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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은 중반까지 성공적이었다.
유현을 인적이 드문 곳으로 유인하는 데 성공했고, 부랑자들을 활용한 시선 끌기도 성공했다.
안톤과 그 일행은 은신 스크롤을 사용한 부랑자가 유현의 몸을 쑤시기만을 기다렸다.
그들 역시 은신 스크롤 사용자의 모습을 볼 수 없었기에, 유현의 반응을 살필 수밖에 없었다.
“뭐, 뭐야?”
처음 유현이 허공에서 무언가를 붙잡았을 때. 그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때까지도 설마 뒤를 노리던 부랑자가 붙잡혔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다음으로 그의 눈이 푸른빛으로 반짝였을 때. 그들은 당황했다.
일반적인 신체 마나 사용을 아득히 넘어서는 힘. 두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이윽고 그가 손목을 비틀었을 때. 은신이 풀리며 바닥에 뒹구는 부랑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것과 동시에 차내의 모두가 기함했다.
“어, 어떻게...”
안톤이 입을 벌리며 말을 더듬었다. 조금도 예상치 못했던 결과였다.
“저, 저게 말이 돼?”
“처, 처음부터 눈치챘어!”
차 안에 대기 중이던 다른 팀원들의 반응 역시 비슷했다.
다들 초조한 눈으로 안톤을 돌아보았다.
“안톤.”
“닥쳐.”
자신을 부르는 팀원을 향해 안톤은 욕설을 날렸다.
굳은 표정은 상황의 심각함을 알려 주었다.
‘실패할 리가 없는데.’
혹여 부랑자가 소음을 내거나 실수할 때를 대비하여 다른 부랑자들을 내보내 시선까지 끌었다.
실제로 부랑자는 유현의 바로 뒤까지 접근했으며, 공격 시도까지는 성공한 것 같았다.
‘그런데도 실패했다고?’
선행되는 모든 조건이 충족되었는데, 오직 결과만이 잘못되었다.
왜? 어째서?
수많은 이유가 그의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그중 하나 만이 가장 그럴듯한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은신을 느꼈다?’
아예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은신도 특성 중 하나.
사용하면 마나의 흐름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뛰어난 능력자라면, 달라진 흐름을 느끼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정신 없는 상황에서...’
부랑자들이 단체로 뛰어오면 누구라도 당황하기 마련.
설마 유현이 그 정도로 침착할 줄은 몰랐는데.
‘......말도 안 돼.’
경악하던 그의 어깨를 누군가 격하게 흔들었다.
“안톤!”
생각에 빠져 있던 안톤은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팀원들이 초조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놈이 이리로 오고 있어!”
안톤은 짙게 선팅된 전방의 차창을 바라보았다.
유현이 안광을 반짝이며 다가오고 있었다.
‘저 눈.’
일반적인 마나의 신체 기용보다 몇 배는 더 강력한 기운.
그 눈을 앞에 둔 안톤은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그가 생각만큼 쉬운 인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일까.
그의 접근만으로도 엄청난 긴장감이 느껴졌다.
‘내, 내가 지금 저딴 녀석한테….’
안톤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떨림을 멈춰보려고 했지만,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안톤! 어떡해!”
안톤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뚜벅뚜벅 다가오고 있는 유현. 금방이라도 뛰어와 차를 뒤집어 버릴 것 같았다.
“모, 목소리 낮춰, 병신아.”
안톤은 대안을 고민했다.
싸우거나, 도망치거나.
‘싸우는 건 위험 부담이 너무 커.’
유현에게 정체가 드러난다면 대회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미래에도 큰 문제가 생길 터. 피할 수 없는 싸움이 아니라면 하지 않는 게 현명하다.
‘총을 쏴?’
똑똑.
안톤이 고민하는 사이, 유현이 창문을 두드렸다. 그 소리가 마치 끝을 알리는 종소리 같았다.
안톤은 문이 덜컹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쏴.”
“뭐?”
“쏘라고.”
은신 스크롤을 이용한 작전이 실패할 경우 준비한 최후의 수단.
총격.
거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건물 몇 곳에 팀원 일부와 전문 저격수를 배치했다.
그곳에서 그들은 현장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진짜 쏘자고?”
“안 그러면 우리 다 들켜. 너 저 새끼랑 싸우면서 안 들킬 자신 있어? 저 새끼 아까 눈알 봤지? 그게 사람 눈이냐?”
