간지럽히며 소소한 장난을 쳤다.

일상적이고 평화로운 풍경에 다들 흐뭇하게 웃었다.

"일어난 거 확인했으니까 다들 슬슬 돌아가요. 피곤할 텐데."

"크흠. 우리가 고생 좀 했지."

서혜빈이 유현에게서 메이블을 떼어내며 짐짓 자랑하듯 떠들었다.

경찰서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덧붙이는 건 덤이었다.

"그럼 쉬어라. 내일은 이케가미랑 주석이도 데리고 오마."

안칠성이 아이들을 데리고 병실을 나갔다. 오철용이 쉽게 일어나지 않아 꽤 고생했지만, 다행히 깨우는 데 성공했다.

다시 텅 빈 병실.

사람이 가득하던 풍경과 대조되어 조금 공허하게마저 느껴졌다.

하지만 유현은 개의치 않았다.

아직 손님이 한 명 더 남아있었으니까.

"들어와."

병실 구석에 포탈이 열렸다.

이니티움이 씩 웃으며 걸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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