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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34화 (134/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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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주먹이 철판을 가격하자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철판에는 이미 움푹패인 자국이 가득했다.

"후."

대회 개막 하루 전.

유현은 늦은 밤까지 훈련장에 홀로 남아 훈련을 이어갔다.

훈련장 구석에 잔뜩 깔린 철판들이 지난 며칠간 그의 훈련량을 말해주었다.

"...이걸로는 안 돼."

유현은 자신의 주먹을 내려다보았다. 강한 충격의 반복으로 여기저기 까지고 상처 난 주먹. 혹사에 가까운 훈련이었지만, 그는 만족하지 못했다.

'주먹질에는 한계가 있어.'

더 압도적인 강함을 증명할 힘이 필요하다.

'마법.'

그동안은 최대한 드러나지 않게 마법을 사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괜히 드러내봤자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며칠 전 한서희에게 생긴 사고 이후로 조금 생각을 바꿨다.

'놈들의 목적은 나였어.'

얼마나 우습게 보였으면 복수하겠답시고 타겟으로 삼았을까.

앞으로도 이런 일은 몇 번이고 생길지도 모른다. 서부 팀처럼 단순한 원한 관계뿐만이 아니다.

뛰어난 헌터는 결국 유명해질 수밖에 없는 몸.

사람들의 관심에는 호의와 적의가 동시에 존재한다.

누군가는 이유 없이 자신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을 노릴지도 모를 일.

그걸 예방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쉽게 넘볼 수 없는 힘을 세상에 알릴 필요가 있었다.

'오히려 역효과가 날 가능성도 있지만...'

힘을 알리면 주목하는 사람이 더 많아질 게 분명하다.

예를 들어, 스파르타 길드처럼 강한 상대에게 더 흥분하는 부류들. 어중간한 수준으로는 그런 부류에게 도리어 싸울 동기를 마련해주는 꼴이었다.

'그래도 숫자가 줄긴 하겠지.'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진짜 미친놈들은 막지 못해도 어중간하게 정신 나간 놈들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어떤 마법이냐인데..."

자유롭게 다룰 수 있고, 범용성 있게 활용할 수 있는 능력.

대표적으로 원소 계열 마법이 효과적이다.

"뭐가 좋으려나."

유현이 진지하게 고민하던 그때.

누군가 공용 훈련장의 문을 열었다.

"앗, 유현씨!"

쿠로가네 잇시키.

일본 팀의 선수가 무기를 들고 서 있었다.

유현은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통역기를 착용했다.

지난번 병원에서 언어로 곤욕을 치른 뒤로 통역기를 빌려 늘 소지하고 다녔다.

"아까도 계시던데 계속 훈련한 거예요?"

"응."

쿠로가네가 감탄했다.

"그렇게 강한데도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니. 정말 대단해요. 노력해서 강해졌으니 이런 수련도 일종의 습관이 되신 거겠죠?"

"몰라."

유현은 귀찮음이 역력한 투로 대꾸했지만, 쿠로가네는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 계속 대화를 시도했다.

"이번에 조 추첨 보셨나요? A조에 저희 팀 아이들도 몇 명 있어요. 다들 강하지만 아마 유현씨에게는 안 될 것 같아요."

"그런가."

"네! 정말 기대돼요. 이번에는 어떤 식으로 싸우실 건가요? 아, 이건 전략 노출이겠군요. 실언이었습니다."

쿠로가네가 예의바르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과장스러운 행동처럼 느껴져 유현은 부담감을 느꼈다.

"이만 가봐. 훈련 좀 하게."

"네!"

유현은 휴식을 멈추고 다시 주먹을 쥐었다.

회복 마법의 영향으로 쉬는 동안 주먹의 상처는 모두 회복되어 있었다.

쩡!

힘이 실린 주먹이 다시금 철판을 두드렸다.

쿠로가네는 그의 무식한 훈련에 입을 벌리며 감탄했다.

"와..."

구멍이라도 뚫을 기세로 반복되는 주먹질.

쿠로가네의 목울대가 꿀꺽였다.

원초적인 본능을 자극시키는 훈련이었다.

그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 혼자 고개를 끄덕이고는 구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깡!

갑자기 들려온 소음에 유현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반대편에서 쿠로가네가 훈련을 시작했다.

"...뭐야?"

쿠로가네가 무쇠 창으로 철판을 공격하고 있었다.

유현이 쓰고 구석에 쌓아둔 철판이었다.

유현은 잠시 그를 보다가 다시 자신의 훈련으로 돌아갔다.

