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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61화 (161/219)

161

어두운 밤.

달빛이 드리운 수면 위로 동심원이 퍼졌다.

이내 누군가가 천천히 바다에서 걸어 나왔다.

"하루를 꼬박 있었네."

유현이 어두운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리 빠르지도 않았고, 많이 늦지도 않은, 적당한 시간이었다.

"바로 가십니까?"

그의 뒤를 따라 남자가 걸어 나왔다.

"가야죠."

유현의 손에는 투명한 유리병이 들려 있었다.

유리병 안에는 바닷물과 함께 밝은 빛을 내뿜는 약초가 들어 있었다.

해저에서 자라는 것 치고는 상당히 화려한 생김새.

처음 보자마자 아름답다는 감상이 들 만큼 유려한 모습의 물망초였다.

"효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남자 김주식은 유현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은 함께 움직이며 제법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약초가 필요한 이유와 무엇을 만들고 어디에 쓰는지 등.

"저도 연락 기다릴게요."

"최대한 빨리 연락드리겠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로에 관한 많은 정보를 공유했다.

말을 하다보니, 마음이 상당히 잘 맞은 덕이었다.

오간 이야기 중에는 유현의 길드 입단 제의도 있었다.

배신행위로 길드를 나갈 수밖에 없게 된 김주식.

다른 길드로 옮기기에도 마땅치 않았다. 만약 소용돌이에 휩쓸려간 길드원이 게이트 밖으로 나온다면, 곧장 그부터 찾을 게 분명했으니까.

새롭게 들어간 길드에서 그를 지켜줄 리는 만무했다.

그래서 유현은 그에게 길드에 들어올 것을 제안했다.

게이트를 뛰는 등의 헌터 다운 일은 없지만, 마침 공장의 경비를 위한 인력이 필요했다.

'이 사람 정도면 믿을 만해.'

고작 두 번 본 사이지만, 유현은 김주식을 신뢰했다.

두 번의 만남에서 본 그의 행동들. 남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행동은 신뢰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총 몇 명이라고 했죠?"

"저 포함해서 일곱 명입니다."

"오케이."

김주식과 함께 파티를 꾸렸던 동료들의 숫자였다.

파티가 와해된 원인은 돈.

누가 더 많은 몫을 챙겨가냐의 문제가 아니라, 적은 수입 자체가 원인이었다.

아무래도 서로의 힘을 보고 모인 게 아닌 의리와 낭만으로 뭉친 파티였기에 생길 수 밖에 없는 문제였다.

서로의 수준이 다르니 들어갈 게이트도 제한되고, 더불어 사냥이 효율적이지 않았다.

"돈 문제만 없다면 언제라도 모일 친구들입니다."

"그럼 꼭 연락하겠네요."

"아, 그렇지만 만약이 있으니..."

김주식은 무척 조심스러운 성격이었다.

빈말 한마디조차 하지 않으려는 게 눈에 보였다.

좋게 말하면 신중하고, 나쁘게 말하면 답답한 사람이다.

"돈은 원하는 대로 맞춰준다고 해요."

지금은 얼마가 들든 신뢰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한 상황.

상식을 초월하는 금액이 아닌 이상, 그들에게 지불할 돈은 걸림돌이 아니었다.

"다들 믿을 만한 사람들은 맞죠?"

"물론입니다! 제가 보장합니다!"

벌써 몇 번이고 했던 질문.

그때마다 김주식은 똑같은 대답을 했다.

신중한 그가 저렇게까지 말하니 유현의 입장에서는 놓치기 아쉬운 인재들이었다.

"그럼 진짜 갑니다."

"예. 저도 바로 떠나야겠습니다."

아직 그들이 위치한 곳은 말레섬. 언더 더 씨의 정예들은 모두 소용돌이에 휩쓸려 생사조차 알 수 없게 되었지만, 다른 길드원들 일부는 아직 섬에 남아 있다.

그가 혼자서만 나왔다면 자연스레 그를 의심하리라.

김주식은 곧장 게이트에 타고 들어갔던 이동형 로봇에 올라 바다를 가로질렀다.

유현도 잠수복을 다시 조끼의 형태로 되돌리고는 땅을 박찼다.

'자려나.'

유현은 허공을 날며 휴대전화를 꺼냈다. 시차를 계산해보면 스카이 아일랜드는 지금 새벽이었다.

'전파가 안 터지네.'

유현은 인근의 유인도 숲속에 슬쩍 착지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빠르게 연락을 취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이었다.

