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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45화 (145/219)

145

그날 저녁.

유현의 객실로 쿠로가네와 메이코가 찾아왔다.

"죄송합니다아아아!!!"

들어온 쿠로가네는 곧장 오체투지를 시전했다.

그는 바닥에 이마를 찰싹 붙인 채, 자신의 잘못을 고해했다.

"계속 물어보니 메이코가 결국에는 말해줬습니다!"

"끝까지 정신 못 차릴 줄 알았는데 ."

"흥. 어지간히 끈질겨야지."

메이코는 옆에서 팔짱을 낀 채 도도한 시선을 보냈다.

평소라면 한 소리 했겠지만, 유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튼, 이제 사과했으니까…."

말을 잇던 메이코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옳거니.'

유현은 웃음을 참으며 그녀를 지켜보았다.

메이코는 입술을 꽉 깨물며 무언가를 참는가 싶더니, 이내 온몸을 벅벅 긁기 시작했다.

"으으..."

그녀에게 내린 저주는 바로 가려움이었다.

가려움의 정도는 본인이 느낄 수 있는 한계치이며, 그런 가려움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게 특징이다.

'머리를 빠지게 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건 가발 쓰면 그만이고.'

하지만 가려움은 어떻게 하지도 못한다. 끝없이 긁는 것만이 유일한 해답. 그러나 인간의 피부에는 한계가 있다. 여배우인 그녀에게 피부의 손상은 치명적. 복수에는 최적인 방법이었다.

"잘 좀 씻고 다니지."

"닥...쳐..."

단순히 상대를 열받게 하기 위한 말이었다.

간지럼은 샤워를 아무리 해도, 설령 온몸을 불에 지진다고 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물론 직접 해제는 가능하지만….'

유현은 원하는 걸 얻기 전에는 순순히 저주를 풀어줄 생각이 없었다.

"으으으!!"

몸을 긁던 메이코가 이번에는 얼굴을 벅벅 긁어댔다.

빨개지다 못해 상처가 나기 시작한 뺨.

그런데도 간지럼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며 유현은 웃음을 참지 않았다.

"하하하! 비누라도 하나 사줘야겠군!"

신경을 찌르는 말이었지만, 메이코는 긁기에 바빴다.

조금 심한 저주인 감이 없잖아 있긴 하지만, 메이코가 지금껏 해온 짓을 생각하면 그런 동정심이 싹 사라졌다.

"유현님, 제가 어떤 짓을 해야 용서받을 수 있을지…."

"됐고. 네 친구나 좀 어떻게 해봐. 자꾸 긁는다."

땅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있던 쿠로가네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미 몇 번이고 같은 짓을 하는 걸 봤는지 놀라지도 않고 잔소리했다.

"메이코! 그만 긁어!"

"가려워! 가렵다고!"

"쯔쯧. 업보다, 인마."

메이코는 한동안 몸을 긁다가 가까스로 진정했다.

유현은 그녀가 정상이 된 걸 확인하고 곧장 본론을 꺼냈다.

"재료 말해."

"하아, 하아."

거칠게 숨을 헐떡이는 메이코.

그러면서도 눈을 사납게 치켜뜨며 유현을 노려보았다.

"내가 왜? 당신은 내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어."

유현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코웃음 쳤다.

"그거 내가 해결해줄 수도 있는데."

"...뭐?"

"가려운 거 말이야. 나도 옛날에 비슷한 일을 겪었어. 죽는 줄 알았지."

"설마 네가 이런 짓을…!"

갑작스러운 가려움이 생긴 게 네 탓이냐고 소리치려던 메이코는 입을 다물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그런 짓이 가능할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난 어떤 약을 먹고 나았는데, 그걸 어떻게 만드는지 알고 있어."

"아까 내가 했던 말이잖아!"

유현은 과장스레 어깨를 으쓱였다.

"난 진실을 말했는데? 믿고 말고는 네 자유지."

"그것도 아까 내가...흐읍!"

말을 잇던 메이코가 신음을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바닥을 뒹구는 메이코. 등을 향해 손을 뻗지만, 간지러운 부분에 손이 닿지 않았다.

"이, 잇시키! 긁어줘!"

"으, 응!"

쿠로가네가 황급히 그녀의 등을 긁었다.

서로 털 골라주기를 하는 원숭이 같달까.

우스꽝스러운 풍경을 보며 유현은 태연히 말을 이었다.

"내가 약을 구해서 한서희를 깨우면, 그때 너에게도 방법을 알려주지."

"으으으!"

"싫으면 뭐, 평생 그 꼴로 살던가."

빈말이 아니었다. 유현은 정말 그녀가 자기 말에 따르지 않으면 평생을 저주에 시달리게 할 생각이었다.

"메이코! 어서 적어드리자! 너 자꾸 얼굴 긁으면 일도 못 해!"

메이코는 이를 악물었다.

왜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몸이 이렇게 되어 버린 걸까.

