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69화 (169/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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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손에 들려 나온 것은 제트를 상대할 때 사용했던 그 검이었다.

그리 길지 않은 중간 길이의 검.

완만한 곡선의 검날을 가졌으며, 여타의 검과 달리 코등이가 없이 손잡이와 날이 일자로 이어졌다.

하지만 손잡이가 안으로 굽어 그리 위험한 모양새는 아니었다.

"무기를 꺼낸다고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단다, 꼬마야."

여자의 말에 유현은 씨익 웃었다.

"정말 그런지 한 번 볼까?"

"...건방진 놈."

여자의 등 뒤로 커다란 활이 나타났다.

활만큼 거대한 화살이 시위에 매겨지고, 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푸른 빛을 머금은 화살촉이 유현을 향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해 봐."

화살이 발사되었다.

파괴적인 크기의 화살이 유현을 향해 쇄도했다.

유현은 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대신 검을 들었다.

곧 검 위로 푸른 빛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타오르는 화염처럼 쉼 없이 일렁이는 마나.

검의 사거리 안으로 화살이 들어온 순간. 유현의 팔이 움직였다.

팅!

단말마 같은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화살을 쏘아 보낸 여자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쾅!

고작 일검에 방향이 뒤바뀐 화살은 관제소에서 한참 떨어진 빌딩에 처박혔다.

우르르 무너져내리는 빌딩을 보며 여자가 입술을 깨물었다.

"별거 없구만."

유현이 따분한 얼굴로 하품했다.

실제로 별것 없는 공격은 아니었다. 조금 전처럼 방어막으로 막으려 했다면, 꼼짝없이 당할 파괴적인 공격이었다.

그런 공격을 한 손으로 튕겨낼 수 있었던 이유는 손에 든 검 덕분이었다.

판대륙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고대 영웅이 사용하던 검.

그 이름을 따 헥톨의 검이라는 이명이 붙여졌다.

'괜히 전설의 검이 아니라니까.'

헥톨의 검에는 여러 가지 능력이 있다.

녹슬지 않고, 부서지지 않는다.

검신의 길이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

또한, 마나 전도율이 뛰어나 같은 마나를 주입해도 높은 효율을 보인다.

그래서 더 많은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으로.

"흡!"

유현이 호흡을 조이며 힘껏 팔을 휘둘렀다.

헥툴의 검이 그의 손을 떠났다.

매서운 속도로 여자를 향해 날아가는 검. 마나의 힘 덕분에 추진력은 배가되었고, 순식간에 여자의 지척까지 도달했다.

"...!"

여자가 눈을 크게 떴다.

반응하기 어려운 엄청난 속도였다. 하지만 여자에게 검이 닿는 일은 없었다.

적중하기 직전, 여자의 앞에 나타난 포탈이 검을 집어 삼켰다.

포탈 속으로 사라진 검은 유현의 등뒤에 나타난 포탈을 통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쐐애액!

예상하기라도 한 듯 유현은 고개를 숙였다. 그가 던진 검이 그의 뒤통수를 스치고 지나갔다.

마나의 흐름을 읽고 미리 반응하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머리통에 검이 꽂혔으리라.

'꽤나 세세한 포탈 컨트롤이군.'

유현은 전방으로 손을 뻗었다.

날아가던 검이 그의 손 안으로 다시 되돌아왔다.

'까다로운 상대야.'

포탈을 세밀하게 컨트롤 할 수 있다면, 남자는 사실상 무적에 가깝다.

어떤 공격이든 포탈을 통해 흘려보내면 그만이니까.

만약 남자가 일격, 일격을 모두 포탈을 통해 흘려낼 수 있다면, 검이라는 무기 선택은 어쩌면 악수가 될지도 모르겠다.

'못 이길 건 없어.'

상대하기가 어려울 뿐 이기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다.

문제는 적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 그래서 더 까다로운 전투가 될 것 같았다.

"공격해."

남자의 입이 열리며 명령이 떨어졌다.

무너진 잔해 위에 선 채 유현을 바라보고 있던 조직원들이 일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우우우우!"

개량 짐승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조직원들과 함께 유현을 향한 공격을 개시하는 녀석들.

수백의 안광이 그를 향해 희번덕였다.

'조종할 수 있는 거였구나.'

하나 같이 목초지에 풀어놓은 양떼 마냥 날뛰기에 컨트롤이 안되는 놈들인가 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나마 희망찬 소식이군.'

잘만하면, 놈들을 한 번에 섬에서 내보낼 수 있는 것 아닌가?

물론 간부 놈이 고분고분 말을 듣지는 않겠지만, 시도해봐서 나쁠 건 없었다.

하지만 그전에 달성해야 할 조건이 있다.

'우선 이기고 봐야겠지.'

유현은 승리를 향한 일념 아래 검을 쥔 손아귀에 힘을 가득 실었다.

