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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종목은 큰 혼란 속에서 종료되었다.
유현의 활약을 보지 못했던 참가 팀들은 그의 우승 소식을 접하고 모두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호, 혼자 잖아! 근데 어떻게...!"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조작이야! 조작일 수밖에 없다고!"
대부분은 그의 승리에 불만을 토로하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해하지 못할 반응은 아니었다.
혼자서 게이트를 클리어한다는 건 웬만한 헌터들에게도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아무리 약화된 몬스터들이라고 해도 그 숫자만 수십.
거기에 보스까지 더 해지면 더 막강한 전력이다.
그 모든 걸 혼자서 이겨냈다고?
직접 그 상황을 지켜본 관중들조차 본인의 눈을 의심했을 정도이니 다른 학생들의 반응이 유별난 건 아니다.
"이, 이런 미친..."
"와..."
그런 이들을 위해 대회 측에서는 유현의 전투 장면이 담긴 하이라이트 영상을 중계 채널을 통해 반복해서 송출했다.
그 시점에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대회장에 남아있던 이들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유현의 승리는 정당했음을.
"내, 내가 저런 놈이랑 경쟁했다고?"
"개별 종목에서는 얼마나 봐준 거야?"
"저 정도면 최상급 헌터 수준인데."
모두가 그의 힘에 경악했다.
조금 전까지 험담을 늘어놓던 이들은 이제 그에게 찬사를 보냈다.
"와, 어떻게 저걸 저렇게..."
"유현의 시대니 뭐니, 헛소리가 아니었어."
감탄하는 참가자들과 그런 그들을 지켜보는 관계자들.
비록 우승은 놓쳤지만, 마냥 마음이 불편하지만은 않았다.
"아이들이 더 정진하는 계기가 되겠군."
제임스의 말에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근 몇백 년 사이에 전례가 없는 압도적인 재능을 가진 천재의 등장.
천재는 단순히 혼자 나아가지 않는다.
제 딴에는 혼자서 행동할지 몰라도, 수많은 이들이 그의 등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유현에게 다다르기 위하여 더욱 노력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서로의 경쟁심이 맞물리며 지금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성장할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정말 운이 좋네요. 저런 아이가 우리 세대에 태어나다니."
"그러게 말일세."
세계가 지켜본 그의 활약은 수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선사했다.
아직은 헌터가 아니지만, 언젠가는 헌터가 될 존재.
뛰어난 헌터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안전이 확보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 정도면 S+등급 게이트 나와도 클리어 가능?]
[얘도 미국으로 귀화하는 거 아님?]
[이 정도면 손지성도 땅파고 나와서 박수치겠다ㄹㅇ]
[대한민국 개같이 부활ㅋㅋ]
개인의 성향이 다르고 성별이 다른 커뮤니티들도 오늘만큼은 모두 대동단결이었다.
세계를 뒤집은 자국 출신의 헌터 지망생. 모두의 마음에 염원의 불꽃을 지피기에는 충분한 사건이었다.
***
-세계를 호령했던 손지성의 시대가 저물고 고작 두 세대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또 새로운 부흥기를 일으킬 헌터가 등장했습니다.
유현의 소식은 전파를 타고 각국의 TV 뉴스에도 송출되었다.
대한민국의 방송국들은 속보나 보도를 하는 것만으로는 만족스럽지 않았는지 특별 코너까지 편성했다.
그곳에서는 유현이 처음 두각을 드러낸 하이패스 테스트를 시작으로 오늘 있었던 대회까지 차례대로 나열하며 그의 발전 과정을 설명했다.
"허허. 참 많은 일이 있었구나."
호텔 객실에서 TV를 보던 안칠성은 특별 코너를 시청하며 새삼스레 과거를 떠올렸다.
"그게 고작 몇 달 전이라니."
처음 유현이 돌아왔을 때.
그때는 참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1년을 가출했다면 보통은 퇴학하기 마련이었으니까.
그런데 유현은 아무렇지 않게 돌아와 휴학을 끝냈다. 게다가 이전에는 보여준 적 없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현이와 관련된 일들은 언제나 놀라움의 연속이었지.'
하이패스 테스트는 물론이고, 그 뒤로 이어진 등급 테스트를 비롯한 여러 사건까지.
무엇 하나 평범하지 않은 사건들이었다.
"처음 네 담임을 맡았을 때는 너처럼 평범하기 그지없는 아이도 없었을 텐데."
안칠성의 말에 유현은 말없이 웃었다.
처음이라는 게 안칠성에게는 고작 몇 년 전의 일이니, 기억 나는 게 당연하겠지만, 유현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지워진 지 오래인 기억이었다.
"여전히 네가 갑자기 변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돌아와 줘서 고맙다."
안칠성은 유현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동안 안칠성에게 아카데미는 단순한 직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유현이 돌아온 이후로는 출근이 즐거워졌다.
뛰어난 제자가 있다는 건 직책뿐인 스승이더라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이었으니까.
