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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60화 (16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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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는 통하지 않았다.

유현은 짜증을 느끼며, 랄프를 향해 팔을 뻗었다.

그의 목을 감싸는 커다란 손.

저항해야 마땅했지만, 랄프는 미동조차 할 수 없었다.

가면에 뚫린 두 개의 눈구멍 너머로 보이는 싸늘한 시선.

고작 눈빛뿐이었지만, 바다에서 만난 어떤 상대보다도 압도적인 느낌을 받았다.

"......"

"길 안내 해."

말은 통하지 않지만, 유현은 상대가 대강 상황을 알 거라고 예상했다.

여기까지 들어와 자신을 공격한 것만 봐도 뻔했다.

그리고 그런 유현의 예상대로, 랄프는 유현이 원하는 바를 대강 깨달았다.

"아, 알겠어."

랄프는 곧이곧대로 말을 따랐다.

눈앞에서 그 레비아탄을 한 방에 죽여버렸으니, 다른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크아아아!"

길드원들 몇몇이 죽어 나가며 몬스터들의 관심은 다른 곳으로 돌아갔다.

유현과 랄프 역시 그들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

'어쭈.'

유현은 이제 자신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는 적들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주변에 뻔히 레비아탄의 시체가 떠다니는데도 겁도 없이 다가온다.

'좋든 싫든 다 잡긴 해야겠군.'

길드원들을 구하는 행동이 될 테지만, 그렇다고 몬스터들이 졸졸 쫓아오게 만들 수도 없었다.

그의 기세를 느낀 걸까.

사납게 으르렁거리던 몬스터 몇몇이 움츠러든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개중 몇몇은 오히려 더 기세를 드높이기 시작했다.

"쿠어어어!"

먹먹한 포효가 유현의 귓전에 스몄다.

던전의 세 보스급 몬스터 중 하나인 스퇴클이었다.

유현은 스퇴클의 해괴망측한 외형에 미간을 찌푸렸다.

'진짜 못생겼네.'

생기다 만 모양새다.

찰흙으로 고래를 만들어 머리 부분만 깔아뭉개면 저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쿠어!"

스퇴클이 유현을 향해 빠르게 헤엄쳤다.

그 행동에 주춤거리던 다른 몬스터들도 합세했다.

몰려오는 수 백의 몬스터.

개중에는 보스급 몬스터도 여럿 섞여 있었다.

그 풍경을 보던 주변 이들은 제각각의 감정에 휩싸였다.

'너무 많아졌어.'

김이 주변을 둘러보며 자책했다.

처음 끌고왔던 것보다 몇 배는 많아진 몬스터의 숫자.

끌고온 몬스터의 행렬에 또 다른 몬스터들이 달라붙었다.

거기에 전투의 중간에도 향수의 냄새를 맡고 온 놈들이 계속해서 추가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향의 양을 조절했어야 했는데.

그런 한편, 같은 풍경을 목격한 랄프는 가슴의 두근거림을 느꼈다.

좀 전에 느꼈던 공포와 마찬가지로 그가 가지고 있던 가장 깊고 원초적인 욕망.

압도적인 무력 앞에 잠시 스러졌던 그 욕망이, 엄청난 몬스터의 군세 앞에서 다시금 되살아났다.

그건 탐욕의 발로였다.

"생존자 전원 들어라!!"

쩌렁쩌렁한 음성이 길드원들의 내부 스피커로 울려 퍼졌다.

유현을 돕기 위해 나아가려던 김은 그 목소리에 멈칫했다.

'설마.'

그가 홱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유현 앞에서 줄곧 굳어 있던 랄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슨 짓을 벌이려는 걸까.

생존자들을 모아 도망치려는 걸까? 아니면, 다시금 유현을...

뚜둑.

그때, 귀를 기울이고 있던 채널의 소리가 끊겼다.

김은 오류인 줄 알고 장치를 조작했으나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날 차단했어.'

고유한 권한으로 길드를 배신한 자신을 채널로부터 제외시켰다.

당연한 일이지만, 설마 이렇게 빠를 줄이야. 좀 더 넋을 놓고 있을 줄 알았는데 회복이 상당히 빨랐다.