뚜-

신호음이 울린다.

한 번, 두 번, 세 번을 넘어 계속 이어졌다.

'안 받네.'

역시 자는 걸까.

그동안 계속 한서희의 옆을 지켰으니 한상용도 피곤할 법 했다.

'시상식은 잘 끝났겠지?'

유현은 이번에 대상을 바꿔 안칠성에게 전화했다.

이번에도 신호만이 흐를 뿐이었다.

"다들 피곤한가 보네."

우우웅.

그때, 느닷없이 휴대전화의 진동이 울렸다.

스마트폰을 집어 넣으려던 유현은 화면을 확인했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부재중 전화와 수십 통의 메신저 알림이 보였다.

터지지 않던 전파가 다시 켜지며 밀렸던 알림이 한 번에 몰려온 것이다.

"......?"

범상치 않은 숫자의 연락들.

유현은 통화 목록을 확인했다.

연락을 취한 이들도 모두 다른 사람이었다.

부모님이 가장 많았고, 한상용은 물론, 안칠성을 비롯한 다른 아카데미의 아이들도 있었다.

아이들 중 특히 연락을 많이 한 건 서혜빈이었다.

"무슨 전화를 이렇게 했대."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유현은 불안함을 느끼며 메신저를 확인했다.

S반 아이들로 구성된 단톡방은 물론, 개인 메시지로도 여러 사람에게 연락이 와 있었다.

유현은 부모님에게서 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뭐야?"

부모님이 보낸 내용들은 하나 같이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내용들이었다.

시상식에 참가하지 않아서 걱정하나 싶었는데, 계속 읽어 보니 그게 아닌 것 같았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유현은 빠르게 다른 메시지들을 읽었다.

메신저의 알림 숫자가 줄어갈수록, 눈동자의 떨림이 심해졌다.

휘이잉.

스산한 바람이 그의 주변을 휘감는다.

흘러나온 기세가 주변으로 서서히 퍼져나갔다.

숲속의 동물들이 달아나고, 나무에 앉아 있던 새들도 높이 날아갔다.

"......"

유현은 말없이 메신저를 닫고 포털 사이트에 접속했다.

뉴스를 찾아볼 것도 없었다.

이미 포털 사이트의 메인 화면은 메신저를 통해 그에게 전해진 사건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으니까.

[빌런 집단 케이디, 스카이 아일랜드 습격.]

[역대 최대 규모의 테러. 엄청난 숫자의 사상자 발생 예상.]

[테러 현재 진행 중. 정부 측의 지원 여부 새벽 내로 결정.]

유현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휴대전화를 부술 뻔했지만, 가까스로 이성의 끈을 붙잡았다.

까드득.

다문 입 안에서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요하던 그의 눈동자에는 조용한 분노가 자리잡았다.

유현은 아공간 조끼에서 팔목 보호대를 꺼내 착용했다.

어제와 오늘, 게이트에서 얻은 마석을 담아둔 가죽 주머니에서 품질이 좋은 마석들을 골라낸다.

보호대에 뚫린 여러 개의 구멍에 마석을 채워 넣었다.

이내 보호대에 새겨진 결을 따라 은은하게 퍼지는 푸른빛 에너지.

게이트 안에서 전부 사용한 마나가 다시금 느껴졌다.

유현은 그 힘을 활용해 두 다리에 마법을 부여했다.

[헤이스트]

[강화]

그의 발이 휘고, 바닥을 튕겼다.

강한 바람이 숲을 휘저었다.

***

시간은 어제로 되돌아간다.

그날의 스카이 아일랜드는 평소처럼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이른 아침, 사람들은 거리를 지나 저마다의 목적지로 향했고, 누군가는 느지막이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안칠성도 조금 늦은 시간 잠에서 깨어났다.

일어난 그에게 찾아온 건 유현의 편지를 든 메이블이었다.

-현이가 없어졌어요!

한서희를 깨울 약을 구해오겠다는 말과, 대신 시상을 해달라는 메시지를 남긴 채 홀연히 사라진 유현.

안칠성은 착잡했지만, 그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찾아 나서봤자 찾을 수 없을 테니 일찌감치 포기했다.

시간이 흘렀다.

푸른 하늘은 서서히 어두워졌고, 점잖던 거리의 모습은 어느 때보다 폭발적인 열기를 가진 축제의 현장이 되었다.

안칠성은 정장을 맞춰 입고 메이블과 함께 시상식장으로 향했다.

메이블 역시 몸 상태가 괜찮아졌기에 수수한 드레스를 입었다.

