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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52화 (152/219)

152

[월]

체내를 달리던 마나가 술식에 이끌려 바깥으로 분출했다.

순식간에 솟아난 모래의 벽이 일대를 둘러싸며 몬스터들을 가두었다.

[레인]

이어지는 물 속성의 마법.

안 그래도 대못 같던 빗줄기가 더욱더 맹렬하게 쏟아졌다.

엄청난 속도로 차오르는 수위.

마법으로 다듬어진 모래의 벽은 조금의 누수도 없이 온전히 빗물을 수용했다.

"우워어어어!"

물에 잠긴다는 걸 난생처음으로 느껴본 몬스터들이 격렬하게 몸부림쳤다.

그들에게 이제 유현은 안중에 없었다.

점차 차오르는 물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할 뿐이었다.

벽을 공격하거나, 땅을 파려 시도하거나.

"그렇게는 안 되지."

유현은 여러 마법을 중첩 사용하여 벽의 내구도를 강화했다.

고작 물을 머금은 모래로 만들어진 벽이 강철만큼이나 단단해졌다.

"수심은 이 정도면 됐고. 다음은..."

몬스터들의 허리춤까지 차오른 수위. 벽의 절반이었지만, 그걸로도 충분했다.

[라이트닝]

먹구름은 필드 마법.

한 번 깔아놓은 뒤 관련된 마법을 사용하면 보다 큰 효과를 줄 수 있다.

비를 내리게 하는 [레인]이 그랬고, [라이트닝] 마법 역시 그렇다.

콰과과광!

폭음에 가까운 천둥.

다음 순간.

수십 줄기의 낙뢰가 수면에 작렬했다.

"크아아아아아!"

"우어어어!"

끔찍한 포효가 스피커를 메웠다.

몸을 부들부들 떠는 몬스터.

몸에는 그을림이 새겨졌고,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비위가 약한 몇몇 관중은 홱 고개를 돌려버렸다.

"......"

찢어지는 포효는 사라졌다.

대부분의 몬스터가 감전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지만, 누구도 쓰러지지 않았다.

짙은 하늘은 끊임없이 번개를 뱉어냈고, 그들이 쓰러질 틈조차 주지 않았다.

"......감옥."

누군가 말했다.

감옥. 가둬 둔 채, 끝없는 고통을 선사하는 공간.

그 안에서, 몬스터들은 죽어도 죽지 못했다.

"이, 이런 미친! 저게 가능하다고?"

"대, 대단하잖아!"

"맙소사..."

비가 그친 하늘에서 내리꽂히는 푸른 빛의 벽력에 관중석이 잠잠해진 것도 잠시.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감탄을 뱉어냈다.

"......"

제임스는 벼락으로 명멸하는 화면을 보며 할 말을 잃었다.

지금의 감정을 형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처음 받았던 충격에 여전히 머리가 멍했다.

"하, 하하..."

메리가 얼빠진 얼굴로 헛웃음을 흘렸다.

유현의 특성이라는 원소.

사기적인 능력이었고, 충분히 잘 다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학생의 수준일 때의 이야기.

헌터의 기준으로 본다면,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은 좀 더 정진해야 되겠다는 평가를 자체적으로 내렸었다.

그러나 지금.

눈 앞에 펼쳐진 광경으로 확실하게 깨달았다.

"부족한 게 아니야..."

"......뭐?"

"나는 지금까지 저 아이의 능력이 헌터로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어."

제임스는 그녀가 말하려는 바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동안은 상대가 사람이었으니..."

"맞아. 상대가 사람이니 스스로 조절한 것뿐이었어."

만약 유현이 지금 보여준 힘을 1:1 대결에서 사용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대회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을지도 모른다.

"다루는 능력 하나하나가 웬만한 상급 헌터에 필적해."

순식간에 먹구름을 만들고, 모래로 부서지지 않는 벽을 세우고, 폭우가 쏟아지게 하고, 수십 줄기의 번개를 몰아치고.

하나 같이 각 특성을 가진 상급 헌터들이나 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그걸 유현은 혼자서 전부 해냈다.

