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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48화 (148/219)

148

전 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결승전이 시작되었다.

곧장 얼음 창을 소환해 원거리에서 압박해오는 엘리스.

유현은 그것들을 피하는 대신 불꽃의 힘을 빌렸다.

화르륵!

피어오른 화염이 날아오는 공격들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쳇."

엘리스가 혀를 차며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쉽게 녹이지 못하도록, 더 두껍고 단단한 얼음이 허공을 수놓았다.

-반짝거리는군요! 아름답습니다!

경기장의 조명이 얼음에 반사되어 사방으로 깨졌다.

환상적인 광경에 감탄하길 잠시.

화력을 높인 유현의 불꽃이 얼음 창을 뒤덮었다.

"와아아!"

넘실거리는 붉은빛이 경기장을 물들였다.

화려한 변화에 관중들의 함성이 끌려 나왔다.

유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오랜만에 마법으로 싸우는 느낌인데.'

엘리스의 능력이 빙결이기 때문일까.

지금까지 해왔던 전투처럼 평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서로의 마법을 격발해가며 맞붙고 마나 코어의 한계까지 치닫는 치열한 마법 전투.

판대륙에서의 마법전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끓어오르는구만.'

격한 심장의 두근거림.

그녀를 상대로 똑같이 원소의 능력을 사용하는 건 그리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4강처럼 신체 능력을 한계까지 강황하여 순식간에 끝내는 게 승리를 위한 베스트 플랜이었다.

하지만 마법을 고집하고 싶어졌다. 시간이야 조금 걸리더라도 이쪽이 더 재밌으니까.

'그렇다고 너무 질질 끌면 안 돼.'

만족스러운 전투를 위한 세 가지 조건.

사람들이 열광하고.

스스로도 만족하되.

누구에게도 얕보이지 않아야 한다.

'엘리스라면 어느 정도 힘을 발휘해도 버틸 수 있겠지.'

그 정도라면 누군가에게 얕보이지는 않을 터.

힘의 한계를 정한 유현은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마나까지 끌어 올렸다.

지난번 경기장을 얼려버렸던 엘리스의 힘이라면, 어떤 강력한 공격도 막아낼 수 있다.

'체력과 마나의 한계 때문에 긴 호흡의 전투는 어렵겠지만, 짧아도 상관 없어.'

사람들을 사로잡는 건 긴 전투가 아니다.

짧더라도 확실한 힘의 격돌.

엘리스가 상대라면 가능하다.

'그래도 서너 번은 막지 않을까.'

그리 강한 마법을 쓸 생각은 없다. 중간 수준의 마법이라도 불꽃 계열인 만큼 사람들을 휘어잡기에는 충분할 테니까.

[플레임 캐논]

6급 공격 마법, 플레임 캐논.

응축된 화염 에너지가 광선처럼 한줄기로 엘리스를 향해 뻗어나간다. 엄청난 속도의 불줄기. 하지만 엘리스라면 막을 수 있다.

쩌저적!

유현의 예상대로였다.

광선이 엘리스와 충돌하기 직전, 커다란 빙벽이 솟아나며 불줄기를 막아냈다.

얼음과 맞부딪치며 사방으로 번지는 불길.

계속 유지한다면 뚫을 수 있겠지만, 그건 원하는 게 아니었다.

유현은 플레임 캐논의 근원을 끊었다. 발화점이 사라지자 길게 이어지던 레이저도 차츰 허공으로 흩어졌다.

[인페르노]

곧장 이어진 두 번째 마법.

바닥을 타고 순식간에 엘리스가 있는 곳까지 그려진 마나의 길.

그 길 위로 화염이 빠른 속도로 폭발하기 시작했다.

펑!

솟아오르는 불줄기가 몇 초만에 그녀의 발치까지 도달했다.

한 차례 공격을 막아낸 뒤, 엘리스는 빠르게 빙벽을 제거했으나 유현의 공격은 그보다 더 빨랐다.

시야가 확보되기도 전에 밀어닥친 두 번째 공격.

커다란 눈이 더 크게 뜨이고.

뒤늦게나마 반응하여 바닥을 향해 얼음의 방어막을 만들어낸다.

쾅!

그러나 급조한 빙벽의 내구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발치의 폭발과 함께 빙벽이 부서졌고, 엘리스가 뒤로 나가떨어졌다.

