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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 게이트에는 수많은 괴수가 득실거린다.
그리 위협적이지 않은 놈도 있지만, 반대로 기습 한 번에 헌터 몇 명을 죽일 수 있는 강한 녀석들도 적지만 존재한다.
길드 언더 더 씨의 정예들은 모두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게이트에 들어온 직후, 약속이라도 한 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위이잉!
엔진 소리를 내며 흩어지는 돌고래형 이동 로봇. 곧 하나의 대형이 완성되었다.
"라이트 켜."
랄파의 명령과 함께 기체들이 빛을 발했다.
어두운 바닷속을 밝히는 환한 불빛. 대형을 따라 반짝이는 불빛은 마치 거대한 괴수의 뼈대처럼 보였다.
"동기화 완료."
기체의 조종권은 모두 랄프의 손으로 넘어갔다.
서로 동기화 되어 속도의 차이 없이 한 몸처럼 나아가는 기체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위장 라이트 온."
랄프가 위장의 스위치를 올렸다.
기체에 부착된 위장용 라이트가 제각기 다른 빛을 내기 시작했다.
어떤 빛은 밝고, 어떤 빛은 어둡고. 밝기와 마찬가지로 색깔 역시 제각각이었지만,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며 뼈대의 사이를 채웠다.
이윽고, 빛의 향연 속에 완성된 것은 흉측한 모습의 괴수였다.
"출구 지킬 잔류 인원은 남고 나머지는 이동한다."
랄프가 조종간을 붙잡고 대형을 이끌었다.
빛으로 만들어낸 위장이었지만, 누구도 쉽게 판별할 수 없을 만큼 감쪽같았다.
대형이 나아가는 경로 상에 있던 몬스터들은 쏜살같이 도망쳤고, 먼 거리에서 다가오던 몬스터들도 대형을 피했다.
"크하하! 이것도 오랜만이군!"
길드원 하나가 호탕하게 웃었다.
고급 장비를 자주 사용하지 않는 만큼, 위장할 일도 거의 없었다.
"너무 큰 소리 내지 마."
랄프가 길드원을 쏘아붙였다.
괜히 이상한 소리라도 냈다가는 상대가 위장에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물론 그런 경우는 거의 없지만, 최대한 조심하는 게 좋다.
삐빅!
그때, 레이더 위로 커다란 점이 나타났다.
"쯧."
레이더를 확인한 랄프는 혀를 찼다. 이곳이 녀석의 구역이기는 해도 구역 자체가 넓은 만큼 마주치는 일은 드물다.
그런데 하필이면 여기서 마주칠 줄이야. 운도 지지리 없지.
"다들 입 다물고 있어."
잠시 뒤, 전방에서 거대한 괴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드래곤과 고래를 합친 듯한 생김새. 통칭 레비아탄이라고 불리는 개체다.
레비아탄은 이곳 말레 섬 앞 수중 게이트의 보스급 몬스터 중 하나였다.
만약 싸우게 된다면 전력에 큰 누수가 생길 게 뻔하다.
패배하지는 않겠지만, 침입자를 잡으러 가는 와중에 불필요한 손실은 피하고 싶었다. 위장 대형을 펼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대로 얌전히 통과한다."
레비아탄은 흉포하지만, 호전적이지는 않다.
또한, 단조로운 공격 방식처럼 그리 머리가 좋은 놈이 아니다.
'위장은 못 알아볼 거야.'
위장은 개체에 따라 다른 효과를 보인다. 과거 위장을 연습하며 자주 실험했었다.
레비아탄을 상대로 한 평균 발각 확률은 10%.
높은 수치지만, 무사히 지나갈 가능성이 더 크다.
"지나간다."
지척까지 다가왔던 레비아탄은 지그시 위장 대형을 바라보더니 이내 홱 방향을 틀었다.
랄프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길드원들도 소리 없는 쾌재를 질렀다.
"난 이럴 때가 제일 스릴 넘치더라."
"이 맛에 잠수를 못 끊지."
"쉿. 계속 간다."
랄프의 조종에 따라 항해가 계속됐다. 목적지는 약초가 심어진, 가장 구석지고 가장 깊은 곳.
침입자 역시 그곳에 있을 것이다.
'녀석도 약초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을 거야.'
여기까지 혼자 쳐들어왔을 정도이니, 당연히 그 정도는 알고 있겠지. 하지만 그곳은 꽤 깊으며, 위치를 알아도 찾기 힘든 곳.
아직 목적지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방심할 수는 없어.'
분명 물과 관련된 능력자일 터.
