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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74화 (174/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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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렸어?"

"거의 다 된 것 같아."

유현이 떠난 뒤에도 호야와 미우는 여전히 관제소에 묶여 있었다.

마나로 만들어진 밧줄이 어지간히 두껍고 질긴 탓이었다.

"그래도 다행이야. 마나를 실으니까 조금씩 잘리긴 하네."

푸른 빛을 머금은 호야의 깃털이 밧줄 위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조금씩 끊어지던 밧줄은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호야."

"거의 다 됐다니까."

"아니, 저기 좀 봐봐."

호야가 미우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깨진 창문 바깥으로 웬 포탈이 보였다.

"뭐야? 누가 또 넘어오나?"

"우릴 구하러 온 걸지도 몰라."

곧 누군가 포탈에서 나왔다.

그걸 확인한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미간을 구겼다.

"빨리 잘라."

"알겠어."

포탈을 통해 나온 건 유현이었다.

그가 이쪽으로 오기 전에 빠르게 자르고 도망쳐야 한다.

만약 또 붙잡히면, 조직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배신자 취급을 당할 거야.'

룬석을 구하라는 임무를 수행하지 못했다.

심지어 상대에게 그 룬석을 빼앗기기까지 했다.

마음 편히 빼앗겼다고 이야기하면, 과연 그걸 믿어줄까?

'근데 대체 그 사람은 뭐지? 유현이랑 같은 편인 것 같지는 않던데.'

그때, 호야의 눈에 포탈에서 한 사람이 더 나오는 게 들어왔다.

룬석을 가져갔던 그 여자였다.

여자는 유현과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 개 같은. 둘이 같은 편이잖아.'

상황이 더 나빠졌다.

유현의 손에 룬석이 넘어간 것이나 다름없으니, 분명 조직에서 벌을 줄 것이다.

'젠장. 서둘러야 해.'

차라리 벌을 받는 게 낫다.

괜히 또 붙잡혀서 뒤늦게 돌아갔다가 배신자 소리를 들으며 죽임을 당하는 것 보다는.

호야가 깃털의 움직임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처럼 두 사람이 탈출하는 일은 없었다.

"뭐하냐?"

저만치 떨어져 있던 유현은 어느새 호야의 앞에 있었다.

"유현..."

"헛짓하지 말고 포탈로 넘어가 있어."

"꺼져. 우리가 왜?"

"뒤지기 싫으면 시키는 대로 해라."

유현은 적의가 가득 담긴 호야의 눈을 마주보았다.

호야. 그 몸에 흐르는 특별한 피는 그가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을 말한다. 그 역시 각성 수면에 빠진 이만큼은 아니지만, 기폭제로 손색이 없었다.

'호야 역시 언제 놈들의 손에 놀아나도 이상하지 않아.'

이니티움이 제기한 의문은 합리적이었다.

호야를 구할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그들의 손에 기폭제가 들어가게 놔둘 수는 없었다.

"호야. 얌전히 따라가자."

"따라가면 간부들이 우릴 찾아올 거야. 그럼 진짜 우리를 죽일지도 모른다고."

"유명 길드에 네 보호를 맡기지. 그럼 안전할 거야."

유현의 말에 호야가 콧방귀를 뀌었다.

"그깟 헌터 놈들이 간부들한테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갈 때까지 시간 정도는 벌겠지."

유현이 호야의 목덜미를 덥썩 붙잡았다.

미우는 얌전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헤이. 다 잘라놨네. 이러면 다시 묶어야 하잖아."

기존의 밧줄은 사라지고, 새롭게 나타난 밧줄이 두 사람의 몸을 더 칭칭 휘감았다.

리필된 밧줄을 보며 호야는 절망에 빠졌다.

"내가 어떻게 자른 건데…."

유현은 쪽지에 대충 두 사람에 관한 내용을 적어 밧줄 사이에 끼웠다.

대충 격리해 두라는 내용이었다.

"가서 얌전히 있어라."

유현은 두 사람을 열린 포탈 앞까지 끌고 갔다.

포탈을 지키고 있던 소나무의 길드원 둘이 유현을 발견하고는 벌떡 일어났다.

"유, 유현!"

"케이디 조직원인데, 자세한 사항은 쪽지에 적어 놨어요. 데려가서 마스터한테 넘겨요."

"아, 알겠어!"

두 길드원은 빠릿하게 움직였다.

유현은 다시 몸을 돌려 관제소의 광장으로 나왔다.

"어때?"

이니티움은 마법을 활용해 페데리코의 흔적을 쫓는 중이었다.

그가 있는 곳에 엘리스의 동생 역시 있을 것 같았다.

"못 찾겠어. 흔적을 전부 지웠어."

"...발로 뛰는 수밖에 없나."

유현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광장에 가득한 짐승들의 시체들과 난장판이 된 도시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남은 놈들은 전부 도망친 건가.'

짐승들의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목적을 모두 달성하여 섬에서 철수하려는 것 같았다.

