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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햇살이 부서져 들어오던 바닷속과는 달리 게이트의 안쪽은 어두웠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심해. 귀는 먹먹하고, 눈은 뻑뻑하다. 얼마나 깊은 건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압력이 엄청나군.'
사냥형 게이트지만 사냥에 편한 곳은 아니었다. 수중 전투가 수월한 능력자나 이런 게이트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길드가 이용할 만한 게이트였다.
유현은 마나를 사용해 압력에 대한 저항력을 높였다.
먹먹하던 청각이 다시 돌아오고 불편하던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어디쯤 있으려나.'
유현의 몸에서 레이더처럼 마나가 퍼지기 시작했다.
만약 인근에 재료가 있다면 마나가 반응하고 자신에게 신호를 주리라.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네.'
사냥형 게이트는 던전형 게이트와 달리 내부가 아득하리만치 넓다. 전부 돌아보려면 몇 시간이 아니라 며칠 단위의 시간을 투자해야 할지도 모른다.
'별 수 없지.'
하지만 시간을 들여 내부를 열심히 돌아다니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최대한 빨리 찾으면 좋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희망 사항일 뿐.
'뭐, 시간은 많으니.'
마음을 편히 먹은 유현은 재료를 찾아 헤엄을 시작했다.
***
태평양 말레 섬.
수중 게이트 전문 길드 언더 더 씨가 구입한 섬으로 해당 섬에 위치한 지부가 말레 섬 앞바다 수중 게이트의 사냥 및 관리를 전담한다.
이곳은 언더 더 씨 산하의 게이트 중에서도 조용한 편에 속했다.
위치나 게이트의 특성상 찾아오는 헌터가 적어 문제 생길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뭐? 그게 뭔 소리야?"
그래서 언더 더 씨의 길드 마스터 랄프 로렌은 잠을 깨운 전화에 몇 번이고 되물었다.
"섬이 습격을 당했다고?"
-예.
"대체 누가? 왜?"
-이상한 가면을 쓰고 있어서 누군지는 모르겠습니다.
랄프는 잠시 심호흡했다.
잠들어 있던 마나가 다시 움직이며 몽롱하던 정신이 서서히 깨어난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기억의 파편들이 다시 한 자리에 모였다.
"보나마나 소나무겠군."
며칠 전 받은 소나무 길드의 연락. 게이트에서 나오는 약재를 자신들에게 넘길 수 없냐는 내용이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랄프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뉴스가 떠올랐다.
스카이 아일랜드에서 한국 팀이 미국팀에 의해 피격당했다는 뉴스.
그뒤로 소나무 길드의 한서희가 대회에 참가하지 않게 된다는 소식까지.
'그들이 재료를 구하려는 이유가 한서희 때문이라고 판단했었지.'
그래서 시세에 몇십 배의 가격을 제시했다.
조금 과한 면이 있긴 했지만, 관계자의 생명이 관련된 문제이니 지불하리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소나무는 의사를 확실히 밝히지 않았다. 거절도, 승낙도 아닌, 보류였다.
'혹시 사람을 보내지 않을까 했는데 정말 보낼 줄이야.'
물론 그 침입자가 소나무 길드의 인물이란 증거는 없다.
하지만 뻔했다.
말레 섬 게이트는 방문객도 거의 없는 게이트. 지금 같은 시기에 침입자라니.
'더 생각할 것도 없군.'
혹시나 하여 평소보다 많은 길드원을 그곳에 배치해두긴 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길드원들은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한 것 같다.
'뭐,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
소나무 길드에서 보낸 침입자니 어지간히 강한 놈일 터.
아무리 정예 길드원들 몇 명이 있다고 해도 쉽개 대처할 수 없었으리라.
"인력 전부 말레 섬으로 집결시켜. 휴가 나간 인원도 모두 모으고."
랄프는 대강 얼개만 잡아두었던 작전을 더 자세하게 그렸다.
'우선 침입자를 확보한다.'
그리고 침입자를 고문하여 소나무의 첩자라는 확실한 증거를 얻어낸다.