"대체 어디서 저런 아이가 튀어나왔지?"

그녀가 알기로 유현이 두각을 드러낸 건 한국 아카데미의 하이패스 테스트 때부터였다.

하지만 그때 관계자에게 보고 받은 내용은 그냥 '새로운 유망주가 등장했다' 정도였다.

'저런 힘을 가졌으면서 지금까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니.'

사용할 필요가 없었던 탓이겠지.

아니면, 감춰야 할 이유가 있었거나.

'이제는 정말 다 보여줬겠지?'

강력하고 빠른 육체와 하나의 속성만으로도 상급 헌터에 버금가는 뛰어난 특성을 몇 개나 가진 희대의 재능.

웬만큼 뛰어나다는 이들도 하나를 이룩하기 어려운데, 유현은 그 두 가지를 가지고 있다.

'...만약 지금 보여준 게 저 아이의 전부가 아니라면?'

문득 든 생각에 메리가 목울대를 꿀꺽였다.

지금도 상식을 초월한 힘인데, 그 이상이 존재한다?

단순한 상상이었지만, 경외심을 넘어 두려움마저 들었다.

쿵!

그때 옆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제임스와 메리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사기다! 이런 일이 있을 수는 없어!!"

왕쓰총이 전광판을 향해 조금 전까지 앉아 있던 의자를 던진 것이다.

남은 의자는 옆에 많았고, 왕쓰총은 계속해서 테러를 시도했다.

주변 사람들이 만류했지만, 그의 행동은 멈추지 않았다.

"이게 말이 되냐고!!! 다 중국 팀을 우승하지 못하게 하려는 위원회의 모략이다아아아!!!"

진행 요원들이 빠르게 그를 제압하여 시험장 밖으로 끌고 나갔다.

그때까지도 왕쓰총은 발악을 멈추지 않았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한 사람이 몇 개의 능력을 저렇게 잘 다룰 리가 없어어어어어!!!!!"

그 모습을 보던 제임스가 피식 웃었다.

"내가 이상한 건가? 저 사람의 반응에 조금 공감이 가는데."

"정상은 아니지만, 이해는 된다."

그만큼 유현의 무력은 충격적이었다.

"이제 남은 건 한 놈인가."

모여든 몬스터를 모두 잡았지만, 아직 게이트의 클리어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클리어 조건은 보스 격파.

슈퍼 호넷은 자신의 방어막 안에서 여전히 고고하게 하늘을 비행하고 있었다.

"저놈은 또 어떻게 잡으려나."

기대감 어린 시선이 화면으로 향했다.

어느새 낙뢰는 멈췄다.

풍덩 소리를 내며, 전격에 고정되어 있던 몬스터들이 수면 아래로 쓰러졌다.

모래 탑 위에 서 있던 유현은 그제야 슈퍼 호넷에게 눈을 돌렸다.

"보스 몬스터도 결국에는 독립적인 개체 같은 건가?"

다른 놈들이 죽으면 반응을 보일 줄 알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다.

종족이 다르기 때문일까.

같은 몬스터라고 하여 어떠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건 아닌 듯했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유현의 눈이 반짝였다.

게이트에 들어오기 전 받았던 스트레스는 조금 전의 전투로 사라졌지만, 아직 부족하다.

"진짜는 손맛이지."

불끈 주먹을 쥐는 유현.

그가 망설임 없이 모래탑을 박차고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위이이이잉!

그를 경계하고 있던 슈퍼 호넷은 유현의 행동에 반응했다.

허공에서는 움직임이 제한되기 마련. 그 점을 노린 슈퍼 호넷이 유현을 향해 쇄도했다.

위이잉!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는 슈퍼 호넷의 독침.

녀석의 접근을 보며 유현이 씩 웃었다.

'걸렸다, 이놈.'

독침이 몸에 닿기 직전.

유현이 몸을 비틀었다.

아슬아슬하게 전면을 스치는 독침. 유현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녀석의 몸뚱이에 온몸으로 달라붙었다.

"키이이이!"

그의 행동에 비명을 지르는 슈퍼 호넷.

