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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63화 (163/219)

163

상식적으로 능력을 잃은 두 사람을 먼저 찾아가는 게 마땅했다.

아직은 안전지대에 있다지만, 언제 위험해질지 모르니까.

하지만 유현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병원이었다.

한상용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는 찜찜함을 끝내 떨쳐내지 못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무너진 도시와, 쓰러진 시체들 사이를 지나 도착한 병원.

폐허가 된 그곳에서 유현은 곧장 한상용을 발견했고, 뛰어 들었다.

"......"

유현은 말 없이 눈앞의 남자를 응시했다. 남자는 한서희를 들쳐 매고 있었다.

"이거, 이거. 우리가 찾아 헤메던 스타가 등장하셨구만."

"나를 알아?"

"알다마다. 대체 어디 있었어? 너 찾으려고 간부들이 얼마나 시간을 낭비한 줄 알아?"

남자는 능숙하게 한국어를 구사했다.

유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한국 사람이냐?"

"그게 중요한가?"

"...그래. 중요한 건 아니지."

유현은 쓰러진 한상용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끝까지 정신을 놓지 않기 위해 발악한 탓에 기절했음에도 눈이 완전히 감기지 않았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그의 상체.

아직은 살아있지만, 이대로 두면 죽을 것이다. 발목의 출혈이 심하다.

"혹시 지혈이라도 할 생각이라면 접어 둬. 한 번에 죽이지 않았을 뿐이지 살려둘 마음은 없으니까."

"...하."

유현은 작게 실소하더니 입을 열었다.

"꼭 날 막을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군."

"혼자서는 못하지."

유현은 순간 주변의 기류가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예민한 감각에 포착된 인기척.

곧 하늘에서, 뒤에서, 아래쪽에서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새까만 가면과 펄럭이는 망토를 착용핸 채였다.

"간부는 아니지만, 이 정도면 해볼 만하지 않을까?"

유현은 대답 대신 오른손을 펼쳤다.

오른팔에 착용한 보호대가 작동하며 마석의 마나가 그의 체내로 흡수되었다.

그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술식.

이윽고 유현이 콱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 동작이 트리거가 되며 술식에 마나가 주입됐다.

[라이트닝]

마법이 발동된 직후.

맑은 하늘에서 수십 줄기의 벼락이 내리꽂혔다.

콰과광!

번개는 정확히 적들의 머리에 꽂혔다.

순식간에 쓰러지는 적들.

뇌전의 향연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모든 적이 쓰러질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

마지막 적이 쓰러졌다.

천둥을 동반한 공격이 끝나자 주변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유현은 정전기로 곤두선 남자의 머리칼을 한 번 바라보고는 몸을 숙였다.

[회복]

한상용의 발목이 아물며 피가 멎었다. 잘린 발목은 다시 붙일 수 없다. 설령 붙일 수 있다고 해도, 섬 바깥의 병원까지 한상용이 버틸지도 의문이다.

'하필 병원이 이 모양이 되어서는.'

지금으로서는 이게 최선.

당장 목숨을 부지하는 게 발목을 붙이는 것보다 중요했다.

"......너, 그건 대체 무슨 힘이지?"

남자가 말했다.

유현이 보여준 회복의 힘.

그건 지금껏 어디서도 밝히지 않은 마법이었다.

"곧 뒤질 놈이 알아서 뭐 하게?"

유현의 말에 남자가 씩 웃었다.

가면에 가려져 표정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유현은 왠지 남자의 표정을 알 것 같았다.

"좋아. 어디 한번 해보자고."

"길게 갈 생각은 없어."

남자가 한서희를 다시 침대 위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유현은 품속에 손을 넣어 아공간에 넣어둔 마석을 꺼냈다.

두 번의 마법 사용으로 마나가 바닥난 보호대의 마석.

빛을 잃은 마석을 빼내고, 새로운 마석을 갈아 끼웠다.

이내 다시금 용솟음치는 미지의 힘. 유현은 주먹을 말아쥔 채, 곧장 발을 튕겼다.

후웅!

마나가 실린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적의 완벽한 회피였다.

다음 순간, 유현은 뒤통수로 서늘한 감각을 느꼈다.

곧장 몸을 숙이자, 이내 그의 머리 위로 기다란 실이 스쳤다.

실은 그대로 병원의 벽을 갈랐다.

쿵!

양단된 벽이 유현의 앞에 떨어졌다. 그걸 본 유현은 한 가지를 확신했다.

'날카로운 무기를 쓰는군.'

한상용의 절단된 발목.

거기에 지금 무너진 벽까지.

