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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33화 (133/219)

133

서늘하다.

온몸이 으스스하고 한기가 돌았다. 아래쪽에서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아...”

한서희는 숨을 헐떡였다.

살이 타들어 가는 듯한 격통.

무엇에 당한 건지, 왜 차가운 바닥에 쓰러져 있는 건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아파.‘

도와달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건 아찔한 고통 속에서 소리 없이 아우성치는 것뿐이었다.

“......”

어두운 하늘에는 별이 가득했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은하수.

흐릿한 시야 너머로 보이는 그 풍경이 왜인지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는, 죽으면 별이 되는 줄 알았는데.’

그래서 부모님이 보고 싶을 때면, 밤하늘을 올려다보고는 했다.

나도 이제 그렇게 되는 걸까.

이제는 그 말을 믿지 않는 나이가 되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죽음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은데.’

부모님의 이른 죽음으로 언제나 짊어진 게 많았던 삶. 하고 싶은 걸 참고, 또 참으며 살아왔다.

앞으로도 계속 그래야 했겠지만, 못내 아쉬웠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친구도 사귀어 보고, 즐겁게 놀러도 다녀 보고 싶었는데.

‘그래도 마지막은 조금 평범했을지도...’

좀 더 친해지고 싶었던 상대와의 외출. 비록 마음처럼 축제를 즐기지 못했고 오랜 시간을 돌아다니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같이 걷는 것만으로 마음이 가득 차는 느낌이었다.

‘......’

몸에서 무언가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심박수가 서서히 느려지는 것 같았다. 고통은 옅어지고, 시야는 점점 흐릿해졌다.

그런 와중에 머릿속으로는 함께 이곳에 왔던 유현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사람도 당했을까?

자신을 노린 기습이라면, 분명 강한 전력을 갖추고 왔을 터.

유현이라도 쉽게 당해내지는 못하지 않을까.

그가 다쳤을 거라고 생각하니 이 와중에도 마음이 아팠다.

‘제발 무사하기를.’

함께 있는 게 편했던 거의 유일한 존재가 부디 안녕하기를 바라는 것.

그것만이 차가운 바닥에 누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야!

눈앞에 누군가가 아른거리고, 무어라 소리치는 것 같았지만, 그게 누구인지, 뭐라고 이야기하는지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이내 한서희는 정신을 잃었다.

***

급하게 되돌아온 유현은 한서희의 상태를 살폈다.

희미한 가로등의 불빛처럼 생기가 없어 보이는 그녀의 낯빛.

바닥에는 피가 잔뜩이었고, 회색 가디건은 검게 물들어 있었다.

총알이 그녀의 가슴께에 적중한 것 같았다.

“정신 차려봐! 야!”

유현은 한서희의 감긴 눈을 억지로 벌리며 소리쳤다.

동공이 잠시 그에게 머물러 있다가 이내 위로 휙 넘어가 버렸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

유현은 한서희가 입고 있던 가디건을 벗기고 웃옷을 위로 올렸다.

그대로 드러난 상처 부위.

우측 가슴 아래쪽에서 피가 울컥이고 있었다.

“젠장.”

유현은 급한대로 입고 있던 옷을 찢어 그녀의 상처 부위를 지혈했다.

다른 상처라면 회복 마법을 사용해 지혈이라도 하겠지만, 총상은 이야기가 다르다.

장기가 손상되었으며, 내부에서 총알을 비롯한 이물질을 제거해야 했다. 의사의 수술이 필요하다.

“조금만 버텨라.”

유현은 그녀에게 마법을 사용했다.

[활력]

몸에 컨디션을 한층 좋아지게 만드는 마법.

비록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지만, 위태로운 생명을 조금이나마 붙잡아 놓을 수는 있었다.

유현은 한서희를 들어 안았다.

병원으로 데려가야 한다.

천운인지 아까 전 식당 책자를 보며 지도에서 병원을 봤었다.

‘뛰어가면 금방이야.’

거리가 꽤 되지만, 건물의 옥상을 타면 빠르게 도착할 것이다.

유현은 곧장 발을 튕겨 허공으로 도약했다.

