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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64화 (164/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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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이 무너진 직후.

문이 부서지며 안칠성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으윽!"

거칠게 바닥을 구르는 안칠성.

쳐들어올 적에 대비하여 급히 몸을 일으켰지만, 적들의 공격은 없었다.

"괜찮아요?"

대신 그에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칠성은 미간을 찡그리며 어둠 속을 바라보았다. 곧 거기서 유현이 걸어 나왔다.

"너, 너!"

"현아!"

뒤쪽에서 긴장을 머금고 있던 메이블이 유현을 향해 절뚝이며 달려갔다.

이내 유현을 덥썩 껴안는 그녀.

찾아온 안도감에 메이블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상당히 과격한 환영이었다.

"어디 갔다가 이제 오는 거야!"

메이블이 울분을 토하듯 소리쳤다.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유현은 어색하게 뒤통수를 긁적였다.

"잠깐 볼 일이 생겨서…."

"그래도 혼자 가면 안 되지! 진짜 죽는 줄 알았다고…."

메이블은 유현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은 채 울었다.

처음에는 주르륵 흘리던 눈물이 곧 흐느낌이 되었다.

유현은 말없이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조금 과한 반응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입장. 메이블은 죽음에 익숙하지 않다. 이처럼 죽음이 가까이 다가온 건 처음일 테니 이해 못 할 반응은 아니었다.

'능력을 사용할 수 없다는 상실감까지 겹쳤겠지.'

능력자에게 능력을 빼앗으면 일반인과 다를 게 없다.

거의 평생을 능력자로 살아오다가 갑자기 그런 상황에 부닥치게 되면, 누구라도 정신적인 데미지가 상당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상황에서 메이블이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고생하셨어요."

아마 그 모든 건 안칠성 덕분일 터. 산전수전 다 겪은 그가 없었다면, 유현은 소중한 사람을 또 잃었을 지도 모른다.

"좋은 타이밍이었다."

안칠성이 힘없이 웃으며 엄지를 내밀었다.

만약 유현이 조금만 더 늦었다면 자신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으리라.

"일단 좀 앉자."

유현은 메이블을 객실의 침대 위에 앉혔다.

조금 진정됐는지 메이블이 울먹거림을 멈췄다.

"다쳤네?"

유현의 시선에 메이블의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보, 보지마."

부끄러운지 다리를 가리려는 메이블. 상황이 진정되니 뒤늦게야 옷이 너무 짧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많이 아파?"

"가만히 있으면 따끔거리고, 움직일 때는 아파."

유현은 메이블의 손을 치우고 유심이 상처를 들여다보았다.

상당히 깊은 상처.

하지만 단순히 베인 상처였기에 회복 마법을 사용해도 문제 될 건 없었다.

[회복]

유현은 두 사람의 앞에서 마법을 사용했다. 돋아나는 새 살을 보며 메이블이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안칠성 역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뭐, 뭐야?"

"어떻게 한 거냐?"

"움직여 봐."

메이블이 유현의 말에 다리를 움직였다.

전혀 느껴지지 않는 통증.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멀쩡했다.

"와. 하나도 안 아파."

"이게 당최 무슨..."

"간단한 상처는 치료할 수 있어요. 그냥 특성이라고 생각해요."

"......"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듯 평온하게 말하는 유현.

그 단조로운 말투에 안칠성은 어이가 없었다.

"그걸 그렇게 마음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냐?"

"그냥 받아들여요. 뭐, 새로운 것도 없잖아요."

"새로운 게 없다니? 회복 특성이 어떤 힘을 가지는지 몰라?"

"알긴 아는데, 이제 그만 놀랄 때도 되지 않았냐는 말이죠."

"......이건 경우가 다르잖아, 인마."

이미 몇 번이고 유현의 능력에 경악했었다.

하지만 번번이 새로운 능력으로 사람을 놀라게 만들었다.

'발전이면 몰라도, 이건 뭐 끊임 없이 새로운 게 나오니 원.'

누구라도 놀랄 만한 일이거늘, 본인은 너무나도 태연하다.

그 말투처럼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일인 것 같았다.

"또 뭐 숨겨둔 건 없지?"

"나중에 더 보여드릴게요."

"......"

안칠성은 입을 다물었다.

대체 또 뭐가 남아 있는 걸까.

호기심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현이는 양파 같아."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메이블이 툭 한 마디를 던졌다.

"양파?"

"까도 까도 뭐가 계속 나와."

안칠성이 작게 웃었다.

참으로 그녀다운 비유였다.