속도를 높이고, 방향을 비트는 등 과격한 비행으로 유현을 떨구어내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소용없었다.

유현은 태연하게 슈퍼 호넷의 몸뚱이에 주먹을 꽂아 넣었고.

그 상태로 마법을 사용했다.

화르륵!

속에서 피어오른 불꽃.

속부터 익기 시작한 슈퍼 호넷은 끔찍한 비명을 지르더니 이내 펑! 소리와 함께 허공에서 폭발했다.

"와아아아아!"

사방으로 흩어지는 슈퍼 호넷의 시체 조각.

너무나 간단하게 보스 몬스터를 잡아낸 그를 보며 관중들이 환호했다.

"1등이야!"

"미쳤어! 진짜 혼자서 다 잡았다고!"

"아까 누구야! 누가 못 한다고 그랬어!"

지상으로 안정적으로 착지한 유현. 곧 그의 앞에 외부로 향하는 포탈이 생성되었다.

"뭐야. 벌써 끝이야?"

호들갑을 떨길래 얼마나 어려운가 했더니, 간에 기별만 간신히 가는 수준이었다.

"뭐, 그래도 재미는 있었네."

오랜만에 사용해 본 필드 마법.

처음 사막지대라고 결정이 되었을 때, 유현의 머릿속에는 대략적인 구도가 잡혔다.

모래를 활용한 녀석들이 많을테니, 우선 그것부터 차단하자고.

그 이후의 행동은 즉흥적이었지만, 처음의 계획 덕분에 수월하게 사냥할 수 있었다.

"하늘은..."

유현은 위를 올려다보았다.

아직 그대로 남아 있는 먹구름.

하지만 비나 벼락이 떨어질 일은 없으니 굳이 지울 필요는 없었다.

"가만히 놔두면 알아서 없어지니까."

유현은 게이트에서 등을 돌렸다.

그의 행동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바로 안 나가지?"

"측정 시간은 게이트 밖으로 나가야 측정되는데... 설마 모르나?"

게이트 클리어 시간의 측정 기준은 열린 게이트를 통해서 내부 인원 한 명이 바깥으로 빠져나갔을 때다.

만약 보스를 잡았다고 해도, 바깥으로 나오지 않으면 인정되지 못하는 것이다.

"쟤, 쟤가 갑자기 왜 저러냐?"

안칠성 역시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시작 전에도 몇 번이나 공지된 내용이었기에, 유현이 모를 리가 없다.

"어... 현이니까 무슨 생각이 있지 않을까요?"

"아니, 저기서 무슨 생각을 더 해. 잡았으면 빨리 나오면 돼지."

유현이 엄청난 능력을 선보였을 때는 탄성을 질렀다.

당장 경기를 중단할지 말지 고민하던 상황이었기에 기쁨은 몇 배나 커졌다.

거기에 이어, 슈퍼 호넷을 빠르게 잡는 마무리까지 좋았거늘, 느닷없이 출구에서 등을 돌리다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안칠성은 답답함을 느꼈다.

"어서 나와라, 유현."

유현은 손짓 한 번으로 모래의 벽을 허물었다. 갇혀 있던 물이 사방으로 퍼졌다.

이내 지상 위로 적나라하게 드러난 몬스터들의 시체.

유현은 머릿속으로 대회의 대략적인 규정을 떠올렸다.

'죽은 몬스터를 가만히 두라는 내용은 없었어.'

그 역시 게이트 바깥에 나가야 클리어가 된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많은 몬스터들을 두고 어찌 그냥 나갈 수 있을까.

"이게 다 돈인데 말이야."

유현의 눈이 탐욕으로 희번덕였다.

그는 마나를 통해 몬스터들의 몸에서 마석의 위치를 파악했다.

몬스터들은 약물을 주입당해 힘이 약화되었을 뿐, 마석에는 별 다른 영향이 없었다.

"후후후후."

빠른 속도로 시체를 헤집어 마석을 채취하는 유현.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그의 행동은 전 세계에 중계되었다.

세계가 경악하고, 주최 측은 통한의 눈물을 흘린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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