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46화 (146/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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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전은 오후에 예정되었다.

영국의 엘리스 엘리자베스와 대한민국의 유현의 대결.

전 세계가 두 사람의 결전에 집중했다.

[유현, 대한민국 역사상 첫 세계 아카데미 선수권 개인 종목 결승 진출]

[전문가들, 제2의 손지성 아냐, 유현의 행보는 독보적.]

[대통령, 유현에게 직접 축사 전해.]

여러 언론에서는 쉴틈 없이 유현의 기사를 쏟아냈다.

가히 월드컵에 버금가는 뜨거운 분위기. 축제라도 열린 것처럼 대한민국은 온통 시끌벅적했다.

"유현! 유현! 유현!"

이른 시간부터 거리 응원을 위해 모인 사람들이 붉은 티셔츠를 입은 채 유현의 이름을 연호했다.

-이곳은 지금 런던의 거리입니다! 보다시피 축제나 다름없는 풍경인데요!

난리가 난 건 대한민국뿐만이 아니었다.

엘리스의 조국인 영국에서도 수많은 사람이 그녀의 결승 진출에 열광했다.

-엘리스! 넌 이 나라의 희망이야!!

-이겨라! 엘리스!

지나가던 카메라를 붙잡고 소리치는 행인들. 평소라면 눈살을 찌푸릴 행동이었지만, 모두가 미쳐있는 지금, 그 행동에 태클을 거는 사람은 없었다.

-누구도 두 사람이 결승에 갈 거라고 예상하지는 못했을 거예요.

어떤 채널을 돌려도 온통 결승전에 관한 이야기뿐이었다.

유현은 결국 리모컨에서 손을 놓았다.

TV 위로는 앵커가 대회의 일정을 천천히 복습하며 그간 있었던 두 사람의 행보를 나열하고 있었다.

-유현이 보여준 무력은 정말 엄청났어요. 그간 영상으로만 보던 걸 실제로 봤을 때는 온몸에 전율이 일었죠.

외국인이 자신에 대해 열성적으로 떠드는 걸 보니 기분이 상당히 묘했다.

-솔직히 저는 그가 큰 활약을 하지 못할 줄 알았어요. 왜 천재들이 쏟아지는 관심을 이기지 못하고 고꾸라지는 것처럼요.

유현은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기분은 썩 나쁘지 않았다.

-그런 걱정은 기우였죠. 그는 누구보다 훌륭히 해냈어요. 나중에 미국팀이 저지른 사건을 들었을 때는, 그에게 존경심마저 들었다니까요. 솔직히 생각해봐요. 함께 거리를 걷던 동료가 피격당한 상태에서, 대체 어느 누가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겠어요?

앵커는 잠시 목을 가다듬고 다시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유현이 안톤에게 저지른 짓을 욕했어요. 아무리 그래도 대회인데 너무 심한 것 아니냐고. 하지만 진실이 밝혀지니 그런 말들은 쏙 들어갔죠.

유현 역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느꼈었다. 소수였지만, 욕을 하는데 어찌 귀에 들리지 않으랴.

하지만 앵커의 말대로 진실이 밝혀진 이후로는 그런 소리가 모두 사라졌다.

-정말 드라마 같은 이야기에요.

동료를 잃었을지도 모른다는 고통을 이겨내고, 결승까지 올라왔잖아요. 특히 그 과정에서 우리를 몇 번이나 놀라게 했죠.

앵커는 이번에 유현이 보여주었던 말도 안 되는 특성을 이야기했다.

앵커의 뉘앙스와 행동은 한층 더 업그레이드되어 격해졌고, 4강전을 이야기할 때는 거의 혼절하려는 지경까지 왔다.

-이 사람은 인류가 낳은 최강의 괴물이에요! 지금까지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엄청난 재능이라고!

가능하다면 정자를 채취하여 그 유전자를 후대에 길이길이...!

생방송으로 진행되던 방송은 거기서 툭, 하고 끊겼다.

