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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66화 (166/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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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네가 어떻게 여기에!?"

그 말에 유현이 싱긋 웃었다.

"그때 날 찾아왔을 때. 내가 널 그냥 보낼 거라고 생각했어?"

"...!"

"너처럼 머리가 나쁘진 않아서 말이야."

호야가 허둥거리며 자신의 몸을 더듬었다. 그 반응에 유현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내가 무슨 위치추적기라도 달아 뒀다고 생각한 모양인데."

"그럼 뭔데! 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거야!"

"그건 알아서 생각하고…."

유현의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향했다.

그의 손 아래에 깔린 채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있는 여자의 뒤통수가 보였다.

"우리도 할 이야기가 많지?"

유현이 말을 끝맺은 다음 순간.

높은 밀도의 마나가 움직이는 게 그의 감각에 느껴졌다.

유현은 재빨리 손을 놓고 뒤로 물러났다.

직후, 강한 파동이 여자의 일대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날려 보냈다.

펑!

사방으로 처박히는 무너진 천장 자재와 연구 자료들.

한바탕 난리를 피운 여자가 옷을 탁탁 털며 일어 섰다.

"숙녀한테 너무 거칠잖아."

"숙녀? 숙녀가 아니라 할머니겠지."

정곡이었는지 여자가 미간을 찌푸렸다. 장난기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몇 살인 줄 알고 그런 말을 해?"

"천 년은 더 살았겠지."

"윽…."

유현이 그것 보라며 여자를 향해 턱짓했다.

"잡담은 집어치우고, 진지하게 이야기나 해보자고."

"어떻게 이렇게 빨리 왔어?"

여자도 유현이 이곳에 올 거라는 건 대강 예상했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호야에게 걸린 추적 마법을 그녀는 알아차릴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적당히 놀아주고 자리를 피하려 했는데 타이밍이 겹쳤다.

케이디의 간부 놈들이 좀 더 날뛸 줄 알았거늘, 그들이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친구들은 어쩌고? 다 죽게 놔둔 거야?"

"챙길 사람은 다 챙겼어."

포탈 관제소는 예상대로 닫혀 있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은 유현의 요청을 받아들여 다시 포탈을 열어 주었다.

관제소까지 가는 길이 조금 멀긴 했지만, 큰 고난은 없었다.

일행의 기척을 느끼고 기껏해야 다가온 건 케이디 놈들이 풀어놓은 개량 짐승들 뿐.

케이디 간부나 조직원의 습격은 없었다.

"호오. 한서희는 꼭 필요했을 텐데. 용케도 보냈네."

"한서희에게 접근한 간부가 한 놈 있긴 했지."

한서희를 데려가려던, 실을 사용하는 케이디의 간부.

놈과 싸웠고, 승리했다.

정보를 얻기 위해 목숨을 빌미로 협박했지만,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했다.

녀석이 순식간에 제 실로 제 목을 끊어버렸으니까.

"얼굴을 보니 그리 만족스러운 결과는 없었나 본데."

"그래. 곧장 여기까지 튀어온 것도 그 이유지."

유현이 호야와 미우를 돌아보았다. 그의 두 눈동자에 담긴 날카로운 적의에 두 사람은 흠칫 몸을 떨었다.

"그런데 설마 너까지 있었을 줄이야. 만난 김에 물어보자. 너, 대체 정체가 뭐냐?"

"어머. 지난번에 만나고 깨달은 줄 알았는데?"

"네가 나이 많이 처먹은 드래곤이라는 건 알고 있어. 용언을 사용하고, 차원을 넘어온 것만 봐도 뻔하지."

여자가 말없이 입꼬리를 올렸다. 유현은 여자의 웃음에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근데 그게 다야. 네 목적이 뭐고, 왜 내게 접근했는지. 정작 중요한 것들은 하나도 몰라."

유현이 전방으로 손을 뻗었다.

여자를 향해 금방이라도 쏘아질 것처럼 손끝으로 마나가 모여들었다.

"그러니 말해. 억지로 부는 것보다는 그편이 나으니까."

"억지로? 한번 해 보지 그래?"

"못할 것도 없지."

