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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71화 (17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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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관제소의 기둥에 묶인 호야는 유현의 움직임을 보며 진심으로 감탄했다.

매초 반복되는 여러 번의 공격.

얼핏 보면 아무렇게나 무기를 휘두르는 것 같았지만, 공격 하나하나가 적에게 치명타로 들어갔다.

"우리가 저런 사람이랑 싸웠다니…."

미우 역시 호야와 함께 홀린 듯 그의 무위를 구경했다.

머릿속으로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눈앞의 광경에 시선을 빼앗긴 채, 보이는 것만을 생각할 뿐이었다.

"뭔가 이상한데."

빨려 들어갈 듯 집중하고 있었기에 그 변화를 더 빠르게 눈치챌 수 있었다.

왜인지 마구잡이로 달려들던 적들이 조금씩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저러지?"

"자식들. 이제야 겁먹었나 본데."

"아냐. 무서워서 싸움을 망설였을 거라면, 진즉에 그랬어야지."

수많은 동료가 쓰러진 와중에도 짐승들은 무턱대고 달려들기를 멈추지 않았다.

미우는 갑자기 짐승들이 저런 행동을 보이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 어. 도망친다."

놈들은 주춤거리다 못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호야가 아쉽게 탄식했다.

조금 더 유현의 싸움을 지켜 보고 싶었는데.

"어딜 도망가?"

유현은 당연히 그 뒤를 쫓으려 했다. 구조대도 왔겠다, 몰려온 놈들 정도는 모두 죽이고 가도 여유가 있다.

"......"

그때, 문득 마나의 뒤틀림이 느껴졌다.

유현은 추적을 중단하고 그 기운에 신경을 집중했다.

무언가 다가오고 있다.

유현이 홱 몸을 돌렸다.

"또 포탈이냐."

허공에는 포탈이 있었다.

그 포탈에서 이름 모를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바람에 펄럭이는 검은색 코트와 긴 머리칼.

하지만 날카로운 눈동자와 벌어진 어깨는 그가 남자라고 말했다.

그 모습을 보던 유현은 작게 탄식했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죄다 포탈이야. 누가 보면 흔한 건 줄 알겠네."

남자는 허공에 달을 등진 채 떠 있었다.

달빛이 만들어낸 역광이 남자의 기묘함을 한층 깊게 만들었다.

유현은 두 눈을 가늘게 뜬 채 남자를 응시했다.

'이중 특성?'

포탈과 비행.

지구의 개념으로 따지면 그렇다.

어쩌면, 스크롤일 가능성도 있고.

하지만, 왜일까.

직감은 둘 중 무엇도 아니라고 말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데.'

단순히 분위기 외에 남자 본연에서 느껴지는 특별함은 없었다.

남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수준의 힘. 그런데도 어딘가 꺼림칙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를 바라보았다.

표정 역시 변함없이 무표정이었다. 그 얼굴이 먼저 뒤바뀐 건 남자 쪽이었다.

"푸훗."

남을 깔보는 듯한 눈동자가 호선을 그렸다.

그에 비해 제법 다소곳이 올라간 입꼬리는, 남자의 웃음이 비웃음이라는 걸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유현은 곧장 반응했다.

"뭐가 웃기지?"

"상황이 재밌군. 계속 그렇게 눈싸움만 하고 있을 텐가?"

이국적인 외모를 가졌지만, 남자의 입에서 나온 건 또박또박한 한국말이었다.

유현은 그제야 눈이 따갑다는 걸 자각하고 두 눈을 깜빡였다.

온 신경을 남자에게 집중한 채, 특이점을 포착하기 위해 몰두한 탓이었다.

"너 누구냐?"

샅샅이 훑었음에도 유현은 남자에게서 별다른 특징을 포착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기묘한 감각은 떠나질 않으니, 분명 무언가가 숨겨져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케이디의 수장이다."

"...굳이 기어 와서 묫자리를 자처하는군."

"그리고."

남자의 입에서 도발과 관계없는 부사가 튀어나왔다.

이윽고 이어진 말은 유현의 머리를 강타했다.

"용사."

용사.

그 두 음절의 단어를 유현은 곱씹었다.

똑바로 들은 게 맞는 걸까.

잘못 들은 게 아닐까.

그 자문은 곧 반문이 되었다.

"......지금 뭐라고?"

"였었지. 나도."

유현은 멍청히 눈을 깜빡였다.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나 역시 목소리의 부름을 받았고, 그 힘으로 강해졌다."

