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53화 (153/219)

153

"하하하하하!"

"저게 뭐야~!"

유현의 엄청난 활약에 소란스럽던 대회장은, 도리어 그의 기행으로 웃음 꽃이 피어났다.

관중들은 물론 관계자들까지.

해설을 담당하던 해설자 역시 한 마디를 뱉었다.

-이 대회를 참 오래도록 봐았지만, 이런 광경은 처음 보네요.

참가자 대부분은 보스를 잡은 시점에서 녹초가 된다.

당장 지쳐 쓰러지려는 이들의 눈에 마석 따위가 눈에 들어 올 리 없었다.

"정말이지 끝까지 종잡을 수 없는 아이로군."

메리도 제임스의 의견에 동의했다. 살다 살다 대회에서 잡은 몬스터의 마석을 챙기는 학생을 볼 줄이야.

"근데 저거 챙겨도 돼?"

"관련 규정은 없는 걸로 알고 있네. 주최 측에서 이번 일을 계기로 새로 규정을 만들지도 모르겠군."

새롭게 설립된 규정이 적용되는 건 보통 다음 대회부터.

그러니 유현이 채취한 마석을 빼앗길 일은 없었다.

"물론 사유재산이니 돌려달라고 말하면 꼼짝없이 줘야겠지만."

"흐음. 어쩌려나."

메리는 마석을 수집하는 유현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무슨 마석 빨아들이는 청소기도 아니고."

유현은 감탄이 나올 정도로 빠르게 마석을 채취했다.

몬스터의 숫자가 많았지만, 워낙에 신속하게 행동하여 순식간에 모든 마석을 회수했다.

곧 마석을 가득 안은 유현이 게이트를 지나 대회장으로 돌아왔다.

"와아아아아!"

사람들은 유현을 향해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최고다! 유현!"

"우리나라로 귀화해줘!!"

"GREAT KOREA AGAIN!"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환상적인 전투와 마지막에 보여준 쇼맨십까지.

아직 다른 팀의 대회가 한창이었지만, 모든 전광판은 바깥으로 나온 유현을 비추고 있었다.

-두 번째 종목의 우승 국가는 대한민국입니다!

게이트 종목의 우승은 가장 먼저 클리어한 국가의 몫이다.

유현은 가장 먼저 게이트를 클리어하며 대한민국에게 또 하나의 우승을 안겨주었다.

-또 종합 우승까지 차지했네요!

각 종목에서 우승을 차지한 대한민국은 자연스레 종합 우승까지 확정지었다.

흔히들 트리플 크라운이라고 불리는 삼관왕.

세계 선수권의 특성상 자주 나오는 일이었지만, 그걸 혼자 만들어냈다면 이야기는 또 다르다.

사실상 팀이라는 탈을 쓰고서 홀로 이룩해낸 결과물.

말이 대한민국의 우승이지, 유현의 우승이나 마찬가지였다.

-정말 대단합니다, 유현 선수!

유현은 모든 관중의 관심을 오롯이 독점했다.

전광판이 그의 모습만을 비추었으나 누구도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다.

"대단하다!"

"멋있어!"

유현에게는 그럴 자격이 있었다.

대회가 열린 지난 시간동안 누구도 보여준 적 없는 압도적인 퍼포먼스. 세기의 인재를 눈앞에 두고 감히 누가 불만을 가질까.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얽힌 관계자들 역시 경쟁자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하하! 땡큐, 땡큐!"

유현은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너무 아쉬워."

"애들이 나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원..."

하지만 왕쓰총처럼 노골적으로 짜증을 내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유현의 힘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오히려 저런 인간을 상대로 우승을 노린다는 게 지나친 바람이 아니었을까.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야 역전의 가능성을 논했지, 경기를 보고나서도 똑같은 소리를 한다면 그건 그냥 바보였다.

"끙차."

유현은 사람들 사이를 지나 대회를 마친 선수들을 위해 마련된 개인 휴게실로 들어갔다.

휴게실의 TV에서 다른 참가국의 중계가 송출되고 있었다.

"다들 잘하고 있으려나."

지금 화면은 프랑스팀.

참가자는 총 네 명으로 정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인원이었다.

"평야군."

제법 쉬운 편에 속하는 필드.

그래서 그런지 인원수가 부족한데도 수월하게 나아갔다.

"다른 곳은…."

유현은 채널을 돌리며 타국의 상황을 살폈다.

우선 인도 팀.

인구가 많은 국가인 만큼, 뛰어난 재능의 아이들이 선발되었다.

하지만 인프라가 부족한 건지, 다들 미숙한 대처를 보이며 결국 안전 요원이 투입되었다.

"첫 탈락이군."

클리어하지 못한 팀은 자연스레 최하위로 내려가게 된다.