그것만 아니었다면, 이케가미를 다시 데려올 수...

'다시 데려와? 왜?'

이미 이케가미와는 끝난 인연.

굳이 그에게 집착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예전에 포기했던 일일 텐데 왜….

"으윽!"

순간 메이코는 머리가 아려오는 통증을 느꼈다.

조금 전의 의문은 사라지고, 다시 가려움이 몸을 뒤덮었다.

"펜! 펜 내놔!"

메이코는 유현이 내민 펜을 낚아챘다. 계속 이런 고통에 시달릴 바에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믿는 게 나았다.

"흐읍."

몸을 부들부들 떨며 메모장 위에 글씨를 써 내려가는 메이코.

중간중간 몸을 긁느라 멈칫거렸지만, 가까스로 전부 쓰는 데 성공했다.

"흐음."

유현은 아까와 같은 불상사를 막기 위해 메모 내용을 확인했다.

이번에는 모두 제대로 적혀 있었다.

"이건 어디서 얻는 거야?"

유현이 재료 하나를 가리키며 물었다.

메이코가 미간을 찌푸렸다.

"나도 몰라! 내가 왜 이딴 걸 어떻게 아는지도 모르는데…."

"네 아빠가 이걸로 나았다며."

"뭐? 그랬었나? 아니, 그랬었던 것 같은데…."

간지럼 때문에 정신이 오락가락한 걸까. 유현은 자연스레 의구심이 들었다.

"설마 구라냐?"

"아니, 아니야! 분명 머릿속에 그 기억이 있는 것 같긴 해."

"있는 것 같은 건 뭐야? 왜 확신을 못 해?"

더 추궁하고 싶었으나 메이코가 비명을 지르며 또다시 몸을 비틀었다.

얼마나 간지러운 걸까.

아주 바닥을 청소할 기세로 뒹굴뒹굴 구르며 난리를 친다.

'뭐, 진짜인지 아닌지는 직접 확인해보면 알겠지.'

어차피 가려움을 해결할 방법을 알려주기로 한 건 한서희가 깨어난 이후.

제대로 대화하기도 어려운 상대에게 더 따져봤자 무의미했다.

"쿠로가네. 데리고 나가."

"아, 예!"

"아, 그 전에."

유현이 쿠로가네의 머리를 붙잡아 상체를 숙였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라. 머저리 같이 휘둘려 다니지 말고."

살기등등한 눈빛과 목소리에 쿠로가네가 마른침을 삼켰다.

차마 입술이 떨어지지 않아 고갯짓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후우."

두 사람이 객실을 나가고.

유현은 혼자 앉아 인터넷에 재료들을 검색했다.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재료가 있는가 하면, 무척 희귀한 재료도 있었다.

'혼자 구하기는 힘들겠는데.'

대충 계산해봐도 몇 달은 걸릴 양. 혼자서 발품을 뛰면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

잠시 고민하던 유현은 휴대전화를 들었다.

***

"이게 서희를 깨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스카이 아일랜드 병원 VIP실.

한상용과 통화한 유현은 곧장 이곳으로 달려왔다.

"확실하진 않아요."

한상용은 미심쩍은 눈으로 유현이 적어온 재료를 살폈다.

약재로 쓰여 익히 알고 있던 재료도 있고, 난생처음 보는 재료도 있었다.

"의사한테 한 번 물어봐야겠는데."

"바로 물어보죠."

한상용은 담당 의사를 호출했다.

그의 부름에 한걸음에 달려온 의사는 유심히 재료 목록을 살피며 여기저기 전화를 걸더니 한참 뒤에야 결론을 내렸다.

"다른 전문가들과 의견을 합친 결과, 효과가 있을 것 같습니다."

"있을 것 같아?"

한상용이 말꼬리를 잡자 의사가 쩔쩔거리며 답했다.

"그게 재료 간의 상호 작용은 훌륭합니다만, 어디서도 이런 식의 조합은 보지 못한 터라…."

"서희가 실험 쥐가 돼야 한다는 말이군."

"다른 혼수상태의 환자가 있다면 한 번 찾아볼까요?"

한상용은 고개를 저었다.

"약은 한정되어 있어. 재료를 구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다른 사람을 실험 쥐로 삼는 것도 그리 내키지는 않아서 말이야."

"임상실험 목적이라고 하면 하겠다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실제로 가망이 없는 사람들은 오히려 환영할 테고요. 너무 죄책감을 갖지 않으셔도…."

의사의 말에 한상용은 팔짱을 낀 채 침음했다. 그로서도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사안이었다.

"재료야 어떻게든 구하면 돼요."

"현실이 말하는 대로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이렇게 하죠. 충분한 분량을 구하면 동물한테 쓰든 사람한테 쓰든 실험해보고, 그게 아니면 그냥 한서희에게만 먹여요."

유현이 나름대로 깔끔한 결론을 내렸지만, 한상용의 고민은 깊어졌다.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 수 없는 약을 서희에게 먹여야 할지.