유현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큰 충격에 휩싸였다.

'용사.'

자신 이외의 용사가 실존했다.

느닷없이 찾아온 외인이 건넨 말이기에, 의심해야 마땅했지만, 오히려 느닷없었기에 유현은 의심을 지웠다.

초면에 주먹을 뻗는 게 더 합리적인 상황에서, 난데없이 용사라니.

관계자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사고방식이었다.

'다른 용사...'

먼저 존재했던 여섯 명의 용사들.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여섯 번째 용사를 제외하면, 총 다섯 명이다.

그들이 모두 지구에서 소환당한 용사였을까.

만약 그렇다면, 눈앞에 남자는 몇 번째 용사인가.

세계를 구하지 않았음에도, 대체 어떻게 지구로 넘어온 걸까.

'설마 드래곤을 데려온 것도?'

유현은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빠르게 정리했다.

중요한 질문들을 추려 곧장 입을 열었다.

"넌 몇 번째냐."

"다섯 번째."

"어떻게 목소리의 영향에서 벗어났지? 지구로는 어떻게 넘어온 거야?"

남자가 피식 웃었다.

"그런 건 없어. 단지 네가 녀석의 사탕발림에 넘어갔을 뿐."

"뭐?"

"놈이 명령을 듣지 않으면 죽인다고 했나? 아니, 놈은 한 번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단지, 명령을 따르면 힘을 준다고 했을 뿐."

"그런 말 장난이..."

"존재하지. 나는 목소리의 명령을 들어 힘을 얻었고, 용사가 되었으며, 동료들을 죽이고 은거했다."

"......"

남자의 눈동자에는 어떠한 감정도 담겨져 있지 않았다.

과거를 말함에도 그리움은 없었고, 자신을 그곳에 끌고 간 목소리를 향한 분노도 없었다.

그저 잔잔한 바다처럼, 평온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내가 이곳에 넘어온 방법을 물었지. 나도 몰라. 느닷없이 눈앞에 포탈이 열렸으니까."

"포탈은 누군가 열어줘야만 해. 누구냐? 누가 열어줬지?"

"세 번째 용사."

"......"

이제는 세 번째 용사라니.

그간 한 번쯤은 이전 세대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 처음 보는 이에게 갑작스레 듣게 될 줄이야.

모든 이야기가 갑작스러워서, 당황스러웠다.

"보아하니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이군."

"알 턱이 없지."

"궁금하면 알려주마. 너에겐 들을 자격이 있으니."

유현은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그간 가졌던 모든 의문을 해소할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당장 싸워도 모자랄 적이었지만, 참을 이유는 충분했다.

"흐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남자는 말을 고르는 듯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용사가 된 이들이 모두 우리와 같은 능력자는 아니었다. 누군가는 용맹한 기사였고, 누군가는 용병이었지."

"...총 몇 명이냐?"

"세 명. 세 번째, 다섯 번째. 그리고 너, 일곱 번째."

상대는 자신이 일곱 번째 용사라는 걸 알고 있다.

그렇다면, 소환되어 그곳에 있던 동안 이 남자 역시 그곳에 존재했다는 뜻이었다.

'전대 용사가 죽어야만, 목소리가 새로운 용사를 소환시키는 건 아니었군.'

남자가 조금 전 말한 내용에 따르면, 아마도 소환한 용사가 싸움의 의지를 잃은 시점이 아닐까 싶다.

"그 용사들은 제각기 다른 길을 걸었지. 마왕의 흔적을 찾아 나선 이도 있지만, 나처럼 책무를 버린 이도 있었어."

"네가 도망친 이유는?"

"나를 희생하기 싫었으니까."

"...현명하군."

남자는 용사라는 임무에 강제성이 없다고 말했다.

결국 목소리도 책임과 인정에 호소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은거한 채로 오랜 시간이 지났다. 여러 용사의 소식을 들었고, 네 소식도 들었지."

"혹시 우리가 마주친 적도 있나?"

"난 엔트로 산맥에서 한 걸음도 나가지 않았어."

엔트로 산맥.

험준하기로 유명한 곳으로 온갖 괴짐승들이 서식하는 곳이다.

산맥이 위치한 지역에 기후 역시 불 규칙적인 탓에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럼 소문은 어떻게 들었지?"

"산맥을 넘던 상인들을 털었을 때 들은 이야기다."

"개새끼네."

유현의 욕설에 남자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아무튼, 그렇게 무념무상으로 지내던 어느 날, 내 앞에 갑자기 포탈이 열렸어. 나는 그걸 통과했고, 지구로 넘어왔지."

