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37화 (137/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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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경기가 종료된 직후.

안칠성은 다급히 유현의 대기실로 찾아갔다.

"오셨네요."

혼란스러운 안칠성과 달리 유현은 태연했다.

애초에 후폭풍을 예상하고 벌인 행동이었다.

안칠성은 기가 차는지 연신 탄식하더니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너, 너 대체 뭐냐?"

"원소라는 특성이에요."

유현은 안칠성에게 특성에 관해 설명했다.

뒷일을 예상한 만큼 그에 대한 답변도 만들어두었다.

비록 논리적인 답은 아니었지만, 애초에 논리적이지 않은 일이니 적당히 말이 될 것 같은 이유기만 하면 상관없었다.

"살다살다 그런 특성은 또 처음본다. 불이나 물처럼 단독 특성도 아니고…."

"저도 그래서 다루는 데 오래 걸렸어요. 그동안 안 보여 드린 것도 그래서고요."

"그런 특성이 있었는데 입학할 때는 어떻게 그냥 통과 했지? 분명 미리 알았을 텐데…."

"뭐, 그게 중요한가요. 지금 나한테 능력이 있고 내가 그걸 다룰 줄 아는 게 중요하지."

입학 검사까지는 유현도 생각하지 못했기에 대강 얼버무리고 넘어갔다.

안칠성도 딱히 의문을 가지지는 않는 듯했다.

"미리 언질이라도 주지 그랬냐. 보고 심장 멎을 뻔했잖아."

유현은 멋쩍게 웃어넘겼다.

만약 그걸 미리 이야기했다면 반대했을 것 같아서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았다.

"하아. 큰일났구만."

안칠성은 한숨을 쉬었다.

지금이야 막 일이 일어난 참이니 조용하지만, 잠시 후에는 어떻게 될지 벌써 눈앞에 선했다.

"혹시 안톤은 어떻게 됐지? 무사하냐?"

"죽진 않았어요."

"어디 문제가 있을 거라는 소리처럼 들리는구나."

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지능에 이상이 생기거나 말을 못 하거나, 팔다리를 못 쓴다거나 할 수도 있죠."

"......"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안칠성은 유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할 수는 있지. 하지만 그게 올바른 행동은 아니야."

"그놈이 한 대로 똑같이 해준 거예요."

"솔직히 나도 속은 시원하다. 그래도 선생으로서는 그냥 넘어갈 수는 없어."

안칠성의 말도 이해하지 못할 건 없었다. 자신은 아직 아카데미 소속. 일을 치르면 책임 소재는 학교 측에 있다.

물론 단순히 그런 부분만 이야기하는 건 아닐 것이다.

진심으로 걱정하는 듯한 표정에서는 제자를 향한 마음도 느껴졌으니까.

"다음부터는 조심할게요."

"이런 짓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야. 복수의 단점은 스스로를 망친다는 데 있다. 무엇을 하든 네 마음이지만, 하나만 명심해라. 스스로를 잃으면 안 돼. 알겠지?"

과거가 생각나는 충고였다.

얼마나 많은 죄인을 죽이며 살아왔던가. 무너질 뻔한 적도 많았고, 안칠성의 말처럼 스스로를 망칠 뻔한 경험도 수두룩했다.

'생각보다 통찰력 있으시네.'

유현은 안칠성의 충고에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어쩔래? 웬만하면 바로 숙소로 돌아가는 걸 추천한다만."

"이미 늦지 않았을까요?"

"...그러려나?"

쾅! 쾅!

안칠성이 말하기 무섭게 누군가 엄청난 세기로 문을 두드렸다.

문 바깥에서 들려오는 웅성거리는 소음. 서로 밀치고 부딪치는 사운드가 끊임없이 밀고 들어왔다.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 다더니."

"대답 잘해라."

문을 열지 않아도 밖에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

경기 결과는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졌다. 언론은 물론이고 온갖 커뮤니티와 영상 사이트 등.

국가와 수단을 떠나서 유현의 새로운 특성은 화제가 되었다.

-특성이 원소라고?

-ㅁㅊ 그럼 혼자 다 쓰는 거임?

-씹ㅋㅋ 신 새끼 밸런스 패치 실화냐?

-인생 혼자 사네 진짜 개빡친다

-ㅉㅉ 부러워하지 말고 팬클럽 가입이나 해라. 혹시 모르냐. 헌터되면 뽀찌 떨어질 수도 있잖어~

현장에 찾아온 관중들도 쉽사리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세계적인 화제가 된 오늘, 역사 속에 길이 남을지도 모를 오늘.