일반인의 속도로 헤엄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로봇의 이동 속도가 단순한 수영보다는 빠르지만, 상대가 헤엄에 특화된 능력자라면 이야기는 또 달라진다.
'먼저 도착해서 이미 물건을 회수했을 수도 있어.'
아직 약초가 완전히 다 자라려면 며칠 남았다. 하지만 조금 일찍 채집한다고 효율이 크게 떨어지지는 않는다.
'최대한 서둘러야겠군.'
랄프는 대형의 속도를 높였다.
최대한 서두르는 것만이 최악의 경우를 막을 유일한 방법이었다.
"다들 레이더 잘 봐. 언제 놈이 옆으로 지나갈지 모르니까.
***
'젠장.'
유현의 주먹이 또 한 놈의 골통을 부쉈다.
손으로 들어온 마석을 챙겨 넣으면서도 그의 눈은 끊임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기저기 띄엄띄엄 부유하는 몬스터의 시체들. 다른 몬스터가 냄새를 맡고 올 수도 있지만, 지금 유현의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좆됐다.'
길을 잃었다.
다시 입구로 돌아가서 게이트 안으로 들어오는 길드 놈들을 추적하려고 했으나 제대로 시작도 못 해보고 막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오면서 마커라도 찍어두는 건데.'
쩝.
유현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 무턱대고 나아갔다.
길을 모른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들어왔으려나.'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길드 측에서 충분한 준비를 갖추고 게이트로 들어오고도 남을 시간이다.
어쩌면 이미 약초의 서식지에서 약초를 지키고 있을지 모른다.
아니면, 약초를 채취해서 돌아가고 있거나.
'야단났군.'
약초를 찾기에도, 길드원을 찾기에도 애매한 상황.
급한 마음에 대책없이 쳐들어온 게 화근이었다.
'약초의 위치라도 대략적으로 알고 왔어야 했는데.'
머릿속이 복잡해지던 와중.
유현의 예리한 시선에 무언가 포착됐다.
'......뭐야 저게?'
유현이 전방을 쳐다보았다.
어두운 바닷속 너머로 보이는 흐릿한 형체. 지각 충돌의 영향으로 해저에서 솟아오른 거대한 산처럼 보였다.
'왜 움직이는 것 같지?'
산이라면 고정되어 있어야 하는 게 마땅한데, 왜인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유현은 무의식적으로 그 산을 좇았다.
"......"
조금 더 가까워지고 나서야, 유현은 깨달았다. 눈앞에 움직이는 거대한 산은 무언가의 등에 돋아난 커다란 바위라는 것을.
이윽고 그것이 멈췄다.
서서히 돌아가는 거대한 몸뚱이.
뭉툭하지만 사나운 얼굴이 유현을 마주했다.
크아아아!
커다란 포효가 맹렬한 공기 방울을 일으키며 유현을 향해 쏟아졌다.
***
사냥형 게이트에는 던전형 게이트와 달리 여러 마리의 보스급 몬스터가 존재할 수 있다.
보스급 몬스터가 의미하는 건 그 게이트에서 가장 강한 수준의 몬스터.
말레 섬 게이트에는 총 세 마리의 보스급 몬스터가 존재했다.
"그놈이 죽기 전에 어서 찾아야 하는데."
"누구 밥 됐는지 내기라도 해보자."
"난 거북이에 하나 걸지."
"고래 놈도 사람 하나는 잘 먹는다고?"
하나는 흉측한 고래의 모습을 한, 스퇴클이라는 이름을 가진 몬스터다. 머리통이 녹아내린 것 같은 외형이 특징이다.
두 번째는 등에 산을 지고 다니는 외형으로 유명한 마운틴 터틀.
암수가 함께 돌아다니며 덩치와 달리 속도가 빠른 것으로 유명하다.
마지막으로, 수룡(水龍), 워터 드래곤이라는 이명이 붙은 레비아탄.
일반적인 드래곤과는 사뭇 다른 생김새였지만, 전체적으로 드래곤과 닮아 있었다.
셋 중 어떤 개체가 더 강하냐는 논쟁은 언더 더 씨 길드에서 오래된 이야깃거리였다.
결론은 하나.
비교 자체가 무의미하다.
그들은 하나 같이 이곳에서 최강 급의 존재들이었으니까.
"전부 입 닥쳐. 내가 레이더만 보라고 안 했냐?"
랄프의 말에 길드원들이 잡담을 멈췄다.
"그리고 그놈이 죽었다는 내기를 하면 어쩌자는 거야? 우린 지금 그놈을 생포하러 가는 거야. 죽으면 말짱 도루묵이라고."