곧장 유현의 손에서 불꽃이 뿜어졌다. 직선으로 뻗어나가 순식간에 전방을 집어삼키는 뜨거운 홍염.

유현이 마나를 거두었을 때.

그곳에 남아있는 건 한 때 무언가였던 재였다.

"역시 용사님이야. 강하다니까."

위로 점프하여 가뿐히 공격을 피한 여자가 다시 지상으로 착지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내 입을..."

유현은 곧장 발을 튕겼다.

온갖 마법이 추진력을 더 했고, 유현은 순식간에 여자의 앞에 당도했다.

빠각!

주먹이 여자의 턱을 강타했다.

뒤로 한참을 날아 벽에 처박히는 여자.

유현은 멈추지 않고 다시 발을 튕겼다.

쾅!

유현은 벽에 처박힌 드래곤을 향해 쉼 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연신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호야와 미우는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저, 저러다 죽겠어."

미우의 말에 호야가 깃털을 띄웠다. 자신 역시 여자에게 궁금한 게 많았다. 저대로 여자가 죽게 방치할 수는 없었다.

파바박!

날아간 깃털들이 그대로 유현의 등에 처박혔다.

동시에 유현의 주먹질이 멈췄다.

줄곧 주먹을 날리고 있던 벽 아래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

유현이 뒤를 돌아보았다.

호야와 미우. 그리고 그 옆에 드래곤이 있었다.

"후후. 역시 챙겨주는 건 핏줄밖에 없는 건가~?"

"으아아!"

호야가 기겁하며 물러났다.

"어, 언제 여기에!"

"어머. 그렇게 놀랄 건 없지 않니?"

"방금 뭐라고 했어? 핏줄이라고?"

당황한 호야와 달리 미우는 침착하게 여자의 말을 포착했다.

"내가 그랬나?"

"응. 핏줄이라고 했어."

"뭐, 틀린 말은 아니니까~"

"제대로 말…."

미우가 그녀를 붙잡으려던 순간.

눈앞으로 무언가 쏜살같이 스쳤다. 이윽고 울려 퍼지는 파괴음.

조금만 빨리 움직였다면 휘말렸을 공격이었다.

미우가 뻣뻣해진 고개를 돌렸다.

반대편 벽에는 유현의 주먹이 꽂혀 있고, 여자는 그 위, 허공에 떠 있었다.

"나, 날개?"

호야의 날개와는 다른 형태의 날개였다. 마치 파충류의 날개와 비슷한 그것이 힘차게 날갯짓하고 있었다.

"크윽!"

과격한 펄럭임이 만들어낸 바람이 두 사람을 덮쳤다.

공간이 협소했기에 그 힘은 분산되지 않고 강하게 몰아쳤다.

하지만 누구도 그 바람을 피하지 않았다.

"핏줄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바람을 정통으로 맞으며 소리치는 호야. 반드시 들어야 했다.

"오늘은 손님이 너무 많아. 언젠가는 다시 만날 테니, 그날을 기다리렴~"

그 말과 동시에, 여자의 뒤쪽에 커다란 일렁거림이 생겼다.

"참, 그리고 우리 용사님 유현.

네 생각처럼 나는 자유자재로 차원을 넘어 다닐 수 없어. 차원 이동은 마법으로만 가능한 게 아니니까."

"......뭐?"

"너도 알잖아. 판대륙에 소환되는 존재가 너 하나만은 아니라는 걸."

말이 끝난 직후, 검푸른 일렁거림 사이로 스며들 듯 사라지는 여자.

호야는 깃털을 쏘아 보냈고, 유현도 재빠릴 허공으로 마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여자와 게이트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두 공격은 애꿎은 천장을 가격했다.

쾅!

천장 일부가 무너져내리며 상황이 일단락됐다.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 된 연구 자료실의 풍경.

폭풍전야의 고요함처럼 폭풍이 지나간 뒤에도 잔잔한 고요가 남았다.

"......"

유현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여자가 했던 의미심장한 말들이 뇌리에 맴돌았다.

'자유자재로 넘어갈 수 없다니. 용언을 사용하는 걸로 봐서는 고룡(古龍)이 분명한데.'