'소리가 크지 않아.'

검 같은 날붙이는 아니다.

아마, 아주 얇고, 눈에 보이지 않는 무기일 것이다.

유현은 두 눈에 마나를 담았다.

곧 그의 동공 위로 허공에서 반짝이는 푸른색 선이 비췄다.

무기의 종류가 무엇이든, 결국에는 마나를 사용하기 마련.

그 마나의 흔적을 찾았고, 무기의 정체 역시 알아냈다.

'실.'

실은 남자의 허리춤에서 길게 이어져 있었다.

언제 한 건지, 그 실이 마치 거미줄처럼 외부로 향하는 길을 모두 차단해버렸다.

"재밌는 짓을 하네."

"후후. 불태울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아. 고작 불꽃에 탈 만큼 약한 실은 아니거든."

"굳이 그럴 필요 있나."

유현은 품 속으로 손을 집어 넣었다.

남자는 곧장 자리를 피했다.

기다란 실을 활용해 마치 거미처럼 공중으로 올라가는 남자.

거미줄 사이를 지나 바깥까지 나간다. 졸지에 유현은 거미줄 안에 갇힌 꼴이 되었다.

"하하! 멍청하기는!"

유현을 보며 폭소하는 남자.

웃는 것도 잠시. 남자가 손가락을 타고 이어진 실들을 휘감았다.

주변을 둘러싼 실들이 사냥감을 포위하듯 서서히 그 범위를 좁히기 시작했다.

"설마 그 유현이 이렇게 쉽게 당해줄 줄이야. 처음부터 다른 간부들이랑 찾아다닐 필요도 없었잖아?"

쿠르릉.

날카로운 실이 벽과 바닥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위, 아래, 좌우 할 것 없이 막힌 상황.

남자는 승리를 확신하고 미소 지었지만, 곧 유현의 표정을 발견하고는 웃음을 지웠다.

"뒤지기 직전인데 웃음이 나와?"

죽음을 목전에 둔 유현이 웃고 있었따.

마치 비웃는 듯한, 어딘가 기분이 나쁜 웃음.

남자가 미간을 찌푸리며, 손가락을 힘껏 당겼다.

실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유언은 들어줄 생각이었는데 마음이 바뀌었어."

"그게 네 유언이냐?"

"뭐?"

남자가 반문한 그 순간.

촤아아악!

남자의 눈앞으로 뾰족한 마나가 솟구쳤다.

팽팽해지던 손가락의 실이 느슨해졌다.

끊어진 무수한 숫자의 실이 바닥에 후두둑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너 드래곤 잡아 봤어?"

유현이 허공에 떠오른 남자와 눈높이를 맞췄다.

"어, 어떻게..."

"어떻게 싫을 끊었는지 궁금해?

아니면, 내가 어떻게 너랑 같은 높이에 있는지?"

남자의 눈동자가 몹시 흔들렸다.

눈을 깜박이는 것조차 잊은 채 입을 뻐끔거린다.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이 부유했지만, 엄청난 충격 속에 무엇 하나 말이 되지 못했다.

"이게 드래곤 가죽도 뚫는 검이야."

유현이 어깨에 걸쳐두었던 검을 남자의 앞에 들이밀었다.

짧은 검신이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 서슬 퍼런 날카로움에 남자가 흠칫 몸을 떨었다.

"근데 고작 그깟 실 하나 못 끊으면 되겠어?"

"허, 헛소리하지 마!"

남자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는 다시금 허리춤에 매달아둔 실을 손으로 끌어왔다.

아니, 끌어오려 했다.

하지만 왜인지 실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게 대체 왜..."

"왜기는. 이제 너한테 없으니까."

남자가 유현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실뭉치는 어느새 유현의 손에 들려 있었다.

"어, 언제!?"

유현은 옅게 웃으며 남자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쉬익!

남자를 허공에 붙들고 있던 실이 허무하게 잘리고, 남자의 몸이 아래로 떨어졌다.

쿵!

유현도 남자를 따라 다시 지상으로 내려갔다.

"켈록!"

충격에 헛기침을 하는 남자.

유현은 곧장 남자의 머리채를 붙들었다.

"섬에 몇 명이나 왔지?"

목에 칼을 들이민 채 유현은 심문을 시작했다.

***

"으, 으음..."

한상용이 눈을 떴다.

곧장 보이는 건 별이 박힌 밤하늘이었다.

"으윽!"

기상과 동시에 찾아온 엄청난 두통. 그가 머리를 부여잡은 채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그 상태로 잠시간 고개를 숙이고 있자 곧 고통이 사라졌다.