머릿속으로는 아까의 고민을 이어갔다.

어떤 마법이 가장 효과적일지.

'중요한 건 눈에 띄어야 한다는 거야.'

경기장을 직접 찾아오는 이들보다 화면을 통해 경기를 구경하는 사람이 많을테니 우선해야 할 건 시각적인 효과였다.

'불? 물? 아니면, 소환술?'

소환술.

세상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시전자가 있는 곳으로 불러내는 마법.

거리와 크기에 따라 소모되는 마나가 달라지며, 해당 존재의 위치와 생김새를 알고 있어야 한다.

'소환할 만한 건 미르 밖에 없는데.'

크기야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성장을 가속하는 방법은 얼마든 있고, 정 안 되면 환각을 사용해도 된다.

염려되는 건 이전에도 걱정했던 미르를 향한 추문.

헌터가 되어 독립된 상태로 움직일 때면 몰라도 아카데미에 소속된 지금 미르를 드러내는 건 꺼려졌다.

"흠..."

유현은 잠시 훈련을 중단했다.

여전히 귓가로 들려오는 파찰음.

무척 빠른 호흡이었다.

유현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쪽으로 돌아갔다.

챙!

아까와는 달리 엄청난 속도의 찌르기.

철판에는 이미 구멍이 잔뜩 뚫려 있었다.

실로 경탄스러운 힘과 속도였다.

만약 맨몸으로 맞는다면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조심하라는 게 아니었군.'

이케가미의 말이 이제야 실감이 갔다.

검보다 긴 사거리를 가진 무기를 저렇게 다룰 수 있는 특성이라면 몇 번을 조심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역시 세계 대회라는 건가.'

유현이 다시 고민으로 돌아가려던 순간. 쿠로가네의 창이 쇳덩이에 빗맞으며 불똥이 튀었다.

그 순간, 유현의 뇌리가 번뜩였다.

'번개.'

무엇보다 화려하고 강력한 기술.

번개를 활용한 마법만큼 화려함과 강함을 충족하는 마법은 없었다.

불을 다루는 마법도 어느 정도 임팩트가 있긴 하지만, 번개에는 소리라는 매리트가 있다.

'아니, 잠깐. 이왕 이렇게 된 거….'

유현은 조금 무리가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범위를 넓혔다.

단순히 전격 계열의 마법뿐만이 아니라 다른 원소 마법들도 세상에 선보이면 어떨까.

원소를 다루는 하나의 특성으로 뭉뚱그려서.

'...해 볼만한데?'

그렇게 판단한 근거는 한 가지.

'내 신체 능력이 특성이 아니라는 사실에 진지하게 의문을 품는 사람은 없었어.'

그간 선보였던 능력에 사람들이 물음표를 보내지 않은 건 무식하기 때문이 아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라 그런 거야.'

다중 특성도 드물지만 존재하는 세상. 그 특성이 여러 가지 원소를 다루는 능력이라고 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경악하거나 큰 주목을 받기야 하겠지만, 이게 마법이라며 의심하는 이가 없을 건 분명하다.

'애초에 일반적인 상식 외의 범위이니 거기까지 생각하려고 하지도 않겠지.'

마법. 판타지 속에나 존재하는 단어. 사실상 모든 특성을 한 사람이 전부 다룬다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누군가는 마법을 선망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판타지일 뿐이라며 웃어 넘겼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인데도 말이지.'

그런 세상에서조차 마법은 우스꽝스러운 것.

유현의 원소 마법 역시 [원소]라는 특성으로 이해할 뿐, 다른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좋아, 이거다."

***

훈련을 마친 유현은 숙소로 가는 대신 병원으로 향했다.

어느새 동이 터오는 시각.

숙소로 가서 잠깐의 휴식을 취하는 대신, 대회 출전이 불가하게 된 한서희의 병문안이나 갈 생각이었다.

"안녕하세요."

삼엄한 경비원들을 지나 유현은 꼭대기 층의 VIP 병실로 들어갔다.

그녀의 곁을 지키고 있던 한상용이 그를 맞이해주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몇 시간 있으면 대회잖아."

"그냥 얼굴이나 보고 가려고요."

지난 며칠. 한서희의 사고 소식은 외부로 전혀 공표되지 않았다.

그녀가 대회에 참가하지 않은 이유는 개인 사정으로 인한 취소로 발표됐다.

"아직 아무 반응 없어."

한서희는 며칠째 혼수상태였다.

