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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없어졌어!
포탈로 향하던 길.
유현은 엘리스와 마주쳤다.
그녀는 동생을 구해달라며 소리쳤고, 유현은 길이 바빠 그녀를 지나쳤다.
뒤통수로 닿았던 그녀의 처절한 비명은 아직도 귀에 선하다.
'잘 피했으려나.'
모르겠다.
경황이 없어 그녀를 챙길 틈이 없었다.
'일단 찾아는 보겠는데...'
연구실을 나온 유현은 곧장 도시를 향해 나아갔다.
허공을 비행하는 그의 뒤로는 꼬리 마냥 호야와 미우가 휘날리고 있었다.
"우우우욱!"
"토, 토할 거 같아!"
격한 움직임에 멀미하는 두 사람. 먹은 것도 없건만 미우는 헛구역질을 반복했고, 비행에 익숙한 호야는 가까스로 버티고 있었다.
'빌어먹을 놈.'
위아래로 거칠게 휘둘리는 와중에도 호야의 눈빛은 유현의 등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놈은 뭔가 아는 게 분명해.'
아까 전 그 여자와의 대화도 그렇고, 대충 알겠다며 중얼거리던 것도 그렇고.
그 외에도 여자와 겹치는 중대한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마법.'
여자가 보여준 여러 능력들.
허공에 나타난 포탈이라든가, 갑자기 돋아난 날개라든가.
심지어는 강한 충격파를 사용하기도 했다.
'스크롤은 아니야.'
스크롤이라면 찢는 행동이 있어야 하는데 포탈은 아무런 징조도 없이 갑자기 등장했다.
'그건 분명 마법이야.'
여전히 명확한 근거는 없지만, 자신의 직감이 소리치고 있었다.
세상에는 마법이 존재하고, 유현과 여자가 사용한 게 바로 그것이라고.
'포탈, 충격파, 날개, 여러 원소 능력 등.'
거기까지 생각이 이어지니 자연스레 의문이 들었다.
'대체 둘이 무슨 관계길래?'
차원 이동이니 뭐니 떠들던데, 혹시 다른 세계의 사람일까?
"쿡."
호야는 저도 모르게 코웃음 치고 말았다.
다른 세계라니. 아무리 마법이 존재한다고 해도 거기까지 가는 건 너무 지나친 상상이었다.
'설마 그런 만화 같은 일이 있을 리가...'
그때, 호야의 몸이 크게 출렁였다. 비행에 익숙한 그에게도 버티기 힘겨운 움직임이었다.
"우욱."
"쿨럭."
호야와 미우는 구역질을 삼키며 원망스러운 눈으로 유현을 바라보았다.
유현은 그들에게 일절 관심을 주지 않은 채, 말 그대로 범죄자답게 취급했다.
그의 관심은 오직 지상에 쏠려 있었다. 생존자를 구하고, 적을 죽이는 것이 목적이었다.
'테러의 실마리라도 알 수 있을까 싶어 바로 찾아갔건만.'
호야를 찾아간 건 실수였다.
결과적으로 아주 소득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또 목숨을 잃었을 누군가를 생각하면 그리 현명한 선택도 아니었다.
'그나마 다른 애들은 안전해서 다행이지.'
누군가 죽더라도 가까운 사람이 죽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나마 그 사실이 마음의 위안이 되었다.
"꺄아아아악!"
도약과 착지를 반복하며 얼마나 움직였을까. 유현이 도심부에 진입한 순간, 근처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유현은 로프의 길이를 짧게 줄여 포로들과의 간격을 최소화한 뒤 비명이 들려온 곳 인근 건물 옥상에 착지했다.
적이 누구인지, 생존자가 몇 명인지. 상황부터 파악하는 게 우선이었다.
"캬아아아아!"
"크아아!"
거리는 아수라장이었다.
무너진 건물의 자재가 거리를 가득 메웠고, 전복된 차량과 시체가 곳곳에 보였다.
그 거리 위에 몇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수십의 개량 짐승들이 사람들의 주변을 포위한 상태였다.
'메이코?'
꽤 거리가 있었지만, 유현은 그들이 누구인지 곧장 알아차렸다.
메이코와 타치바나를 비롯한 일본팀이었다.
인원이 몇 안 되는 걸 보니 뿔뿔이 흩어진 모양이었다.
"아, 아무나 도와줘!"
온몸을 벅벅 긁어대며 소리치는 메이코. 알아볼 수 있었던 건 그녀의 행동 덕분이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도 긁어대다니. 내가 걸었지만, 상당히 심각한 저주긴 하군.'