서서히 줄어드는 검의 길이.

중간 길이의 검은 단검이 되었다. 검날의 길이는 손잡이보다 약간 길었다.

[강화]

전신에 폭발적인 힘이 깃들었다.

유현은 검을 역수로 쥔 채, 다가오는 적들을 향해 발을 튕겼다.

***

"뭐라도 해야 한다니까!"

이른 아침.

아직 등교 시간이 되지 않았지만, 스페셜 하우스의 교실에는 S반 아이들 몇몇이 모여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사건을 접하고, 곧장 모여든 것이다.

"침착해, 혜빈아. 우리끼리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흥분한 서혜빈과 달리 신가온은 차분하게 말했다.

"그럼 여기서 계속 구경만 하라고? 그럼 안 되는 거잖아! 저기서 유현이 싸우고 있는데, 뭐라도 해야 하는 거잖아!"

"소리 지르지 마. 나도 머리 아프니까."

가라앉은 신가온의 반응에 서혜빈도 입을 다물었다.

신가온 역시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스카이 아일랜드에서 테러라니.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다.

'하필이면 이 시기에...'

아니, 하필이면 지금인 게 아니라, 놈들은 처음부터 이 시기를 노린 게 분명하다.

세계선수권과 연말이 겹쳐 자연스레 경비가 느슨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 테러가 이루어지기에는 적합한 시기였다.

"다른 사람들은 대체 뭐 하는 거야? 왜 협회랑 길드들은 가만히 있냐구!"

서혜빈의 침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녀는 줄곧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는 협회와 길드에게 화살을 돌렸다.

"......"

이번에는 신가온이 입을 다물었다. 그의 마음 역시 서혜빈과 같았다.

아카데미의 학생이 구조 활동을 하고 있는데도 정부는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다니.

아무리 국가의 안위가 우선이라지만, 너무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하다못해 우리나라는 움직여야 하는 거 아이가! 자국민 수호해야제!"

한주석이 쾅 책상을 내리쳤다.

감정이 실려 힘 조절을 실패한 탓에 나무로 된 책상이 반으로 갈라졌다.

"아이고 이게 왜 이리 쉽게 부서지나…."

한주석이 책상을 수습하던 사이.

교실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이케가미와 김풀잎이었다.

둘 다 잠에서 깬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건지 얼굴이 부스스했다.

"뉴, 뉴스 봤어?"

이케가미가 서혜빈을 향해 멍청히 물었다.

"봤지. 테러가 일어났고, 일본 팀이 구조됐고, 구조자가 유현이라는 거."

"유현은? 걔는 아직도 거기에 있는 거야?"

"당연히 거기 있겠지, 멍청아!"

평소라면 그녀의 폭언에 격노했을 이케가미였지만, 오늘만큼은 신경이 다른 곳으로 쏠렸다.

"어떡하지? 지금 다들 지켜보기만 하는데? 우리라도 가서 도와야 하는 거 아니야?"

"어떻게 갈 건데? 헬기라도 타고 갈래? 어?"

따지고 드는 서혜빈에게 이케가미는 별 다른 반박을 하지 못했다.

"둘 다 진정해.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해. 우선 길드 마스터들한테 연락해보자."

아이들은 휴대전화를 꺼내 각자 인맥이 있는 길드로 전화를 걸었다.

통화가 이어지길 잠시.

전화를 끊은 이들의 표정은 하나 같이 좋지 않았다.

"애니동은 정부의 방침에 따른다는군."

"스파르타도."

"......"

아이들 사이로 침묵이 찾아왔다.

정부의 방침은 결국 현 지침을 고수하는 것.

자국 방위를 위해 모든 헌터 인력을 자국에 발 묶어 두는 것이다.

게이트도, 어디도 갈 수 없도록.

언제 테러의 위험이 자국에 들이닥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니 그리 이상한 것 없는 방침이었다.

우우웅.

그때, 서혜빈의 휴대전화에서 진동이 울렸다.

서혜빈은 황급히 전화를 손에 들었다.

"어, 어?"

당황으로 물든 그녀의 얼굴.

누군가 이유를 물었으나 서혜빈은 한 귀로 흘리고는 전화를 받았다.

"여, 여보세요?"

어둡던 그녀의 표정은 통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서히 밝아졌다.

전화를 끝냈을 때는 묘한 희망에 찬 얼굴이었다.

"서희네 삼촌이야."

"뭐? 소나무의 길드 마스터? 그분이 어떻게? 섬에 계신 것 아니었어?"

"지금 한국에 계신대. 유현이 가장 먼저 한국 팀부터 구출해서 보냈대!"

뜻밖의 희소식에 아이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오철용이 웃음기를 지우고 냉정하게 말했다.

"중요한 정보도 맞고, 신날 일도 맞지만, 마냥 좋아할 상황은 아닌 것 같군."