뿌연 화면과 치직거리는 소리가 방안을 채웠다.

유현 역시 앵커의 발언에 조금이지만 당혹감을 느꼈다.

"......서양이 개방적이라더니 진짜 그런 건가."

"저 사람이 특이한 거 아닐까? 저런 자리에서 이야기할 정도면…."

"너희 아버지는 어떤데?"

병실 침대에 누워있던 메이블은 유현의 질문에 아니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우리 아빠는 완전 보수적이셔. 교복 아니면 치마도 못 입게 한다니까."

"그냥 사람 따라 다른 건가 보네."

경기가 예정된 건 저녁.

시간이 많이 남은지라, 유현은 병원에 들렀다.

겨우 하루가 지났지만, 메이블의 상태는 차도가 있었다.

물론 아직 전신이 얼어붙었던 후유증이 남아 게이트 종목의 참가는 불가능했다.

"서희는 보고 왔어?"

"굳이 뭐 하러 가서 보냐."

괜히 그때 생각만 더 나서 마음만 불편하다.

"그래도 가서 보지. 서희가 좋아할 텐데."

"의식도 없는데 뭐."

메이블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걸터 앉은 유현의 손을 덥썩 붙잡았다.

"가서 잘하고 와. 내 몫까지 쳐서 그 사람 꼭 이겨줘."

손을 타고 느껴지는 따뜻한 에너지. 메이블의 특성이 유현의 몸에 스며들며 조금 남아 있던 피로마저 사라지게 했다.

"푹 쉬어라."

"응. 다치지 말고."

메이블의 응원에 힘입어 유현은 병실을 나왔다.

복도 저편에서 타이밍에 맞게 안칠성이 걸어왔다.

"슬슬 스폰서 대표 보러 가야지."

"예. 그러려고 나왔어요."

유현은 안칠성과 함께 병원의 1층으로 내려갔다.

복도를 지나 로비로 향하던 도중. 유현은 맞은편 복도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엘리스구나."

안칠성 역시 그녀를 발견했다.

이곳에 누군가 입원해 있는 걸까. 경과가 나쁜 건지 그녀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듣자 하니 동생이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던데."

엘리스는 그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대로 모퉁이를 돌아 바깥으로 향했다. 걸음마다 새하얀 단발머리가 힘없이 흔들거린다.

"혼수상태요?"

"이유도 모른다더라."

"한서희처럼요?"

안칠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저 아이에게는 우승이 간절할 거야."

"...집안 사정이 그리 좋지는 않은가 보군요."

"나는 그렇다고 알고 있다. 지금 여기서 입원해 있는 것도, 전부 아카데미에서 지원해 주고 있다고 하고."

아카데미는 언젠가 졸업할 수밖에 없다.

병원비에 대한 지원이 끊기는 건 확실한 미래.

헌터가 될 테니 자금에는 큰 문제가 없겠지만, 미래를 생각해서 어떻게든 몸값을 높이고 싶을 것이다. 거기에 우승 상금까지 차지하면 더 좋고.

"안타깝네요."

"...그렇다고 막 져주거나 하진 마."

"제가요? 미쳤어요?"

가정사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사정. 상대가 아무리 불쌍해도 봐줄 생각 따위는 없었다.

***

결승전 시작까지 앞으로 몇 시간. 꽤 많은 시간을 남겨둔 채로 유현은 경기장에 도착했다.

원해서 일찍 온 건 아니었다.

대회 최대 후원사 대표와 만나는 일정이 잡혀 있던 탓이었다.

"이쪽으로 오시죠."

유현과 안칠성은 진행 요원에 안내에 따라 경기장 내에 마련된 VIP실로 향했다.

저편에서 엘리스와 그녀의 인솔 교사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둘이서 같이 만나는 겁니까?"

"아, 예. 보통은 따로 만나는데, 이번에는 스폰서 대표님이 유현씨와의 독대를 원치 않으셔서요."

