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42화 (142/219)

142

유현은 하오란을 주시했다.

전신을 둘러싼 가죽 갑옷.

꼭 판대륙에서 보던 사냥꾼들의 복장 같았다.

곧 등으로 향한 그녀의 손에 두 개의 손도끼가 들려나왔다.

날카로운 날이 경기장의 조명을 받아 반짝거린다.

'살벌한데.'

도끼를 들자, 순식간에 돌변한 하오란의 눈빛. 치켜뜬 눈동자에서 날 선 살기가 번들거렸다.

마치 사냥감을 노리는 사냥꾼 같았다.

"히야아아아아!"

우렁찬 기합과 함께 하오란이 땅을 박찼다.

마치 한 마리 곰처럼 성큼성큼 달려오는 하오란.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민첩한 속도였다.

'신체 강화 계열?'

그때, 하오란의 어깨가 뒤로 돌아갔다.

이윽고 달려오던 힘을 활용해 한차례 몸을 회전한다.

직후, 아래로 힘차게 휘둘러진 오른팔.

유현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동공 위로 엄청난 속도로 공간을 가르며 쇄도하는 손도끼의 모습이 비쳤다.

후웅!

유현은 몸을 틀어 도끼를 피했다. 간신히 반응했을 정도로 빠른 공격이었지만, 경로가 직선적이라 피하는 건 쉬웠다.

'이쪽은 페이크인가.'

회피하고 곧장 코앞까지 다가온 하오란.

일반적인 능력자라면 반응할 수 없는 짧은 틈이었다.

퍽!

유현이 양손을 교차해 아래로 손도끼를 내려찍던 하오란의 팔을 막아냈다.

머리 맡에서 멈춰선 도끼의 날.

학생들의 대회에서 이런 걸 사용해도 되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살벌한 무기였다.

"크윽!"

하오란이 신음을 흘렸다.

도끼를 쥔 팔에 계속 힘을 쥐었지만, 유현의 방어에 막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무슨 힘이…!'

유현은 태연하게 공격을 막아냈다. 도끼를 쥔 팔이 부들부들 떨려오는 자신과 달리 그의 몸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

유현의 눈동자가 하오란을 응시했다.

그 눈빛에서 무시를 느낀 하오란은 반대 손을 유현의 뒤편으로 뻗었다.

휘이익!

뒤쪽에서 들려오는 파공음.

유현은 발을 들어 하오란의 복부를 걷어차고는 급히 옆으로 몸을 틀었다.

조금 전, 그의 오른쪽 가슴이 있던 자리로 도끼가 빙글빙글 회전하며 날아왔다.

가만히 있었다면 등에 박혔을지도 모를 공격이었.

'손도끼를 자유자재로 다루는군.'

날아온 도끼는 그대로 하오란의 손에 돌아갔다.

유현의 발차기를 맞고 뒤로 물러났던 하오란은 바닥에 침을 뱉고는 다시 일어났다.

'더럽게 아프군.'

복부가 얼얼하다.

맷집이 결코 약한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강한 축에 속했다.

그런데도 상당한 통증이 느껴졌다. 고작 발차기 따위에 이 정도의 통증을 느끼다니.

꽈악.

하오란이 도끼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녀의 눈이 이전보다 날카롭게 번뜩였다.

사냥꾼에 집안에서 태어나, 언제나 누군가를 사냥 해오던 삶.

사냥감과의 전투에서 온몸에 상처를 입더라도 패배한 적은 없었다.

뛰어난 전투력과 타고난 재능이 만들어낸 최강의 전사.

그게 바로 중국 아카데미의 정점에 오른 하오란 링이었다.

"흐아!"

짧은 기합과 함께 다시 하오란이 발을 튕겼다.

그녀의 시야 위로 유현이 전방을 향해 손을 뻗는 모습이 들어왔다.

'특성.'

지난 경기를 복습하며 하오란은 유현의 전투를 익혔다.

