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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77화 (177/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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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현을 향해 쇄도하던 에프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주름진 얼굴에 드리우는 붉은 빛. 별이 총총히 박힌 공간 너머에서 불꽃에 휩싸인 커다란 돌덩이가 추락하고 있었다.

[에어]

에프가 마법을 사용했다.

허공에 뭉쳐진 공기가 그의 움직임을 강제로 막아냈다.

에프는 다시 빠른 속도로 지상을 향해 돌아갔다.

"모두 피해라!!"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간부들이 멍청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막 마법의 존재를 깨달은 이들도, 마법을 알고 있던 이들도.

눈 앞에 광경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저, 저게 뭐야?"

"대체 왜 하늘이..."

"구경하지 말고 피하라고!"

에프가 다시 한번 윽박지르자 그제야 간부들이 정신을 차리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 발로 벗어나기에는 마법이 너무나 광범위했다.

쾅!

지축이 뒤흔들렸다.

폭발이 일었고, 화염이 몰아쳤으며, 땅이 치솟았다.

유현은 허공에 고고하게 떠오른 채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잠시 현기증이 들어 휘청거렸지만, 다시 몸의 균형을 되찾았다.

헬 파이어.

9급의 고위 마법.

한 번 사용하는 것만으로 코어의 마나가 모두 사라졌지만, 룬석의 힘 덕분에 빠르게 회복됐다.

딱.

유현이 손가락을 튕겼다.

지상을 가리고 있던 거대한 돌덩이가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이 사라졌다.

휘이이잉.

서늘한 바람이 부는 가운데.

바위 아래 감춰져 있던 참상이 드러났다.

누군가는 흔적 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또 누군가는 한때 살아있었다는 자취 정도만을 남겨두었다.

"......"

그런가 하면 질기게 살아남은 자들도 존재했다.

에프와 제이를 비롯한 고위급 간부들이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잔뜩 핏발이 선 눈동자.

그렇지만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심한 출혈은 물론이고 피부가 벗겨진 이들도 있었다.

"잘도 버텼네."

유현이 다시금 손을 들어 올렸다. 그 손에 푸른 빛이 감돌기 시작한 순간. 에프의 신형이 사라졌다.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건, 유현의 뒤였다.

후웅!

에프의 주먹이 허공을 꿰뚫었다.

조금 전까지 유현의 심장이 머물던 곳이었다.

"...!"

생각지도 못한 회피에 에프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하지만 당황하기도 잠시.

등 뒤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에프가 다시금 눈매를 날카롭게 좁히며 몸을 홱 돌렸다.

"빠르네."

가소롭다는 듯한 말투로 에프를 향해 조소를 날리는 유현.

에프가 이를 악물며 공격을 재개하려던 그 순간.

그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다.

동공 위로 전방의 풍경이 맺혔다. 유현의 등 뒤에 나타난 수십, 수백, 수천 발의 불화살.

불꽃으로 이루어진 화살들의 숫자는 계속해서 늘어났다.

에프의 얼굴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어디 이것도 한 번 피해 봐."

유현이 손을 까딱였다.

시위에 걸린 화살이 날아가듯 허공에 머물러 있던 화살들이 맹렬한 속도로 뛰쳐나갔다.

에프를 향해, 다른 간부들을 향해 불꽃의 세례가 시작되었다.

유현은 가만히 선 채 그들을 주시했다.

'페데리코가 간부들에게 전수한 마법의 힘은 과연 어느 수준일까.'

그걸 알기위해 일부러 범위는 넓지만, 그리 강하지 않은 마법을 사용했다.

녀석들이 보일 반응에 따라 페데리코가 가진 힘을 대강은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쏴아아아아!

그때였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밤하늘에 느닷없이 비가 쏟아졌다.

단순한 비가 아닌, 폭포수 같은 소나기였다.

불꽃이 사그라지며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유현은 뿌연 시야 너머로 한 사람을 바라보았다.

앞으로 두 손을 뻗은 여자.

그녀의 손 위에 푸른 빛의 마나가 넘실거리고 있다.

다른 이들과 달리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는 모습.

유현은 그녀가 간부 중 최강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에이! 지원해라! 아이를 비롯한 나머지 근접 전투원들도 참전해라!"

에이. 그게 여자의 이름이었다.

유현은 에이에게서 시선을 뗐다.

좀 더 실력을 보고 싶었지만, 모두가 에프의 말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현. 당신은 역시 강하군요. 지금부터 전력을 다해 상대하겠습니다."