진행요원의 말에 유현과 안칠성 둘 다 의문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너 무슨 잘못이라도 했냐?"

"그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데요?"

"이상하네. 그러면 그럴 이유가 없는데."

유현 역시 의문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스폰서가 어디인지를 모르니 대표라는 사람도 알 턱이 없다.

그런데 그 사람이 하필이면 자신을 콕 짚어서 지적하다니.

'진짜 내가 아는 사람인가?'

하지만 그런 사람과 인연을 맺은 적은 없는데.

유현은 궁금증을 품은 채로 VIP실 앞에 도착했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먼저 영국 팀이 들어가고 그다음에 유현과 안칠성이 입장했다.

아카데미의 VIP실과는 차원이 다른 내부.

온통 고급스럽게 꾸며진 공간에서 구릿빛 피부의 한 남성이 등을 돌린 채 앉아 있었다.

"대표님. 모셨습니다."

"어, 아, 어…."

유현은 왠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저 뒤통수, 목소리, 의자 위로 드러난 커다란 상반신까지.

"대표님?"

비서의 말에도 남자는 끝까지 고개를 돌리지 않으려 했다.

모두가 이상함을 느꼈을 때.

남자가 비서의 귓가에 속삭였다.

"제발 안 하면 안 되나?"

"회장님께서는 꼭 하라고 하셨습니다."

"아, 제발…."

"회장님께 직접 여쭤보시죠. 전 회장님 명령을 최우선으로 하니까요."

유현은 신경을 기울여 그 대화를 하나하나 엿들었다.

남자를 모시는 수행원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예의에 어긋난 듯한 말투였다.

"하아."

남자는 한숨을 쉬더니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파에 가려져 있던 남자의 몸은 생각보다 더 거대했다.

그 순간, 유현의 뇌리에 한 사람이 스쳤다.

"너 혹시."

남자가 움찔 몸을 떨었다.

유현은 기다리는 대신 남자를 향해 다가갔다.

"저쪽에서 기다려주시죠."

앞을 막는 비서를 가볍게 옆으로 밀어버리고는 남자의 앞에선 유현.

남자가 애써 시선을 피하려 고개를 돌렸지만, 그마저도 유현의 손에 붙들려 오래가지 못했다.

그렇게 드러난 남자의 얼굴은 무척이나 낯이 익었다.

"와, 야. 오랜만이다?"

이전과는 사뭇 달라진 인상.

피어싱도 없고, 전체적으로 깔끔해졌다.

하지만 유현은 남자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아무리 깔끔하게 다듬어도 태생적으로 험악한 얼굴이 사라지지는 않았으니까.

"그때 뒤통수 깨지고 뒤지는 줄 알았는데, 아직 살아 있었네?"

제레미 마스톨.

암시장에서 만났던 악랄한 재벌 3세. 유현과의 독대를 피하던 스폰서 대표는 바로 그였다.

"왜 날 피하려고 했는지 알겠네."

"......"

"이제 그쪽 생활은 청산한 거냐?"

유현은 그에게 별다른 악감정이 없었다. 그 덕분에 원하는 걸 얻었고 돈도 꽤 벌었으니까.

하지만 마스톨은 그렇지 않았다.

된통 깨진 이후, 아버지에 의해 암시장의 통행이 완전히 차단 되었다. 내놓은 자식이라고 생각했건만, 그래도 자식이라는 인식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통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마스톨은 강압적으로 여러 가지 교육을 들어야 했으며, 온갖 자리에 끌려다녀야 했다.

'하필이면 형이란 놈들이 죄다 잡혀들어가는 바람에….'

지하 세계의 일이야 지하에 묻을 수 있다지만, 위에서 일어난 비리는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이 자리에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작년까지는 다른 형이 맡았던 스폰서 대표의 자리.

그런데 그가 붙잡혀 들어가며, 이제 마스톨에게 넘어온 것이다.