"슬슬 나가죠. 모이는 것 같은데."

상당히 소란스럽게 등장한 탓에 해당 층은 물론이고 다른 층에 있는 녀석들에게도 어그로가 끌렸다.

적들이 다가오는 걸 느낀 유현은 방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 창문 앞에 섰다.

쨍그랑!

망설임 없이 통으로 된 창문을 박살 내는 유현.

강풍이 방안으로 몰아쳤다.

바람에 잔뜩 실린 혈향에 유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난장판이군.'

도시 곳곳에 강한 적들이 산재했다. 이곳에서도 그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안전한 곳이 있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이들을 탈출시키는 것이다.

직접 외부로 데려다주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니 포탈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관제소가 멀쩡할 것 같지는 않은데.'

설령 관제소가 멀쩡하다고 해도 포탈이 작동할지 의문이다.

사건이 터지고 포탈이 연결된 국가들은 곧장 연결 통로부터 끊어버렸을 가능성이 크다.

'일단 관제소로 가자.'

닫힌 포탈은 열어달라고 하면 그만이다.

대한민국에도 포탈은 있으니 열어 달라고 하면 열어줄 거다.

자국민의 도움 요청을 무시할 수는 없을 테니까.

"둘 다 이리 와요."

"너 설마 여기서 뛰어내리려고?"

"그게 빠르잖아요."

두 사람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유현은 망설이는 둘을 붙들고 곧장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메이블과 안칠성은 비명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

스카이 아일랜드의 남쪽, 연구 단지.

연구 단지는 다른 곳과 달리 아직 초토화되지 않았다.

연구 단지를 최우선으로 지키라는 명령 아래 특수 군대들이 움직인 까닭이었다.

"크아아아아!"

"우어어어!"

전투가 한창이었지만, 척 보기에도 승기는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연구 단지 곳곳을 가득 채운 개량 짐승들.

압도적인 적의 물량 앞에 특수 군대의 전멸은 머지않아 보였다.

"끄아아아악!"

"도망쳐!"

한계까지 밀린 전선.

군인들은 전투를 포기하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나둘 인원이 빠지자 전투력은 급감했고, 끝까지 대항하던 이들도 적의 이빨 아래 스러지고 말았다.

"와, 쩐다."

달을 배경으로 날개를 펄럭이던 호야가 진심어린 감탄사를 뱉었다.

한 마음이 되어 같은 방향으로 달려가는 수천의 짐승들.

전장을 가로지르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우리도 슬슬 내려가자."

호야의 발에 매달려 있던 미우가 말했다.

호야는 천천히 고도를 낮추며 땅 위에 착지했다.

짐승들이 맹렬한 기세로 그들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우웩."

땅 위에는 시체가 가득했다.

대부분 짐승들의 발에 짓밟혀 그 형체를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끔찍한 냄새가 풍겼다.

"굳이 보려 하지 마."

"자꾸 눈이 가잖아. 신기하네."

미우는 시체를 구경하려는 호야의 손목을 붙잡고 앞장 서 걸어갔다.

"정신 차려, 호야. 우리가 왜 여기에 왔는지 기억해."

"임무 정도는 나도 기억하거든?"

곧 두 사람은 함께 연구소 안으로 진입했다.

먼저 지나간 다른 조직원들의 손에 죽어 나간 연구원들의 시체가 곳곳에 보였다.

연구실을 모조리 털어가 더 수색할 건 없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목적은 단순한 연구 자료가 아니었다.

"왜 우리한테 이런 일을 맡긴 걸까?"

"말은 바로 해야지. 우리가 아니라 나한테 맡긴 거야. 널 데려온 건 순전히 내 마음이고."

다른 조직원들과 달리 호야는 본부로부터 직접적인 임무를 받았다.

대장인 백청룡조차 그 사실에 의아해 했다.

호야 역시 왜 자신이 업무를 직접 하달받았는지 의문스럽긴 마찬가지였지만, 흔쾌히 수락했다.

본부로부터 직접 내려온 임무라니. 그만큼 가슴이 두근거리는 게 어디에 있을까.

다른 이들처럼 평범한 일을 하기보다는 특별 취급을 받는 듯한 이런 임무가 훨씬 마음에 들었다.

"그래, 너 잘났어."

"맞아. 나 잘 났어."

두 사람은 목적지를 향해 나아갔다. 이미 보안 문이란 보안 문은 모두 개방되어 있었기에 목적지 앞까지 빠르게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인가 봐."

연구소의 가장 깊은 곳.