그녀의 모습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고, 여러 카메라가 플래시를 터뜨렸다.

-아주 잘 어울린다.

안칠성은 그녀에게 그런 칭찬을 했다.

메이블은 베시시 웃었고, 두 사람은 이내 시상식장에 마련된 수상자 좌석에 착석했다.

폭죽이 터지고, 화려한 조명이 시상식장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돈깨나 썼을 법한 시상식장의 풍경은 전세계로 송출되었다.

축제를 즐기던 거리의 사람들은 미래를 이끌어 갈 주역들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한국 팀의 수상은 가장 마지막에 행해졌다.

유현이 참가하지 않는 것에 많은 이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메이블의 아름다운 외모와 과열된 분위기 속에서 그런 사실은 빠르게 잊혔다.

-정말 감사합니다.

안칠성은 짧게 소감을 마치고 내려왔다.

시상식이 종료되고, 공연과 함께 뒤풀이가 이어졌다.

거리의 행인들이 축제를 즐기듯 참가자들은 음식과 음료를 마시며 지난 날의 고생을 축복했다.

맞붙었던 이들은 포옹하고, 서로를 도발했던 이들도 화해했다.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네트워킹이 이어지던 가운데.

쾅!

폭발음이 울리며 지축이 흔들렸다.

쾅!

한 번이 아니었다.

쾅!

두 번, 세 번.

폭발은 끝없이 이어졌다.

지진이라도 난 듯 뒤흔들리는 건물. 이내 천장이 무너져내렸다.

-으아아악!

-느, 능력이...!

참석자들이 그대로 깔렸다.

안칠성은 그 모습에 의문을 느끼면서도 메이블과 함께 바깥으로 도망쳤다.

왜 능력자들이 저렇게 무력하게 당한 걸까.

-크르르르.

시상식장 밖에는 몬스터들이 잔뜩 깔려 있었다.

동물의 외형을 가졌지만, 기이하리만큼 커다랗고 근육질인 적들.

시상식장에서 빠져나온 이들은 그들에 대항하려 했으나, 손 쓸 새도 없이 당했다.

안칠성 역시 싸우려고 했기에,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능력이 안 써져.'

그게 능력자들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건물에 깔린 이유였다.

체내의 마나가 코어에 갇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당황스러웠지만, 그는 재빨리 다른 판단을 내렸다.

안칠성은 다른 사람들이 당하는 사이, 메이블의 손을 잡고 자리를 벗어났다.

급하게 숨어든 곳은 숙소로 사용하던 호텔이었다.

계단을 타고 빠르게 올라간 두 사람은 방 안에 틀어박혀 안전을 확보했다.

-대체 무슨 일이...

객실에서 내려다보이는 창밖은 그야말로 지옥도였다.

곳곳에서 폭음과 비명이 들려왔다.

-얘는 왜 전화를 안 받아.

안칠성은 유현에게 몇 번이고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받지 않았고, 그 상태로 시간이 흘렀다.

외부에서는 스카이 아일랜드의 국제 주둔 군대가 적들과 사투했다.

능력을 사용하며, 적에게 대항하는 군인들.

하지만 적의 숫자가 너무 많았고, 강했다.

군대는 순식간에 무력화되었다.

-꺄아아아악!

-사, 살려줘어!

사람들은 연신 죽어나갔다.

모든 구역이 습격당했으며, 기밀 시설들은 진즉에 돌파당했다.

그때까지도, 사람들은 그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우린 케이디다. 우리가 스카이 아일랜드를 침략하고 있다.

스카이 아일랜드의 테러가 보고되고 몇 분 뒤.

테러 집단의 정체는 당사자들에 의해 밝혀졌다.

국제 범죄 집단, 케이디.

그간 온갖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한 번도 꼬리가 잡히지 않았던 이들.

그래서 누군가는 그들의 존재 자체가 세계 연합의 조작이라고 치부하기도 했다.

그런 이들이 세상에 자신들의 존재를 공고히 했다.

-스카이 아일랜드로 오지 마라. 지원을 보내는 국가는 우리가 직접 멸망시킨다.

방송은 짧게 끝났다.

그의 경고에 위축된 걸까.

어떤 국가도 스카이 아일랜드에 지원을 보내지 않았다.

이미 그들의 만행이 담긴 영상이 확보된 탓이었다.

그렇게 케이디의 습격이 시작되고 몇 시간이 지났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인류를 지켜오던 힘과 수많은 이들의 노력이 맺은 결실은 그 빛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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