그 모든 게 결국에는 유현에게 맞고 죽기 직전까지 간 일 때문에 생긴 일었다.

입원만 안 했어도, 아버지에게 붙잡힐 일 따위는 없었을 텐데.

"왜 말이 없어, 씹냐?"

유현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줄곧 표정이 굳어있던 마스톨은 그 변화를 인지하고 곧장 표정을 바꿨다.

"아, 아니요! 무, 무시하다니요!"

유현이 마스톨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 행동에 마스톨은 자존심이 상했지만, 차마 무어라 말을 꺼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비서는 달랐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예?"

"대표님의 몸에…."

마스톨은 비서를 향해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잔뜩 겁먹은 그의 눈동자를 발견한 비서는 기이함을 느끼면서도 그의 말을 따랐다.

"제가 얘랑 좀 알아요."

"대표님의 친구분이셨군요."

"아니, 친구까진 아니고. 굳이 따지면 원수 정도는 되겠네."

유현의 말에 마스톨이 기겁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워, 원수라뇨! 누가 원수에요!? 전 당신의 친구입니다!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얼마든 말해요!"

처참하게 당한 뒤로 마스톨은 유현의 얼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오한이 들었다.

그의 모습을 TV에서 봤을 때는 그만 경기를 일으키며 TV를 깨부수고 말았다.

그에게 유현은 아주 끔찍한 트라우마였다.

"저기…."

"아, 다른 분들도 앉으시죠."

비서를 제외한 인원이 원탁 탁자에 빙 둘러앉았다.

안칠성은 덩치에 맞지 않게 다소곳이 앉은 마스톨을 보며 유현의 옆구리를 툭 건드렸다.

"어떻게 아는 사이냐?"

"그런 사정이 있어요."

"대체 무슨 사정이길래 저런 사람이 저렇게 겁먹어?"

"뭐, 흔한 주먹다짐이죠."

언뜻 들려온 유현의 목소리에 마스톨의 머릿속에 그날의 기억이 다시 살아났다.

'죽는 줄 알았는데 흔한 주먹다짐이라니.'

수십 번의 대수술을 거쳐 간신히 살아남았다.

타고난 회복력이 아니었다면, 아마 아직도 병원 신세를 지고 있었을 것이다.

"마스톨."

"아, 예!"

"말 편하게 해."

"...아, 알겠어."

스폰서 대표와 참가자 간의 자리이거늘, 어느덧 갑과 을의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

"이렇게 모인 이유는?"

"아, 그게 사소한 잡담을 나누고, 서로 사진을 찍고..."

"할 이야기가 있나?"

"어, 없지!"

"그럼 사진만 찍고 가자."

"오, 오케이!"

번번이 말을 더듬는 마스톨을 보며 유현은 피식 웃었다.

새끼. 그래도 정신을 차려서 다행이네.

'이 상태면 말이 좀 잘 통할 것 같은데.'

자신에게 잔뜩 겁먹은 상태.

어떤 부탁이든 들어줄 것 같았기에, 그의 머릿속에는 빠르게 계획이 자리잡혔다.

'우선 이 의미 없는 자리부터 빠르게 파해야겠군.'

유현의 명령 아래, 쓸데없는 과정 없이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다.

짧은 인사말이 끝나고 이어진 사진 촬영.

서로 악수하는 걸 한 번씩 찍고는 만남이 종료되었다.

"먼저 나가 계세요."

다른 이들이 방을 나갔지만, 유현은 마스톨에게 할 말이 남아 있었다.

비서와 마스톨, 그리고 유현만이 남은 VIP실.

마스톨은 차오르는 긴장감을 억지로 삼켰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렸다.

"아까 뭐든 부탁하라고 했지?"

마스톨이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가 말하는 것들 좀 구해줄래?"

"무, 물론이지! 다 구할 수 있어! 말만 하라고!"

뭔지 말도 안 했는데 호언하는 마스톨. 유현은 씩 웃으며 메모장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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