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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유현의 우승으로 들썩였다.
이미 대다수가 예상했지만, 그의 경기가 주는 놀라움은 그런 예상조차도 무위로 만들어버렸다.
[유현, 대한민국 최초 아카데미 세계선수권 우승]
그런 타이틀이 여러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대한민국은 물론 여러 해외 국가들의 유수 언론들까지.
자국의 유력한 우승 후보가 그에게 패배한 국가들도 그의 힘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거 봐봐. 진화하는 역대급 유망주래."
"여기도 아주 난리가 났구나."
결승전이 종료된 이후, 하루 간의 휴식이 주어졌다.
유현은 안칠성과 함께 메이블의 병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1인용 독실인 덕에 공간은 여유로웠고, 사람들이 모여들까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진화하는 역대급 유망주는 또 뭐야?"
"인터넷 칼럼인데 읽어 줄게."
최강자전의 우승으로 대회 시작 전부터 화제가 된 유현.
후일 그에게 신체 강화 특성이 없었다는 게 세상에 알려지고, 이런저런 사건들을 해결한 덕에 그 관심은 더 커졌다.
누군가는 그가 세계 대회에서도 우승을 차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건 그에게 열광하는 일부의 의견으로 치부되며 주류가 되지 못했다.
"당시에는 누구도 한국의 헌터 유망주가 세계 수준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았다."
메이블은 계속해서 칼럼의 내용을 읽어 주었다.
"그런 유현의 평가가 뒤바뀐 건 조별리그 첫 경기부터였다."
압도적인 무력으로 적을 제압.
손쉽게 첫 번째 경기에서 승리를 거머쥔 유현은 세계에 자신의 실력을 증명했다.
한국의 헌터 유망주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만, 비관론자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가 승리한 건 단순히 상대가 우승 후보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외쳤다.
"근데 이제 안톤과의 경기 이후로는 그런 평가조차 사장됐대."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보여주었던 유현의 능력은 세상에 큰 파장을 몰고왔다.
단순히 독립된 능력으로도 엄청난 능력이라는 평가를 받는 원소 계열의 특성.
불, 물, 바람, 전격, 흙 등.
유현은 그 모든 능력을 자유자재로 다루었으며, 경기가 진행될 때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8강하고 결승은 역대급에 들어갈 정도라는데?"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니까."
8강전의 상대는 하오란.
결승전은 엘리스였다.
고작 며칠 사이에 일어난 일이기에 유현의 머릿속에 모두 기억났다.
"다들 강했어요."
"네가 고전할 만한 상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만. 그리고 강한 걸로 치면 쿠로가네도 강하잖아?"
"다른 애들은 조금 여유롭게 한 감이 있죠. 쿠로가네는 처음부터 세게 나간 거고."
하오란. 그녀의 근접 공격은 상당히 당황스러운 면이 있었다.
날 것 그대로의 전투지만, 디테일적으로도 돋보이는 싸움 방식.
그녀는 잘 싸웠다. 단지 대진 운이 없었을 뿐.
"아까 보니 왕쓰총 그 양반, 아주 죽상을 하고 돌아다니더구나."
"중국 팀도 8강에서 전부 떨어졌으니까요."
"그에 비해서 영국 팀은 아주 웃음꽃이 피었더라."
결승전에서 유현과 나름 맞먹었던 엘리스는 비록 우승을 놓쳤지만, 자국 내의 평가는 우승한 것만큼이나 높아졌다.
유현을 상대로는 질 수밖에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개인적으로 엘리스는 좀 잘 풀렸으면 좋겠어."
"동생 때문에요?"
"그것도 그렇고. 어제 봤는데 애가 착하더라."
메이블도 안칠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애가 착하긴 해. 나 쓰러지고 미안하다고 병문안도 왔었으니까."
"오, 그랬구나."
"저것도 걔가 준거예요."
메이블이 테이블에 올려져 있던 영양제 통을 가리켰다.
그걸 본 유현은 작게 웃었다.
어제 뇌물이랍시고 영양제를 주려고 한 것도 그렇고, 영양제를 꽤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 같다.
"영양제 좋지."
"하나 드세요."
"간이 안 좋아서 영양제는 잘 안 먹는다. 현아. 너 하나 먹어라. 귀한 몸 잘 관리해야지."
안칠성이 엄마라도 된 듯 유현을 챙겼다.
"자, 여기 물. 목에 안 걸리게 잘 넘겨라."
자랑스러움이 뚝뚝 묻어나는 얼굴. 비록 유현이 강해지는 데 직접적으로 기여한 바는 없지만, 그래도 제자였기에 그가 무척 기특했다.
"게이트 종목도 이대로만 가자."
"다들 이 악물고 나오겠죠?"
"그렇겠지. 개별 종목 우승은 놓쳤고, 거기서 우승한 사람이 혼자서 참가하게 됐으니까."
게이트는 단체 종목.
사람이 적으면 불리하다.
유현은 게이트 종목 참가 국중에 가장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
만약 게이트 종목에서 유현이 유의미한 순위를 기록하지 못한다면, 우승하는 국가가 종합 우승까지 노려볼 만했다.