"어떻게 된..."

그는 기절하기 직전의 상황을 떠올렸고, 홱 고개를 돌렸다.

다행히 침대 위에는 아직 한서희가 누워 있었다.

"휴. 다행이군."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한상용.

그러나 왼쪽 다리로 땅을 디딘 순간, 이질적인 감각을 느끼며 옆으로 넘어졌다.

"......"

한상용은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의 발목이 상대에 의해 절단되었음을.

'그러고 보니 그놈이 안 보이는데.'

병원을 습격해 한서희를 데려가려 했던 케이디의 간부가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야.'

만약 조카를 그대로 빼앗겼다면, 그는 제대로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에게는 자식과 다름 없는 존재였으니까.

'근데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분 거지?'

한상용은 의문을 느끼면서도 한서희를 향해 몸을 움직였다.

성인의 몸으로 바닥을 기어가는 느낌은 퍽 굴욕적이었다.

하지만 별 수 없다. 지금 움직일 방법은 이것 뿐이었다.

"끙차."

목도리를 매듯 한서희를 어깨에 두르는 한상용.

어깨에 걸치는 게 편하지만, 그랬다가는 바닥을 기어가며 한서희의 몸이 바닥에 쓸리리라.

"......그러고 보니 어디로 가야 하지?"

구조 신호를 보내기에는 타이밍을 놓쳤다.

지금 헬기를 띄웠다가는 괴물에 의해 파괴 당할 것이다.

'그렇다고 바깥에 나갈 수도 없는데.'

도시의 유혈 사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차라리 이곳에 남아 있는 게 안전할 지도 모른다.

'...일단 복도라도 나가봐야겠군.'

한상용이 문을 열려고 했다.

그러나 무언가에 막힌 듯 꼼짝하지 않는 병실의 출구.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때.

그의 시선에 문에 쓰인 빨간색 글씨가 들어왔다.

-여기서 기다려요.

한상용은 그 글자에 코를 가까이 가져다 댔다. 피 냄새가 난다. 누군가의 혈액으로 쓰인 글씨였다.

"......누구지?"

케이디의 간부는 그냥 사라진 게 아니었다.

누군가 그와 싸웠고, 승리한 것 같았다.

"설마..."

한상용은 주머니를 뒤적였다.

어딘가에 떨어뜨린 건지 휴대전화는 찾을 수 없었다.

"벌써 돌아왔을 리가 없는데..."

그의 머릿속에 유현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예상 기간은 일주일.

짧아야 사흘이 걸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가 벌써 돌아왔을 리는 없다.

'분명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런데....'

왜인지 머리와는 달리 가슴은 다른 판단을 내렸다.

***

"크아아아아!"

"크으으윽!"

안칠성은 젖먹던 힘까지 짜내며 적에게 대항했다.

의자는 물론 침대와 작은 탁자까지 활용하여 문을 막았지만, 문은 끝끝내 부서질 위기에 처했다.

금방이라도 밀어닥칠 기세로 문에 몸뚱이를 부딪쳐대는 적.

조금만 힘이 빠지면,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서, 선생님. 역시 저도 돕는 게..."

"가만히 있어라아악!!!"

허벅지에 부상을 입은 메이블은 이 상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움직임에 방해가 될 뿐이다.

'빌어먹을 지혈 때문에.'

피만 제대로 멎게 했어도, 지금 이 사단이 나지는 않았을 텐데.

안칠성은 욕지거리를 중얼거리며 더욱 더 힘을 주었다.

이미 팽창할 대로 팽창한 전신의 근육들. 어찌어찌 버티고는 있지만, 안칠성은 조금씩 한계가 다가오고 있다는 걸 느꼈다.

'너무 강해.'

그나마 이렇게 막고 있는 것도 기적이었다.

마나를 사용할 수 없는 그의 몸은 일반인과 다름 없는 상태.

그나마 덩치가 제법 있었기에, 이를 악물고 버티는 것도 가능했다.

'바깥에 도와줄 사람 없나?'

그런 안칠성의 바람에 무언가가 다가왔다.

"크아아아아아!"

또 다른 짐승이었다.

졸지에 두 마리가 되어버린 적.

놈들은 이제 서로 짝을 맞춰 번갈아가며 몸통 박치기를 날렸다.

"끄으으으으으!"

두 마리는 더 힘들었다.

안 그래도 줄어들던 체력 소모에 박차가 가해졌다.

"제발. 아무나..."

좀 도와달라고, 쥐어짜듯 말한 그 순간.

쾅!

눈앞의 천장이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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