"다음은 영국인가?"

이번에는 엘리스가 속한 영국 팀이었다.

-엘리스! 뒤쪽 막아! 전방에서 오는 건 앤써니와 헬렌이 같이 방어하고!

여러 마리의 몬스터가 동시에 몰려온 일촉즉발의 상황.

검과 방패를 든 여학생의 지시에 따라 아이들이 유연하게 움직이며 대처했다.

그중 개별 종목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엘리스의 활약은 단연 돋보였다.

"역시 강해."

유현은 또 채널을 돌렸다.

이번에 나온 건 일본 팀이었다.

"흐음."

왜인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려는 일본 팀.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잘은 모르겠지만, 메이코와 타치바나의 의견이 갈린 것 같다.

쿠로가네가 아이들을 말렸으나 서로 갈라지기로 결정이 난 듯하다.

"쯧. 저런 데서도 성격을 못 버리네."

열심히 몸을 긁으며 쿠로가네와 함께 움직이는 메이코.

아이들에게 소리치는 걸 보니, 가려움으로 한껏 예민해진 탓에 제 성격이 드러난 것 같다.

"이번 기회에 뼈저리게 느끼겠구만."

대회가 끝나고 나면, 자국민에게 몰매를 맞을 건 불 보듯 뻔했다.

유현은 그녀가 이케가미가 겪은 고난을 똑같이 겪기를 바랐다.

"다음은 중국 팀이군."

중국 팀은 하오란의 강인한 카리스마 앞에 차근차근 나아가고 있다.

지형은 산악지대.

하오란은 익숙하게 산세를 살피며 몬스터의 흔적을 좇았다.

"과연."

하오란은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 사냥꾼 부족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했다.

"경험자 답네."

중계 화면에는 실시간으로 진행도가 표시되었다.

보스와의 거리나 몬스터의 잔량 등 다양한 정보로 판별하는 듯했다.

현재까지 가장 높은 곳은 중국 팀. 하오란의 능력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미국 팀은 어느 정도려나?"

유현은 채널을 넘기며 미국 팀을 찾았다.

곧장 발견한 건 서부 팀이었다.

고작 여섯 명으로 이루어진 서부 팀의 진행도는 형편없었다.

그다음은 동부 팀이었다.

서부 팀과 뒤엉켜 억울하게 대회를 망친 그들. 물론 서부 팀 일부도 억울하긴 마찬가지겠으나 이들은 아예 다른 팀이었으니 경우가 달랐다.

"오."

동부 팀은 압도적인 진행도를 기록하고 있었다.

당장 마주한 보스만 잡고 나온다면 클리어였다.

"잡을 수 있으려나."

애초에 우승을 노리고 있는 만큼, 동부 팀은 처음부터 아낌없이 무력을 사용했다.

그 결과, 가장 빨리 도달할 수는 있었지만, 그만큼 지치기도 했다.

"허억, 허억."

방패를 든 전사가 거친 숨을 헐떡이며 기진맥진했다.

흔들리는 동공 너머로 보이는 것은 고산지대의 보스 몬스터 자이언트 스콜로펜드라.

지네와 비슷하게 생겼으나 몸뚱이는 몇 층짜리 건물처럼 거대했고, 몸뚱이 옆에는 수백 개의 다리가 달려 있다.

혐오스러울 만큼 끔찍한 생김새였다.

"젠장. 다들 조금만 버텨!"

막 보스가 뱉은 독을 방어한 전사가 팀원들을 독려했다.

보스의 상태는 척 보기에도 좋지 않았다.

거대한 몸 곳곳에는 전투의 흔적이 가득했고, 베이고 찔린 상처에서는 진득한 보라색 체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앞으로 조금. 조금만 더 공격하면 전투의 결과가 나올 것이다.

"으아아아아!"

"죽어라!!"

모두가 그걸 알고 있었기에 이를 악물고 다시 몸을 움직였다.

'이 정도 속도면 우승도 가능해.'

전사가 방패를 내세우며 적의 몸뚱이에 검을 찔러 넣었다.

그에게 쏠리는 보스의 어그로.

이내 날아오는 공격을 막으며, 전황을 살핀다. 그런 와중에도 그의 머릿속에서는 우승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크아아아아!"

보스가 크게 몸부림쳤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다들 조심해!"

하지만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방심해서는 안 된다.

"크아아아!"

보스가 제자리에서 돌기 시작했다. 점점 가속도가 붙기 시작하더니 마치 프로펠러처럼 매섭게 회전했다.

"온다!"

이윽고 입을 통해서 발사된 분비물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전사와 가까이 있던 이들은 그의 뒤로 몸을 숨겼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자연물에 엄폐했다.

