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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47화 (147/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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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이런 곳에서 마스톨을 만나게 될 줄이야.'

처음 그라는 걸 알았을 때.

무척 의외였다.

평생 암시장에서 썩을 줄 알았던 놈이 정신을 차리고 다시 양지로 올라오다니.

'내놓은 자식이라더니 다 구라였나?'

뭐,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마스톨이 이곳에 스폰서 대표로 참가했다는 건 어찌 됐든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는 뜻. 재벌이라는 명성에 어울리는 막대한 부가 그의 손에 있다.

송진 그룹 역시 자금에서 밀리지는 않지만, 같은 목적으로 움직이는 이가 하나 더 생기면 재료 확보 속도는 더욱 빨라지리라.

'대충 문자로 말은 해뒀고.'

마스톨이 움직이니 재료 확보를 위해 그와 경쟁하지 말라는 내용을 한상용에게 전달했다.

곧장 알겠다는 대답이 왔다.

"좋았어."

그때. 응접실의 문이 열리고 마스톨과 그의 비서가 들어왔다.

"우선 검토는 해봤습니다만, 모두 모을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송진 그룹 쪽에 연락해요. 그쪽에서도 같이 움직이기로 했으니까."

"아, 예, 알겠습니다."

비서는 살짝 고개를 숙이더니 이내 유현에게 질문했다.

"혹시 실례가 아니라면, 두 분이 정확히 어떤 관계 신지…."

흠칫 몸을 떠는 마스톨.

그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아, 아까 말했잖아! 친구라니까? 그, 그치?"

마스톨의 말에 유현은 눈썹을 씰룩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친구지."

아까는 원수라고 말했지만, 본인이 친구가 되고 싶다는 데 뭐. 별 수 있나.

'괜히 진실을 밝혀서 좋을 게 없기도 하고.'

재료 확보를 도와주는 곳이 되었으니 척 질 만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편이 현명했다.

"그럼 잠깐 자리를 비워드리겠습니다."

"뭐? 왜, 왜?"

"친구분끼리 대화하시라고요."

마스톨은 이제라도 친구가 아니라고 정정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필요하면 불러주십쇼."

비서가 응접실을 빠져나갔다.

마스톨은 불안한 눈으로 유현을 응시했다.

"이야, 아주 순해졌네."

일전에 암시장에서 봤던 사람과는 다른 사람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이빨 빠진 사자 같달까.

"이제 암시장은 안 가냐?"

"...어. 이제 그, 그쪽은 발길 끊었어…."

"내놓은 자식이라더니 용케 집에 들어갔다?"

마스톨은 해명해야 할 것 같은 기분에 주절주절 그간의 일을 이야기했다.

유현은 그런 사정이 있었구나, 하며 고개를 주억였다.

"결국에는 잘됐네."

"뭐, 뭐?"

"나한테 뒤지게 맞아서 타이밍 맞게 집에도 들어간 거잖아."

"......"

그냥 안 맞고 암시장에서 흥청망청 써 가며 살아가는 게 훨씬 괜찮은 삶이었다고 마스톨은 생각했다.

"너 내가 무섭지?"

"......"

"그러니까 내 부탁도 들어주는 거잖아. 아니, 부탁도 아니지. 명령 같은 느낌인가?"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때 머리통을 반쯤 부숴놓길 잘했다. 애매하게 팔이나 다리였으면, 지금처럼 바짝 겁먹지도 않았을 테니까.

"앞으로는 친하게 지내자고. 응? 친구처럼 말이야."

마스톨은 허리를 접으며 유현이 내민 손을 붙잡았다. 허리의 각도는 직각을 넘어 예각이었다.

"친구 사이에 너무 굽신거리는 거 아니야?"

"이, 이 정도쯤이야!"

유현은 문득 동정심을 느꼈다.

대체 얼마나 트라우마가 심하면 그 사납던 녀석이 이렇게 순해진 걸까.

'이건 뭐, 뒤통수 치면 죽이겠다고 협박했다가는 오줌이라도 지리겠군.'