두 사람은 굳게 닫힌 문을 앞에 두고 멈춰 섰다.

다른 보안 문과 달리 이 문은 일반 연구원의 카드로는 열리지 않았다.

"잠깐만."

호야가 주섬주섬 카드키를 꺼냈다. 본부의 간부로부터 직접 전달받은 연구소장의 카드키였다.

여는 방식은 다른 문과 다르지 않았다.

보안 장치에 카드를 스캔하자 곧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철컥 소리와 함께 열렸다.

딸깍.

연구소의 전기가 나갔기에 두 사람은 챙겨온 손전등을 켰다.

내부에는 여러 가지 연구 자료들이 있었다. 바깥에 적혀 있던 대로 이곳은 연구 자료 보관실이었다.

"여기서 뭘 찾아야 해?"

미우가 물었다.

본부의 간부로부터 작전의 자세한 내용을 전달받은 건 호야뿐이었다.

"표면에 무슨 이상한 글자가 적힌 돌멩이라고 하던데."

"돌멩이? 그런 걸 왜?"

"나도 몰라. 흩어져서 찾아보자. 찾으면 말해."

두 사람은 서로 헤어져 자료실을 돌아다녔다.

연구 자료 보관실에는 다양한 것들이 있었다.

평범한 보고서부터 연구로 탄생한 특수한 물질이나 생물체들까지.

"이상한 게 많네."

스카이 아일랜드 연구소의 연구 분야는 무척 다양하다.

게다가 무척이나 도전적인 정신이 깃든 곳이었기에 다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결과 탄생한 온갖 것들이 바로 이곳에 있는 것이다.

"오오."

투명한 케이스 안에서 움직이는 괴이한 생명체를 보며 호야가 감탄했다.

"아차. 이럴 때가 아니지."

임무에 제한 시간은 없지만, 너무 늦어지면 본부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이미지를 심어줄 것이다.

호야는 다시 수색을 시작했다.

'근데 대체 그 돌멩이가 뭔데 찾으려는 거지?'

이상한 글자가 적힌 돌멩이.

그림을 봤을 때는 웬 주술에 필요한 물건인 줄 알았다.

'내가 손에 들면 빛이 날 거라는데.'

호야는 저도 모르게 피식했다.

빛이 나는 돌멩이라니.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아마 긴장한 자신을 위한 농담 아니었을까?

"호야!"

수색을 시작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저쪽에서 미우가 큰 소리를 냈다.

"나 여기 있어!"

미우가 곧장 호야를 찾아 달려왔다.

"찾은 것 같아!"

그녀의 손에 들린 작은 돌멩이들. 호야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거야?"

"응. 표면에 글자같은 게 적혀 있어."

미우가 책상 위에 돌멩이들을 늘어놓았다.

손전등을 비춰보니 그녀의 말대로 표면에 웬 글자 비슷한 게 적혀 있었다.

"이게 뭐지?"

"아랍어 아냐?"

"비슷하긴 하네."

글자라기보다는 어딘가 낙서와 비슷한 형태였다.

'이게 맞나?'

고개를 갸웃거리던 호야는 곧 돌멩이를 손에 쥐었다.

손에 들면 빛이 날 거라고 했으니, 이 돌멩이가 아니라면 빛도 나지 않겠지.

"......!"

"뭐, 뭐야? 어떻게 했어?"

처음에는 아무런 반응도 없던 돌멩이가 곧 빛을 내기 시작했다.

호야가 눈을 크게 떴고, 미우도 당황하여 말을 더듬었다.

"지, 진짜 빛이 나잖아."

"그 사람들이 빛이 날 거라고 했어?"

호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긴장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농담이라고 생각했거늘. 그게 아니었다.

"이게 어떻게..."

글씨의 결을 따라 푸른색 빛을 내는 돌멩이. 봐도 봐도 신기한 광경이었다.

"챙겼으니 돌아가자."

여전히 돌멩이에 정신을 빼앗긴 호야와 달리 미우는 침착하게 다음으로 나아갔다.

"더 없어?"

"내가 찾은 건 이게 다야."

"혹시 모르니까 더 찾아보자."

범상치 않은 돌멩이다.

이걸 하나라도 남겨두고 갔다가는 그리 좋은 시선을 받지 못할 것 같았다.

미우 역시 그렇게 생각했는지 호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가 이쪽으로 갈 테니까 너는..."

"더 없어 이제."

뒤쪽에서 들려온 말에 호야가 홱 고개를 돌렸다.

기척도 없었거늘, 뒤에는 웬 장신의 여자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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