"에이, 마스터. 설마 그놈이 여기서 살아있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놈이 잠수만 몇십 시간씩 할 수 있다고 해도 살아있는 건 불가능하지."
랄프의 표정이 굳었다.
그의 마음은 그걸 바라지 않았지만, 길드원들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젠장. 그놈이 죽으면 우리가 이러는 이유가 사라져. 그냥 손해만 보고 끝내는 거야."
"뭐, 그놈이 최대한 살아있길 바라자고."
"그 전에 우리가 먼저 죽는 거 아니야?"
누군가의 말에 길드원들이 폭소했다.
"재밌는 농담이군."
"낄낄. 방심 백만 번 해도 바닷속에서는 안 죽지."
사방에 적들이 돌아다니는데도 분위기는 제법 밝았다.
수중 전투라면 도가 튼 이들.
방심이라면 방심이라지만, 그만큼 자신들의 실력에 자신이 있었다.
"그래도 아까 레비아탄은 살짝 쫄렸어."
"인정. 그놈은 생긴 게 진짜 너무하다니까."
길드원들은 잡담을 주고받으며 계속 움직였다.
그런 와중에도 누구 하나 레이더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대장. 우리 속도 좀 높일까?"
"흠."
현재 속도가 위장 상태에서 낼 수 있는 최고 속도.
더 속도를 높이려면 위장을 풀어야 했다.
'조금 서두를 필요가 있긴 한데.'
항해를 시작한 지 몇 시간.
바다는 깊고 속도는 느리니 아직도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했다.
"좋아. 대신 대형은 그대로 유지한다. 레이더에 대형 몹 잡히면 곧장 위장 켤 거야."
랄프가 스위치를 당기자 주변을 밝히던 위장이 사라졌다.
대형의 속도가 이전보다 확연히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래, 이거지!"
"비싼 장비 쓰면서 거북이 마냥 기어가는 건 예의가 아니라니까?"
모두가 빨라진 속도에 만족하던 그때.
삐비비비비비빅!
레이더에서 경보가 울렸다.
무척 급박한 경보였기에 모두의 눈이 동시에 레이더로 돌아갔다.
"300미터 전방에 대형 몬스터 발견!"
레이더 위로 표시된 대형 몬스터임을 알리는 표식.
랄프가 속도를 절반으로 낮추었다. 위장하던 때보다 더 속도가 느려졌지만, 누구도 불만은 없었다.
다만 긴장한 얼굴로 전방을 바라볼 뿐.
레이더상으로는 대형 몬스터의 여부만 확인할 뿐 그 정체를 알 수는 없었다.
딸깍.
랄프가 위장 대형의 스위치를 다시 올렸다.
번쩍, 하며 다시금 나타난 거대한 바다 괴수.
서서히 앞으로 이동한 선두의 눈에 보인 건, 마운틴 터틀의 등이었다.
"...어?"
"누가 싸우고 있는데요?"
조금 더 가까워지자 레이더 위로 또 하나의 점이 나타났다.
덩치가 작아 뒤늦게 나타난 표식. 그 정체를 확인한 랄프는 씩 웃었다.
"찾았군."
길드원들이 너도 나도 호들갑을 떨었다.
"침입자!"
"바로 잡자!"
"쉿. 다들 기다려라."
랄프가 흥분한 길드원들을 진정시켰다.
침입자와 마운틴 터틀 간의 전투가 한창인 상황.
지금 끼어들어봤자 싸워야 하는 상대가 늘어날 뿐이다.
"보호색 위장으로 전환하고 관망 들어간다."
랄프의 조작 아래 파란색 동체가 바다에 가까운 색으로 물들었다.
슈트의 색감 역시 비슷하게 바뀌었다.
카멜레온의 보호색처럼, 바다의 색감을 뒤집어쓴 대형.
가까이 와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거북이 놈들이 이길 것 같으면, 유도용 어뢰 발사할 수 있게 미리 준비해 둬."
랄프가 비릿한 웃음을 머금었다.
침입자가 제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마운틴 터틀을 상대로 승리하는 건 불가능하다.
심지어 놈들은 두 마리.
기본적으로 암컷과 수컷이 붙어 다니기에 칩입자는 수적으로도 열세였다.
'우리도 압박하면 좋겠지만, 그랬다가는 마운틴 터틀의 타겟이 될 거야.'
지금은 멀리서 지켜보는 게 최우선이다.
물론 침입자가 무사한 선 이내에서. 조금 위험해질 것 같다면, 기꺼이 끼어들 생각이었다.
'뭐, 팔다리 하나쯤 날아가면 그때나 들어가야겠네.'
한 번 실력이나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