이 상태로 자신의 뒤통수를 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직감이 그렇게 이야기했다.

"너 혹시 내 뒤통수 칠..."

"아니! 절대 안 쳐! 내가 왜 그런 미친 짓을 해?!"

"그럼 됐고."

유현을 향한 마스톨의 두려움은 이전보다 몇 배는 증폭되어 있었다.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수많은 싸움. 암시장에서 맞붙었던 그때보다, 유현은 몇 배나 강해졌다.

최근 들어서는 그가 인간이라는 사실도 점점 흐릿해졌다.

이제는 무슨 짓을 해도 이길 수 없는 상대.

자신은 이미 한 번 눈 밖에 난 적이 있는 만큼, 자칫했다가는 저 손에 순식간에 죽임당할지도 모른다.

'굽신거리는 수밖에 없어.'

이제는 그의 눈치를 보며 그에게 도움을 줘야 했다.

썩 나쁜 장사는 아니었다.

힘이 곧 자산이 되는 세상.

유현이라는 사람과 함께한다면 언젠가는 콩고물이 떨어질지도 모르니까.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 아니야."

"그럼 설명할 테니까 잘 들어."

유현은 재료 확보에 관한 내용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내용의 대부분은 송진 그룹과의 연결을 잘 활용하라는 것이었다.

"같은 편이니까 경매장 같은 데서 송진 그룹이랑 경쟁하지 말고."

"알겠어."

"구하기 어려운 재료는 어떻게 구하는지 방법을 알아봐. 나도 발품 팔아볼 테니까."

유현의 말에 마스톨은 예스맨이 되어 고개만 끄덕였다.

"그럼 간다. 진행 상황 하루도 빠짐없이 보고 하고."

유현이 VIP실을 나갔다.

혼자 남은 마스톨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죽는 줄 알았네..."

바깥에 나가 있던 비서가 안으로 들어와 그에게 다가갔다.

"정말 친구 맞으십니까? 대표님과 나이 차이가 좀 있는 걸로 아는데."

"친구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아까 주고 간 재료나 찾아봐."

"예,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조사해. 한국의 송진 그룹과도 연락하고."

"...이렇게까지 몸소 나서는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평소에는 적극적으로 나서는 일이 없는 마스톨이 친구에게 부탁받았다고 직접 지시까지 하다니.

무척 보기 드문 일이었다.

"말했잖아. 친구라고."

그 단순한 말에 비서는 순간 감동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간 쉬이 느껴보지 못했던 마스톨의 인간적인 감정.

드디어 회장님의 바람대로 완전히 정신을 차린 걸까.

"최대한 열심히 구하겠습니다!"

비서가 파이팅 넘치게 선언했다.

마스톨 역시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에 쓰일지는 모르지만, 그런 건 중요치 않았다.

핵심은 서둘러 재료를 구해 유현의 점수를 따는 것. 이렇게 떠들고 있는 시간조차 아까웠다.

***

VIP실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아직도 경기 시작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아 있었다.

대기실로 돌아가 쉬려던 유현은 우연히 복도에서 상대인 엘리스와 마주쳤다.

새하얀 피부와, 새하얀 머리칼.

알비노 같은 백색증 환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닌가? 백색증은 보통 눈 색이 빨갛던데.'

멀리서 보기에도 그녀의 눈동자는 붉지 않았다.

속이 들여다보이는 바다처럼 맑은 사파이어 빛 눈동자.

그 커다란 눈동자가 멀리서부터 유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

잠깐 우연히 마주쳤다고 생각했으나 그게 아니었다.

엘리스는 유현을 바라보며 걸어왔고, 그의 앞에 멈춰 섰다.

머리가 두 개쯤은 차이날 것 같은 신장.

유현의 신장이 크다는 점을 고려해도 그녀의 몸은 퍽 작았다.

머리통도 어찌나 작은지 한 손에 쏙 들어올 것 같다.