에프가 입고 있던 와이셔츠를 찢었다. 이내 그의 몸에서 마나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서서히 바뀌기 시작하는 외형.

갑각류처럼 딱딱한 갑옷이 전신에 돋아났고, 두 다리는 짐승의 다리처럼 두꺼워졌다.

여러 외형이 뒤섞인 에프의 모습. 에프의 특성은 키메라였다.

"우워어어어어!"

사자로 변한 머리통에서 짐승처럼 우렁찬 포효가 튀어나왔다.

그와 동시에 에프가 발을 튕겨 쇄도했다.

'전방, 후방, 상하좌우. 사방에서 오는군.'

유현은 뇌내로 술식을 그렸다.

길게 끌 생각은 없다.

더 시간을 지체하면, 룬석의 효과가 끝난다.

마나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다면, 상황은 어떻게 될지 불 보듯 뻔했다.

'벌레 같은 놈들이지만, 약한 상대는 아니야.'

그 이니티움조차 이들을 상대로 싸움은 피하고 싶다고 했을 정도니까.

유현은 손을 들었다.

머릿속에서 완성된 술식에 코어의 마나를 담았다.

마나로 가득했던 코어가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냈다.

지금 필요한 건 헬파이어처럼 강력한 한 방.

'한 번은 버텨도, 두 번은 힘들 거다.'

유현이 엄지와 검지를 튕겼다.

트리거가 눌리자, 마나가 부여된 술식이 외부로 발현되었다.

푸른색 빛 한 줄기가 빗발을 뚫고 하늘 위로 뻗어나갔다.

직후, 사방이 어두워졌다.

유현을 향해 달려들던 간부들이 저도 모르게 움직임을 멈췄다.

완전히 사라진 달빛.

순간적으로 찾아온 어둠에 눈이 익숙하지 않아 그들은 한 치 앞도 보지 못했다.

"모두 두 눈을 감았다가 떠! 공격은 내가 막아줄게!"

에이의 말에 다들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떴다.

빛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공간 속에서 서서히 두 눈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먹구름?"

하늘을 가린 구름을 보며 에프가 굵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왜 먹구름이..."

그때, 그의 뇌리가 번쩍였다.

언젠가 마법을 배울 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환경을 바꿔버리는 필드 마법은 연관된 마법의 효율을 몇 단계나 상승시켜준다는, 대장 페데리코의 가르침이었다.

"에이ㅡ! 이건 필드 마법이다!"

지상에 있던 에이는 진즉에 그 사실을 눈치챘다.

소거법을 통해 해당 필드에서 어떤 마법이 나타날지 도출했고, 최대한 빠르게 완성할 수 있는 방어 마법의 술식을 그리는 중이었다.

"재능 있네."

머리 위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에이가 흠칫 몸을 떨었다.

조금의 기척도 느끼지 못했는데, 어느새...

"저기다! 저기 있어!"

"에이! 조심해!"

간부들이 그의 위치를 파악하고 다시 움직임을 재개했다.

그들을 보며 유현은 피식 웃었다.

"하지만 배울 상대를 잘못 찾았어. 벌레 같은 놈한테 배워봤자, 벼룩의 새끼밖에 더 될까."

"윈드 커터!"

에이가 발동어를 외우자 바람의 칼날이 유현을 향해 날아갔다.

살갗을 낱낱이 파헤칠 날카로운 공격. 적어도 잠깐정도는 유현의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을 공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에이의 기대는 곧장 부서졌다.

"전환이 빠르네. 분명 방어 마법을 외우고 있었을 텐데."

어느샌가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기다란 검.

에이는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유현이 마법을 향해 검을 휘두르자, 바람의 칼날이 그대로 사라지는 것을.

마법의 구조가 붕괴되 듯 뭉쳐 있던 마나가 분해되어 흩어졌다.

"마, 마, 말도 안 돼..."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입을 뻐끔거리기를 몇 번.

유현의 입술이 조용히 달싹였다.

[썬더 오브 갓]

마나를 타고 하늘로 치솟았던 술식이 구동어와 함께 발현되었다.

먹구름 속에서 번개가 번쩍였다.

지상을 향해 내려오는가 싶던 전격은 땅에 꽂히지 않고 허공에서 서로 뒤엉켰다.

서서히 구체로 뭉치기 시작하는 빛무리. 끊임없이 떨어지는 번개는 지상 대신 빛무리 사이로 섞여들었다.

