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58화 (158/219)

158

마운틴 터틀.

녀석의 외피는 생긴 것처럼 무척 단단했다.

미사일에 맞아도 흠집조차 나지 않는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였다.

'젠장.'

유현이 욕설을 뇌까렸다.

느닷없이 마주친 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벌써 몇 번이고 공격을 시도했지만, 외피에는 작은 생채기조차 나지 않았다.

'생긴 건 둔하게 생겨서는 왜 이렇게 빠른 거야.'

지금까지 시도한 모든 공격은 녀석의 머리를 노린 공격이었다.

등껍질을 때려봤자 소용이 없을테니까.

하지만 그런 시도조차 녀석의 날렵한 몸놀림 앞에서 무위로 돌아갔다.

놈은 주먹을 날릴 때마다 신속하게 등껍질 안으로 머리를 숨겼다.

'빌어먹을 등껍질.'

단단하기는 왜 이리 단단한지 원. 유현은 녀석을 노려보며 다시 주먹을 말아 쥐었다.

안 된다면 될 때까지.

수적천석(水滴穿石)이라고 했다.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에 구멍을 뚫듯 때린 부위를 몇 번이고 가격한다면, 결국에는 껍질을 뚫을 수 있을 것이다.

"크아아아!"

그러나 이번에는 마운틴 터틀이 먼저 선수를 쳤다.

흉성과 함께 놈의 입에서 강한 물대포가 뿜어져 나왔다.

수중을 양단하는 엄청난 속도의 물줄기. 유현은 급히 몸을 회전시켜 간발의 차로 놈의 공격을 피했다.

'맞으면 꽤 아프겠는데.'

마운틴 터틀은 단순히 방어력만 높은 게 아니었다. 공격력 역시 수준급.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순식간에 당할 것이다.

'최대한 빨리 끝내야겠군.'

물론 마음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환경이 환경인지라 육지에서처럼 강한 힘을 발휘하는 게 어려웠다.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닌데...'

유현은 마운틴 터틀을 노려보았다. 깊은 어둠 속에서 형형하게 빛나는 네 개의 안광. 명확한 적의가 유현을 향하고 있었다.

'두 마리 상대로 가능하려나?'

현재 마운틴 터틀의 위치는 앞뒤. 유현은 포위된 상태였다.

'차라리 달아나는 게 나을 수도 있어.'

상대는 빠르지만, 작정하면 도망치지 못할 것도 없었다.

물론 그리 내키는 방법은 아니었다.

'몬스터를 앞에 두고 도망갈 수는 없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또, 줄행랑이 오히려 역효과를 낼지도 모르고.

"크아아아!"

유현이 고민을 이어가던 사이.

마운틴 터틀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민첩하게 쇄도하는 전방의 마운틴 터틀. 바위 정도는 가뿐히 씹어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입을 쩍 벌린 채 유현에게 가까워졌다.

'한 번 먹히면 꼼짝없이 가겠군.'

놈의 무기는 물대포 하나뿐이 아니었다. 그 크기에 맞게 몸뚱이의 모든 부위가 무기나 다름없었다.

'버틸 수 있으려나?'

유현은 앞과 뒤를 번갈아 보았다. 전방의 개체가 움직이는 것에 맞춰 후방의 개체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마리는 앞에서, 다른 한 마리는 뒤에서 공격해오는 상황.

일촉측발의 위기였지만, 유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한 번 얼마나 쌘지 보자고.'

[서클 배리어]

두 괴수의 입이 유현을 양단하기 직전. 준비해 두었던 마법이 발현됐다.

그의 주변에 생긴 반투명한 원형 방어막. 이윽고 두 마운틴 터틀의 입이 방어막을 짓씹었다.

까가가가각!

강한 치악력을 버텨내는 방어막.

엄청난 소음에 유현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뭔 놈의 턱 힘이...'

방어 마법은 무적이 아니다.

어지간한 공격은 버티지만, 한계 이상의 충격을 받으면 깨진다.

유현은 이대로 두면 방어막이 파손될 거라는 걸 직감했다.

중급 마법인 슈퍼 배리어에 버금가는 마법이었지만, 두 마리의 치악력을 버틸 만큼 단단한 방어막은 아니었다.

'치악력은 이 정도인가.'

예상한 것 이상이었다.

하지만 계획에 변화는 없다.

'이 정도면 2대 1도 가능해.'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번을 싸워도 위태로운 것이 없다.

