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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간부의 눈이 빛무리로 향했다.
"포탈?"
빛을 내기 시작한 건 포탈이었다. 어떤 국가가 포탈의 가동을 시작한 것이다.
"이쪽으로 넘어오려는 건가?"
"멍청한 놈이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했는데, 그 생각이 맞았군."
"원한다면 본때를 보여줘야지."
여자는 호출기를 작동시켰다.
인간은 듣지 못하는 고주파가 섬 전체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아우우우우!
저 멀리서 들려오는 살기 어린 울음소리. 머지않아 이곳은 짐승으로 뒤덮일 것이다.
"넘어오면 죽이고, 넘어오지 않으면..."
여자가 비릿한 웃음을 머금었다.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깽판 한번 치자고."
"저놈부터 제압하는 게 우선이다."
"당연하지. 포탈 개방까지 시간이야 많으니, 그전에는 잡겠지."
두 사람은 포탈에서 시선을 떼고 다시 전장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리가 본격적으로..."
본격적으로 가담하면, 유현도 빠르게 제압할 수 있을 거라는 말은 입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했다.
여자는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전장을 응시했다.
"뭐, 뭐야 저게?"
이내 벌어진 입 사이로 새어나온 당혹성.
남자 역시 할 말을 잃었다.
눈 앞에 펼쳐진 전장의 풍경은,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촤라라라라락!
밀려오는 적들을 엄청난 속도로 베어나가는 유현.
그 모습은 마치, 광기에 찬 전사가 무아지경에 빠진 채 본능에 몸을 맡긴 것 같았다.
그에게 달려들던 짐승과 조직원들이 추풍낙엽처럼 허무하게 쓰러졌다.
어떤 공격은 복부에 틀어박히며 치명타가 되었고, 어떤 공격은 스치듯 지나갔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 같았다.
"마, 말도 안 돼! 닿지도 않았는데 왜 쓰러져!?"
"닿았다."
"뭐?"
"닿았다고. 살짝 스친 수준이지만, 그것도 닿았다고 할 수 있다."
여자는 놓쳤지만, 남자는 그 찰나의 접촉을 발견했다.
공격에 성공했다고 보기에도 미안한 수준. 그러나 검에 스친 이는 어김없이 바닥에 쓰러졌고, 그 상태로 움직이지 않았다.
"검에 뭔가 있군."
남자는 유현이 조금 전에 새롭게 꺼낸 검에 주목했다.
겉보기에는 평범하지만, 검에 상처를 입은 이들은 모두 죽었다.
'스치는 것만으로 상대를 죽이는 검이라니.'
살벌하기 그지없는 검이었다.
남자의 얼굴에 처음으로 긴장감이 나타났다.
"가까이 붙어라."
혹시나 하는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두 사람은 거리를 좁혔다.
활을 소환하는 여자의 능력은 오직 공격에만 치중되어 있다.
공격이 최고의 방어라지만, 저 괴물 같은 속도를 따라갈 수 있을 리 없다.
"모이면, 한 번에 몰아치자."
여자가 남자의 곁에 붙으며 도시 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호출에 근처에 있던 짐승들을 시작으로 짐승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다른 놈들도 부를까?"
"그래. 포탈을 준비하지."
여자가 이번에는 길게 호출기를 눌렀다.
서서히 낮아지던 주파수는 곧 사람의 귀에도 들릴 수준이 되었다.
남자는 미리 머릿속에 넣어둔 장소를 생각하며, 포탈을 만들었다.
"열었다."
"그럼 진짜로 가보자고."
여자가 허공으로 손을 뻗었다.
곧 하늘 높은 곳에 수백 개의 활이 나타났다.
제각기 시위에 매겨진 화살촉이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마치 별빛이 허공을 수놓은 듯한 모양새였다.
"쏴."
화살이 발사됐다.
적들을 베어나가면서도 곁눈으로 두 사람의 동태를 살피던 유현은 공격에 미리 대비했다.
'이번에도 똑같은 공격을...'
방어막을 펼치려던 순간.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통하지 않을 공격을 또 할 리는 없고.'
유현은 두 눈을 감았다.
한껏 예민해진 감각이 주변의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포착했다.
바람의 방향, 멀리서 느껴지는 거친 뜀박질, 코앞까지 드리운 짐승의 날카로운 송곳니, 조직원이 사용한 특성, 막 발사된 화살 등.
찰나의 시간, 유현은 세상을 느꼈다. 주마등처럼 느려진 세상의 흐름 속에서 유현은 두 간부의 노림수를 파악할 수 있었다.
유현이 미소와 함께 눈을 떴을 때. 주변의 모든 것들이 원상태로 돌아왔다.
다음 순간. 그의 주변에 생성되는 수많은 포탈. 그 안에서 막 발사된 수백 발의 화살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군이 뻔히 있는데도 이런 공격을 가하다니.'
포탈이 생성될 거라는 걸 예측한 시점에서, 유현은 적들의 공격 방식을 알아차렸다.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방식이었다. 화살의 체공 시간을 줄여, 말 그대로 대비할 수 없게 만드는 공격이었으니까.