"이번에는 특히나 개인전 성적이 국가별로 많이 갈려서 여러 곳이 널 경계할 거야. 너에게 어떤 위해를 가하려고 할지도 모르지."
"조심해야겠네요."
"누가 주는 거 함부로 먹지 말고, 누가 가자 하면 따라가지 말고. 아니, 이왕이면 오늘은 나랑 계속 붙어 있어라."
"제가 무슨 애도 아니고."
옆에 있던 메이블이 소리를 내며 웃었다.
"선생님, 방금 무슨 아빠 같았어요."
"응? 그러냐?"
"네. 걱정이 너무 많으신 거 아니에요? 현이가 지금까지 보여준 게 있는데 누가 건들겠어요?"
"...그러고 보니 그렇구나."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뼈도 못추릴 테니 오히려 피하면 피했지 굳이 다가갈 이유가 없었다.
실제로 이미 사례가 있지 않은가.
유현을 건드렸던 안톤이 어떤 꼴이 되었고 어떻게 끝장났는지.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저랑 같이 여기서 현이 응원이나 해요."
안칠성은 방긋 웃는 메이블을 보며 내심 안도했다.
게이트 종목에 참가할 수 없게 되고, 실망과 미안한 마음이 컸을 텐데, 다행히 잘 이겨낸 것 같았다.
"칼럼은 다 읽은 거야?"
유현의 말에 메이블이 다시 스마트폰을 들었다.
아직 마지막 몇 문단이 남아 있었다.
"유현은 게이트 종목에 혼자 참여하게 됐다. 게이트는 인간과의 싸움이 아니다. 개인전에서는 최강이지만, 과연 게이트에서도 그럴까? 혼자인 만큼 그는 전략적으로 선택하고 집중해야 할 것이다."
"흐음. 확실히 몬스터와 싸우는 건 다르지. 한 번 해보긴 했지만, 그래도 걱정되는구나."
이미 시험의 탑에서 몬스터를 상대해 본 경험이 있다.
하지만 고작 한 번 뿐인 경험.
안칠성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 부분에서는 우리나라가 참 불리해. 다들 대회를 위해서면 유동적으로 게이트 출입 요건을 조정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게 없으니까."
"시뮬레이션으로 훈련 많이 했으니 상관없어요."
"실전과 훈련은 엄연히 달라."
시뮬레이션은 그저 가상일 뿐.
아무리 현실적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가상과 실제 현실은 차이가 크다.
가상으로 시각적인 효과는 구현해도 그 상황에서 오는 긴장감이나 몬스터의 기세 같은 것은 구현하지 못하니까.
"그냥 평소처럼 싸워라. 너무 긴장하지 말고."
긴장이라.
안칠성의 걱정을 생각하니 다시 웃음이 나왔다.
"선생님은 걱정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너도 이 나이 돼 봐, 인마. 작은 거에도 화들짝 놀라고 그런다."
"그래요?"
계속 웃는 유현을 보며 안칠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1000년을 살았다는 사실을 안칠성은 알 턱이 없었다.
"현아, 이거 마지막 것도 읽어 줄까? 좀 오글거릴 수도 있는데."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지."
메이블은 마른 입술에 침을 싸악 바르고는 입을 열었다.
"그의 한계는 어디인가. 강인한 신체 능력, 마법사라는 단어가 붙어도 이상하지 않을 다중 능력의 보유. 만약 그가 게이트 종목에서도 훌륭한 성과를 보여준다면, 그는 곧 전략적 두뇌까지 갖춘 셈이다."
메이블은 한 차례 호흡을 가다듬고는 다시 입술을 뗐다.
"힘, 속도, 두뇌. 세 박자를 모두 갖춘 완벽한 인물. 세계는 이제 유현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
"개인적으로 마지막 말이 좀 멋있는 것 같아. 세계는 이제 유현의..."
"아냐. 다시 말하지 마."
유현은 주먹을 꽉 쥐었다 피기를 반복했다.
누군가의 칭찬을 받는 건 기분 좋은 일이지만, 그게 정도를 넘어서면 그 역시도 사람이기에 오그라들 수밖에 없었다.
칼럼의 마지막을 장식한 말이 딱 그랬다.
"듣지 말 걸 그랬네."
"세계는 이제 유현의 시대에..."
"춘식아."
메이블은 덜컥 말문이 막혔다.
부들부들 떨려오는 그녀의 입술.
멍한 시선이 유현을 응시한다.
"커흡."
상황을 지켜보던 안칠성은 그만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급히 입을 막았지만, 유춘식은 이미 들었다.
"......"
유춘식의 서늘한 시선이 안칠성에게 닿았다.
안칠성은 휘파람을 불며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두 사람 다 너무해."
"가끔은 되로 줬다가 말로 받을 때가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해."
"......"
유춘식은 얌전히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침대에 다시 몸을 뉘었다.
"춘식아. 나는 이만 갈게."