유현은 무너진 건물의 꼭대기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들을 구하는 게 내키지는 않았지만, 눈앞에서 아는 이가 죽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유, 유현!"
"유현님!"
쇠꼬챙이를 손에 든 쿠로가네가 그의 등장에 반색했다.
그들의 모습을 보아하니 이들 역시 힘을 쓸 수 없는 것 같았다.
'원인은 음료수에 탄 약물.'
안칠성에게 전해 들었고, 호야를 통해 확신 지었다. 녀석은 다른 중요한 정보는 몰라도 이런 사소한 것들은 알고 있었다.
'못해도 며칠은 능력을 사용할 수 없다고 했지.'
해독제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능력을 사용하고 싶다면, 자연적으로 회복되는 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따, 딱히 네 도움 따윈 필요 없는데 네가 원한다면..."
"뭔 헛소리야. 그냥 간다 그럼?"
"아, 아닙니다! 메이코 말은 무시하시고 저희를 제발 구해주십쇼!"
쿠로가네가 헛소리를 나불대는 메이코를 뒤로 밀치며 간곡히 사정했다.
뒤로 넘어진 메이코가 사나운 눈으로 쿠로가네를 노려보았다.
"야! 밀면 어떡해!"
"메이코! 제발 입 좀 닥쳐!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어!?"
쿠로가네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메이코가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사납게 치켜 올라갔던 눈썹이 반성하는 강아지 마냥 아래로 구부러졌다.
"그, 그렇게 소리칠 건 없잖아…."
유현은 그 모습에 실소했다.
얼마나 난리를 피워댔으면, 저 쿠로가네가 메이코를 윽박지르기까지 할까.
"뒤로 물러나 있어."
"가, 감사합니다!"
상황 파악이 빠른 쿠로가네가 넘어진 메이코를 데리고 급히 뒤로 움직였다.
유현은 손목에 묶어두었던 로프를 풀어 건물의 철근에 묶었다.
"도망칠 생각 마라."
두 사람에게 경고한 유현은 곧장 적을 향해 쇄도했다.
유현의 경고가 있었지만, 그 틈을 놓칠 호야와 미우가 아니었다.
"호야. 그쪽 끊어봐."
미우의 말에 호야가 깃털을 이용해 밧줄을 자르기 시작했다.
슥삭슥삭. 나무를 톱질하듯 밧줄 위를 오가는 깃털 몇 가닥.
하지만 왜인지 좀처럼 깃털이 밧줄을 파고들지 못했다.
"호야, 뭐해? 왜 날을 안 세워?"
"세웠어. 근데 안 잘려...!"
"뭐하냐?"
순식간에 주변의 짐승을 소탕한 유현이 자리로 돌아왔다.
밧줄을 자르던 깃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 아무것도."
"이게 생긴 거랑 다르게 평범한 밧줄이 아니라서 말이야."
"......"
[로프]
허공에서 나타난 더 두꺼운 밧줄이 두 사람의 몸을 더 강하게 휘감았다.
이전에는 조금의 자유가 있었다면, 이제는 정말 꼼짝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얌전히 있어."
"......쳇."
순식간에 상황을 마무리 지은 유현을 향해 일본팀이 후다닥 달려왔다.
"역시 유현님이야! 정말 괴물 같은 몸입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땅에 무릎이 닿을 듯 바짝 조아리는 쿠로가네.
메이코와 타치바나를 제외한 다른 이들도 고맙다며 고개를 숙였다.
"뭐해! 얼른 인사안 드리고!"
쿠로가네가 뻣뻣히 고개를 세운 메이코와 타치바나의 머리를 강제로 눌렀다.
줄곧 봐왔던 모습과는 다른 광경에 유현은 조금 놀랐다.
'행동에 거침이 없어졌네.'
쿠로가네 나름대로 성장한 걸까.
아니면, 그동안 참아왔던 게 상황이 이렇게 되며 터져버린 걸까.
왜인지 후자일 것 같았다.
"너희 어디 갈 데 없지?"
"일단 안전한 건물을 찾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관제소로 가. 너희 나라에 포탈 열어달라고 하면 열어줄 거야."
"마음이야 그러고 싶지만, 걸어가기에는 거리가 상당해서..."
유현은 한 번 더 로프 마법을 사용했다. 마나로 이루어진 굵은 줄이 허공에서 뱀처럼 꾸물거렸다.
"가다가 토할 수도 있는데, 상관없으면 데려다주고."
***
테러가 발발된 이후.