'파악한 시점에서 아웃이지만, 시도는 좋았어.'
유현은 마나를 한 손에 응축시켜 폭발시켰다.
마법, 충격파.
그를 향해 날아오던 화살은 물론, 모든 적들이 강한 충격에 의해 뒤로 튕겨나갔다.
[에어]
직후, 유현은 허공에 공기를 뭉쳐 발판을 만들었다.
그리고 발판을 박찼다.
이내 그의 몸이 포탈 중 하나를 통과했다.
지상에 머물러 있던 유현은, 이제 허공에서 지상을 향해 추락하고 있었다.
"...!"
말 그대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알 수 없는 방법으로 공격을 튕겨내고, 허공을 박차 역으로 포탈을 이용하다니.
마치 자신들의 계획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물 흐르듯 이어진 행동이었다.
두 간부는 황급히 위로 시선을 돌렸다. 유현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남자는 포탈을 준비했고, 여자는 다시금 활을 소환하려 했다.
하지만.
[에어]
[에어]
[에어]
유현이 허공에서 몇 번이고 발을 튕겼다.
몸을 끌어당기는 중력의 힘에 추진력이 더해지고, 더해지고, 또 더해지자, 그의 속도는 총알보다 빠르게 가속했다.
유현의 동공 위로 두 간부의 급박한 표정이 맺혔다.
서걱-
역수로 쥔 쌍검이 교차했다.
일섬이 일었다고 착각할 만큼 벽력같은 기세의 돌진이었다.
쾅!
속도를 주체하지 못한 유현은 그대로 지상 위에 내리꽂혔다.
침묵이 이어지길 잠시.
잔해 속에서 유현이 거칠게 몸을 일으켰다.
"어우! 아파라!"
방어막을 사용했는데도 속도가 너무 빨랐던 탓에 충격을 완전히 흡수하지 못했다.
유현은 몸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시선은 곧장 간부들에게 향했다.
"......"
허공을 바라보던 그 자세 그대로 굳어 있는 두 사람.
유현은 그들의 뒤로 다가가 사이로 끼어들었다.
"정당방위다."
유현이 두 사람의 어깨를 두드렸다. 허공을 가르며 베어낸 두 간부의 목이 몸과 분리되어 땅 위로 떨어졌다.
"우어어어어!"
땅에 떨어진 간부의 머리를 바라보던 유현은 포효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적들의 기세는 식을 줄 몰랐다.
"애초에 식는다는 개념이 없겠지."
그저 명령에만 따르는 멍청한 짐승들.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내려진 명령은 자신을 공격하라는 것이었다.
주변에 있는 녀석들뿐만 아니라, 저 멀리서 바쁘게 뛰어오고 있는 놈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 어디 한 번. 죽어라 싸워보자."
유현은 가동을 시작한 포탈을 한 번 흘끗거렸다.
대한민국과 연결된 포탈이다.
'역시 믿을 건 우리나라 밖에 없다니까.'
하지만 타이밍이 좋지 않다.
조금 잠잠한 시기면 몰라도, 하필이면 전투가 한창인 지금이라니.
자칫하다가는 이곳에 모인 놈들이 포탈을 넘어갈지도 모른다.
'저쪽에서도 대비하긴 했겠지만….'
한국의 포탈 관제소는 그리 크지 않다.
그 작은 공간에 단 한 마리라도 넘어간다면, 누군가는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
'포탈을 지킨다. 그게 최우선이야.'
포탈이 파괴되지 않도록, 그리고 놈들이 넘어가지 못하도록.
유현이 단검의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그의 전신에 마나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
대한민국의 관제소에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소나무의 길드원이었고, 길드원이 아닌 이들은 도움을 주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헌터였다.
다들 국가의 명령을 어긴 상태였지만, 그보다도 사명감이 앞섰다.
"섬 수색은 미리 선발된 인원이 맡는다! 나머지는 이곳에서 넘어오는 적들에 대비하도록!"
작전은 간단했다.
일부는 포탈을 타고 넘어가 아군을 구출하고, 일부는 이곳에 남아 혹여 넘어올지 모르는 적을 상대하는 것이다.
"생존자 발견하면 곧장 포탈을 통해 보내! 외부 대기자들은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지 공격하지 마라!"
두 발을 잃고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었지만, 한상용의 카리스마는 여전했다.
그의 위용 넘치는 명령에 헌터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엄청나네."
"우리가 와도 되는 거 맞아?"
S반 학생들은 다른 헌터들의 눈치를 살피며 저들끼리 소곤거렸다.
헌터들은 비장한 얼굴로 포탈을 바라볼 뿐, 그들에게는 관심 하나 주지 않았다.
"포탈 개방 완료! 진입한다!"
어느새 포탈의 개방이 완료되었다. 선두부대가 포탈을 통과했다.
곧 전방에 마련된 커다란 전광판 위로 황폐한 관제소의 전경이 나타났다.