방어막은 상대의 공격력을 더욱 확실하게 파악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유현은 조금 전의 시도로 백전불태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

나를 알고, 상대를 알았으니, 상대와 몇 백, 몇 천 번을 싸우든 패배할 일은 없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유현은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방어막을 없앴다.

강한 압박을 버티던 방어막이 사라지자 두 몬스터의 입이 맞부딪쳤다.

쿵!

유현은 입과 입 사이로 생긴 작은 틈을 통해 포위를 빠져나왔다.

강한 충격에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두 거북이 몬스터.

두 몬스터를 내려다보던 유현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런데 그때.

'......?'

유현이 저쪽을 돌아보았다.

문득 달라진 물의 흐름이 느껴졌다.

'뭔가 오는데.'

어두운 바다 사이로 보이는 뿌연 빛무리. 마치 어떤 거대 생물의 골조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몬스터?'

유현은 가볍게 혀를 찼다.

두 마리 대형 몬스터를 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또 다른 적이 추가되다니.

상대가 쉽고 어렵고를 떠나 썩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귀찮게 됐군.'

유현은 다시 두 거북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우선 이 두놈부터 정리할 생각이었다.

다가오는 녀석은 조금 거리가 있으니 도착하기 전에 거북이부터 잡으면 된다.

'뭐, 그게 안 되면 3대 1도 상관은 없지.'

유현은 주먹을 꽉 쥐었다.

수중 전투의 방식은 제각각.

누군가는 마법을 통해 몸에 가해지는 물의 저항력을 없애기도 한다. 그러면 바깥에서 움직이는 것과 똑같이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유현 역시 해당 마법을 익힌 마법사의 도움을 받아 몇 번 겪어봤었다.

'그렇게 하면 좋기야 하겠지.'

하지만 그 방법을 모른다.

마법사에게 배우려고 했으나 그가 그만 싸우다 죽어버렸다.

덕분에 그 마법은 고대의 마법이 되었다.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저 마법이 존재했다는 기록만 남게 된 것이다.

'아쉽지만 별 수 있나.'

남은 방법은 하나.

그냥 강한 힘으로 물의 저항을 이겨내는 것.

몸이 상당히 피로해지는 방법이긴 하지만, 그것밖에 없다.

[강화]

일단은 강화 마법만을 사용했다.

이 정도 레벨의 공간이라면 신체 강화는 이걸로 충분하다.

유현은 전신에 용솟음치는 힘을 느끼며 발끝에 또 다른 마법을 사용했다.

[에어]

공기를 다루는 마법.

공기를 뭉칠 수도 있기에, 이게 있다면 물속에서 디딜 수 있는 발판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발판이 있다면, 굳이 해저까지 내려가지 않아도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

수중 전투에서 살리기 어려운 장점 중 하나인 '속도'를 활용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사냥 시작이다, 거북이 새끼들아.'

충돌로 헤롱거리던 두 마운틴 터틀은 어느덧 정신을 차렸다.

유현을 향해 다시금 사납게 달려드는 놈들.

유현은 씩 웃으며 곧장 발을 튕겼다.

***

"이런 미친…."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랄프는 경악했다.

그 하나만이 아니었다.

다른 길드원들도 전방을 바라보며 턱이 빠진 듯이 입을 벌렸다.

"......"

모두의 시선 끝에는 마운틴 터틀과 싸우는 유현이 있었다.

그의 싸움은 절대 물속에서 일어날 수 없는 방식이었다.

마치 육지에 있는 것처럼, 발을 박차 추진력을 얻어 마운틴 터틀을 공격하는 정체불명의 사나이.

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힘과 속도가 느껴졌다.

"저게 대체..."

"어,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해?"

유현의 주먹질 앞에 조금씩 부서지기 시작한 마운틴 터틀의 등껍질. 랄프는 자신의 앞으로 흘러온 등껍질 부스러기를 향해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었다.

"......"

딱딱하다. 이게 정말 부서지기는 하는구나. 다이아몬드에 버금간다는 그 등껍질을 직접 만져보게 될 줄이야.

온갖 생각들이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텅!

묵직한 소리가 연신 울려 퍼졌다. 수중에서도 그 주먹질이 일으키는 반향은 고막에 쏙쏙 꽂혔다.

'말도 안 돼.'

폭풍 같은 주먹질 앞에 마운틴 터틀 하나가 배를 뒤집었다.

힘을 잃은 채 가라앉는 거대한 몸뚱이.

정체불명의 인물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른 마운틴 터틀에게 곧장 쇄도했다.