'젠장.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김은 속으로 욕설을 중얼거리며 그들을 주시했다.

랄프의 지시 아래 모이는 길드원들.

처음 보다는 숫자가 줄었지만, 중간에 유현이 어그로를 가져간 탓에 상당히 많은 이들이 살아남았다.

"다들 다시 유현을 공격한다!"

그 말에 길드원들은 모두 당황했다.

"도망가야지! 무슨 소리야!"

"나는 안 가! 반대야!"

랄프의 눈은 탐욕에 번들거렸다.

"내가 아무 생각도 없이 그러는 줄 알아? 우리한텐 아직 약이 남아 있다고!"

약. 바로 김이 몬스터들을 몰고 왔던 그 향수였다.

"약이 있으면 뭐해! 사람이 있어야지!"

"저기 저놈 있잖아."

랄프가 멀리 있던 김을 가리켰다. 그는 애 진즉 그의 위치를 알고 있었다. 이런 계획이 바로 나온 것도 계속 그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던 덕이었다.

"......"

랄프의 말에 길드원들은 솔깃했다. 확실히 그 어그로를 끌어갈 대상이 있다면 약도 효과가 있다.

"그, 그 약으로 어쩌려고?"

"아까랑 계획은 똑같아. 유현이 지치면 이 약을 저놈한테 발사하고, 유현을 생포한다."

아드득.

길드원들이 김을 보며 이를 갈았다. 저 동양 놈이 배신만 하지 않았다면, 이 사단이 나지는 않았을 텐데.

"전부 저 새끼 잘못이야."

"저 개새끼!!"

"죽여버려야 해!"

길드원들이 그를 향해 복수심을 불태웠다.

이글거리는 분노.

랄프 역시 마찬가지였다.

"김 죽여버리고 저놈도 잡아서 파티나 하자고!"

욕망에 욕망이 더해졌다.

욕망의 결합은 판단을 흐려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아까보다 위험한 싸움이었지만, 그들의 사기는 더 들끓었다.

한차례의 전투에서 분비된 아드레날린. 더불어 다른 두 사람을 향한 분노와 탐욕까지.

계획의 성공 가능성은 그들의 머릿속에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단지 유현을 생포한다는 목적과 그로 인한 보상만이 눈가에 아른거리며 광기에 불을 지필 뿐이었다.

"자! 가자!!"

그들도 유현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언더 더 씨의 계획을 깨달은 김은 입술을 깨물었다.

저 많은 몬스터와 길드원들의 합공이라면, 아무리 유현이라도 상대가 힘들 터.

이곳은 절대 만만한 전장이 아니었으며, 그들을 상대로 밥 먹듯 싸워오던 길드원들 역시 제법 강한 축에 속했다.

'어떻게 도와야 하지?'

김은 바쁘게 눈동자를 굴렸다.

어떻게 해야 자신의 은인을 구할 수 있을까.

하지만 어디를 봐도, 어떤 생각을 해봐도 목적에 연결되는 해답은 없었다.

짧게 고민한다고 해결책이 나올리 없었다.

'하지만 더 지체했다가는….'

몬스터들은 유현의 지척까지 다가왔다. 유현은 공격할 생각도, 도망갈 생각도 없는 건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미 늦었다고 판단하신 건가….'

뛰어난 전사는 자신의 죽음마저도 예감한다.

그 상황에서 행동은 두 가지로 나뉜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포기하거나.

끝까지 싸우며 최후의 발악을 하거나.

김은 유현이 전자라고 생각했다.

'내가 괜한 짓을….'

유현을 도우려고 벌인 일이 도리어 그를 난감하게 만들었다.

죄책감이 족쇄처럼 그의 가슴을 붙들었다.

하지만 마냥 이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자신이 벌인 일인 만큼, 끝까지 책임을 져야….

쾅!

그사이 선두의 몬스터들이 유현과 격돌했다.

잠깐 아래로 쳐졌던 김의 시선이 다시 전장으로 향했다.

짙은 물보라. 그 너머로 펼쳐진 것은 자신이 상상한 것과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그건 들어갈 틈을 노리고 있던 언더 더 씨의 잔당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뭐, 무슨!"