감격한 관중들은 경기장을 나가면서도 유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난 오늘 1경기 티켓 평생 가보로 삼을 거야."

"특성이 원소라는 게 말이 돼? 개사기잖아!"

"아까 봤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아. 눈앞에 자꾸 번쩍거리는 것 같아."

호야와 미우도 사람들을 따라 경기장을 나왔다.

둘은 바깥으로 가는 대신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지하로 향했다.

"아직 있을까?"

"몰라. 일단 가봐야지."

"서두르자. 우리 자꾸 자리 비우면 안 돼."

"알겠다고."

내려가는 와중에도 미우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냥 다중 특성 아니야?"

"......"

"특성이 두 개든, 다섯 개든 똑같이 다중 특성이니까 굳이 의심할 건 아닌 것 같은데."

호야는 미우의 말을 한 귀로 흘렸다.

다중 특성이라는 게 주류의 의견이자 상식적인 사고였다.

하지만 호야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한 사람이 그렇게 많은 특성을 다룬다고?'

적어도 마법이라는 존재를 인지하고 있는 호야에게 다중 특성은 헛소리였다.

물론 그라고 하여 유현이 사용한 게 마법이라는 확신은 없었다.

실제로 마법을 목격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

단지 어렸을 때 자주 들었을 뿐.

"여기야."

두 사람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대기실에 도착했다.

가까이 다가가 문에 귀를 가져다 대니 누군가와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 누가 나오는데?"

안쪽에서 문을 열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호야와 미우는 어딘가에 숨기 위해 허둥거리다가 복도에서 등을 돌려 벽을 바라보았다.

누가 보기에도 어색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당장 피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럼 기사 꼭 읽어주세요~ 후원도 해 주면 더 좋고~"

"잘 쓰시면 후원이야 당연히 해드리죠."

호야는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었다. 곧장 몸을 돌리려고 했으나 왜인지 기자가 멀어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

어색하게 고개를 돌린 호야는 자신의 등 뒤에 서 있던 기자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어우, 씨. 깜짝이야."

"선수 대기실에는 무슨 볼일이니?"

기자가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랫사람 취급하는 듯한 말투에 호야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쪽이 신경 쓸 건 아닌데."

"어머, 싸가지가 없는 아이구나."

"먼저 지껄인 건 당신이잖아."

"후후. 미안해. 그래서 무슨 일인데? 여긴 관계자도 아닌 사람이 막 들어올 곳이 아니거든."

호야는 머리를 굴렸다.

여기서 소란을 벌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괜히 일이 커졌다가는 조직의 작전을 망칠 염려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냥 돌아가기에는 너무 아쉬운데.'

지금이 아니면 언제 유현과 다시 만나게 될지 알 수 없다.

지금이 놓칠 수 없는 기회였기에 호야는 거짓말했다.

"사인받으려고."

"사인?"

기자는 팔짱을 끼고 과장스레 고민하는 척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정도면 제법 좋은 핑계네. 들어가렴."

마치 자신이 대기실의 주인이라도 되는 듯한 태도.

호야는 어처구니가 없어 코웃음이 절로 나왔다.

"야, 가자."

"...응."

문을 막고 있던 기자가 옆으로 자리를 비켜주었다.

대기실로 들어가려던 호야는 왠지 모를 찜찜함에 뒤를 돌아보았다.

기자는 여전히 의미 불명의 미소를 지은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왠지 낯설지 않단 말이지.'

그렇다고 낯익은 사람도 아니었다. 꼭 데자뷰와 비슷하달까. 언젠가 만난 적 있는 것 같은데 정작 저런 사람을 본 기억은 없었다.

"왜 그래 호야?"

"아냐, 들어가자."

두 사람은 대기실 안으로 들어갔다.

갑작스러운 외부인의 출입에 안칠성이 두 사람을 막았다.

"친구들. 막 들어오면 안 되는데."

"친구 같은 소리 하네. 내가 왜 아저씨 친구야?"

미우가 재빨리 호야의 뒤통수를 때렸다. 따악! 하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죄송해요."

"아, 아니. 괜찮다."

워낙에 대처가 빠른 탓에 안칠성은 잔소리할 타이밍을 놓쳤다.

"근데 무슨 일이니? 기자는 아닌 것 같은데."

"얘가 유현 선수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해서요."

"누구예요?"

뒤쪽에 있던 유현이 안칠성의 뒤로 다가왔다.

곧 두 사람을 발견한 유현의 얼굴이 굳었다.

