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50화 (150/219)

150

엄청난 우연이 겹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점찍어 둔 로또 번호 6개가 모두 들어맞는다든가.

대충 던진 윷가락이 모두 앞으로 뒤집힌다든가.

심지어 그게 그토록 바라던 일이라면?

"사막지대입니다."

그런 일이 일어났다.

수많은 경우의 수를 뚫고, 모두가 원하던 바가 이루어졌다.

"와아아아!"

"나이스!"

"이거지! 이래야 할 맛 나지!"

참가자를 비롯한 관계자들의 반응은 단연 뜨거웠다.

순식간에 축제 분위기가 된 현장.

마치 우승을 확정짓기라도 한 듯 서로 손뼉을 얼싸안으며 기쁨을 나누는 이들도 있었다.

"이러면 우승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아자! 가자!"

모두가 환호하는 가운데.

유현은 여전히 비몽사몽했다.

머릿속으로 잠깐 조는 동안 꾸었던 꿈의 내용이 재생되고 있었다.

'뽑기 한 번에 레전더리 아이템이 다섯 개나 나왔어.'

예전부터 하던 모바일 게임의 꿈을 꿨다.

한정 뽑기 이벤트로 10회 뽑기를 했는데 거기서 다섯 개의 레전더리 아이템이 나왔다.

복권에 당첨되는 것만큼이나 말이 되지 않는 확률.

그래서 무척 좋아했는데, 그게 꿈이었다니.

'예지몽인가?'

그래. 어쩌면 예지몽일지도 모른다. 유현은 그걸 확인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꺼냈다.

"뭐, 뭐야?"

"저 사람 아무 반응도 없는데?"

"어디가 걸리든 상관없다는 건가?"

그런 그의 행동을 보며 주변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적어도 싫다는 기색을 드러낼 줄 알았는데, 그런 내색조차 없다.

"자, 자신 있나 봐!"

"사막지대인데?"

"아, 왜 갑자기 불안하냐…."

유현의 아무렇지 않은 모습에 축제 분위기는 금세 사그라졌다.

다들 천천히 현실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유현이잖아. 아무리 사막지대 놈들이 빠르고 번거로워도 저 괴물 같은 놈 상대로는 안 된다고."

"쟤는 심지어 저번에 물도 능력으로 쓰지 않았어?"

"아…. 진짜 밸런스 너무하네…."

그런 반응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긍정적인 반응도 있었다.

"그래도 쟤가 지뢰 처리해 줘서 다행이네."

"그나마 유리해졌어."

한편, 게임에 접속한 유현은 곧장 뽑기를 시도했다.

"아..."

결과는 여지없이 꽝.

심지어 10연 뽑기에서 기본으로 보장되는 유니크급의 아이템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일반 등급 아이템이었다.

한 마디로 그냥 망한 것도 아니고 대차게 말아먹은 것이다.

"빌어먹을. 예지몽이 아니었나?"

하지만 재미는 있으니 참는다.

유현은 몇 번 더 해볼까 고민하다가 다시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아직 추첨이 한창인 상황이니 나중으로 미루어두기로 했다.

"......음?"

막 현실로 돌아온 유현은 자신을 둘러싼 묘한 시선에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분위기가 이렇게 바뀔 정도의 일이라도 있었던 건가?

'아, 내가 갈 곳이 정해졌구나.'

유현은 뒤늦게야 자신에게 사막지대가 배정된 것을 알아 차렸다.

"와, 저거 설마 연기하는 건가?"

"깜빡 속을 뻔~"

유현의 반응을 보며 참가자들은 그게 연기라고 생각했다.

저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여 자신들의 방심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추측한 것이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머리까지 좋냐?"

"완전 전략적인 사고네."

"상상도 못 했어."

단지 꿈을 꿨기에 게임을 했을 뿐인데, 그것만으로 유현에 대한 평가가 한층 높아졌다.

그런 사소한 행동조차 설득력 있는 억측을 만들어 낼 정도로, 유현은 다른 참가자들에게 있어 경계의 대상이었다.

"하필, 현이가 사막지대에 걸리다니."

추첨식은 본 경기와 마찬가지로 생중계되고 있었다.

병실에서 조금 전 있었던 일말의 과정을 모두 지켜본 안칠성은 깊이 침음했다.

"사막지대가 많이 어려워요?"

"어렵지. 기본적으로 기온도 엄청 높고. 또, 어디서 기습할지 모르는 몬스터들 때문에 잠시라도 쉴 수가 없어. 그 외에도 여러 고난이 있는데, 다 말해주기에는 너무 많구나."