아니면, 임상실험을 위한 재료가 확보되기를 바라며 기약할 수 없는 시간을 기다릴지.

"...모르겠다. 우선 재료부터 구해보자."

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한서희가 오늘내일하는 것도 아니니, 고민은 그때 가서 해도 늦지 않는다.

또, 그사이에 깨어날 가능성도 있으니 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그럼 바로…."

"일단 우리 쪽만 움직이마. 넌 아직 대회가 남아 있잖아."

"대회는 그만둬도 상관없어요."

그의 말에 한상용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말은 고맙지만, 그냥 참가해. 서희도 그걸 바랄 테니."

"......그러죠, 그럼."

"듣자 하니 메이블이라는 친구도 병원 신세라던데."

4강전에서 부상을 입은 메이블은 그대로 병원에 입원했다.

치료사들이 그녀의 회복에 전념했지만, 아무래도 며칠 내에 완전한 몸 상태로 회복하는 건 어려울 듯했다.

"예. 게이트 종목은 저 혼자 나가게 됐어요."

"괜찮겠냐? 안전 요원들이 대기 중이니 목숨에 문제는 없겠지만…."

"괜찮겠죠. 어차피 인공 게이트잖아요."

인공 게이트.

사냥형 게이트에서 포획한 몬스터들을 약물로 강화하여 풀어놓은 곳이다.

그 수준은 요구에 따라 달라지지만, 포획해야 한다는 특성상 중상급 수준의 몬스터를 데려오는 게 한계였다.

"뭐, 너라면 크게 위험할 것 같지는 않구나. 시간은 조금 걸릴지 몰라도 클리어할 것 같아."

"시간이 핵심인데 최대한 빨리해봐야죠."

게이트 종목의 평가 기준은 클리어 타임.

그래서 국가별로 들어갈 수 있는 제한 인원이 존재하며, 그룹의 평균을 계산하여 클리어 타임을 정한다.

최소 인원은 정해지지 않았기에 혼자서도 참가할 수 있다.

"슬슬 가서 쉬어라. 좋은 정보 알려줘서 고맙다."

"대회 끝나면 저도 불러주세요. 바로 갈 테니까."

한상용은 유현을 마중했다.

멀어져가는 그의 등을 보며 그가 다시 미소 지었다.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는 놈이란 말이지."

첫인상과는 달리 무척 호감이 가는 인물이다.

왜 조카가 그토록 칭찬을 아끼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

"이 정도면 성공인가~?"

병원의 옥상.

정장 차림의 여성이 병원을 나서는 유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놈들 일에 신경 안 쓸 것 같더니."

그녀의 옆에는 역병 의사 마스크를 착용한 남자가 쭈그려 앉아 있었다.

"신경 안 써. 그래도 저런 밸런스 붕괴 캐릭터가 망치는 건 막아야지. 아까도 경기 봤지? 저런 놈을 여기 가만두면 상황이 재미없게 흘러갈 거야. 순식간에 게임 오버라고."

"그건 그렇긴 하다만 설마 이렇게까지 머리를 굴릴 줄이야."

메이코라는 아이의 기억을 조작하여 존재하지 않는 과거를 심었다. 그리고 그녀의 욕망을 강하게 자극하여, 유현에게 접근하게 만들었다.

"신기하지 않아? 저런 아이가 참고 있던 욕망이라는 게 고작 친구의 예전 연인을 괴롭히는 거라니."

"인간은 언제나 양면성을 지니고 있으니까."

"어머. 너 혹시 나한테 이상한 마음 품고 있는 건 아니지?"

"...미친 드래곤 같으니라고. 왜 이야기가 그렇게 가?"

여자가 작게 실소했다.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페도라를 고쳐 썼다.

"알려준 약은 효과 없는 거지?"

"응? 아니. 효과 있는 건데?"

"...그럼 그냥 얌전히 본인한테 알려줬으면 됐잖아. 괜히 다른 애들 이용하지 말고. 어차피 섬 밖으로만 내보내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었어?"

여자가 입을 가리며 호호 웃었다.

"그러면 재미없잖아~"

"......하여간 악취미라니까."

여자가 이 모든 일을 계획한 건 유현을 스카이 아일랜드에서 내보내기 위해서였다.

사안이 사안이니 대회가 끝나는 대로 재료를 구하기 위해 직접 뛰어다닐 터.

케이디의 작전이 시작되는 날.

유현은 이곳에 없을 것이다.

"과연 놈들의 목적이 뭘까."

남자는 저편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 높지 않은 병원의 옥상에서 둘러보는 스카이 아일랜드의 전경.

며칠 뒤에는 이곳에 피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건물이 무너지고,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겠지.

"모르지. 단순한 노략질일지. 아니면, 세상을 향한 본격적인 선전포고일지."

오래도록 건재하던 사회를 향해 비로소 시작되는 위협.

그걸 모르는 도시의 밤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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