'조종할 수 있으니 후퇴가 빠르군.'

그때, 유현의 뇌리가 번뜩였다.

'조종.'

놈들은 짐승을 조종할 수 있다.

그렇다면, 후퇴한 짐승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유현은 깊이 숨을 들이 쉬었다.

폐부로 주변의 공기가 가득 스며들었다.

그와 동시에 짐승들의 채취가 콧구멍 깊은 곳을 자극했다.

"...그거 좋은 생각이네."

유현의 행동을 본 이니티움은 곧장 그의 생각을 깨달았다.

짐승들이 물러났다는 건 그들이 모여들 장소 역시 존재한다는 것.

포탈을 사용해 섬에 들어왔든, 비행선을 이용해 침투했든, 결국 한 자리에 모일 수밖에 없다.

'그 많은 숫자를 따로따로 움직일 수는 없을 테니.'

유현은 냄새를 쫓아 발을 옮겼다.

***

쾅!

스카이 아일랜드 서부.

아직 개발되지 않아, 공사장과 빈 땅이 많은 그곳에서 전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허공을 수놓는 반짝이는 얼음의 칼날.

차갑고 매서운 공격이 상대를 몰아붙였다.

"하하하하!"

하지만 얼음은 반투명한 벽에 막혀 상대에게 데미지를 주지 못했다.

엘리스가 입술을 깨물었다.

동생을 찾아 섬의 곳곳을 헤매다가 한국에서 왔다는 구조대와 만났다.

그리고 그때, 짐승들이 모두 한 방향으로 달려가는 것을 발견하고는 구조대와 함께 그 뒤를 쫓아왔다.

테러 단체가 병원을 습격했으니, 그들이 모이는 곳에 동생이 있었을 것 같았다.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다른 생각을 할 여유는 없었다.

"하하하하하!"

그녀의 공격을 막은 상대는 호탕하게 웃기만 할 뿐이었다.

구조대의 공격도 그를 노리고 날아갔지만, 벽에 막혀 부스러졌다.

"하하하하! 백날 때려봐라!"

마나가 가진 힘 자체를 무력화하는, 무력화 베리어.

마나로 이루어지는 공격이라면, 어떤 공격이든 막을 수 있다.

더불어 물리적인 충격 역시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었다.

특성 위주의 전투를 펼치는 이들에게는 치명적인 적.

하지만 구조대에는 육체 능력에 강한 이들도 있었다.

챙!

날붙이가 맞부딪치며 쇳소리가 났다. 방어막을 뚫기 위해 접근하려는 구조대원들을 다른 적이 막았다.

몸을 부딪쳐가며 이어지는 혈투.

하나의 전장에서 여러 전투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조금만 기다려.'

엘리스가 반투명한 방어벽 너머를 바라보았다.

병원 침대에 고이 누인 동생의 모습이 보였다. 엘리스가 끊임없이 공격을 계속하는 이유였다.

승산이 적은 싸움이지만, 동생을 눈앞에 두고 그냥 돌아설 수는 없었다.

"방어벽은 막힌다! 우선 지상의 병력부터 처리하면서 전선을 뒤로 물려! 소녀는 포기해도 좋다!"

소나무의 길드원들로 이루어진 구조대. 그들은 대장의 명령에 따라 침착하게 움직였다.

"젠장할."

좋지 않은 전장의 상황을 보며 대장이 주먹을 꽉 쥐었다.

주변에 가득한 수천 마리의 짐승들. 그들은 마치 주인의 명령을 듣는 온순한 개처럼 가만히 앉아 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멍청한 짓을 했어.'

처음에는 그저 적들의 동태만 살필 생각이었다.

하지만 함께 온 소녀가 느닷없이 적들을 공격했다.

무엇이 그녀를 제정신이 아니게 만들었는지는 전투가 이어지며 깨달았다.

'설마 저들이 동생을 잡아갔을 줄이야.'

동생을 찾는다는 말만 들었지, 거기까지는 듣지 못했다.

왜 케이디가 그녀의 동생을 납치한 걸까. 다른 민간인들은 다 놔두고, 왜 하필이면.

"마스터! 벗어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보겠지만, 아무래도 힘들 것 같습니다!"

그 목소리는 생중계 중인 액션캠을 통해 한국 포탈 관제소에 모인 이들에게 닿았다.

"끝까지 생존에만 집중해."

한상용은 짧게 한 마디하고는 화면에 집중했다.

케이디. 그들의 무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저 범죄자들일 뿐이라는 세간의 평가와는 달리 결코 평범한 범죄자들이 아니었다.

'하나하나가 S등급 이상이야.'

케이디의 간부들.

지금 카메라에 나타난 이들은, 자신을 습격한 그 사람보다도 몇 배는 더 강한 것 같았다.

'나름 강한 놈들인데.'

구조대는 길드에서도 상위권인 헌터들로 이루어졌다.

그런데도 케이디의 간부들은 그들을 가지고 놀았다.

정말이지, 말이 되지 않는 무력이었다.