일행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혼자서 다니기에 사막지대는 불리하기 짝이 없는 맵이었다.

"확실한 건 다른 지역들보다 몇 배는 더 난이도가 높은 곳이야. 사막인 만큼 진동에 예민한 녀석들이 많아서 전투가 한 번 일어나면 다른 놈들이 득달같이 몰려오거든."

"그, 그럼 빼야 하는 거 아니에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뭔지 알아? 자극이야. 사막 맵은 자극적이다. 대회 측에서는 시청률 잘 나오는 요소 중의 하나를 빼버리고 싶지 않겠지. 결국 이것도 비즈니스의 연장선상이니까."

"헐..."

흔히 말하는 어른들의 사정이었다.

안칠성은 걱정 어린 시선으로 화면에 비친 유현을 응시했다.

"하다못해 히잡을 쓰거나 옷차림이라도 가볍게 하고 가면 모를까."

"그 정도로 뜨거워요?"

"중동 지역에서 살던 이라면 몰라도 우리나라 기후에 익숙한 현이에게는 많이 어려울 거다. 더위도 더위지만, 움직일 때마다 고역이겠지."

기온 차이만 두 배 가까이.

그냥 걷다가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수준인데, 싸움까지 해야 했다.

"그래도 현이는 물도 만들 수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요?"

"그나마 그게 다행이긴 하다만..."

사막지대에서는 물 능력의 활용이 극대화된다.

하지만 대부분 그런 특성을 가진 아이들은 신체의 전투력이 별 볼일없기에 사막지대를 기피 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유현에게 사막지대는 딱 어울리는 곳이었다.

"그래도 불안한 건 불안한 거니까. 장비라도 좀 준비해 갈 수 있다면 좋으련만."

게이트 종목에서는 다른 장비의 사용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떤 무대가 걸릴지 알 수 없는 만큼, 자금이 넘치는 곳과 부족한 곳의 형평성 차이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잘 해야 할 텐데..."

두 사람은 다시 TV로 시선을 돌렸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추첨식.

어떤 이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어떤 이들은 좌절했다.

"아무래도 우승 후보들은 모두 무난한 곳을 배정받은 듯하구나."

중국, 일본, 미국, 영국 등.

그룹 스테이지에 최대한 많은 인원을 넣는 데 성공한 국가들은 모두 까다롭지 않은 게이트를 배정받았다.

개인전에서 얻은 점수들의 합산이 있으니, 게이트에서 유현을 제치고 우승만 하면 종합 우승을 손에 쥐는 것도 가능했다.

"걱정이군, 걱정이야."

그런 그의 마음과 달리 화면 너머로 보이는 유현의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 없었다.

***

추첨식이 모두 끝나고, 잠깐의 쉬는 시간도 지났다.

모든 참가자가 자신들이 참가하는 게이트 앞에 섰다.

열 명, 혹은 그와 가까운 인원이 모여있는 다른 게이트들에 비해, 유독 초라한 한 곳이 눈에 띈다.

바로 유현이 들어가게 될 사막 게이트였다.

"진짜 긴장을 하나도 안 하네."

"어떻게 혼자 들어가는데 저래?"

"일부러 여유로운 척하는 거 아니야?"

"어, 그런 거 같은데...?"

게이트 입장을 앞둔 유현의 손이 파르르 떨려오고 있었다.

그에 비해 표정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어 보는 이로 하여금 혼란을 야기했다.

"왜 손을 떨고 있지?"

"진짜 긴장 안한 척 하는 건가?"

이어지는 주변의 수군거림.

하지만 그 무엇도 정답이 아니었다.

'시발...'

추첨식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었을 때. 유현은 한 차례 시험해봤던 예지몽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뽑기를 시도했다.

'어떻게 천 만원을 썼는데 하나를 안 주냐.'

그게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이유였다.

'빌어먹을 쓰레기 게임.'

예전에는 그래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나마 어느 정도 현질하면 최고 등급 아이템 하나는 무조건 주는 '천장'이라는 시스템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것도 사라졌다.

'내가 게임사 한 번 찾아간다.'

개 같은 것들.

커뮤니티만 봐도 여론이 얼마나 들끓는지 알 텐데, 절대 바꿀 생각을 안 하는구나.

돈에 미친 족속들. 장비에 잠재 옵션을 자꾸 추가하지를 않나, 잠재 옵션을 바꾸는데도 계속 돈이 들고, 심지어 강화 한 번 하면 잠재 옵션도 초기화되고.