저 자세는 특성을 사용하려는 자세. 불, 물, 전기 등. 어떤 원소의 공격이 날아올지 모른다.

'와라!'

하지만 상관없다.

어떤 속성의 공격이더라도 대비는 되어 있으니까.

파지직!

눈앞을 물들이는 환한 빛 한 줄기. 하오란은 두 눈을 부릅뜬 채 그 공격을 마주 보았다.

뇌전이 공간을 가르며 다가오는 찰나의 시간.

그녀가 도끼의 측면에 부착된 장치를 압박하며 아래로 힘차게 내려찍었다.

순식간에 길어진 도끼의 손잡이가 그대로 경기장의 바닥을 뚫고 들어갔다.

콰광!

천둥이 일었다.

그러나 하오란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도끼의 날을 통해 흡수한 전격이 그대로 땅을 통해 대지로 흩어진 것이다.

"하하하!"

수비에 성공한 하오란은 도끼를 뽑아 들고 다시 유현을 향해 쇄도했다. 공격을 이런 식으로 흘려낼 줄은 몰랐을 테니 분명 당황했을 터.

그 틈을 노린다면 승산이….

'......?'

하오란은 멈칫했다.

그녀의 예상과 달리, 유현은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공격이 막혔다면 조금이라도 동요할 법한데 얼굴 어디에도 그런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상관없어.'

하오란은 개의치 않고 속도를 높였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그를 공격할 생각이었다.

뛰어가며, 손잡이가 길어진 도끼의 끝에 다른 도끼의 손잡이를 이었다.

착, 소리와 함께 결합한 무기.

봉의 중앙을 잡은 하오란이 맹렬한 기세로 도끼날을 휘둘렀다.

후웅!

유현은 몸을 틀어 공격을 회피했다.

하오란은 기다란 도끼를 마치 제 몸처럼 다루며 쉴새 없이 공격을 날렸다.

가르고, 내려찍으며, 직선과 대각선을 가리지 않는 연격.

한 번 한 번의 공격에 담긴 엄청난 힘이 연신 공기를 찢어발겼다.

허나 유현은 그 공격을 모두 피해냈다.

'역시 회피에 강해.'

하지만 이것도 예상한 일.

하오란은 마나를 사용해 속도를 최대한으로 끌어 올렸다.

간신히 회피하던 유현의 몸에 도낏날이 스치기 시작했다.

잘려 나가는 머리칼과 옷깃.

서서히 우위가 넘어오고 있었다.

제아무리 유현이라고 해도 더는 도끼의 속도를 따라가기 어려워 보였다.

'어서 힘을 발휘해라.'

여기까지 압박했지만, 하오란은 쉽게 승리를 점치지 않았다.

유현에게는 아직 다른 무기가 많이 남아 있었으니까.

화르륵!

아니나 다를까.

곧 그의 손에서 붉은 화염이 쏟아져 나왔다.

하오란은 불꽃을 향해 도끼를 회전시켰다.

마치 프로펠러처럼 돌아가는 도끼가 화염의 접근을 차단했다.

"......"

유현의 미간이 살짝 꿈틀거렸다.

약한 화력이 아님에도 하오란은 능숙하게 막아낸다.

조금 전 번개를 대응한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성가신 상대였다.

'괜히 여기까지 올라온 게 아니군.'

하오란은 강했다.

8강에서 만나지 않았다면, 더 높은 곳에서 만났을 게 분명했을 정도로.

언뜻 전투 방식이 단순해 보이지만, 모두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그녀의 무기는 두뇌 회전.

그리고 조금 무리일지 모를 판단에도 대응할 수 있는 무지막지한 신체 능력이었다.

"하아아!"

하오란이 힘찬 함성을 내지르며 지척으로 파고들었다.

유현은 피하려는 생각도, 다른 능력을 사용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미 몇 번인가 막힌 다른 특성.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는 의심이 피어올랐을 것이다.