생명에 이상은 없지만, 좀처럼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

유현은 평온한 얼굴로 잠들어 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화장기도 생기도 없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외모였다.

그 모습이 며칠 전 그녀가 떠들던 모습과 겹쳐지며 문득 가슴 한편이 씁쓸해졌다.

아무리 낙관적으로 생각해 보려 해도, 이런 모습을 앞에 두고서는 슬픈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뭐하러 와서 그런 표정 짓고 있냐. 괜히 컨디션에 영향 가게."

한상용이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유현은 별다른 말은 하지 못한 채 그저 가만히 서서 한서희를 바라보았다.

만약 조금만 더 빨리 데려왔다면 어땠을까.

놈들을 쫓아가지 않고, 그녀부터 챙겼더라면 적어도 의식은 되찾지 않았을까.

아니, 애초에 한식을 먹자고 하지 않았다면….

수많은 만약 속에서 한없이 깊은 수면 아래로 가라 앉는 것 같았다.

답답하다.

뭐라도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빌어먹을.'

유현은 다소곳이 놓인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미약한 온기가 느껴졌다. 마법이라도 써주고 싶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쓸만한 마법은 없다.

그나마 활력 마법이 있으나 효과도 미미하고, 한상용의 바로 앞에서 사용했다가는 발각되리라.

"아직 직접 범행한 사람은 못 찾았어."

한상용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놈만 잡으면 서부 녀석들을 체포하는 건 일도 아닌데..."

사건 수사에 큰 진전은 없었다.

서부 팀의 방법이 워낙에 용의주도하여 물증을 찾지 못했다.

"고맙다."

한상용이 느닷없는 감사를 전했다.

"네가 없었으면 서희가 죽었을지도 몰라."

"......"

유현은 아무런 답도 할 수 없었다. 몇 차례의 진술을 통해, 놈들이 그런 일을 저지른 건 자신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으니까.

"너무 죄책감 가지지 마라. 네 잘못이 아니라 그놈들 잘못이니까. 그나마 네가 있어서 빨리 수습할 수 있었어."

유현 역시 그건 알고 있다.

하지만 알고 있다고 해서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사람이니까.

아무리 오랜 시간을 살아왔어도 감정은 여전하니까.

"이만 가봐라."

"......"

"네가 왔으니 서희도 곧 일어날 수 있을 거야."

그 말의 뜻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유현은 꾸벅 고개를 숙이고 병실을 나왔다.

"하아."

한숨을 쉬며 승강기에 올랐다.

엘리베이터의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스카이 아일랜드의 전경.

대회가 있을 경기장도 저 멀리 보였다.

"안톤."

유현은 그 이름을 곱씹으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 사건의 주범.

물증이 없어도 경기장 내에서 그를 패는 건 문제 없었다.

유현은 깊이 다짐했다.

그저 가볍게 패는 수준으로 끝내지는 않을 거라고.

***

아침부터 대회장은 인파로 붐볐다. 수많은 이들이 개막전을 보기 위해 자리를 차지했다.

"와, 사람들 진짜 많네요."

메이블이 가득찬 관중석을 두리번거렸다.

"첫 번째 개막전이 현이니까."

"인기가 많긴 많나 봐요."

"없을 수가 없지."

강한 헌터 지망생은 그리 새로운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특성을 사용하는 게 아닌, 단순한 육체의 힘만으로 싸우는 사람이라면?

게다가 그 전투 방식이 무척이나 다양하다면?

유현이 유달리 인기가 많은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꼭 전승했으면 좋겠어요."

"전부 이길 거다."

안칠성은 확신했다.

적어도 A조에서 유현에게 비등가는 존재는 없다는 것을.

-지금부터 글로벌 아카데미 경쟁 대회 개별 종목의 조별 리그를 시작하겠습니다.

개막식이 끝나고, 사회자의 말과 함께 두 사람이 경기장 안으로 들어왔다.

화려한 장비로 무장한 상대방과 달리 유현은 아카데미의 교복을 입은 단신이었다.

"옷부터 너무 차이 나는데?"

"한국이 돈이 없던 나라였나?"

"주최 측에서 주는 지원금은 어쩌고?"

많은 사람이 유현을 보며 웅성거렸다.

기세에서 밀렸다며 패배를 예상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헉, 실시간으로 승률이 줄어들고 있어요."

메이블이 스마트폰을 통해 승자 예측 투표의 진행 상황을 보여주었다.

"그렇구나."

"안 불안하세요?"

안칠성은 말없이 웃을 뿐이었다.

-때애애애앵!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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