그런 고룡조차 차원 이동은 어려운 걸까.

사실 따지고 보면, 모두 자신의 추정이었다.

오래된 드래곤은 마법의 정점에 오르기도 하니, 자연스레 차원 이동도 가능하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기야. 차원 이동이 쉬운 일도 아니고.'

그럼 대체 저 드래곤은 어떻게 넘어온 걸까.

차원 이동은 마법으로만 가능한 게 아니라고 말한 걸 보면, 마법 이외에 무언가 다른 수가 있는 것 같았다.

'마법과 기술의 결합?'

하지만 대체 어떤 기술이 마법과 하나가 되어 작동할 수 있단 말인가. 판대륙에 그런 기술이 있을 리 없다.

'이건 일단 둘째치고.'

답이 나오지 않는 궁금증을 계속 물고 늘어져 봐야 제자리에서 맴돌 뿐이다.

유현은 드래곤이 남긴 다른 말로 생각을 옮겼다.

'판대륙에 소환된 존재는 나 하나만이 아니다.'

어렴풋이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설마 그게 사실일 줄이야.

'대체 누가 또 소환된 거지?'

용사들일까? 아니면, 평범한 시민? 범위를 넓히면 끝도 없으니 우선 용사로 범위를 좁혀보자.

마왕을 토벌하기 위해 존재했던 여러 용사.

일단 그들은 아닐 것 같았다.

만약 그들이 지구에서 소화된 존재들이라면, 자신처럼 똑같이 특별한 힘을 얻었을 텐데, 그 힘을 가지고 군단장 하나조차 죽이지 못한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군단장도, 마왕도 전부 내가 죽였어.'

아니면, 그냥 싸우는 게 싫었던 용사일까? 그렇다면 이해가 된다.

아무리 강한 힘이 있다고 해도 싸울 의지가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니까.

'그러고 보니 여섯 번째 용사를 제외하고는 용사가 죽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어.'

여섯 번째 용사가 죽었기에, 직접 제국으로 가 용사가 되기를 자처한 것이다. 어쩌면 전대 용사 중 한 명쯤은 여정을 떠났다가 어딘가로 은둔한 게 아닐까.

'잠깐…. 그럼 설마 그 이야기도?'

판대륙과 비슷한 세계의 풍경을 담은 수많은 판타지 작품들.

그 작품의 근간이 되는 건 틸칸이 펴낸 소설이었다.

'설마 어쩌면….'

틸칸이 판대륙에서 지구로 돌아온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법 앞 뒤가 맞는 이야기였다.

'혹시 틸칸이 저 드래곤과 지구로 넘어왔나?'

드래곤은 직접 차원을 넘어오지 않았다. 말하는 걸로만 봐서는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던 것 같다.

'그게 틸칸일 가능성도 있어.'

솔직히 확률은 희박하다.

그래도 적당히 앞뒤가 들어맞으니 아예 불가능한 이야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부스럭.

유현이 추리를 이어가던 그때.

뒤쪽에서 소음이 들려왔다.

유현은 그제야 이곳에 찾아온 목적을 떠올렸다.

"......"

유현의 시선이 뒤로 돌아갔다.

살금살금 자리를 벗어나려던 호야와 미우가 그의 레이더에 딱 포착되었다.

"둘 다 거기 가만히 있어라."

호야와 미우는 살금살금 발 뒤꿈치를 세운 채 걸어가던 그 자세 그대로 굳었다.

유현은 성큼성큼 그들에게 다가갔다.

"말해야겠지?"

"......"

유현의 양손이 두 사람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할 말 없는데."

미우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

"난 들을 게 아주 많은걸?"

유현 역시 아무렇지 않게 대꾸하고는, 두 사람을 강제로 앉혔다.

헛짓하지 못하도록 로프 마법을 활용하여 두 손과 발을 묶었다.

"이렇게까지 할 건 없잖아!"

"너희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아직 실감이 안 드냐?"

소리치는 호야를 향해 유현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지금도 밖에서 사람이 죽어가고 있어. 이미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너희는 그 범죄에 가담했지."