잔잔하던 물속에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범상치 않은 속도와 크기.

심지어 그 숫자가 하나가 아니었다.

곳곳에서 몇 개씩 생겨난 소용돌이가 몬스터들의 주변을 맴돌았다.

소용돌이들은 이내 하나로 합쳐지더니, 더 거세고 맹렬한 기세로 회전했다.

"마, 말도 안 돼."

모두가 본인의 눈을 의심했다.

블랙홀처럼 주변의 몬스터들을 하나씩 빨아들이기 시작하는 소용돌이.

하지만 그들이 정말 경악한 건 그것 때문만이 아니었다.

"조, 조, 조종하고 있어."

"어, 어떻게 이런 짓을..."

"......인간이 아니라 완전 괴물이잖아."

그들은 소용돌이가 유현의 손짓에 따라 합쳐지고, 움직이는 것을 모두 목격했다.

제아무리 강한 욕망도, 인지와 상식을 초월한 힘 앞에서는 사그라들 수밖에 없었다.

"......"

랄프는 소용돌이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압도적인 크기와 힘은 달아날 생각조차 앗아가 버렸다.

"도, 도망쳐야..."

길드원들은 달아나기 위해 몸을 돌렸다.

하지만 소용돌이의 영향력은 그들의 상상 이상이었다.

"으아아아아아!"

"사, 살려줘어어어어!!!"

상당히 거리가 떨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길드원들이 소용돌이에 휘말리기 시작했다.

넋을 놓은 채 소용돌이를 바라보던 랄프는 곧 고개를 떨구었다.

"이런 씨ㅂ..."

이내 소용돌이가 그의 몸을 잡아 당겼다.

"......"

소용돌이가 서서히 멀어진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주변의 모든 것들이 소용돌이에 휘말려 사라졌다.

'쳇. 마석은 좀 아깝지만, 별수 없지.'

유현은 아쉬움에 혀를 찼다.

길드가 다시금 움직인다는 걸 깨달았을 때.

유현은 계획을 수정했다.

그냥 주변의 모든 것들을 깔끔하게 치워버리기로.

소용돌이를 일으킨 것도 그 때문이었다.

'나쁘진 않네.'

말끔해진 주변을 보며 유현은 만족스러움을 느꼈다.

그의 시선은 근처에 남아 있는 김에게 고정되었다.

'길을 아는 사람이야 남아 있으니.'

같은 길드원을 배신하고 자신을 도운 인물.

과정에 조금 문제가 생겼지만, 그 의도가 나쁘진 않았으니 뭐.

'도와주지 않는 편이 더 쉬웠을 수도 있긴 한데.'

그건 결과론적인 이야기니 굳이 짚고 넘어갈 필요는 없었다.

유현은 몸을 돌려 김에게 다가갔다.

눈앞의 광경에 넋을 놓고 있던 김은 유현이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눈치채지 못했다.

유현은 그의 헬멧을 톡톡 두드렸다.

"저기요."

김이 기겁하며 몸을 떨었다.

상대가 유현이라는 걸 알아차리고는 곧 한숨을 내쉰다.

"아, 안녕하세요."

스피커를 통해 빠져나온 음성.

유현은 랄프와 대화한 것처럼 그의 외부 마이크를 통해 그에게 말을 걸었다.

"도와줘서 고맙긴 한데, 굳이 안 도와줬어도 됐을 것 같아요."

짚고 넘어갈 필요는 없지만, 역시 아쉬움이 남았기에 핀잔을 던졌다.

김은 유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너무 과소평가한 것 같습니다. 설마 그런 힘까지 다루실 줄은…."

"날 알아요?"

남자의 행동이나 말은 마치 자신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어디선가 가면에 대한 이야기가 퍼져나간 걸까?

"얼굴은 모르지만, 가면은 알고 있습니다."

신상을 아는 사람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면을 안다니. 지금까지 가면을 쓴 적은 몇 번 없다. 기껏해야 암시장에서 정도.

"그때 분명 유현 님이라고 들었습니다. 그게 본명이신지는…."