누군가는 숨을 삼키고, 누군가는 숨을 멈췄다.
몇 시간 전만 해도 대도시의 일부였던 관제소가 이렇게 망가지다니. 다들 그 사실에 적잖은 충격에 휩싸였다.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그때, 화면 위로 웬 외국인들의 모습이 비춰졌다.
그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들이 구조를 바라던 생존자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바로 보내!"
곧 포탈을 통해 생존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다리던 서포터들이 그들을 수습했다.
-앞쪽에 누가 싸우고 있는 것 같다.
스피커를 통해 구조대장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언뜻언뜻 격한 싸움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경계하며 나아가라."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구조대.
그들은 포탈 관제소의 넓은 광장으로 나왔다.
그리고 발견할 수 있었다.
무너진 광장에 가득 깔린 시체와 그 위에서 춤추듯 움직이는 누군가의 모습을.
-미, 미친.
저도 모르게 욕설을 중얼거린 구조대장. 하지만 누구도 그걸 신경쓰지 않았다. 아니, 신경쓰지 못했다.
"......유현?"
화면 위로 유현이 싸우는 모습이 흘러나왔다.
스탭을 밟을 때마다 터지는 시체. 팔이 움직이는 매 순간, 덩치 큰 짐승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
장내가 침묵으로 물들었다.
한상용조차도 그 광경에 눈을 빼앗긴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짐승의 피로 물든 몸뚱이가 쉼 없이 움직였다.
피가 튀고, 고깃덩이가 떨어지는 살육의 현장.
그 모습은 마치 수라의 지옥에 빠져 끝없는 싸움을 이어가는 광전사를 보는 듯했다.
"저게, 저게 유현이라고?"
서혜빈이 믿을 수 없다는 투로 물었다. 그 목소리는 고요함 속으로 흩어져 혼잣말이 되었다.
숨소리조차 소음이 될 정도로 조용해진 내부. 그만큼 유현이 선보인 무력은 충격적이었다.
"......허."
한상용은 한참을 멍하니 바라만 보다 탄식했다.
유현은 웃고 있었다.
싸우는 게 즐거운지, 붉게 물든 얼굴에서도 하얀 이빨 만큼은 선명하게 드러났다.
"다들 주목."
한상용의 목소리에 전투를 구경하던 이들이 다시 정신을 되찾았다.
"우리는 우리대로 구조를 시작한다. 유현이 어그로를 가져간 지금이 기회야."
-돕지 않아도 됩니까?
"끼어들면 오히려 방해될 거다. 그러니 포탈을 지킬 최소 인원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이동해."
구조대는 빠르게 관제소를 벗어났다. 뒤바뀌는 화면을 보며 한상용은 조용히 입꼬리를 올렸다.
'정말 대단하구나.'
***
스카이 아일랜드의 연구 지역.
검은 계열의 옷을 입은 이들이 연구소의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사라졌군."
"......"
조금 전까지 눈앞에 있던 포탈이 사라졌다.
이 현상이 뜻하는 건 한 가지.
포탈 특성을 가진 와이가 사망했다는 뜻이다.
"이러면 어떡하지?"
멀리서 들려온 호출을 듣고 조직원들은 미리 말을 맞춰둔 장소로 움직였다.
포탈 특성은 미리 생성 장소를 알고 있어야 하므로, 포탈이 생성될 위치로 이동한 것이다.
하지만 포탈이 사라졌으니, 도움 요청에 응할 수가 없었다.
"유현일 텐데."
"제트도 그놈한테 당한 것 같아. 병원에 가서는 소식이 없어."
"지금이 딱 기회인데 말이야. 체력도 어느 정도 빠졌을 테고."
서로 대화를 나누던 그들은 곧 느껴진 어두운 기운에 입을 다물었다.
이윽고 허공에서 일렁거리는 포탈이 나타났고, 그 안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이곳에 있는 걸 보아하니, 와이는 죽었겠군."
"그런 것 같습니다, 대장."
"엑스도 죽었을 테고."
"둘은 한 몸이나 다름없으니까요."
대장이라고 불린 남자는, 검은색 코트를 입고 있었다.
머리는 장발이었으며, 그 눈빛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직접 가봐야겠어."
높낮이가 없는 음성.
눈에 드리운 어둠은 감정의 표출이 아닌, 평소의 인상이었다.
"생포하지 않는 겁니까?"
"잡혀줄지 의문인데."
"돕겠습니다."
"필요 없다. 목적은 다 달성했어."
남자는 품속에서 돌멩이를 꺼냈다. 룬석이 남자의 손에서 마법 반응을 일으켰다.
연구가 진행 중인 탓에 아직 자료실로 옮기지 않은 룬석들이었다.
"너희는 돌아가라. 회수할 수 있는 개체는 회수하도록."
"예."
"병원에서 회수한 실험체 B는 최대한 안정을 취하게 해두고."
"알겠습니다."
그의 명령에 모두가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이내 남자가 포탈 너머로 사라졌다.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포탈 관제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