오철용이 산통을 깼다.

하지만 맞는 말이었기에 다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내가 신난 건 다른 이유야. 아저씨가 포탈을 연대."

"뭐? 포탈을?"

"정부에서 금지했잖아?"

자연히 의문이 뒤따랐다.

서혜빈은 빠르게 부연했다.

"인력을 동원해 관제소를 점거하겠대."

"뒷감당은?"

국가적 재난인 상황에서 정부의 명령을 어기는 건 사기업에 사형 선고가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다.

"다 자기가 하겠대. 그러니까 우리보고 선택하래. 와서 도와줄지, 아니면 손가락 빨고 있을지."

"...진짜 그렇게 말했어? 손가락 빨고 있겠냐고?"

서혜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 아이들이 제각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무조건 오란 소리잖아."

작은 손 하나도 아쉬운 상황이라는 게 한상용의 전언에서 엿보였다.

***

푸확!

역수로 쥔 검이 거대한 늑대의 살갗을 헤집었다.

일격에 양단된 짐승의 시체가 바닥을 뒹군다.

유현은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크아아아!"

"아우우!"

끊임없이 몰려오는 짐승들.

숨돌릴 틈조차 없는 전투가 이어졌다.

이미 수십의 짐승이 시체가 되어 곳곳에 떨어졌지만, 아직도 남은 적이 수두룩하다.

쐐애액!

파공음과 함께 날아오는 수십 발의 화살을 피하고, 튕겨낸다.

현란한 회피 사이로 짐승의 이빨이 끼어들었다.

유현은 마법으로 방어막을 펼치며, 다른 손으로는 화염의 채찍을 휘둘렀다.

'젠장.'

천에 가까운 적을 상대로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역시 버겁다.

'생존자들만 없었어도...'

유현은 대피 시설을 돌아보았다.

겁먹은 사람들의 얼굴이 언뜻언뜻 보였다.

여전히 어떤 포탈도 가동을 시작하지 않았다.

'대형 마법 한 번이면, 한 번에 몰살할 수 있을 텐데.'

간부급은 몰라도 짐승들과 일반 조직원들은 해결할 수 있다.

문제는 생존자들. 그들 역시 마법에 휘말릴 것이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아무래도 대형 마법을 사용할 기회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럼 간부들부터 죽여야 하는데...'

두 사람의 합동 공격은 정말이지 까다로웠다.

예상할 수 없는 위치에서 날아오는 화살 세례.

마나의 흐름을 읽고 반응했지만, 적의 숫자가 너무 많아서 막고 피하는 데 번거로움이 따랐다.

'역시 안 되겠지. 우선 쫄부터 잡자.'

저 멀리 위치하나 남자와 여자.

그들을 노리려면 이 많은 적들을 쓰러뜨리는 수밖에 없었다.

유현은 줄곧 마나를 잡아 먹던 화염의 채찍을 해제했다.

그리고 품속에 손을 집어넣어 다른 무기를 불러들였다.

그의 왼손에 들려 나온 것은 단검으로 변환한 헥톨의 검보다 짧은 검이었다.

'마트혼의 독살 검.'

동료였던 암살자 마트혼이 사용하던 무기다.

검의 형태는 단순하지만, 검에 깃든 마법은 그렇지 않다.

스치는 것만으로도 중독되며, 중독된 이는 몇 초안에 죽는, 치명적인 독 마법이 인첸트 되어있는 검.

상대에 따라 그 효과는 천차만별이지만, 전장에 널린 짐승들을 상대로는 효과적일 것이다.

'장점이 뚜렷한 만큼, 단점도 명확하지.'

독살 검은 사용자의 활기를 야금야금 집어삼킨다.

사용을 시작한 순간부터 피로가 쌓여 길게 사용할 만한 무기는 아니었다.

수명을 빼앗기는 건 아니지만, 너무 심하게 사용하면 사용자가 죽기도 한다.

오죽하면 과로사의 검이라는 이명이 붙어 있을까.

'웬만하면 쓰고 싶지 않았는데'

하지만 이 상황에서 이 무기보다 효과적인 건 없다.

있다고 한들 더한 페널티가 뒤따를 뿐이다.

그러니 이 검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저놈의 무기는 대체 어디서 저렇게 꺼내는 거야?"

여자가 유현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무리 봐도 무기가 들어갈 만한 공간은 없어 보이는 옷인데, 벌써 검이 두 자루째 나왔다.

특히 오른손에 들고 있는, 처음 꺼냈던 검은 왜인지 아까보다 짧아진 것 같았다.

"잡아서 뒤져보면 될 텐데."

"쩝. 마음 같아서는 죽이고 싶거든. 근데 왜 살려두라는 건지 원."

"대장의 악취미겠지."

두 사람은 다시금 합공을 준비했다.

그러던 그때.

어둡던 관제소에 빛이 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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