그에 반해 눈매는 날카로웠다.

인상이 나쁜 토끼 같달까.

엘리스는 한동안 유현을 바라보더니 곧 입을 열었다.

"난 꼭 이겨야 해."

승리의 선언. 그 이후로 나온 건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그러니까 좀 봐줘."

"......뭐?"

"동생이 아파. 상금도 필요하고, 널 이겨서 몸값도 높여야 해. 그래야 헌터 돼서 돈 많이 벌 수 있어."

자신이 승리해야만 하는 사유를 나열하며, 패배를 종용하는 엘리스.

유현은 멍청히 서서 그 이야기를 전부 듣고 있었다.

어처구니가 없어 차마 반박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내 말 알아들었어?"

"......"

"뭐지? 통역기가 고장 났나?"

엘리스가 폴짝폴짝 제자리에서 점프하며 유현의 귀 안쪽을 확인했다. 초록빛을 내는 통역기. 멀쩡히 잘 작동 중이라는 뜻이었다.

"엥. 고장은 안 났는데."

"......아니, 잠깐 머리가 멍해져서."

"그래? 괜찮아. 지금이라도 말해줘. 나한테 져주겠다고."

이 작은 승부 조작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보통 이런 건 선물이라도 들고와서 부탁하지 않나?"

"미안. 돈이 없어서 줄 게 없어."

들으면 들을수록 기가 막히는 대화였다. 화가 난다기보다는 무척이나 넌센스한 유머처럼 느껴졌다.

"부탁을 들어주기는 좀 힘들 것 같은데."

"헉, 그럼 뭐라도 줄까? 대기실에 영양제 있는데 그거라도 먹을래?"

"아니. 뭘 주든 너한테 져줄 생각은 없어."

"아."

유현의 거절에 그대로 굳은 엘리스. 설마 정말 그 부탁을 들어줄거라고 생각했는지, 몹시 충격받은 표정이었다.

"......괜찮냐?"

엘리스는 잠시 멍해 있더니 힘없는 눈으로 유현을 올려다보았다.

"네, 네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

"너무 거칠게 하진 말아줘. 난 다치면 안 돼. 우린 보험도 안 되잖아."

유현은 어깨를 으쓱였다.

상대를 봐가면서 싸울 생각은 없기에 그녀의 바람을 들어줄 수는 없었다.

"그럼 갈게."

엘리스가 그를 지나쳐 반대편으로 나아갔다.

터덜터덜 걸어가는 뒷모습은 처량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작은 어깨에 짊어진 무게가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별로 나쁜 애 같지는 않은데.'

조금 어이없는 부탁을 하긴 했지만, 거절하니 곧장 돌아섰다.

정말 순수한 의도로 져줄 수 없겠냐고 물어본 것이다.

"......"

유현은 멀어지는 엘리스의 뒤통수를 계속 바라보았다.

그녀의 뒷모습이 왜인지 모르게 가족을 위해 노력하는 과거의 자신과 겹쳐 보였다.

그래서 동정심이 드는 걸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었다.

"야!"

유현은 돌아가는 그녀를 불러세웠다.

엘리스는 혹시 유현의 마음이 바뀐 건가 싶어 오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한달음에 달려왔다.

"부, 불렀어!?"

"네 동생이 혼수상태라는 건 들어서 알고 있어."

"...응."

동생이 아프다고만 했지, 혼수상태라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니 감출만한 비밀도 아니었다.

"뭐든 할 수 있어?"

"...뭐든?"

"동생을 다시 깨우기 위해서 말이야. 내가 방법을 알아. 동생의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고, 무조건 깨어난다는 보장도 없지만."

그 말에 엘리스의 새파란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 그게 뭔데? 나한테 알려줘."

"약이야. 재료를 얻어서 직접 제작하는 약."

"무슨 약인데? 왜 깨어난다는 보장이 없어?"

"이론만 있지, 아직 만들어 본 적 없거든."

"...그래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거구나."

