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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하늘.
휘영청 떠오른 달빛이 지상을 밝히는 가운데, 두 인영이 조우했다.
"오랜만에 연락해서 시킨다는 게 심부름이냐?"
대한민국 지방 도시에서도 한참 떨어진 곳에 있는 외딴 창고 앞.
유현은 그곳에서 강찬성과 만났다.
"사장님 봤으면 인사부터 해야지."
"얼씨구. 안 보던 사이에 젊은 꼰대 다 됐네."
"뉴스도 안 보냐? 지금 세계가 나에게 열광하고 있다니까? 네가 쉽게 만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고, 내가."
"부르긴 지가 불러놓고, 쳇."
강찬성이 불만스러운 얼굴로 혀를 찼다.
유현의 말도 일리는 있지만, 밤 늦게 온 연락에 새벽까지 잠도 못 잤으니 마냥 반갑지는 않았다.
"이거 추가 근무야. 월급 더 줘야 해."
"웃기는 놈이네. 월급 내가 주냐? 니들이 알아서 떼가지? 너 저번 달에 얼마 가져갔어. 내가 알던 것보다 조금이라도 많으면..."
"크, 크흠! 아무렴 어때!"
말을 얼버무리는 강찬성을 보며 유현이 실소했다.
"뭐, 그건 됐고. 주문한 물건이나 꺼내 봐."
강찬성이 옆에 내려둔 가방을 유현의 앞으로 끌고 왔다.
배낭을 열자 안에 보이는 건 물속에서 움직이는 걸 도와주는 잠수 장비였다.
"갑자기 이런 건 대체 구해서 어디다 쓰게? 뭐 다이빙이라도 하려고?"
"수중 게이트에 갈 일이 좀 생겨서."
"아, 그래? 수중..."
동네 마실이라도 나가는 듯한 유현의 말투에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던 강찬성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수, 수중 게이트?"
"응."
수중 게이트.
헌터들도 한 수 거르고 간다는 장소. 천공 게이트나 사막 게이트와 마찬가지로 게이트 등급에 상관없이 대부분의 헌터가 기피하는 대상 1호였다.
"거기를 왜 가는데? 너 미쳤어?"
"미쳤으면 아까 네가 개소리할 때 가만히 안 있었겠지."
"말을 해도 꼭..."
차라리 미쳤다고 말하는 게 설득력이 있다.
그런 게 아니 고서야 수중 게이트에 들어갈 이유가 없으니까.
"거긴 대체 왜 들어가려는 건데?"
"필요한 게 있어서 구하려고."
"뭐가 필요한데 거길 직접 들어가? 차라리 나한테 말해. 내가 어떻게든 구해 볼테니까."
"소나무도 못 하는 걸 네가 어떻게 할 건데?"
5대 길드의 이름이 나오자 강찬성의 표정이 보기 좋게 굳었다.
"내, 내가 아는 그 소나무?"
"그래, 인마. 그리고 그거 구하는 것도 결국에는 내 돈 아니야?"
"거, 거, 거기서 너한테 재료를 구해달라고 했어? 무슨 재료? 대체 그런 재료가 왜 필요한데?"
유현은 강찬성에게 대충 이유를 설명했다. 측근에게 비밀로 할 일도 아니었고, 변명도 마땅찮았다.
"뉴스는 봤었는데 설마 혼수상태일 줄이야..."
안타깝다는 듯 말하더니 곧 그 길드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하여간 날강도 같은 새끼들 많다니까. 사람 목숨이 장난도 아니고, 제 이득에 눈이 멀어 가지고는."
그가 유현의 어깨를 토닥였다.
"고생한다. 근데 말이야..."
강찬성은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입술을 우물거렸다.
"뭔데?"
"흐음. 지금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럼 하지마."
유현이 가차없이 몸을 돌리려하자 강찬성이 급히 소리쳤다.
"요새 공장에 자꾸 누가 침입하려고 해!"
멈칫하는 유현. 그간 공장의 소식은 듣지 못했기에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어떤 정신 나간 놈이?"
"경보 듣고 가보면 이미 사라져있어."
"생각보다 늦게 터졌군."
언젠가는 침입자로 말썽이 생길 거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미리 담을 쌓고, 경보 장치를 설치했다.
'침입자가 아닐 가능성은 거의 없고.'
이곳은 포션 공장이지만, 애초에 창고로 설계된 공간이다.
드물게 지나가던 사람이 기웃거리기도 하고, 아니면 야생동물이 침입하는 경우도 몇 번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단발적인 사건. 이번 일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경비 업체라도 고용할까?"
강찬성의 말에 유현은 고개를 저었다.
"거기에 스파이라도 껴 있으면 어쩌려고? 소리 없이 무너지는 것보다는 허술해도 대놓고 뚫리는 게 좋아. 대처하기 쉬우니까."