***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한서희의 수술은 시작됐다.

보통이라면 좀 더 절차가 있었겠지만, 상태가 위급한 점, 유현이 영어를 못하는 점, 두 사람의 얼굴을 의료진도 알고 있던 점 등.

여러 이유로 절차를 무시한 수술이 가능했다.

“후.”

유현은 수술실 앞 대기석에 앉아 얼굴을 쓸었다.

일단 할 수 있는 건 전부 했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기를 바랄 뿐이다.

‘무사하겠지.’

만약 무사하지 않다면, 죄책감을 떨쳐낼 수 없을 것 같다.

오랜 시간, 수많은 죄를 짓고 살아왔어도 그 감정에서는 좀처럼 자유롭지 못했다.

‘서부 팀.’

왜 이런 짓을 한 걸까.

이유를 짐작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놈들과의 인연이라고 해봤자 슬럼가의 주점에서 만난 게 다였으니까.

아마 그곳에서 금발 녀석을 때린 게 자존심을 건드렸으리라.

“현아!”

그때, 연락을 받은 안칠성이 메이블과 함께 도착했다.

두 사람 모두 적잖은 충격을 받은 듯한 얼굴이었다.

“서, 서희는!?”

“수술실이요.”

“들어가야 해! 내가 도와줄 수 있어!”

급하게 뛰어오는 메이블을 향해 유현은 고개를 저었다.

“이물질을 제거해야 해. 출혈량도 많았고.”

“......”

일반적인 회복 마법과는 달리 내상까지 치료할 수 있는 신성 교회의 회복 마법조차도 빠져나간 혈액을 다시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그 부분은 의학의 영역.

마법으로도 어찌할 수 없었다.

‘메이블의 특성도 비슷하겠지.’

그의 예상이 맞는지 메이블은 침울한 얼굴로 주저앉았다.

“서희야...”

“잘 될 거다.”

안칠성이 메이블을 일으켜 의자에 앉혔다.

“어떻게 된 거냐?”

“서부 팀이 쐈어요.”

“...뭐?”

유현은 안칠성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안칠성의 분노를 느꼈다. 싸늘해진 눈빛에서 잔잔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확실하게 항의해야겠구나. 헌터가 될 자격이 없는 놈들이야.”

“증거가 없어요.”

“직접 그놈들을 쫓아갔다며? 네가 증언하면 돼.”

“말했잖아요. 직접 범행한 건 노숙자들이라고. 자기들 손을 쓰지 않았어요.”

안칠성이 침음했다.

유현의 말처럼 그들이 직접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신고해봤자였다.

“노숙자들을 증인이라고 해도 받아들이지 않을 테고. CCTV는?”

“몰라요. 그런 걸 언제 확인하고 있어요?”

“흐음...”

깊이 고민하는 안칠성에게 유현이 말했다.

“이 얘기는 나중에 해요. 한서희가 당했으니 걔랑 이야기하는 게 베스트에요.”

유현은 한서희의 휴대전화를 통해 그녀의 보호자에게도 연락을 취했다.

무척이나 담담한 반응이었지만, 되려 그 담담함에서 분노가 느껴졌다.

“한서희네 집안을 등에 업는 게 훨씬 유리하겠죠. 특히 미국 팀 상대로는.”

“......그것도 그렇구나.”

안칠성은 그 말을 인정하면서도 내심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거기까지 생각할 만큼 침착할 수 있을까?

가장 정신에 타격을 입어야 하는 사람임에도 유현은 무척 멀쩡해 보였다.

“너는 괜찮냐?”

“예?”

“어디 다쳐서 머리에 문제 생기고 그런 건 아니지?”

유현이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얼굴로 그를 응시했다.

“아니면 됐다.”

“이상한 말 할 거면 접수처 가서 서류나 좀 써주세요. 제가 영어를 못해서.”

유현은 언어가 통하지 않아 미뤄두었던 것들을 안칠성에게 맡겼다.

그 뒤로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수술실의 불이 꺼지고, 문이 열렸다.

***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한서희는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위기는 넘겼다는 게 의료진의 말이었다.

새벽 내내 응급실에서 머물렀던 세 사람은 아침이 되어서야 병원을 벗어났다.