"네 덕분에 간절히 바라던 소망도 이뤘어."
"부원장이요?"
"그래. 그 양아치 새끼 내보내는 게 오랜 꿈이었는데 그동안 기회가 없었거든."
유현은 피식 웃었다.
"학생 앞인데 너무 말을 험하게 하는 거 아니에요?"
"......크흠. 가끔 네가 학생이라는 걸 잊는다."
"여기 춘식이도 있는데."
안칠성이 메이블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곤히 잠든 상태였다.
"내일이면 퇴원해도 된다더구나."
"시상식은 참가하겠네요."
"그래."
분위기가 자연스레 무거워졌다.
아직 깨어나지 못한 팀원이 있는 까닭이다.
"내일 시상식에서 입을 정장은 준비해준대요."
"잘 됐구나."
"꼭 입어야 하나? 답답할 거 같은데."
"드레스 코드가 정해진 자리에서는 입는 게 좋지."
그때, 유현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한상용에게서 온 전화였다.
"저 먼저 가볼게요."
"그래. 오늘은 푹 쉬고, 내일 아침에 보자."
안칠성은 보호자로서 메이블의 병실에 남아있어야 했기에 유현은 혼자 병실을 나왔다.
"여보세요?"
병원을 나오며 한상용과 통화하는 유현.
한상용은 전화를 통해 재료 수집의 진행 상황을 설명했다.
-다행히 두 명분은 구할 수 있을 것 같구나.
"잘됐네요."
-근데 문제가 있어.
한창 복도를 걷던 유현의 걸음이 우뚝 멎었다.
"문제요?"
-많이 귀한 재료가 있어서 말이다. 1년에 한 번 채집하는데, 며칠 뒤면 채집 시기라는군.
이걸 얻으려면 길드가 점거 중인 게이트에 들어가서 몰래 가져와야 해.
"사면 되는 거 아니에요?"
-그게 아무래도 우리가 재료를 구한다는 소식을 그쪽에서 알고 있는 것 같아. 말도 안 되는 금액을 제시받았어.
이런 일이 외부로 유출되는 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단순히 추론만으로도 알아낼 수 있는 일이기도 했고.
'한서희가 종적을 감춘 시점에 소나무가 직접 약재를 구하기 위해 움직인다?'
결론은 뻔하다.
한서희에게 어떤 문제가 생겼을 테고, 소나무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약재가 필요한 것이라고, 예측했겠지.
뭐, 그런 복잡한 이야기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가격을 비싸게 부를 이유는 상대가 '소나무' 길드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비싸게 살 수 있는 사람에게 비싸게 부르는 것일 뿐이니까.
"제가 갈게요."
-뭐? 아니,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야. 그냥 너도 알아둬야 할 것 같아서...
"누구 보낼 사람 있어요?"
한상용은 침묵했다.
유현의 말이 정곡을 찔렀다.
사람은 많지만, 사람을 파견하기에는 상황이 마땅치 않다.
좋든 싫든 물의를 일으키는 일이니 들켜서는 안 되는데, 게이트의 특성상 몇 명은 보내야 하니 발각되는 건 거의 필연적인 일이었다.
얼굴을 가리는 방법도 있지만, 그런 위험을 부담하기에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이건 소나무의 명운이 갈릴 수도 있는 문제였으니까.
-그렇다고 네가 가는 건 안 돼. 내일 시상식이잖아.
"그깟 상 받는 게 중요해요? 물론 상금은 중요하지만, 시상식 안 간다고 나한테 안 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긴 한데...
"그럼 주소 보내요. 오늘 경기 봤으면 나만큼 믿을 만한 사람 없다는 것도 알죠?"
한상용은 길게 침음했다.
그 역시 경기를 지켜보았으며, 유현의 말에 공감했다.
또다시 자신과 세상을 놀라게 한 엄청난 실력.
그는 이미 완성된 존재나 다름없었다. 어떤 게이트를 보내더라도 절대 쉽게 당할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실력과 이건 별개야.'
이건 어디까지나 어른이자 삼촌인 자신이 책임져야 할 문제.
유현의 능력이 뛰어나다고는 해도 그에게 위험한 일을 전가할 수는 없었다.
-미안하다. 역시...
"내가 못 미더운 건 아닐 테고. 뭐, 책임감 같은 건가?"
수화기 너머의 침묵은 곧 대답이 되었다.
유현은 답답함에 한숨을 쉬었다.
"제가 예전에 말했잖아요. 한서희가 다친 건 제 책임도 있다고."
마스톨은 연결한 것도, 메이코에게 저주를 걸어가며 방법을 알아낸 것도.
전부 책임감을 느껴서였다.
"그런데 왜 자꾸 날 무시하지?"
누군가는 예의 없다고 할 유현의 발언. 하지만 그 말을 들은 한상용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고작 몇 마디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무게감. 누가 이 아이를 학생이라고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
"한 번 도움받았으면, 끝까지 돕게 해줘요."
한상용은 잠시 말을 잃었다.