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동생을 일종의 실험체처럼 활용하는 게 마음이 불편했지만, 이성적으로 봤을 때 썩 나쁜 거래는 아니었다.

'상대는 동생이 깨어날 가능성을, 이쪽은 임상실험이라는 안전 테스트를.'

서로가 얻는 게 확실한 거래.

하지만 먼저 무언가를 잃을지도 모르는 건 엘리스였다.

그렇기에 전적으로 선택은 그녀에게 달려있다.

"잠깐만 생각을 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충격인지 엘리스는 비틀거리며 벽을 짚었다.

"나중에 답해줘도 돼."

"아, 그럼 나중에..."

엘리스가 다시 길을 떠났다.

그녀가 받은 정신적 데미지가 그 걸음걸이에서 온전히 드러났다.

"...후."

유현은 한숨을 쉬고는 몸을 돌려 대기실로 돌아갔다.

엘리스가 어떤 선택을 할까.

그녀의 입장에 자꾸만 몰입되어 양심이 푹푹 찔렸다.

'동생을 인질로 잡은 느낌인데.'

만약 나라면 어땠을까.

동생이 혼수상태에 있는데 누군가 그녀를 깨울 수 있다고 한다면?

'......어떤 방법이든 시도해 보겠지.'

설령 그게 목숨을 위협하는 방법이더라도 말이다.

***

결승전은 화려한 공연으로 막을 올렸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뮤지션들의 공연이 무대 위에서 펼쳐졌다.

락밴드를 시작으로 메가 히트 팝 가수까지.

결승에 한국 선수가 올라온 덕인지 K-POP 아이돌도 무대에 올랐다.

"와아아아아!"

공연이 이어질수록, 경기장의 열기는 배가되었고 관중들은 후끈 달아올랐다.

"나와라! 나와라!"

모든 무대가 끝난 지금.

관중들은 한 마음 한뜻이 되어 두 참가자의 등장을 소리쳤다.

입구에서 대기 중이던 유현은 부담감마저 느꼈다.

'분위기가 무슨….'

실망스러운 전투라도 벌였다가는 폭동이라도 날 것 같은 기세.

엘리스의 특성을 생각하면,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아 안심이다.

"아까 이야기 말이야."

"뭐?"

안전펜스를 사이에 두고 함께 대기하고 있던 엘리스가 불쑥 다가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좀만 더 자세히 설명해줘. 성분이라든가…."

"아까 말한 게 다야. 지금은 재료를 찾는 단계라서 아는 게 거의 없어."

엘리스의 표정이 굳었다.

조금이라도 생존의 가능성을 더 확보하고 싶겠지.

유현은 그녀의 심경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냥 혼수상태가 된 사람이면 다 쓸 수 있는 거야?"

"이유없이 깨어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효과가 있었대. 근데 그게 사실인지는 몰라."

"의사, 의사들은 뭐래?"

"아까 말했잖아. 성분상 어울리기는 하나 처음 보는 조합이라 확답은 못 한다고."

"아…. 그랬지…."

엘리스의 얼굴이 심란하다.

그녀가 얼마나 간절한지 알 수 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그런 마음이겠지.

'어라, 근데 이거….'

유현의 머릿속에 문득 생각 하나가 스쳤다.

경기 시작 전, 자신의 말에 심란해진 상대방.

어떻게 봐도, 미리 연막을 쳐 컨디션을 나쁘게 만들어 승리하려는 전략의 일환처럼 보였다.

'......'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유현은 뒤통수를 벅벅 긁다가 입을 열었다.

"천천히 생각해. 약 만들려면 시간이 꽤 드니까. 우선 지금은 경기에 집중하고."

유현의 말에 침묵하던 엘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우선 이기는 데 집중해야겠어."

엘리스는 태연하게 승리를 말했다. 아무래도 자신의 걱정은 기우였던 것 같았다.

'다행이네.'

곧 경기장으로 입장하라는 신호가 왔다.

두 사람은 밝은 조명이 비춰들어 오는 경기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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