유춘식은 말없이 손만 휘적거렸다. 기분이 상해 인사도 하기 싫었지만, 그래도 친구의 인사를 무시할 수 없다는 마음이 겹쳐 나온 최선의 행동이었다.
***
이튿날 아침.
스카이 아일랜드의 동쪽 구역은 아침부터 시끌벅적했다.
게이트 종목의 시험장으로 선정된 까닭이었다.
훈련과 교육을 위한 여러 공간이 마련된 구역인 만큼 시험장으로 삼기에는 더할 나위 없었다.
"현 시간부로 아카데미 세계선수권 게이트 종목의 추첨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커다란 무대 앞에 모인 참가자들과 관계자들.
저 뒤로 설치된 야외 관중석도 사람으로 빼곡했다.
"추첨식이 끝나면, 참가자들은 부여된 번호가 위치한 게이트 앞으로 이동하면 됩니다."
전광판 위로 무대 뒤쪽 독립된 공간 내부에 마련된 여러 포탈의 모습이 나타났다.
포탈은 주최 측에서 마련한 인공게이트와 연결된다.
말이 인공이지, 게이트의 내부를 최대한 사실적으로 구현했기에 모르고 들어간다면 실제라고 착각할 만한 공간이었다.
"이왕이면 고산지대가 좋은데."
"산악지대, 꼭 산악지대."
각 게이트는 환경과 기후가 다르고 등장 몬스터도 모두 다르다.
그래서 참가자들은 한 마음 한뜻으로 자신의 팀이 유리한 곳, 나아가서 자신에게 유리한 장소가 걸리기를 바랐다.
설령 팀 적으로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해도, 개인적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그 역시도 후일 헌터로 데뷔할 때 몸값을 높일 플러스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제발 사막지대만 피하자."
"사막지대만 아니면 되는데…."
원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원치 않는 곳도 있었다.
통행이 어려운 늪지대나 천공 지대 등. 그중에서도 공통적으로 기피하는 곳은 바로 사막지대였다.
덥다 못해 쪄 죽을 것 같은 기후로 유명한 공간.
등장하는 몬스터들도 하나같이 기습과 도주에 능한 녀석들이었기에 참가자들에게는 까다롭기 그지없었다.
"사막지대 몇 개나 있지?"
"하나밖에 없어."
"오, 신이시여. 제발 엿 같은 확률에 우리 팀이 걸리지 않기를."
장소가 우승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참가자들은 저마다 손을 쥐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럼 추첨을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나고 무대 위로 추첨 기계가 모습을 드러냈다.
추첨 방식은 랜덤.
사회자가 한 번 버튼을 누를 때마다 팀과 게이트가 짝지어져 전광판 위로 출력된다.
-두구두구두구.
당사자에게는 긴장감을, 구경꾼들에게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배경음악이 흘러나왔다.
곧 추첨 기계에서 공 두 개가 빠져나왔다.
파란색 공은 팀, 하얀색 공은 게이트였다.
"그럼 우선 첫 번째 팀은, 미국 동부 팀입니다."
직접적으로 사건에 관여하여 문제를 일으킨 서부 팀의 몇 명을 빼고는, 미국 팀 아이들도 모두 게이트 종목에 참가했다.
"좋아, 우리야."
"가자! 보여주자고!"
미국 팀은 파이팅이 넘쳤다.
불미스러운 사건의 영향으로 개인 종목에서 모두 탈락한 미국 팀.
세계 최강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행보에 가장 크게 분노한 건 그들 자신이었다.
그 무너진 자존심을 다시 살리기 위해 그들은 어느 때보다도 똘똘 뭉쳤다.
넘치는 열정과 우승을 향한 집념. 이전에는 없던 원동력이 그들에게 생겨났다.
"게이트는..."
사회자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내 발표했다.
"고산지대입니다."
"나이스!!"
"와아!"
미국 동부 팀 참가자들이 소리를 높이며 서로 얼싸안았다.
기쁜 감정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그들. 고산지대는 쉽냐 어렵냐로 판단했을 때 쉬운 편에 속한 장소였다.
"그럼 다음으로…."
사회자가 다시 버튼을 누르고, 이번에도 공이 나왔다.
모두가 긴장한 눈으로 공을 지켜보는 가운데.
사회자의 입이 열렸다.
"대한민국 팀입니다."
곳곳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아직 장소가 많이 남은 상황.
다들 내심 유현이 사막지대로 가기를 원했기에, 그 가능성이 낮아지는 상황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오, 맙소사…."
"제발, 유현이 사막지대로 가게 해주세요."
"어머, 쟤 지금 자는 거야?"
모두의 시선이 유현에게 돌아갔다. 팔짱을 낀 채 졸던 유현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자신의 이름에 잠에서 깨어났다.
"와, 저 여유. 부럽다."
"역시 유현님..."
"개인전 우승했다고 정신을 못 차리네."
감탄과 힐난이 오가는 가운데.
사회자가 흰색 공을 집어 들었다.
장소를 확인하고, 마치 예능 프로그램의 MC처럼 뜸을 들이는 사회자. 그가 천천히 입을 벌렸다.
"대한민국 팀의 게이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