"......"

"우선 이것부터. 아까 그 여자랑은 아는 사이인가?"

유현이 호야에게 물었다.

핏줄이니 뭐니 떠들던 걸 유현도 들었다.

하지만 호야에게서 별 다른 특별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몰라. 저번에 네 대기실 앞에서 본 게 다야."

"그럼 그 질문은 됐고. 너희는 왜 여기 있어? 다른 놈들은 생존자 찾는 데 혈안이 돼 있더만."

"그건 룬석인지 뭔지 하는 돌멩이를…."

"호야! 입 다물어!"

미우의 고함에 호야가 헙, 하며 입술을 붙였다. 그가 물어본 대로 떠들 이유가 없었다.

"룬석. 룬석이라..."

왜 룬석이 지구에 있는지, 의문스러웠지만, 두 사람에게 물어봐도 알 리가 없었다.

이건 드래곤에게 직접 물어봐야 할 질문이었다.

"계속 말해봐. 어쭙잖게 감추려 하지 말고."

목소리에 담긴 살의가 은은하게 그들을 압박했다.

호야가 미우의 눈치를 살폈다.

미우 역시 숨이 턱턱 막히기는 마찬가지. 머릿속으로 온갖 선택지가 바쁘게 오갔다.

그 끝에 나온 결론은, 말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도 자세한 건 몰라. 호야가 본부로부터 돌멩이를 가져오라는 임무를 받았고, 가지러 왔다가 그 여자를 만났어. 그게 다야."

"그게 룬석이라는 건 어떻게 알고 챙겼대?"

"룬석이 뭔지 모른다니까. 간부가 그랬어. 그 돌멩이가 호야 손에 들어가면 빛을 낼 거라고."

유현이 홱 고개를 돌려 호야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가 몹시 흔들리고 있었다.

"...빛이 났어?"

호야는 유현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허."

유현이 탄식했다.

룬석은 판대륙에 존재하는 온갖 마석중 최상위 등급에 속하는 마나의 결정체다.

한 마법사가 일생을 바쳐 일궈낸 마나가 그 안에 들어있다.

그게 반응한다는 건 상당한 마법의 경지에 올랐거나, 그 핏줄 자체가 마법에 깊이 연관된 혈통일 경우 밖에 없다.

'핏줄...'

이제야 아까 전 드래곤이 했던 말이 이해가 된다.

드래곤과 호야의 관계.

둘은 피로 얽힌 사이였다.

'대체 그게 어떻게 가능해?'

드래곤이 자식이라도 낳았다는 걸까? 대체 누구랑? 언제? 어디서?

평범한 짝짓기로?

온갖 물음표들이 혼란스럽게 머릿속을 떠다녔다.

'하지만 이놈한테 별다른 특이점은 느끼지 못했는데.'

룬석은 예민하다. 자신이 느끼지 못한 걸 느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럼 답은 나왔다.

핏줄로 연결되어있지만, 대가 이어지며 그 힘이 옅어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이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옅어진 게 이상하긴 하다만 그 역시도 단순한 이유일 듯했다.

'혼혈이겠지.'

어떤 피가 어떻게 섞여 있는지는 모르지만, 꽤 복잡하게 얽혀 있을 것 같다.

"대충 알겠군."

"...뭐? 당신 뭔가 알고 있어?"

"네가 알 건 없고. 또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내가 알 게 없다니! 내 출생의 비밀인데!"

유현이 호야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입 다물고 질문에 답이나 해. 간부는 총 몇 명이지? 섬에 뿌려진 짐승은 총 몇 마리고. 그들의 목적은?"

유현은 두 사람에게 정보를 얻기 위해 여러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성과는 없었다.

"이건 뭐, 아는 게 거의 없군."

"말했잖아! 우린 말단이라고!"

"그렇다고 풀어줄 수는 없어. 너흰 범죄자니까."

유현은 두 사람을 꽁꽁 묶은 로프를 자신의 손목에 연결했다.

"얌전히 잘 따라와라."

모른다면, 아는 놈을 찾아 나서는 수밖에.

놈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그리고 겸사겸사, 아는 이들을 구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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