그녀의 보호자는 소식을 받고 한달음에 달려온 한상용이 맡았다.

“너희는 바로 대회 준비 해라. 선생님은 볼 일이 생겨서.”

안칠성이 떠났다.

그가 어디로 가는지는 몰라도 무엇을 위해 움직이는지는 알 것 같았다.

“꼭 그놈들 전부 처벌됐으면 좋겠어.”

메이블은 주먹을 불끈 쥐며 비장하게 말했다.

유현 역시 그러기를 바랐지만, 생각처럼 될지는 모르겠다.

빠져나갈 방법이 너무나도 많았으니까.

“우린 대회에 집중하자.”

“...응. 나 미국 팀한테는 절대 안 질 거야.”

전의를 불태우는 메이블.

유현 역시 그녀와 같은 마음이었다.

‘녀석들도 대회에 나오겠지.’

그때 경고하긴 했지만, 누구도 알아듣지 못했다.

바짝 겁먹은 모습을 보이기는 했어도 그 정도로 대회를 포기할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잘 됐어.’

한 번의 주먹질로 끝내기에는 화가 풀리지 않았다.

더불어 단순한 폭력으로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평생이 갈 고통을 그들에게 심어주고 싶었다.

‘다신 헌터할 생각도 못하게 만들어야지.’

유현은 메이블과 함께 대회 측에서 마련한 훈련장으로 향했다.

밤을 지새웠지만, 강한 동기가 두 사람의 몸을 움직였다.

***

그날 저녁, 대결 종목의 조 추첨식이 이루어졌다.

조별 리그를 통해 본선 토너먼트에 진출하는 이들이 정해지는 구조였다.

안톤의 객실에 모인 서부 팀은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TV를 시청했다.

다들 여전히 어제 일의 여파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제발.”

누군가의 간곡한 애원.

그 주어는 없었지만, 무엇을 뜻하는지는 대부분이 알고 있었다.

“제발이라니? 누가 걸리든 상관없어.”

그 일에 가담하지 않은 몇 사람 만이 그 반응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더불어 지금의 분위기 역시.

“다들 대체 왜 이래?”

“자신감이 하나도 없군.”

“한국 팀이랑 한번 붙어보고 싶은데.”

아드리아나의 마지막 말에 몇몇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뭘 봐?”

그녀가 쏘아붙이자 다시 고개를 돌리는 이들. 안톤만이 그녀를 향해 잔소리했다.

“불길한 소리 하지마.”

“그게 왜 불길해?”

“그냥 닥치고 있으라고.”

아드리아나가 피식 웃었다.

“병신. 그때 처맞고 겁이라도 먹었나?”

“뭐?”

“그만해, 안톤. 아드리아나, 너도 그만.”

팀원의 만류에 분위기는 과열되기 전에 진정되었다.

“시작한다.”

조추첨은 완전히 랜덤이기에 한 팀 전체가 같은 국가로 이루어진 적도 있었다.

‘제발.’

안톤의 간절한 바람 속에 추첨이 시작되었다.

“...!”

유현의 이름은 가장 먼저 나왔다. 화면에 표시된 A조에 유현의 이름이 기재됐다.

“......”

이제 모두의 바람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바뀌었다.

제발 A조만은 되지 않기를.

위로 올라가며 언젠가는 만나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게 적어도 지금은 아니기를 바랐다.

아직 그에게 느꼈던 두려움이 그들의 마음에 여실히 남아있었다.

“와!”

“나이스.”

추첨이 이어지며, 환호하는 아이들이 늘었다.

운명의 장난처럼 대부분이 유현을 피해갔다.

아직 조가 정해지지 않은 건 안톤 한 사람.

안톤은 주먹을 꽉 쥔 채 모니터를 올려다보았다.

그 눈에는 간절함이 담겨있었다.

‘유현만 피하자, 유현만.’

사회자가 통에서 캡슐을 꺼내, 누군가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꺼냈다.

그 종이가 화면에 공개된 순간.

안톤은 절망감에 고개를 숙였다.

유현이 속한 A조의 마지막 인원은 안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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