유현이 흠칫했다.

가면을 알고 있으면서, 자신의 이름까지 알고 있다니.

줄곧 정체를 숨겨왔기에, 유현은 눈앞의 남자가 적인지 아군인지 의심이 일었다.

최근에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기에, 쉽게 넘어갈 수 없었다.

꿀꺽.

느닷없이 피어오른 그의 기세에 김이 마른침을 삼켰다.

"나에 대해 얼마나 더 알고 있지?"

"예, 예?"

"이 가면은 어디서 알았고, 내 이름은 어디서 알았는지, 뭘 더 알고 있는지. 누가 알려줬는지. 전부 다 불어."

김은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는 상황이 더 이상해지기 전에 오해를 풀어야겠다는 마음에 황급히 입을 열었다.

"저 기억 안 나십니까? 예전에 게이트에서 봤었는데."

"게이트?"

유현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게이트에 들어간 경험 자체가 많지 않지만, 거기서 누군가를 만난 적은 없었다.

"그때 화전의 대지에서 어떤 남자분과 함께 돌아다니지 않으셨습니까. 그때 그분이 유현이라고 말하셔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화전의 대지면..."

유현의 머릿속에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지구에 돌아오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돈이 필요하여 한서희의 도움으로 게이트에 들어갔었다.

'분명 그 게이트의 이름이 화전의 대지였었는데….'

"기, 기억나십니까?"

"기억은 나는데, 그쪽이 누군지는..."

"그때 유현님께서 저희 파티를 구해주셨었습니다."

"......아!"

유현은 그제야 확실하게 떠올렸다. 분명 그런 기억이 있었다. 당시 상황 때문에 꽤 인상 깊은 기억이기도 했다.

"그때 그 전사!"

"예! 예! 맞습니다! 기억해주시는군요!"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여 파티의 안위를 도우려던 전사.

무척이나 숭고한 행동이었기에 그 기억은 여지껏 뚜렷했다.

타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행동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희생이 아니었으니까.

그걸 강요당했던 삶을 살았기에, 남자의 행동이 더 뇌리에 남았었다.

"하하! 이런 곳에서 이렇게 만날 줄이야!"

"저도 처음에 가면을 보고 정말 놀랐었습니다. 긴가민가했었는데, 아까 싸우시는 걸 보고 확신했습니다. 이런 식으로라도 은혜를 갚게 돼서 정말 다행입니다."

배신했다는 것에 죄책감은 없었다. 안 그래도 길드의 깡패 같은 행보가 마음에 들지 않던 차였다.

그런 타이밍에 누군가의 목숨을 가지고 값을 매기는 등의 장난질까지 하여 완전히 정이 떨어졌다.

이번 일을 끝으로 길드를 나갈 생각이었는데, 거기서 유현과 마주친 것이다.

"유현님이 소나무에서 보낸 침입자였을 줄은 몰랐습니다. 이러면 역시…."

김은 잠시 말끝을 흐리더니 다시 이어 말했다.

"유현님은 아카데미의 그분이 맞으시지요?"

처음에 보여주던 육체의 능력과는 달리 강력한 소용돌이를 일으켜 다른 이들을 몰아냈다.

하나만 해도 강한 힘을, 몇 개씩 가진 이는 흔치 않을 터.

유현은 그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유현 맞아요."

"어쩐지. 그래야 말이 되지요. 그때 게이트에서 보여주셨던 파괴력이 이제야 이해가 갑니다."

"그런 건 둘째치고, 파티는 어쩌고 길드에 들어왔어요?"

"아, 그게 돈이 안 돼서..."

"하긴. 그 정도로 사이가 좋은데 헤어지는 건 돈 문제뿐이지."

멋쩍게 웃던 김은 곧 유현의 목적을 떠올리고는 아차했다.

이렇게 잡담을 나누고 있을 시간이 아니었다.

"어서 가시죠. 해저 물망초는 정해진 시기에 맞춰 수확할수록 효과가 좋습니다."

"아, 오케이."

김은 이동 로봇의 뒤에 유현을 태운 채 곧장 물망초가 자라는 곳으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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