자신의 능력에도 파훼법이 있다며, 좋아할지도 모르고.

그러니 상황이 여기까지 치달았을 때는, 이전보다 몇 배는 강한 파괴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

유현을 향해 도끼를 휘두르려던 하오란은 갑작스레 느껴지는 거대한 마나의 움직임에 움찔했다.

'어, 어떻게 이렇게 빨리?'

어마어마한 양의 마나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움직였다.

다음 공격은 막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팽배했다.

하지만 피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진퇴양난.

생각의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상황은 다가온다.

머리가 내린 판단은 이미 몸이 받아들였고, 도끼는 유현의 머리맡까지 치달았다.

어쩌면, 공격에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든 순간.

쿠구궁!

발을 딛고 있던 세상이 뒤집혔다.

"어어어!"

관중석에서 경악 어린 탄성이 들려왔다.

마치 송곳처럼 무대를 뚫고 땅 밑에서 솟아난 흙더미.

허공으로 튕겨 난 하오란은 착지하기 위해 자세를 잡았지만, 유현의 공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콰과광!

허공에 떠오른 그녀를 향해 날아드는 수십 줄기의 전격.

아무런 전조도 없이 몰아치는 공격에 하오란은 속수무책이었다.

쾅!

그런 와중에도 대지는 계속 솟구쳤다.

날카로운 칼날처럼 끝이 뾰족하게 다듬어진 흙더미들.

조금 전까지 하오란을 응원하던 응원단조차 그 광경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어, 어떻게 이런..."

"트, 특수 무대잖아! 저렇게 뒤집히는 게 말이 되냐고!"

경기에 대비해 만들어진 특수 무대. 바닥에도 온갖 특수한 효과가 덧씌워져 있어 쉽게 파손되지 않는다.

그런 만큼, 땅을 활용한 유현의 전투 방식은 놀랍다 못해 경악스러울 지경이었다.

콰콰광!

연신 반짝이는 경기장의 내부.

폭풍우가 부는 밤.

먹구름 속에서 피뢰침으로 수십 줄기의 전기가 내려꽂히는 듯한 풍경이었다.

번쩍이는 빛줄기들은 오롯이 하오란의 몸에 처박혔다.

솟아난 흙더미에 꿰뚫린 채 허공에서 공격당하는 하오란.

그 모습은 마치 창에 꿰뚫린 사냥감을 보는 것 같았다.

관중들은 하나같이 턱이 빠져라 입을 벌린 채 전투를 지켜보았다.

"저, 저거 끝내야 하는 거 아니야?"

"누가 항복 좀 하라고 해봐!"

경기장의 절반만이 예상했던 결과. 나머지 절반은 하오란의 승리를 점쳤고, 지금의 결과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젠장! 뭐하냐 하오란!"

중국 팀의 인솔교사인 왕쓰총도 그 중 하나였다.

그는 손톱을 잘근거리며 경기장을 바라보았다.

다른 중국 팀 아이들이 대부분 탈락하며, 하오란에게 거는 기대가 커진 상황.

상대가 유현이었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하오란은 자국의 S등급 헌터를 이길 정도로 충분히 강했으니까.

그렇기에 이 상황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이! 어서 항복해라!"

"저러다 죽는다고!"

왕쓰총이 앉은 관계자 전용석을 향해 사람들이 소리쳤다.

왕쓰총은 이를 꽉 깨물며 악에 받쳐 대꾸했다.

"닥쳐! 생명 장치가 아직 멀쩡하잖아!"

"병신아! 업그레이드됐어도 저 정도 전기 공격이면 무력화될 수도 있다고!"

유현과 안톤의 싸움 중 작동하지 않아 한 차례 업그레이드를 거친 생명 장치.

하지만 저런 강도의 전격이라면 아무리 업그레이드됐다고 해도 버틸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왕쓰총은 사람들의 말을 한 귀로 흘렸다. 뭣도 모르는 새끼들이, 뚫린 입으로 나불거리기는.

