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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59화 (159/219)

159

멀리서부터 다가오던 빛은 괴수가 아닌 추격자들이었다.

유현은 전투 도중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 시선을 의식하여 조금 더 과격한 방식으로 싸웠지만, 아무래도 그들은 도망가는 대신 싸우기를 택한 것 같다.

'오는군.'

훌륭한 판단이다.

몬스터에 정신이 팔린 지금, 그리고 몬스터와 싸우고 있는 지금이라면, 자신을 제압하기에는 더없이 이상적인 타이밍이었으니까.

몬스터와 팀을 먹은 것과 다름없으니,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한 것이 있다.

바로 여유가 없어 보이던 유현의 전투는 모두 그의 의도였다는 점.

유현이 주먹에 더 많은 양의 마나를 실었다.

그들의 등장을 인지한 시점부터 의도적으로 조절하고 있던 마나의 사용. 이제는 조절할 이유가 사라졌다. 미끼로 상대를 끌어들였으니, 이제 수확할 때다.

[에어]

발목의 근육이 팽창하며 물속에 생성된 공기 발판을 박찼다.

마치 총알처럼, 엄청난 속도로 수중을 가르는 유현의 몸뚱이.

마운틴 터틀이 황급히 등껍질 안에 머리를 집어넣으려고 했지만, 유현의 속도는 지금까지와는 궤를 달리했다.

쾅!

주먹이 그대로 마운틴 터틀의 머리에 적중했다.

마치 폭탄이 터진 듯한 굉음과 함께 강한 물결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쩌저적.

마운틴 터틀의 머리통이 갈라졌다. 등껍질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단단한 머리통이 주먹질 한 번에 부서진 것이다.

그 모습에 유현을 향해 돌격하던 길드원들이 거의 동시에 전진을 멈췄다.

"......"

바닷속이지만, 싸늘한 바람이 부는 것 같은 분위기.

길드의 소통 채널은 조용했다.

애초의 계획은 몬스터와 함께 유현을 공격하는 것.

지켜본 바로는 마운틴 터틀이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좆됐다.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했다.

침입자가 힘을 아껴놓았다고 이야기라도 하듯 순식간에 마운틴 터틀을 죽였다.

그런 상대를 생포하겠다고?

'......이게 맞나?'

의심이 고개를 쳐들었다.

랄프는 급히 머리를 굴렸다.

싸워서 이길 가능성이 있을까?

확신할 수 없다.

물속에서 저렇게 움직이는 상대를 적으로 만난 적은 없다.

감탄이 나올 정도로 경이로운 속도와 힘.

아무리 수중 전투의 베테랑들만 모았다고 해도, 힘든 싸움이 될 게 분명했다.

'후퇴해야 해.'

어느 정도 승리를 확신하고 덤벼든 이전과는 사뭇 달라진 상황.

랄프는 전략적으로 퇴각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여기서 싸웠다가는 생포고 나발이고 본전도 못 찾는다.

"다들 전속력으로 이곳에서 벗어..."

하지만 그는 또 한 가지를 간과했다.

돌격한 순간부터, 전장의 이탈권은 승패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쿵!

묵직한 소음이 물결을 타고 울렸다. 막 명령을 듣고 기체를 돌리던 길드원이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시, 시발! 뭐야!?"

"놈이다! 놈이 왔어!"

"대장! 어떻게 해! 저 속도면 도망 못쳐!"

고요하던 사운드가 한순간에 혼비백산해졌다.

랄프는 그제야 깨달았다.

이 전장에 끼어든 순간부터 싸우는 것 외에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도망칠 수 없어.'

랄프의 눈동자가 떼구르르 굴러갔다. 주변 시야를 눈에 담으며 머릿속으로는 바쁘게 생각을 이어갔다.

'싸워야 해.'

그게 살아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 그렇다면 이야기는 또 달라진다. 이기지 못하면 죽는 싸움.

누구라도 이를 악물고 회광반조의 기세처럼 전력을 다해 싸울 것이다. 그렇다면 승리의 가능성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

'장비, 경험, 능력, 팀워크.'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해 보았을 때, 압도적으로 불리한 싸움은 아니었다.

이내, 랄프가 최후의 판단을 내렸다.

"이길 수 있어."