'이런, 씨댕. 뽑기만 문제가 아니잖아.'

생각하면 할수록 분노가 차올랐다. 꽉 말아쥔 주먹이 사시나무 떨리듯 크게 흔들렸다.

"엄청 떨고 있어!"

"뭐야. 진짜 겁먹은 거 같은데?"

"화, 화난 거 아냐?"

유현은 어서 게이트가 열리기를 기다렸다.

지금 당장 이 분노를 해소하지 않으면, 울화통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럼 지금부터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카운트 다운이 전광판 위로 나타났다.

5초, 4초...

-START!

사회자의 커다란 목소리와 함께 시험이 시작되었다.

모든 팀이 쏜살같이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

인공 게이트는 실제 게이트가 아니기에 내부를 실시간으로 중계할 수 있다.

시험장에 모인 사람들은 곳곳에 놓인 커다란 전광판들을 통해 내부 상황을 지켜보았다.

"와, 사람 엄청 많네요."

잠깐 화면 위로 나타났던 시험장의 전경. 엄청난 인파가 여기저기 흩어진 전광판 앞에 몰려 있었다.

"다들 현장의 열기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고 싶었겠지."

"가서 응원하면 재밌을 텐데. 아쉽다."

병원에 입원해있기에 함부로 외출할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안칠성도 메이블의 병실에 찾아와 함께 중계를 관람했다.

"잘 했으면 좋겠어요."

"잘하겠지. 물도 다룰 수 있으니 어쩌면 우리 걱정보다 손쉽게 클리어할 지도 몰라."

화면 위로 사막지대의 전경이 나타났다.

망망대해처럼 끝없이 펼쳐진 하얀색 모래의 언덕들.

하늘에 떠오른 태양은 언뜻 보는 것만으로도 열기가 느껴졌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라기에는 믿겨지지 않을 만큼 현실적이었다.

"와 모래가 하얀색이네요?"

곱고 아름다운 하얀빛깔의 모래 알갱이들.

안칠성의 눈이 적잖이 흔들렸다.

"이걸 까먹고 있었군. 원래 사막 지대의 모래는 흰 모래를 쓴다는 걸."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하얀 모래는 걸을 때마다 발이 푹푹 빠져. 일반적인 모래보다 그 정도가 심하지."

배경을 비추던 화면은 곧 유현을 비추기 시작했다.

눈에 불을 켜고, 모래 위를 뛰어다니는 유현. 안 뛰쳐나오면 직접 땅이라도 파헤칠 기세였다.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은데요?"

안칠성은 모래 위에 새겨진 발자국을 보며 작게 감탄했다.

"발에 물을 적신 것 같아. 발자국이 남아있어."

"아하, 그래서 저렇게 움직일 수 있었던 거네요."

안칠성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두 가지 의미가 담긴 한숨이었다.

그가 나름의 방법을 찾아 이동의 어려움을 극복했다는 게 첫 번째 이유였고, 두 번째 이유는.

"다행스럽게도 이번에는 시작부터 열심이구나."

안칠성은 혹여나 지난번 등급 테스트 같은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까 우려했다.

게이트에 들어가서 온종일 게임만 붙잡고 있다가 막판 스퍼트로 밀어붙여 1등을 차지했던 그 초유의 사건.

그때는 통했을지 몰라도, 이번에는 다르다.

한국의 아카데미 아이들도 뛰어나지만, 그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인 세계급 실력의 아이들.

그들을 상대로 여유를 부리면 아무리 유현이라도 우승한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근데 왜 화난 것 같죠? 기분 탓인가?"

"나한테도 보인다."

뛰어다니는 유현의 얼굴에서 분노가 엿보였다. 시작하기 전에 누군가와 충돌이라도 있던 걸까.

"다른 팀들은 어떻지?"

중계 채널은 여러 곳이다.

옵저버가 여러 곳을 번갈아 가며 중계하는 메인 채널과, 각 국가의 상황을 중계하는 전용 채널이 구분되어 있었다.

"한 번 돌려볼까요?"

"살짝만 봐보자. 물론 우승은 현이가 하겠지만..."

끝내 불안함을 지울 수 없었던 안칠성은 다른 국가를 살짝 염탐하기로 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채널을 돌리려던 손은 멈출 수밖에 없었다.

TV에 고정된 네 개의 눈동자가 당황으로 물들었다.

"저, 저게 무슨..."

화면 속 유현이 모래를 파헤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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