"크윽!"

엘리스가 고통을 토하며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방어막이 공격을 버티지 못했을 뿐, 효과가 없던 건 아니었다.

충격이 상쇄되어 그녀는 곧장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와아아! 엄청난 연격입니다! 유현 선수! 정말 능력을 다양하게 활용하는군요!

유현이 사용한 능력처럼, 관중석에서도 폭발적인 함성이 터져나왔다.

"워어어! 엄청난데!"

"공격도 대단하지만, 저걸 대체 어떻게 반응하고 막는 거야!?"

"둘다 대단하잖아!"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엘리스의 시선은 유현에게 꽂혀 있었다.

상당한 수준의 공격을 이렇게 연속해서 날리다니.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 이상이었다.

'완전 괴물이잖아.'

당장 4강전에서 그가 보여주었던 엄청난 속도와 힘이 떠올랐다.

특성도 없이 그런 엄청난 힘을 발휘하면서, 온갖 자연의 힘을 다루는 원소라는 특성을 이렇게나 잘 활용한다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나마 존재했다고 생각한 조금의 가능성마저 완전히 사그라졌다.

뚫고 지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 파도가 알고 보니 폭풍우인 기분이랄까.

'승산이 없어.'

이길 수 없는 싸움을 끝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고집을 부려 다치기라도 한다면, 동생을 책임질 사람이 없다.

'하지만...'

여기까지 어떻게 올라왔는데, 도망치듯 내려가는 건 싫었다.

조금이라면, 정말 조금이라면.

고집을 부려도 되지 않을까.

'이런 사람이랑 또 언제 싸워보게 될 줄 알고.'

유현 같은 강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런 이들은 대부분 헌터다. 헌터와 헌터가 싸우는 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

죽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마음 껏 싸울 수 있는 곳은 이곳 외에 없다.

'해보는 거야.'

다른 아이들처럼 그녀 역시 욕구가 있다.

더 강해지고 싶고, 더 강한 사람과 싸우고 싶고, 더 배우고 싶고, 이기고 싶고.

지금 이 싸움은 그런 욕구를 모두 충족시켜준다.

두 번 다시 없을 기회. 놓칠 수 없다.

'미안. 아델라.'

동생에 대해서는 잠시 미루어두고, 오직 자신만을 생각하게 된 순간.

마음에 담고 있던 조금의 망설임이 족쇄가 풀리듯 사라졌다.

쉬이익!

순식간에 허공에 도열한 수십 개의 뾰족한 얼음 창이 유현을 향해 맹렬히 쇄도했다.

눈으로 좇기 어려운 엄청난 속력.

유현의 눈이 살짝 커졌다.

'과연.'

적당한 불꽃으로는 녹일 수 없는 속도와 굵기.

불꽃의 화력을 높이면 녹일 수야 있겠지만, 마나의 소모가 극심하다.

유현은 공격을 받아치는 대신 직접 몸을 움직였다.

파바박!

그가 움직인 경로 위로 얼음 창이 처박히며 부서졌다.

공격을 모두 피한 유현은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투사체의 생성 속도와 추진력.

하나 같이 완벽에 가까웠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싸울 맛이 나지.'

유현은 다시금 마법을 사용했다.

경기장의 허공에 생성된 커다랗고 둥근 선. 그 안이 곧 붉게 물들더니 맹렬한 화염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인페르노 브레스]

7급에 속하는 상위 마법.

마치 드래곤이 내뿜는 속성의 숨결처럼, 강력한 화염을 뿜어내는 게 특징인 공격이다.

"와아아아악!"

강렬한 화마에 몇몇 관중이 비명을 질렀다.

보는 것만으로도 겁에 질리게 만들 정도의 압도적인 화력.

엘리스는 흔들림 없이 그 공격을 맞받아쳤다.

바로 그녀의 손에서 폭풍처럼 뿜어져 나오는 냉기의 힘으로.

"미, 미쳤어!"

"맙소사."

세상을 집어삼킬 듯한 염화의 입김과 그에 대항하는 서릿빛 냉기.

경기장의 절반은 새파랗게, 절반은 새빨갛게 물들었다.

팽팽한 힘의 격돌이 한동안 이어졌다.

"미, 밀린다! 엘리스가 밀려!"

시간이 경과 할수록 힘의 줄다리기는 한쪽으로 기울었다.