이전과는 어딘가 다른 느낌의 비장함. 랄프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길드원들이 입을 다물었다.

"이겨야 해! 이겨야 살아나간다! 우리가 누군지 기억해 등신들아!"

식었던 사기를 되살리는 데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우두머리가 제시한 승리의 가능성이 가라앉았던 사기를 다시금 끌어 올렸다.

"우린 바다 사나이다!"

"싸우자! 이기자! 살아남자!"

"한 번 더 가보자고!"

랄프가 침입자를 보며 소리쳤다.

"계획 변경이다! 생포는 집어치워! 침입자를 죽여라!"

이제는 돈을 위한 전투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사투였다.

그렇기에 오히려 그들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다.

"우오오오오오!"

기체 하나를 파괴했던 유현은 줄곧 그 자리에 서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을 가만이 있더니 곧 움직이기 시작하는 놈들.

'그게 너희가 내린 판단이냐.'

길 안내에 필요한 건 한 놈뿐이었다. 그래서 기체 하나를 파괴하여 거기에 타고 있던 놈을 빠르게 포박했다.

나머지는 도망치면 놓아줄 생각이었는데, 다들 후퇴 대신 전투를 선택했다.

'뭐, 예비로 몇 명 더 데려가는 것도 나쁘진 않지.'

유현은 마법으로 속박한 길드원 하나를 뒤로하고, 언더 더 씨의 군세를 향해 나아갔다.

곧장 그를 향해 날아드는 강한 파동.

유현은 급히 몸을 돌렸으나 가면의 아랫부분이 살짝 스쳤다.

'......칼날이군.'

파동이 스친 가면의 아래가 살짝 잘려나갔다.

공격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저편에서 전조도 없이 나타난 소용돌이가 유현을 집어삼킬 듯 빠르게 몰아쳤다.

그와 동시에 기체에 오른 적들이 유현에게 쇄도했다.

무기를 앞세운 공격.

누군가는 멀리서 물총을, 누군가는 지척까지 다가와 날붙이를 휘둘렀다.

유현은 [에어] 마법을 활용해 세밀하게 움직임을 조절했다.

공격의 방향을 읽고, 모든 공격을 회피하는 유현.

총에서 발사된 물줄기는 허공을 갈랐고, 날붙이는 그의 옷깃도 스치지 못했다.

소리 없이 이어지는 수중 전투.

하지만 브리핑이 오가는 길드 채널은 소란스러웠다.

"어떻게 다 피하는 건데!"

"계속 몰아붙여!"

"우리가 더 많아! 결국에는 지친다고!"

욕설과 탄식 사이로 랄프의 명령이 쉴새 없이 울렸다.

"일부는 뒤로 돌아서 뒤를 노려!"

"몇 놈은 가서 몬스터를 유인해 와라!"

"사격자들은 더 빠르게 공격해! 수탄을 아끼지 마라!"

전투에 참여하는 와중에도 반복되는 랄프의 지휘. 그의 통솔력은 탁월했으며, 위기 상황에서 더 빛을 발했다.

자칫하면 중구난방이 될 뻔한 전투가 제법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

'좋아. 이대로만 압박하면 돼.'

침입자는 아군의 공세를 피하는 데 급급이었다.

피하는 것 자체가 대단하긴 했지만, 저런 식의 무리한 회피는 체력을 많이 사용할 수밖에 없다.

결국에는 지칠 터.

그때를 노려서 단번에 목숨을 끊어버리면 된다.

'생포하는 게 가장 베스트지만...'

솔직히 말해 그쪽은 가망이 없다. 아무리 지친다고 해도 저 힘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테고, 그런 상황에서 생포를 시도하는 건 위험이 크다.

'그저 지금처럼 하는 게 최선이야.'

그의 귀로 몬스터를 이끌고 왔다는 정보가 들려왔다.

랄프는 곧장 명령을 내렸다.

"김, 침입자를 덮쳐라."

몬스터를 이끌고 온 건 든든한 탱커인 김.

물에서도 퍼지는 진한 향을 뿌리며 온갖 몬스터의 어그로를 끌고 왔다.

이대로 침입자를 덮쳐, 침입자에게 냄새를 덮어 씌우면 끝.

아군이 가진 또 다른 향으로 김에게서 풍기는 향기를 지울 수 있다.