그 모습에 랄프가 정신을 차렸다.

"다, 다들 집중! 저 사람이 침입자다!"

그 말에 길드원들은 뒤늦게 자신들의 본분과 목적을 깨달았다.

본래 이곳에 들어온 이유는 침입자를 생포하는 것.

그 침입자가 지금 눈앞에 있다.

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명확했기에, 그들은 도리어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대, 대장. 이거 맞아?"

"저런 사람을 생포하라니."

랄프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길드원들의 반응도 이해가 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상대는 고작 한 명. 아무리 강해도 쪽수 앞에서는 장사가 없는 법이었다.

"정신 차려! 우리가 압도적으로 많아! 우리가 누구냐! 바다의 베테랑이 고작 한 명한테 쫄아서 되겠냐!"

랄프가 억지로 긴장을 삼키며 소리쳤다.

그 말에 긴장감만 남아 있던 길드원들의 사이로 비장함이 스며들었다.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그만큼 유현의 무위는 압도적이었다.

'젠장.'

랄프가 떨리는 손을 꽉 쥐며 길드원들을 둘러보았다.

침체된 분위기. 이렇게 낮은 사기로는 무엇도 할 수 없다.

"정신차려 이 새끼들아! 우리 저 새끼만 잡으면 지금보다 더 부자 된다고!"

사기를 가장 확실하게 끌어 올릴 수 있는 금전적인 보상. 랄프는 한층 더 상세하게 파고 들었다.

"소나무 상대로 얼마나 뜯어낼 수 있을 것 같냐! 못 해도 두당 몇십억은 가능해!"

헌터 일로 모으는 게 불가능하지도 않은 금액. 그렇다고 결코 적은 돈은 아니었으며, 사기 진작으로는 충분한 금액이었다.

"그, 그래! 우리가 누군데!"

"바다의 포식자! 심해의 학살자!"

"고작 한 놈한테 겁 먹고 도망갈 수는 없지!"

"가자! 가자! 가자! 언더더씨! 들어가즈아아아!"

모두가 파이팅을 외치며 제각각 무기를 손에 드는 사이.

대형의 후방부에 위치한 동양인 남자 김은 느릿느릿 무기를 들며 눈치를 살폈다.

'저 가면에 저 움직임.'

그 사람이 분명해.

김은 오래됐다면 오래된 과거를 떠올렸다.

마음 맞는 아카데미 선후배와 함께 만든 공격대. 여러 번 함께 사냥을 다녔으며, 그날은 처음으로 죽을 뻔한 날이었다.

'유현님.'

김은 아직도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위기에 빠진 자신들을 구해주고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떠나간 그 사람.

카메라를 들고 그 뒤를 쫓아가던 정장 차림의 남자가 그를 '유현'이라고 불렀었다.

'그분이 아카데미의 그 유현과 같은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적어도, 지금 눈앞에 있는 저 침입자는 그때 자신을 구했던 그 남자가 확실하다. 그의 직감이 강하게 반응했다.

'이번에는 내가 도와줘야 해.'

공격대가 해산되고, 새로운 길드를 구한 지도 몇 달.

여러 활약 덕에 빠르게 정예의 자리까지 올랐지만, 그렇다고 생명의 은인을 공격하는 짓을 할 수는 없었다.

'오늘부로 때려치운다.'

뒷일은 개나 줘.

김은 다른 길드원들과는 다른 각오로 무기를 꼬나쥐었다.

최전방에 선 랄프는 그런 계략은 꿈에도 모른 채, 길드원들을 향해 외쳤다.

"마운틴 터틀과 합세하여 침입자를 공격한다! 생포는 미리 설명한 대로! 침입자를 붙잡으면, 마운틴 터틀을 죽여!"

마운틴 터틀과 전투를 벌였으니 분명 지쳤을 터.

감탄 밖에 나오지 않는 힘과 속도지만, 곧 체력적으로 한계에 부딪힐 것이다.

'저런 움직임을 계속 유지하는 건 불가능해.'

인간이라면 결국 지치기 마련.

마운틴 터틀과 합세하여 공격하면, 침입자를 단숨에 제압할 수 있다.

"가자!!"

랄프가 대형을 해제했다.

그와 동시에, 수십 기의 기체가 전방으로 튀어나갔다.

"죽이자아아아아!"

"잡아라아아!"

마치 사냥꾼처럼 집단으로 돌진하는 언더 더 씨의 군세.

랄프도 황홀한 미래를 그리며 길드원들과 함께 돌격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