조금씩 약해지는 냉기와 달리 여전히 그 화력을 유지하는 유현의 불꽃.

엘리스가 이를 악물었다.

'대체 얼마나 쌘 거야!'

코어의 마나가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앞으로 이 상태를 유지하는 건 기껏해야 몇 초.

'공격 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

이런 공격을 직접 맞받아치는 건 미련한 짓이다.

빙벽을 몇 겹으로 세워서 막는 방법을 쓰는 게 가장 현명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빙벽을 쌓아 방어하기도 전에, 유현의 공격이 날아왔으니까.

"......"

서서히 약해지던 냉기가 그녀의 손에서 사라졌다.

예상하고 있던 유현은 깔끔하게 불길을 회수했다.

털썩.

모든 힘을 소진하며, 다리가 풀려 주저앉은 엘리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피로가 몰려왔다.

"괴물…."

그 말 이외에는 유현을 표현할 수 없었다.

그렇게 강한 힘을 내고도 지치지 않은 모습. 심지어는 이게 전력을 다한 게 아니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의 공격에는 여유가 넘쳤다.

'봐달라니까, 진짜 봐주네.'

끝내려면 진즉에 끝낼 수 있었던 싸움이다. 그런데도 간을 보며 싸워준 건 왜일까.

동정심? 아니면, 아까 전 자신이 했던 말 때문에?

터벅, 터벅.

발걸음 소리에 엘리스가 고개를 들었다.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유현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봐줬어?"

"안 봐줬는데."

"이건, 이건 네 힘의 전부가 아니잖아."

유현은 뒤통수를 긁적였다.

나름 한다고 했는데, 그걸 봐줬다고 생각하다니.

"난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했어."

"......"

"물론 이게 전력은 아니지. 그랬으면..."

유현이 경기장을 한 번 흘끗였다.

"그랬으면 불바다가 됐을 걸?"

쭈뼛.

유현의 말에 엘리스의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의 말이 거짓말이나 허세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로 마음만 먹는다면, 경기장 하나를 날려 버리는 건 일도 아닌 듯한 여유로운 웃음.

두 눈으로 보지는 않았지만, 그의 강함이 상상을 초월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일어나. 일어나서 쉬고, 아까 이야기한 거 알려줘."

유현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혼수상태인 동생을 일종의 실험 대상으로 삼는다는 약물에 관한 이야기였다.

"......할게."

"뭐? 정말?"

유현이 눈을 깜빡였다.

무척 의외였다. 죽을 수도 있고, 깨어난다는 보장도 없었기에 안 한다고 할 줄 알았는데.

"동생이 쓰러진 지 5년이 지났어. 이젠 더 기다리는 게 맞는지 모르겠어."

유현의 입이 살짝 벌어졌따.

그렇게 오랜 시간을 누워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5년.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특히 청소년 시기에는 더더욱.

"......"

만약 그 기간이 짧았다면, 직접 꺼낸 이야기더라도 유현은 좀 더 그녀를 설득했을 것이다.

좀 만 더 기다려보라든가. 더 신중하게 생각해보고 결정하라든가.

하지만 5년. 무려 5년이다.

계절이 몇 번은 바뀌고, 다시 돌아올 시간.

정신은 죽어 있어도 몸은 살아있으니 하루가 다르게 자라가는데, 그걸 보며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지는데, 당사자는 어떨지 좀처럼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래, 알았어."

긴 침묵 끝에 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스가 유현이 내민 손을 붙잡았다. 차가운 손이 파르르 떨려온다.

그녀 역시 말은 좋다고 했지만, 아직 마음에 불안함이 남아 있었다.

"혹시라도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 말해."

엘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후들거리는 다리로 간신히 일어났다.

아직 경기의 결과가 나지 않았기에 관중석에서는 웅성거림이 늘어났다.

"뭐야?"

"유현이 이긴 거 아닌가?"

"엘리스가 아직 멀쩡해 보이는데."

모든 마나를 사용한 엘리스는 싸울 의지가 없었다.

그녀는 옷에 장착되어 있던 기권 버튼을 눌렀다.

경기의 끝이자, 유현의 승리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와아아아아!"

비록 한 쪽의 기권으로 마무리된 결승전이지만, 사람들은 열광했다.

두 사람이 보여준 화려한 싸움은 결승전에 어울리는 멋진 전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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