그렇게 한동안 침묵이 이어지고.
긴 고민 끝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 생각이 짧았다. 미안하구나.
"그럼 보내주는 거죠?"
여전히 뜯어말리고 싶은 마음이 강했지만, 유현의 말을 반박할 논리가 없었다.
또 한상용은 직감했다.
설령 여기서 유현을 가지 못하게 막는다고 해도,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리라는 것을.
그게 자신을 협박하는 일이더라도 유현이라면 할 것 같았다.
-그래. 하지만 많이 위험할 거다.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약초는 생각도 하지 말고 바로 빠져나와라.
"걱정도 많으셔라."
유현이 가볍게 대꾸했지만, 한상용은 진지하게 다시 한번 말했다.
-내 말 확실히 새겨둬. 그게 조건이야. 난 서희 때문에 너까지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아.
"...알겠어요."
유현은 몇 마디를 더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곧 문자를 통해 목적지가 도착했다.
'대체 얼마나 위험한 곳이길래 그래?'
한상용이 저렇게 말할 정도면 무언가 있긴 있는 듯했다.
유현은 문자로 받은 목적지를 검색했다.
지도상 위치는 태평양에 있는 어떤 섬의 앞바다였다.
검색 결과를 조금 더 찾아보니, 아무래도 수중 게이트로 유명한 곳 같았다.
'게이트 안쪽도 물속이군.'
수중 전투라. 한상용이 말한 바도 이해가 됐다.
지상과는 완전히 다른 환경.
물속에서 싸우는 건 특별한 장비의 도움이 없거나 관련된 특성이 없다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뭐, 수중 전투가 처음도 아니고."
판대륙에서 오랜 시간을 싸워왔으니 자연스레 수많은 전장을 누볐다. 바닷속도 그중 하나였다.
비록 육지처럼 자유자재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전투는 가능하다.
"이러면 내일 시상식은 나가리군."
가능한 서두르는 게 좋다.
늦장을 부리다가는 길드 측에서 먼저 약초를 채집해갈 수도 있으니까. 또, 수중 전투에 필요한 준비물도 준비해야 하니, 지금 당장 움직여야 했다.
"미안하게 됐습니다, 선생님."
유현은 병실을 일별하고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
"케르르르."
"크으으으."
서늘하다 못해 등골을 시리게 만들 정도의 한기가 감도는 창고.
수천 평에 달하는 공간에 수천 개의 울타리가 나열되어 있다.
높이 솟고, 규칙적인 간격으로 늘어선 울타리들.
어둠 속에서 희번뜩이는 살벌한 눈동자에 호야가 흠칫 몸을 떨었다.
"으으, 오줌 지리겠네."
"가까이 다가가지 마라. 그러면 진짜 지릴테니까."
백청룡의 놀림에 호야가 구시렁거렸다.
"그럼 대장한테 쌀 거야."
"끔찍한 소리 하기는."
두 사람이 이야기하며 거니는 이곳은 지구 어딘가에 마련된 케이디 본부의 창고.
그들의 전력을 보관하는 장소였다.
"이걸 정말 내일 다 풀어?"
두 사람은 짙은 어둠이 깔린 창고를 나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래. 한 마리도 빠짐없이 모조리 내보낼 계획이라더군."
"왜 이런 짓을 하는 걸까? 대장도 모르지?"
백청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어디까지나 아시아 변방 국가의 지부장일 뿐.
창고를 돌아다니는 정도의 권한은 있지만, 본부에서 주도하는 작전의 핵심을 알 정도로 높은 위치는 아니었다.
"우린 진짜 시키는 일만 하는 거네."
"싫냐?"
"아니. 상관없어.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살았으니까."
어려서부터 이곳에서 지낸 호야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그나저나 괜찮을까? 시상식이면 다른 헌터들도 많을 텐데. 아카데미 애들도 있고."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군. 우리가 그 정도 대비도 안 했을까봐? 아니면, 네가 자신이 없는 건가?"
그 말에 호야가 코웃음 쳤다.
"내가 자신이 없으면, 퍽이나 케이디가 돌아가겠네."
자신감을 드러내는 호야.
그는 내일을 무척이나 기대하고 있었다.
싸우는 건 언제나 즐거웠으니까.
"본부와 지부의 모두가 움직이는 작전이야. 스카이 아일랜드의 특수 부대도, 헌터나 아카데미 학생들도 쉽게 제압할 수 없겠지."
"그렇지?"
엘리베이터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바깥으로 나왔다.
사방이 꽉 막힌 내부는 창고만큼이나 넓었다.
"와..."
호야는 넓은 공간에 오와 열을 맞춰 도열한 조직원들을 보며 감탄했다.
"이게 케이디의 전력..."
정확히 말해, 전력은 아니었다.
이곳에는 본부에 소속된 간부들이 없었으니까.
'진짜 핵심은 본부에 소속된 간부들이라던데.'
과연 어떤 싸움이 펼쳐질까.
호야의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