경비 업체를 괜히 고용하지 않은 게 아니다.
그들을 통해 보안이 강화된다면, 반대로 그들에 의해 보안이 약해질 수도 있다.
만약 업체 중 한 사람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내부로 들어올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건 일도 아니었다.
'경비 업체는 건너뛰고. 기본적으로 침입이 어렵게 만들면 좋을 텐데.'
앞서 말했듯 여긴 평범한 창고로 만들어졌다. 그것도 그냥 단순히 곡물이나 물건을 쌓아놓는 그런 창고다.
일전에 처들어갔던 한성 제약 공장처럼 다양한 방비 시설을 설치하기 어려운 곳이다.
높안 보안을 유지할 수 없는 곳이기에 그나마 담을 쌓는 게 최선이었다.
'가장 좋은 해결책은 공장을 새로 건설하는 방법.'
언젠가는 하겠지만 지금 당장은 불가능하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해결책이 아니니 패스.
'아니면 마법?'
마법을 활용하여 침입자를 붙잡아 둘 수만 있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 된다.
고려해 볼만한 방법이었다.
"혹시 침입하려는 구역이 매번 겹쳐?"
"아니. 매번 달라."
그럼 마법진도 힘들겠고.
넓은 공장 부지 전체에 마법진을 설치하는 건 비효율적이다.
마법진은 영구 지속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새롭게 깔아줘야 한다.
설치 마법이 그리 간단한 마법도 아니니, 여러 가지를 고려하면 이 방법도 패스.
'가장 쉬운 건 인력을 추가하는 방법이군.'
강찬성이 아무리 빠르게 대응한다고 해도 그 혼자 근무하는 이상 범인을 잡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인원이 늘어나면 그만큼 조치도 빨라질 것이다.
'문제는 어떤 사람을 구하냐는 건데.'
빠른 대처를 위해서 경비 인력은 공장 내부에 상주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포션이나 레시피의 절도를 시도할 지도 모른다.
'확실하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해.'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은 없었다. 믿는 이라고는 아카데미의 친구들이나 사건을 함께 겪으며 관계를 쌓은 몇몇뿐인데 대부분은 본인의 일이 있다.
죽치고 앉은 채 집 지키는 개가 되는 역할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그놈 때문에 요새 서울도 못가. 여자친구가 얼마나 쪼는지 원..."
"당분간 고생 좀 해라."
"무슨 방법 없어?"
"아직은 없어. 좀 진득하게 생각할 시간이라도 있으면 모르는데, 내가 그럴 여유가 없어서."
재료를 구하기 위해서는 한시가 급한 상황.
여기서도 이미 충분히 많은 시간을 지체했다.
유현의 말에 강찬성이 아차했다.
"내가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네. 빨리 가봐라."
"그래. 수고했다."
유현은 강찬성이 챙겨준 배낭을 메고 허공으로 도약했다.
순식간에 멀어지는 그의 등을 보며 강찬성은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애가 왜 이렇게 어른스러운지 모르겠네."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혼수상태에 빠진 동료. 누구라도 멘탈에 큰 데미지를 입을 사건이다.
그러나 사건을 말하는 유현의 눈빛에는 한치의 떨림도 없었다.
'마치 그런 일에 익숙해진 것처럼….'
그게 불가능한 일이라는 건 알고 있다.
아직 헌터가 되지도 못한 이가 상실에 익숙해졌을 리 없다.
그런데도 태연하게 말하고, 행동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는 모습은 영락없이 숙달된 헌터의 모습이었다.
"저게 좋다고 봐야 하나."
몸을 돌려 떠나가는 강찬성.
여전히 그의 눈동자가 발에 밟혔다.
***
유현은 한달음에 목적지로 향했다. 그가 도착한 곳은 태평양의 섬이었다.
휘이잉.
소금기 실린 푸석한 바람이 살며시 불어온다.
그럴 때마다 바다 내음이 물씬 풍겼다.
'냄새가 짜네.'
유현은 섬의 풀숲에 은신한 채 비린 바다의 향기를 맞았다.
그의 시선은 해안가에 위치한 사람들에 닿아 있었다.
'생각보다 많아.'
이런 외딴섬에 길드의 거점을 잡아봤자 하등 도움될 게 없다.
그러니 저렇게 많은 인원은 상정 외였다.
'소나무 쪽에서 사람을 보낼 거라고 예상했나 보군.'
하기야, 소나무 상대로 배짱을 부렸는데 이 정도 대비도 안 하고 있다면 오히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어정쩡하게 똑똑한 짓이 됐겠지.
"그냥 전부 제압하고 들어가면 되겠어."
잔여 인력이 얼마나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위치가 위치다 보니 설령 침입자의 소식이 전해진다고 해도 도착하는 데 꽤 시간이 걸릴 것이다.
'몇 명이 오든 상관은 없지.'