치이이익!

분비물이 닿은 곳은 종류를 막론하고 빠른 속도로 녹아내려갔다.

동귀어진이라도 하려는 듯한 최후의 몸부림. 동부 팀이 할 수 있는 건 방어 뒤에서 공격이 끝나기를 바라는 것뿐이었다.

"크으으윽!"

선두에 있던 전사는 어느 정도의 피해를 피할 수 없었다.

방어구를 뚫고 느껴지는 피부를 지지는 작열감.

당장이라도 방패를 집어던지고 싶었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젠장! 언제까지 끝나는 거야!"

그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공격이 멈췄다.

보스의 회전이 서서히 느려졌다.

전사가 눈을 번뜩였다.

"공격해!!"

공격이 멎은 틈을 타 맹공하는 동부 팀.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맹렬한 공격이 곧장 보스에게 쏟아졌다.

쉬이익!

바람의 칼날이 깊은 상처를 만들고.

푹!

날카로운 날붙이가 몸을 꿰뚫었으며.

쾅!

거대한 바위가 몸뚱이를 짓이겼다.

찰나에 집중된 엄청난 화력.

바위에 깔린 보스가 몸을 바들바들 떨더니 축 늘어졌다.

이전과 달리 다시 일어나는 일은 없었다.

"와아아아아아!"

모두가 승리의 함성을 질렀다.

"이러면 우승인가!?"

"이 속도면 무조건 1등이지!"

"1등이야! 우리가 1등이라고!"

체감하기에도 엄청난 속도.

1등을 확신한 이들이 서로를 부등켜 안으며 기쁨을 나누었다.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만큼, 그들의 기쁨은 배가 되었다.

"흐흐흑! 우승이라고오!!!"

한 명이 눈물을 흘리자 몇 몇이 따라 울었다.

전사는 그들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다들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라고! 난 먼저 나가있을 테니까!"

클리어 측정 기준은 인원 한 명이 게이트 밖으로 나온 시점.

게이트가 생성되자 기다리고 있던 전사가 제빨리 게이트 밖으로 움직였다.

"하하하하!"

몸을 던진 탓에 바닥에 그대로 넘어졌지만, 전사는 웃었다.

대회 도중 생긴 좋지 않은 사건.

컨디션을 망치고, 그냥 귀국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왔었다.

하지만 서로 합심하여 힘을 북돋았고, 파이팅 넘치게 대회를 시작할 수 있었다.

"다들 진짜 고생 많았어."

바닥에 고개를 처박은 전사는 그만 눈물을 흘렸다.

참으려고 했지만, 고생한 걸 생각하니 참을 수가 없었다.

어떤 승리보다도 더 값어치 있는 승리. 자신들을 지켜보던 국민들 역시 기뻐할...

"...음?"

전사는 그제야 위화감을 느꼈다.

왜인지 사람들의 환호가 들리지 않았다.

1등으로 클리어했고, 우승도 했으며, 심지어 나름의 스토리까지 있는데 어째서?

사람들의 반응이 있긴 했지만, 생각보다 시원찮았다.

"와, 동부 팀도 나왔네!"

"엄청 빠른데?"

"잘했어~!"

좀 더 폭발적인 함성과 감탄을 생각했는데, 무언가 어정쩡한 느낌.

전사는 얼떨떨했다.

'뭐지...? 대체 왜?'

전사는 사람들의 반응에 이상함을 느끼면서 몸을 일으켰다.

머릿속에 조금 전 한 사람이 했던 말이 재생됐다.

"......동부 팀도?"

동부 팀도 나왔다는 건 누군가 이전에 나온 사람이 있다는 뜻.

전사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곧 발견할 수 있었다.

저 멀리, 휴게실이 마련된 건물에서 익숙한 얼굴이 걸어나오는 것을.

"어, 어, 어, 어떻게..."

전사가 뒷걸음치더니 이내 사납게 엉덩방아를 찧었다.

육중한 갑옷 탓에 강한 충격이 밀려왔지만, 고통을 느낄 여유조차 없었다.

뒤통수를 몇 대는 얻어맞은 듯 멍한 정신.

두 눈으로 보고 있는 게 진짜 현실인가.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가. 아니면, 세상이 자신을 속이려 드는 건가.

온갖 잡다한 생각 속에서 현실감은 서서히 아득해졌다.

"......"

유현이 그에게 시선을 한 번 주고는 옆을 지나쳤다.

문득 들려온 이국의 언어가 전사의 귓가를 메웠다.

"아이 씨, 오줌보 터지겠네. 무슨 놈의 휴게실에 화장실이 없어?"

화장실을 찾아 대회장을 기웃거리는 유현.

전사는 여전히 전방에 시선을 고정한 채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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