"......그게 다야?"

"그래."

어처구니가 없다 못해 화가 날 지경이었다.

누구는 지구로 넘어오려고 그 고생을 했건만, 누구는 그냥 눈앞에 포탈이 열려?

"이런 씨댕. 이게 말이 되냐?"

"넌 운이 없었고, 난 운이 좋았지."

"대체 누구야? 그 세 번째 용사라는 게?"

"혹시 이니티움과 만났나?"

유현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이더리움?"

"이니티움."

"그게 누군데, 인마. 갑자기 다른 소리야."

"아직 그녀와는 만나지 못한 건가."

그녀라는 말에 문득 유현의 머릿속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용사와 관계되었으며, 지구로 넘어온 용사가 입에 담을 만한 여자.

"그 드래곤을 말하는 건가?"

"만났나 보군."

"이름이 이니티움이야? 처음 들어보는데."

웬만한 고룡의 이름은 다 꿰차고 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말처럼, 그들의 정보를 알고 있어야 싸움의 승산을 높일 수 있기 떄문이다.

"그러겠지. 그건 그녀가 지구로 넘어와 새롭게 얻은 이름이니."

넘어온다. 그 말이 귀에 밟혔다.

차원 이동은 마법으로만 가능한 게 아니라고 말했었는데.

"그 여자, 아니, 그 드래곤. 그리고 너도. 대체 지구로 넘어온 방법이 뭐지?"

유현이 그 질문을 던진 순간.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휘이이잉.

그 바람에는 왜인지 낯익은 냄새가 섞여 있었다.

유현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달빛이 물든 하늘을 가르며 무언가 거대한 것이 날아오고 있었다.

"오는군."

"저, 저게 왜 여기에…."

멀리서 보기에도 거대한 외형.

유현은 그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포탈 마법을 잠가두니 설마 폴리모프도 해제하고 달려올 줄이야. 이만 가봐야겠어."

"뭐? 가긴 어딜 가, 새끼야!"

"세 번째 용사는 이니티움도 알고 있다. 죽기 직전의 그녀를 구한 것도, 포탈을 연 것도, 모두 동일 인물이니까."

남자가 손짓 한 번으로 포탈을 열었다. 그 흐름조차 포착할 수 없는 은밀한 마법의 사용이었다.

"세 번째 용사의 이름은 틸칸. 모든 판타지 문학의 시초나 다름없지."

"...!"

"나중에 또 보자고."

유현은 그를 향해 추적 마법을 날리려 했다.

하지만 왜인지 마나가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주변의 모든 마나가 제자리에 고정된 것 같았다.

"......"

남자는 사라졌고, 유현은 그 자리를 노려보았다.

마나가 움직이지 않은 건 처음 있는 일. 누구의 영향인지는 뻔했다.

'마나를 고정시키다니.'

엄청난 실력자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 그런데도 그 힘이 바깥으로 조금도 빠져나오지 않다니.

컨트롤 역시 예사롭지 않은 남자였다.

"하..."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여전히 어안이 벙벙했다.

'진짜 그 작가가 용사였다고?'

그렇다면 그 작가의 작품이 그토록 판대륙과 닮아있는 것도 이해가 된다.

'대체 어떻게 지구로 넘어왔지?'

단순히 마법으로만 가능한 게 아니라니.

틸칸. 세 번째 용사는 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을 살았기에, 그 정도의 지혜를 가진 걸까.

'이니티움은 대체 뭔데?'

드래곤과 작가의 관계는?

과거에는 드래곤과 용사의 충돌이 덜 했을까?

그간 들었던 여러 의문이 해소되었지만, 그 숫자 이상의 의문이 생겨났다.

"하, 쓰바."

유현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엉?"

유현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당황성이 빠져나왔다.

당연히 드래곤이 날아오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 하늘은, 왜인지 텅 비어 있었다.

"어디 갔어?"

유현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때.

그의 눈앞에 포탈이 열렸다.

이제는 새롭지도 않은 등장.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아무도 빠져나오지 않았다.

"뭐야?"

유현은 가만히 포탈을 바라보았다. 포탈은 들어오라고 말하는 것처럼 잠자코 열려 있었다.

"...누구일지는 뻔한데."

이 부름에 응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잠시 고민하던 유현은 걸음을 내디뎠다.

아직 할 일이 많았지만, 지금이 아니라면 이 궁금증을 해소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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