유현은 아공간 조끼를 잠수복으로 변형시킨 뒤 교복을 벗고 갈아입었다.
팔에는 암시장에서 구입했던 팔목 보호대를 착용했다.
보호대에는 대회에서 얻은 마석을 끼워 넣었다.
'혹시 모르니 이 정도 준비는 해둬야지.'
상당양의 마나를 보유하고 있지만, 환경 자체가 특이하다 보니 언제 더 마나가 필요해질지 모른다.
'나머지도 전부 착용하고….'
발에는 오리 발, 머리에는 수영모가, 얼굴에는 물안경까지.
잠수 풀 세트로 무장한 그는 물안경 위에 가면까지 착용했다.
일전에 암시장에서도 쓴 적 있었던, 암살자인 동료가 남기고 간 그 가면이었다.
'거추장스럽긴 해도 어쩔 수 없어.'
맨얼굴을 드러내고 쳐들어갔다가는 후폭풍이 상당하리라.
'좋아, 가자.'
탓.
유현이 팔을 앞뒤로 크게 흔들며 앞으로 뛰쳐나갔다.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며 근무를 서던 길드원 몇이 뒤쪽에서 들려온 소음에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쫄쫄이를 입고, 도깨비 가면을 착용한 기인(奇人)의 모습이었다.
"으, 으아아아아아악!"
"뭐, 뭐야 저게!"
새벽녘. 을씨년스러운 달빛 아래 비친 유현의 모습은 다른 이에게 공포를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비명을 질러대며 오합지졸처럼 사방으로 도망치는 길드원들.
소란을 듣고 막사에 있던 이들이 밖에 나왔지만, 그들 역시 유현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도망쳤다.
"이, 이 자식들아! 다 어디가!"
"야! 쟤네 잡아 와!"
그나마 도망치지 않은 길드원들이 유현과 대척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유현이 흘리는 무지막지한 기세에 몸을 떨었다.
"비켜."
"괴, 괴물이다아아!!!!"
유현의 한 마디에 몸을 돌려 달아나는 이들.
그러나 한 명. 그의 앞에 여전히 서 있는 이가 있었다.
"다, 다, 당신..."
다른 이들과 달리 알아들을 수 있는 한국어를 구사하는 동양인.
유현은 상대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상대의 눈은 자신을 보는 게 아니라 가면을 살피고 있었다.
"그, 그 가면 대체 어디서 났어요?"
"뭔 헛소리야. 너도 비켜."
유현은 덩치 큰 남자를 옆으로 가볍게 밀치고는 게이트 안으로 향했다.
찰박, 찰박.
모래 밑으로 올라오는 얕은 파도를 넘어 유현이 서서히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유현의 명령에 따라 코어에서 흘러나온 마나가 체내를 회전하기 시작했다.
[필터링]
유현은 수중 호흡을 위한 마법을 자신의 호흡기에 부여했다.
무언가를 걸러내 주는 마법으로 호흡기에 사용하고 물속에 들어가면 물속에서 산소만을 걸러낼 수 있다.
그 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이 가능한 범용적인 마법이었다.
"....."
허리까지 차오른 물.
유현은 느껴지는 시선에 뒤를 한 번 흘끗였다.
동양인 남자가 여전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빨리 나와요!"
갑자기 유현을 향해 소리치는 남자.
"너무 오래 지체하면 지원 병력이 올거에요!"
유현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남자의 반응은 아무리 봐도 침입자를 대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뭐, 애초에 오래 있을 생각은 없었으니까.'
목적은 재료 확보.
재료의 자세한 위치는 모르지만, 들어가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근데 누구지? 날 아는 것 같은데.'
정확히는 이 가면을 아는 것 같았다.
기억을 되짚어 보던 유현은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나중에 생각하자고.'
유현은 곧장 물 아래로 잠수했다.
꼬르륵.
남아 있던 산소가 새어나가고.
물속의 산소가 호흡기에 필터링 되어 체내를 순환한다.
조금 답답하지만, 숨쉬는 데는 큰 지장 없었다.
'움직임 나쁘지 않고.'
잠수복을 바꿔 입은 이유는 원활한 움직임을 위해서였다.
호흡이야 마법으로 커버가 되지만, 움직이는 건 그렇지 않다.
'속도도 나름 빨라지고, 몸도 안 젖고.'
유현은 능숙하게 아래로 향해 헤엄쳐 내려갔다.
파란 물결 사이로 드러난 해저의 풍경. 게이트는 갈라지는 골짜기의 끄트머리에 위치했다.
바다보다 푸른색 빛을 띄는 게이트. 오묘한 일렁거림이 괴물의 아가리처럼 느껴졌다.
'몇 백년 만인가?'
마지막 수중 전투가 언제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만큼 오랜만에 경험하는 수중 전투. 유현은 기대감에 떨려오는 마음을 끌어안고 게이트 너머로 헤엄쳐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