"김?"

그런데 왜일까.

그가 가까이 오고 있다는 레이더 담당의 정보와는 다르게 김의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랄프는 순간 이유 모를 불길함을 느꼈다.

뒤통수에 닿는 서늘한 시선. 목덜미의 털이 곤두 서는 것을 느끼며, 그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이런 씹…."

탱커용 잠수 슈트를 착용한 김이 아군을 향해 전력으로 질주하고 있다.

그의 뒤로 보이는 건 흐리고 어두운 바다.

그 풍경을 배경으로, 수십 마리의 크고 작은 몬스터들이 언뜻언뜻 모습을 드러냈다.

"야, 이 미친 놈아! 뭐 하는 짓이야!"

랄프가 소리쳤지만, 김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무기를 꼬나쥔 채, 열심히 달려올 뿐이었다.

"젠장, 젠장!"

랄프가 기체를 강하게 내리쳤다.

침착하려고 애썼지만,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해서 그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이 씨발! 뭐 어쩌란 거냐고!!"

김은 그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기체의 꽁무니에 매달아 두었던 향수통을 전용 총에 넣었다.

그리고 전투 대형으로 펼쳐져 있던 길드 사이로 발사했다.

냄새를 흘리며 나아가는 향수 통. 물의 저항을 받은 향수통이 전투 대형의 한가운데 멈췄다.

"대, 대장!"

"저 미친 새끼! 이 타이밍에 배신을...!"

"모, 몬스터다! 몬스터가 온다!"

유현은 느닷없는 내부 분열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뭐야?'

줄곧 공격을 피하며 기다리던 건 타이밍을 노렸기 때문이다.

적절한 타이밍에 치고 들어가야, 적은 피해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었으니까.

너무 큰 피해를 주며 제압했다가는 길 안내는커녕 바다에서 사람을 죽이는 게 되니 어쩔 수 없었다.

'뭐, 이유는 몰라도 이러면 땡큐지.'

적의 배신으로 안 그래도 복잡하던 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수많은 몬스터들이 길드를 공격했다.

"끄아아아악!"

"도망쳐!"

"너무 많잖아!"

산전수전을 다 겪었던 랄프조차 패닉에 빠졌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조차 잡히지 않았다.

'대체 왜...'

왜 일이 이렇게 된 거지.

단순히 침입자를 잡으려고 들어온 건데, 졸지에 길드의 최강 전력을 모두 잃게 생겼다.

그냥 도망치는 게 나았을까.

아니, 애초에 침입자가 게이트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면?

그랬다면 좀 달랐을까?

'......'

랄프는 몬스터의 공격 앞에 하나둘 죽어가는 길드원들을 보며 깊이 후회했다.

과도한 욕심이 화를 불렀다.

그저 소나무의 요구대로 두 배 가격에 약초를 넘겼다면 애초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어중간하게 머리를 쓴 자의 최후였다.

"크아아아아!"

멍하니 넋을 놓고 있던 랄프의 앞에 거대한 레비아탄이 나타났다.

그를 향해 다가가는 수백 개의 이빨과 끝을 알 수 없는 어두운 목구멍.

죽음을 직감한 랄프는 질끈 눈을 감았다.

이대로 끝이구나.

펑!

그러나 그가 예상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전방에서 들린 폭음에 랄프가 다시 눈을 떴다.

"......?"

그의 앞에는 레비아탄의 부산물이 부유했다.

그 사이에는 잠수복을 입은 누군가의 등이 있었다.

그건 자신들이 추격해왔던 침입자의 뒷모습이었다.

"왜 나를......"

랄프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주변에서는 여전히 길드원들이 죽어갔지만, 침입자는 그들에게 조금의 관심도 주지 않았다. 그래서 의문은 더욱 증폭되었다.

"왜, 왜 나를 구했지?'

외부 스피커를 통해 랄프의 목소리가 유현에게 전해졌다.

유현은 부산물 사이에서 마석을 챙기고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멍하니 그를 바라보는 랄프.

유현은 그에게 헤엄쳐 다가갔고, 랄프가 그를 향해 자신의 외부 마이크를 가리켰다.

곧 랄프의 슈트 안으로 침입자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한국말로 해, 이 새끼야. 통역기 빼고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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