"얘네가 널 보고 싶다는데."

"......"

"싫으면 돌려보내마."

"...아뇨. 괜찮아요. 잠깐 나가 계실래요?"

"먼저 숙소로 가 있으마. 너도 너무 겉돌지 말고 와. 괜히 밖에 있다가 사람들한테 휘말리지 말고."

안칠성은 짐을 챙겨 대기실을 떠났다.

세 사람만이 남은 고요한 대기실. 유현은 소파에 앉았다.

"앉아."

두 사람은 유현의 맞은편에 앉았다.

"목적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세 마디 안에 말해. 합리적이면 놔주고, 그렇지 않으면 경찰에 넘길 테니."

유현은 단단히 경고했다.

그들은 범죄자. 동물 납치 사건을 일으킨 주범이었다.

이렇게 멀쩡히 상종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많이 양보한 셈이었다.

"참고로 세 마디 넘어도 경찰서 간다."

지난번에는 제대로 끝마무리를 짓지 못했다.

그들을 눈앞에서 놓치고 계속 생각났었는데, 이렇게 제 발로 기어 올 줄이야.

유현에게는 과거의 찜찜함을 없앨 최고의 기회였다.

"호야. 말해."

말을 정리하던 호야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아까 그쪽 경기 봤어."

"한 마디 남았어."

"뭐? 쟤랑 나는 따로 계산해야지."

유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 마디 끝. 등신이냐?"

"아니! 이런 게 어딨어!"

호야도 유현을 따라 벌떡 일어났다. 유현의 눈빛에 지지 않겠다는 듯 마주 보는 호야. 얌전히 앉아 있던 미우가 푹 한숨을 쉬었다.

"죄송해요. 애가 궁지에 몰리면 성격이 좀 이상해져서."

"이런 놈이랑 같이 다니는 거 보면 네 머리도 만만치 않은 거 같은데."

"......"

미우가 표독스러운 눈으로 유현을 쏘아보았다.

유현은 코웃음을 치며 다시 소파에 앉았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주지. 이것도 니놈들 한짓에 비하면 많이 참고 있는 거야."

"이런 개- 아아아아악!"

유현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한 번 더 쏘아붙이려던 호야는 허벅지를 붙잡으며 소파에 쓰러졌다.

미우가 그의 허벅지를 있는 힘껏 꼬집은 탓이었다.

"......"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고통을 가라앉힌 호야가 몸을 일으켰다.

미우와 호야는 서로를 말없이 노려봤다.

"눈싸움하냐?"

유현의 재촉에 호야가 시선을 돌렸다.

그 입에서 나온 말은 유현에게 제법 충격적인 물음이었다.

"아까 그거 마법이야?"

***

정장 차림의 여인이 경쾌한 걸음으로 경기장을 나왔다.

여인의 목에는 [PRESS]가 적힌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느지막한 오후.

경기장 주변은 아직도 1경기의 여파로 후끈했다.

"안톤이 진 것보다 그런 특성이 있다는 게 더 충격적이야."

"이 정도면 미국 S등급 헌터에도 비벼볼 만하지 않아?"

"그건 아직 모르지. 아까 봤던 건 쩔긴했는데, 그건 싸움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웠으니까."

여인은 사람들의 대화를 들으며 웃음을 머금었다.

"원소 특성이라. 참 재밌는 변명이야."

여인은 인적이 드문 곳으로 걸어갔다.

주변의 시선이 닿지 않는 나무 뒤. 여인이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화면 위로는 두 개의 동그라미가 서로 교차한 문양이 출력되고 있었다.

그 버튼을 누르자 누군가에게 신호음이 가기 시작했다.

"저쪽에서는 호야가 먼저 반응했어."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듯한 뒷모습.

"글쎄. 그 아이는 날 모르는 것 같던데? 워낙 오래전이잖아."

여인은 통화하며 허공에 팔을 휘둘렀다. 무언가를 그리는 것 같은 동작이었다.

"뒷일은 나중에 생각해 봐야지. 여기? 여기 일은 우리가 신경 쓸 게 아니야. 알아서들 하겠지."

허공에 그린 그림의 끝이 이어지며 직사각형이 되자 그 선이 푸른색 빛을 냈다.

이윽고 사각형 내부가 순식간에 오묘한 빛깔의 일렁거림으로 뒤덮였다.

여인은 태연하게 통화를 이어가며 그 안으로 발을 디뎠다.

다음 순간. 바람에 촛불이 꺼지듯, 여인의 모습과 허공의 일렁거림이 동시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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