"하오란! 일어나! 여기서 지면 무슨 쪽이냐!"

하오란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이기는 했지만, 그건 자의가 아니었다.

뇌전이 작렬할 때마다 크게 들썩이는 그녀의 몸뚱이.

아무리 맷집이 좋다지만, 유현의 압도적인 무력 앞에서는 그 맷집도 초라해졌다.

"...쯧."

유현은 소리치는 왕쓰총을 보며 혀를 찼다.

자기 학생이 무기력하게 당하기만 하는 데도 저런 말을 해대다니.

까딱.

유현이 손가락을 움직여 하오란을 꿰뚫고 있던 흙더미를 원상태로 되돌렸다.

지상으로 떨어진 하오란.

몰아치던 전격이 멈추자 장내에는 침묵이 찾아왔다.

"괜찮냐?"

유현은 하오란에게 다가가 물었다. 하오란의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이내 몸을 움직이는 그녀. 손으로 땅을 짚고, 다리를 굽히려 했다.

털썩.

그러나 몸은 그녀의 바람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하오란은 계속해서 다시 일어나려고 했지만, 시도는 번번히 실패했다.

"포기해."

"젠장…."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복부의 출혈은 근육을 조여 어떻게든 막아냈으나 전신에 전격의 후유증이 남았다.

"어떻게…. 어떻게 이렇게 강합니까…?"

하오란이 간신히 고개만 들어 물었다.

유현은 잠시 생각하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타고난 거지. 너처럼."

하오란은 강하다.

유현은 그 점을 인정했다.

지금껏 지구에서 만난 어떤 상대보다도 까다로운 전투였다.

"쉬어라."

유현은 그녀의 등을 두드리고는 몸을 돌렸다.

곧 전투의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

"와…."

TV 화면만이 유일한 빛인 어두운 방.

호야는 생중계를 보며 감탄했다.

유현과 하오란의 전투는 지금껏 봐왔고, 겪어왔던 것과 차원이 달랐다.

"저게 마법이 아닐 수가 없잖아. 저건 분명히..."

그때, 삐걱이는 경첩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

호야는 재빨리 채널을 돌렸다.

"호야."

"대장."

방에 들어온 건 케이디 한국 지부의 대장, 백청룡이었다.

"왜 이렇게 방이 어둡냐."

"자야지. 밤이니까."

"언제부터 새나라 어린이가 됐지? 네가 한창 깨어있을 시간이라 왔는데."

"아직 성장기야. 그리고 본론만 말해, 대장."

백청룡은 피식 코웃음을 쳤다.

"곧 작전이다. 본부와의 연합 작전은 처음이잖아. 긴장하지 말라고."

"처음인 사람 많은데."

"너랑 미우는 아직 어려. 그래서 굳이 말하려 온 거다. 그리고."

백청룡이 품에서 단검집에 들어간 단검을 꺼냈다.

"받아라."

"...이걸 왜 나한테 줘?"

"네 손을 그어."

호야의 눈동자가 당황으로 물들었다. 목울대가 꿈틀거리고,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내 손을?"

"각오를 다지는 행위다. 어줍잖은 동정과 연민에 휩쓸리지 않도록. 다른 이들도 모두 했지."

호야가 검집에서 단검을 꺼냈다. 날카로운 날이 희번뜩였다.

"......"

단검을 내려다보며 잠시 망설이던 호야는 깊이 심호흡했다.

이윽고 웃음을 머금었다.

어려서부터 케이디에서 자라온 호야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깊게?"

"피만 나오면 돼."

"오케이."

세상에 케이디의 위험성을 더욱 확실하게 각인할 작전.

수많은 사상자가 생길 건 당연한 바였지만, 호야는 망설임 없이 손바닥을 그었다.

투두둑.

바닥에 혈흔이 떨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