'그 간부보다 강한 놈들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는데.'

이대로 가면 전멸당할 게 뻔하다. 하지만 무작정 후퇴도 불가능한 상황. 말 그대로 진퇴양난이었다.

'역시 괜히 보냈나.'

잘못된 판단으로 길드원들이 죽음의 위기에 처했다.

길드원들과 의논하여 나온 결론이긴 하지만, 결국 최종 결정은 마스터의 몫이니 자신의 책임이었다.

"......"

한상용은 두 손을 꼭 모은 채 말 없이 화면을 응시했다.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저 운에 맡기는 것뿐이었다.

'부디 한 사람이라도 생환할 수 있기를.'

하지만 그 기도가 무색하게도 적들은 서서히 템포를 올려 갔다.

카메라 너머로, 길드원들이 하나둘 쓰러졌다.

적의 전투는 마치 보이지 않는 그림자 같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길드원을 제압하고, 죽이는, 암살을 하는 듯한 방식. 처음 겪어본 실력자와의 싸움에 아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하하하하! 여기가 너희의 무덤이다!"

소리치는 상대를 보며, 엘리스가 터진 입술을 잘근거렸다.

몸 곳곳에 출혈이 일었고, 코에서도 주르륵 피가 흘러나왔다.

무리하여 능력을 사용한 탓에 그녀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상대의 방어벽은 생채기 하나 없었다.

"포기...할 수 없어..."

다리는 흔들거렸고, 눈앞은 흐릿했으며, 머릿속은 뿌옜지만, 엘리스는 오직 동생을 구하기 위한 일념 하나로 꾸역꾸역 버텼다.

동생을 위해 살아온 지난 몇 년.

일방적인 희생이었지만, 상관없었다. 고아가 된 어린 시절, 서로를 지키던 유일한 가족이었으니까.

설령 죽는 한이 있더라도, 동생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캬캬캬캬캬캬캬!"

"키키키키키킥!"

사방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엘리스는 그제야 주변을 살폈다.

"......"

동생을 바라보던 또렷한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함께 싸우고 있던 이들은 어느샌가 모두 쓰러져 있었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하아, 시발."

구조대장은 전장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그들에게 자신들은 장난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저 손짓 한 번만으로 휙, 휙 죽어가는 길드원들.

속에서 분노가 끓어 올랐지만,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흐으음~"

반투명한 벽이 사라졌다.

허공에 부유하고 있던 남자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그는 엘리스를 지나 구조대장의 앞에 섰다.

그의 등이 훤히 드러났지만, 엘리스는 감히 공격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느새 그녀의 주변에 짐승들 몇 마리가 모였다.

"후후. 겁도 없이 사람을 보내다니. 어지간히 멍청한 놈들이란 말이지요?"

구조대장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는, 광대 가면의 남자.

구조대장은 말 없이 마른 침을 삼켰다.

"이 어리석은 자에게 어떤 벌을 내려야 할까요~?"

남자가 고개를 숙였다.

그 시선은 몸에 부착된 액션캠의 렌즈를 바라보고 있었다.

"예?"

마치 카메라 너머에 있는 이들의 존재를 인지한 듯한 말투.

남자는 화면을 보며 씩 웃더니 구조대장을 향해 손을 뻗었다.

"죽어야겠죠?"

"으아아아아아!"

죽음을 직감한 구조대장이 들고 있던 검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그 검이 아래로 움직이는 일은 없었다.

우드득.

어느샌가 남자는 구조대장의 뒤로 돌아가 있었고, 구조대장의 목 역시 180도 회전하여 뒤를 바라보고 있었다.

챙.

치켜들었던 검이 아래로 떨어졌다. 남자가 구조대장의 머리를 놓자 시체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하하하하하하!"

웃음소리가 스피커를 메웠다.

카메라 너머로 보이는 것은 달빛의 그림자가 전부였다.

"......"

침묵이 가라앉았다.

모두의 시선이 화면을 향한 가운데. 달빛의 잔광 위로 선명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림자로 보기에도 작고 가녀린 체구. 그림자는 누군가에 목을 붙잡힌 채 발버둥 쳤다.

그게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고 있었다.

푹.

누군가의 손이 작은 몸체를 꿰뚫었다. 몸부림이 멎고, 그림자가 축 늘어졌다.

방울의 그림자가 몸을 타고 아래로 투둑 떨어졌다.

휙- 하고 던져진 시체는 그대로 카메라 위에 떨어졌다.

캄캄해진 전광판.

장내의 누구도 입을 열 수 없었다.

국가의 명령을 거부하고 억지로 써 내려간 이야기의 종지부는, 최악의 결말로 맺어졌다.

"......포탈. 닫아라."

한상용이 무겁게 말했다.

구조대가 전멸했다.

아직 유현이 저곳에 있지만, 그를 기다리는 동안 적이 포탈을 타고 넘어올지도 모른다.

"가동, 중단하겠습니다."

그때였다.

-야.

아직 꺼지지 않은 액션캠을 통해,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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