각 국가에서는 자국민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긴급하게 대책 본부를 설립했다.
일본 역시 그랬다.
비상 대책 본부에 모인 관계자들과 각 기관의 수뇌들은 머리를 맞댄 채 여전히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었다.
"적어도 학원의 아이들만큼은 데려와야 합니다!"
"벌써 반나절이 넘게 같은 주제로 떠들고 있군요. 데려와야 하죠. 하지만 무슨 수로요? 자국의 헌터를 보내기에는 위험 부담이 큽니다. 적들은 스카이 아일랜드의 주둔 부대를 무너뜨릴 정도의 전력을 갖췄고, 길드들 역시 차출에 반대하고 어요."
"그렇다고 계속 이렇게 두고 보기만 할 수는…."
자리가 마련되고 상당히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이야기는 제자리였다. 득에 비해 실이 커질 확률이 높은 상황. 누구도 쉽게 결단 내릴 수 없었다.
"그럼 자위대를 파견하는 건..."
"멍청한 소리 하지 마세요. 헌터도 위험한 곳에 자위대를 파견한다고 뭐가 되겠습니까?"
회의실의 문이 벌컥 열린 건 그때였다.
한껏 신경이 예민해져 있던 수뇌들은 그 무례한 방문에 그쪽으로 사나운 시선을 던졌다.
"허억, 허억."
"뭡니까? 노크도 없이."
어디 소속인지 모를 직원이 휴대전화를 손에 든 채 숨을 골랐다.
"여기, 여기 포탈 관제소에서 연락이..."
"답답하군."
회의석에 앉아 있던 한 사람이 일어나 직원의 손에서 전화를 낚아챘다.
심각하던 그의 표정이 전화가 이어질수록 점점 밝아졌다.
"그, 그게 정말이요?"
그의 반응에 다른 우두머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지?"
"좋은 일이라도 생긴 건가?"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걸지도 몰라."
전화를 받았던 남자가 전화를 내린 채 다른 이들을 둘러보았다.
그 표정에는 희망이 가득했다.
"지금 일본 팀 일부가 포탈 관제소에 있다는군. 포탈을 열어주면 당장이라도 넘어올 수 있어!"
"뭐? 그 난리 통에 거기까지 갔다고?"
"한국의 아카데미 학생이 도와줬다는구만!"
라이벌이나 다름없는 이웃 국가가 거론되자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그 학생은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건가!?"
"수상하군. 다른 이들은 모두 피해를 봤는데 그 학생만 멀쩡해?"
누군가는 의심을 시작한 와중.
전화를 든 이가 다시 스피커에 귀를 가져다 대더니 곧 탁상 위에 스마트폰을 올려두었다.
-헛소리하지 말고 빨리 포탈이나 열어.
스피커폰을 통해 새어 나온 건 낯선 언어였다.
그게 한국 학생의 목소리라는 건 대부분이 알아차렸다.
다만 모두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뭐라는 거야?"
"통역 데려와!"
그때, 다시금 같은 목소리로 모국의 언어가 들려왔다.
-빨리 포탈 열라고! 등신들아!
난데없는 욕설에 곧장 격앙된 반응이 튀어나왔다.
"이런 버릇없는!"
"누구냐! 이름을 말해!"
이번에는 다른 이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빠져나왔다.
-지금 그걸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어서 포탈을 열어주세요! 여긴 전쟁터란 말입니다!
목소리의 뒤로 흉포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앉아 있던 수뇌들의 등줄기를 타고 오소소 소름이 돋아났다.
모두의 시선이 가장 상석을 차지한 내각 총리에게 돌아갔다.
"열게!"
"각하! 섣불리 열었다가는 다른 짐승이..."
"그 정도는 헌터들에게 맡겨도 되잖나! 넘어와봤자 몇 마리나 넘어온다고!"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간접적으로 깨달은 수뇌들은 노인의 말에 따라 모든 절차를 무시하고 포탈 개방을 명령했다.
"곧 포탈이 열릴 거야. 바로 넘어오게!"
-감사합니다!
뒷배경으로 다른 소리가 끼어들었다. 긴장감으로 고요해진 회의실에 그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크아아아!
푸확!
짐승들의 울음소리와 연신 이어지는 거친 파육음. 그 소리를 듣던 수뇌 하나가 급히 전화를 붙잡았다.
"지, 지금 싸우고 있는 게 정확히 한국의 누군가!?"
수화기 너머로 이어지는 짧은 침묵. 곧 들려온 이름에 모두가 낮게 탄식했다.
-유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