'증거만 잡으면 불법 침입으로 고소할 수 있어.'
선제 침입이니 승소할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다.
그렇게만 되면 소나무에게 엄청난 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
"장비도 전부 최고급으로 맞춘다."
손상이 두려워 웬만해서는 사용하지 않는 최고급 장비들.
평범한 사람조차 수중 전투의 달인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장비들이다.
설령 체포 과정에서 장비들이 파괴된다고 해도, 침입자만 체포하면 법적으로 소나무에게 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러니 침입자 체포에 아낄 이유가 없다.
"최대한 빨리 모이라고 해. 나도 곧장 갈 테니까."
전화를 끊은 랄프는 곧장 호화로운 요트 바깥으로 몸을 던졌다.
풍덩!
커다란 물소리가 일고.
곧 무언가가 바다 밑에서 물살을 가르며 움직였다.
***
바다는 넓고 깊다.
인간의 인지를 넘어선 아득한 공간. 그곳에서 생김새만 간신히 아는 작은 약초를 찾는 건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끝도 없군.'
유현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시간을 알 수 있을 만한 건 모두 두고 온 탓에 알 수 없었다.
그나마 태양이라도 들면 모르겠는데, 여기까지는 햇볕도 닿지 못했다.
'대충 6시간?'
아마 날이 밝았을 것이다.
지금쯤이면 안칠성도 자신의 실종을 눈치챘을 터.
대충 메시지를 남겨 놓았으니 찾아 나서지는 않을 것 같다.
대리 수상을 부탁한다는 말도 적어 두었으니 수상식도 문제는 없을 듯하다.
'바깥 문제는 둘째치고.'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수색은 상상 이상으로 어려웠다.
헤엄만 치며 움직이는데도, 좀처럼 마나 반응은 포착되지 않았다.
대체 얼마나 넓고 깊은 걸까.
'정말 며칠 걸릴지도 모르겠어.'
조금 더 분발할 필요가 있다는 걸 여실히 느꼈지만, 지금이 최선이었다.
헤엄을 잘 치는 마법이라도 있다면 좋으련만. 그저 다른 인간보다 빠르게 꼬물거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하다못해 방해하는 놈이라도 없었으면 훨씬 빨랐을 텐데.'
유현은 저편에서 물살을 가르며 빠르게 헤엄쳐오는 몬스터를 노려보았다.
이름은 모르지만, 생긴 건 뱀장어와 비슷하게 생긴 녀석.
다만 뱀장어보다 몇십 배는 더 크고, 입 크기가 한입에 사람을 집어삼키고도 남을 수준이다.
'이 새끼들은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어.'
뱀장어 양식장도 아니고, 몇십 마리를 넘게 죽였는데도 계속 튀어나온다.
열 마리 이후부터는 숫자 세는 걸 그만두어서 정확히 몇 마리나 잡았는지는 모르겠다.
키이이이!
괴이한 울음소리다.
처음 들었을 때보다는 덜하지만, 여전히 충격적인 음색이었다.
유현은 직진하는 녀석을 향해 주먹을 치켜들었다.
[강화]
유현은 강화한 주먹을 말아 쥐었다. 지척까지 다가온 녀석.
유현은 녀석이 입을 벌리기 직전, 타이밍에 맞춰 앞으로 팔을 뻗었다.
펑!
주먹이 몬스터의 머리에 적중하며 터지는 소리가 물속에 퍼졌다.
타격점을 시작으로 폭탄이 터지듯 순식간에 박살 난 몬스터의 몸뚱이.
한 때 몸을 이루던 고깃덩이들이 물 속으로 흩어진다.
강화된 주먹은 바닷속의 밀도 따위는 가볍게 이겨낼 만큼 빠르고 강했다.
'좋아.'
유현은 눈앞에 둥둥 떠가는 마석을 챙겨 주머니에 넣었다.
조금 더 두둑해진 주머니를 가슴에 품은 채, 다시 헤엄치는 유현.
조금씩 속도를 높여 수색에 박차를 가했다.
어둠을 밝히는 건 라이트 마법 하나. 어둡고 신비로운 심해에는 특이한 몬스터들이 많았다.