"피, 피해야 해!"

"어서 도망치자고!"

심상치 않음을 느낀 간부들이 황급히 자리를 피하려 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마법이 완성되었다.

콰과과과광!

번개의 구에서 수십 줄기의 뇌전이 폭발하듯 뿜어졌다.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푸른 빛의 벼락. 그게 다였다. 공격은 거기서 끝났다.

먹구름에서 내려와 전장의 중심에서 빛을 발하던 전격의 구는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모든 힘을 다하고 사라졌다.

"......"

유현은 지상을 둘러보았다.

고작 한 번 뿐인 공격이었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사방으로 분출된 강력한 전격은 모두 제각각의 타겟을 가지고 있었고, 그 목표물을 정확히 노렸으니까.

탁.

지상으로 내려온 유현은 폐허를 걸었다.

마법을 가장 잘 다루던 에이는 온몸이 까맣게 물든 채 죽어 있었다. 마지막까지 방어막을 펼친 것 같았지만, 그따위 저급 마법으로 막을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쯧."

유현은 혀를 한 번 차고는 몸을 돌렸다.

그렇게 폐허를 돌아다니며, 간부들의 시체를 하나씩 확인했다.

가장 마지막으로 확인한 건 에프였다.

"......으윽."

용케도 그는 그 공격에서 살아남았다. 하지만 싸울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전신이 까맣게 그을려 움직일수 조차 없는 상태였다.

아마도 그 삶의 끝이 머지 않았으리라.

"더럽게 튼튼하네.."

고통을 흘리던 에프가 힘겹게 눈을 떴다.

앞에 유현이 있다는 걸 확인한 그가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움직일 수 있는 건 목 위 뿐이었다.

"...허허."

상황이 웃긴건지, 어이가 없는 건지. 에프가 허탈하게 웃었다.

힘이 없는 노인의 웃음.

유현은 상대의 목숨을 끊는 대신 그 옆에 앉았다.

"저를 죽이지 않는군요?"

"어차피 좀 있으면 죽을 건데."

"그럼 가기 전에 몇 마디 떠들어도 되겠습니까?"

유현은 대답 대신 폐허가 된 도시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페데리코님이 말씀하셨죠. 당신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리 강하지는 않을 거라고 하셨는데..."

말하는 것조차 벅찬지 에프가 잠시 거칠게 숨을 골랐다.

"이번만큼은 그분이 틀렸군요."

"녀석은 얼마나 강하지?"

도시를 바라보던 유현이 에프에게 고개를 돌렸다.

에프가 잠시 고민하더니 입술을 뗐다.

"......당신이 10의 힘을 낸다면, 그분은 100 이상의 힘을 낼 수 있습니다. 혼자 세상을 멸망시킬 수도 있지요."

"그 정도인가?"

"예. 만약 그분이 이곳에 오신다면, 당신은 죽습니다."

협박이 아니었다.

사실을 말하듯 나긋나긋한 어투였다.

"불러봐, 그럼."

"그분은 언제나 본인이 내키는 대로 행동합니다. 우리의 죽음은 안중에도 없으시죠."

"그런 놈이 뭐가 좋다고."

"힘을 주었고, 삶을 주었습니다. 그러니 목숨 정도는 바쳐야..."

에프가 거칠게 기침했다.

조금 전보다 더 파리해진 안색은 그의 끝이 가까워졌음을 말해주었다.

"유현. 당신은 강합니다. 하지만, 페데리코님의 상대는 되지 못할 겁니다."

"그래."

"결국 모든 일은 페데리코님이 원하는 대로..."

에프의 고개가 옆으로 늘어졌다.

유현은 한심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더니 몸을 일으켰다.

"머저리 같으니라고. 끝까지 헛소리만 하다 가네."

유현은 한숨을 쉬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창 공사가 이루어지며 도시화가 진행되던 서부 구역은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케이디가 남은 짐승들을 이곳에 모아둔 덕분에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던 점일까.

아주 손해만 있는 건 아니었다.

"이 정도면 다른 사람들은 안전할 테고."

코어의 마나는 다시 채워지지 않았다. 룬석의 힘이 다한 것이다.

독살 검에 빼앗긴 활력을 유지해주던 마법이 사라지자 급격히 피로가 몰려왔다.

"한숨 자도 상관없겠지."

유현이 비틀거리며 허공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곧 그의 중지가 우뚝 솟은 산처럼 하늘을 찔렀다.

풀썩.

그 호출을 끝으로 유현은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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