대단히 못생긴 물고기나, 해초 같은 다리를 가진 오징어 몬스터나.
'신기한 게 많네.'
시간만 많으면 여유롭게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관광에 쓸 시간은 없었다.
너무 오래 지체하면 길드의 소속원들이 찾아올 것이다.
'.......가만.'
유현은 헤엄을 멈췄다.
길드원들이라면 재료의 위치를 알고 있지 않을까?
오히려 모르는 게 이상했다.
결국에는 수확하는 건 길드원들이니까.
'왜 이 생각을 진즉에 못했지?'
너무 급하게 오느라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유현은 아쉬움에 혀를 차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어차피 일반 길드원들이잖아.'
일반 길드원들도 알 만큼 허술하게 관리할 수준의 재료는 아니었다.
그러니 섬에 있는 이들을 붙잡고 물었어도 아마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침입자를 쫓아 들어올 수준의 길드원이면...'
그들은 아마 간부급일 터.
간부급이라면 재료의 위치를 알 것이다.
'돌아가자.'
유현은 다시 반대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재료는 몰라도 사람을 찾는 건 쉽다.
그러니 그들을 찾아서 재료가 어디있는지 알아내자.
이렇게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듯 재료를 찾아다니는 것보다는 그편이 훨씬 효율적이고 현명한 행동이었다.
***
수십의 길드원들이 게이트를 지나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의 모습은 하나 같이 범상치 않았다.
깊은 바다의 압력을 견디도록 만들어진 마력 공학 슈트.
심해에서도 자유로운 이동을 가능케 하는 돌고래형 탑승 로봇.
그 외에도 심해 전투를 쉽게 하는 온갖 장비들까지.
"이거 너무 과한 거 아닙니까? 망가지면 어쩌려고요."
내부용 무전기를 통해 그들은 서로의 목소리를 듣고 말할 수 있었다. 길드원의 목소리를 들은 랄프는 그에 대꾸했다.
"잡기만 하면 몇십 배는 보상 받는다."
길드의 정예들과 최고가의 장비들까지 동원한 데는 모두 이유가 있다.
"근데 벌써 도망친 거 아니에요? 시간이 꽤 지났는데."
처음 연락을 받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장비가 워낙 고가인 장비인지라 가동 절차가 복잡했다.
미리 이런 상황을 대비했다면 몰라도 돌발 상황인지라 오래 걸릴 수박에 없었다.
"빠져나왔다는 소식은 없어."
침입자가 들어간 이후, 게이트는 쭉 감시 중이었다.
들어간 사람도, 나온 사람도 현재까지는 없었다.
"근데 혼자서 들어갈 정도면 엄청 강할 텐데요. 심지어 소나무에서 보냈다면서요."
"그래봤자 혼자야. 다구리에는 장사 없다."
랄프가 아군의 전력을 돌아보며 이죽거렸다.
상대가 아무리 강한 헌터더라도 이 정도 전력이라면 문제없다.
심지어 이곳은 자신들의 홈그라운드인 바다.
그간 쌓아온 전투 노하우라면 아무리 강한 상대라도 싸워볼 만 했다.
"어이, 김. 이번에도 기대 하겠어."
랄프가 가장 구석에 있던 남자를 돌아보았다.
슈트의 스크린 안으로 보이는 외모는 다른 이들과 달리 동양적이었다.
김이라 불린 남자는 대답 대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랄프가 다시 전방으로 시선을 돌리자, 김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설마 이렇게까지 할 줄은….'
아까 전, 가면을 쓴 사내에게 경고했을 때는 기껏해야 몇 사람 정도만 지원을 갈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이 인원과 숫자, 그리고 장비 등.
하나 같이 최상위 등급의 수중 게이트를 토벌하러 갈 때나 볼 수 있는 규모였다.
'......내가 생각하는 그분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부디 무사히 도망가시기를.'
남자가 간절하게 바라는 사이.
선두 무리가 게이트로 진입했다.
남자도 손잡이를 꽉 쥔 채, 앞 열을 따라 천천히 전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