“야, 너 설마 우리가 질 것 같아서 그래?”
팀원의 반박에 안톤은 한숨을 쉬었다.
“멍청아. 승패가 중요한 게 아니야. 싸움이 커지는 것 자체가 우리한테는 손해라고. 꼭 말을 해줘야 알아먹겠어?”
세계 최강의 헌터 국가 미국.
그런 만큼 그들은 강했고,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안톤의 말처럼 지금은 승패가 중요하지 않았다.
“씨발, 자존심 상하게.”
“우리가 빠르게 제압할 수 있는 게 아닌 이상 어쩔 수 없어.”
“그, 그럼 진짜 쏴야 하나?”
안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쏴야 했다.
그래야 지금 찾아온 위기를 넘어갈 수 있다.
“근데 누굴 쏘지?”
“...뭐?”
“저쪽은 두 명이잖아.”
팀원의 반문에 안톤은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다.
누구를 쏴야 하는지에 대한 반문. 생각해 보면, 꼭 타겟이 유현일 이유는 없었다.
“여자. 같이 온 여자를 쏴.”
그가 보여준 엄청난 속도는 자신조차 반응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총알까지 피하지는 못하겠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피하기라도 하면….’
그다음 상황은 상상하기도 싫었다. 유현과의 싸움에서 질 것 같지는 않지만, 이길 것 같지도 않았다.
조금 전 보았던 그의 안광.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섬찟한 느낌이 들었다.
‘차라리 여자를 노리는 게 나아.’
한서희의 특성은 불꽃.
총알을 방어할 수단은 전무하다.
압도적인 화력으로 순식간에 총알을 녹여버릴 수도 있지만, 솔직히 가능성이 희박하다.
‘이미 그 전에 몸에 총알이 박혀 있을 거야.’
한서희를 노리는 게 현재 상황으로서는 가장 이상적이었다.
유현의 신경이 그녀에게 쏠릴 테니 자리를 떠날 시간도 생기고, 나름대로 복수도 성공이었다.
“여자를 노려. 생명에 위협은 가지 않되 움직일 수는 없게.”
안톤이 무전기에 대고 속삭였다.
“가능하면 남자도 한 번 노려보고.”
무전이 끝난 직후.
차창 밖으로 총성이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전방의 창문 너머로 여자가 날아가듯 뒤로 넘어졌다.
***
총성이 들려온 순간.
유현은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
급히 손을 뻗어 한서희를 향해 방어 마법을 펼쳤지만, 총알이 그녀의 몸에 박히는 게 더 빨랐다.
부릉!
그때, 차에 시동이 걸렸다.
헤드 라이트가 켜지며 한순간 시야를 멀게 만들었다.
부아아앙!
엄청난 속도로 달아나는 차량.
유현은 고민하지 않고 곧장 발을 튕겼다.
“아, 안톤! 옆에!”
순식간에 차량을 따라잡은 유현.
그의 손이 가차 없이 차체의 문을 파고들었다.
“이런 미친!”
안톤은 당황스러웠다.
동료가 총에 맞았다면, 그쪽부터 신경쓰는 게 정상 아닌가?
생명에 이상이 없게 발포했다지만, 유현은 그걸 모른다.
당장 동료가 죽을지 살지 모르는 상황에서 추격을 선택한 것이다.
“총! 총 줘봐!”
휘청거리는 차량의 내부.
정신없는 와중에 총을 건네받은 안톤은 차 문을 뚫고 들어온 유현의 손을 향해 발포했다.
팅!
총알은 그대로 튕겨져 나왔다.
“끄아아아악!”
도탄이 옆에 있던 팀원에게 처박혔다.
안톤은 눈을 크게 뜬 채 유현의 손을 바라보았다.
“뭐, 뭐야.”
왜 총알이 튕겨져 나오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하지만 멍청히 구경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안톤! 문 뜯어지겠어!”
안톤은 그제야 문의 상태가 위태롭다는 걸 깨달았다.
안팎으로 마구 휘청이며 차가운 바람이 안으로 몰아쳤다.
“이런, 씨발! 힘이 얼마나 쌘 거야!”
안톤이 급히 운전석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야! 이 새끼 좀 떨어뜨려 봐!”
“하고 있어!”
운전자도 핸들을 이리저리 비틀며 유현을 떨어내기 위해 애썼다.
“저기! 저기 가로등에 저놈만 부딪치게 해!”
“잘못하면 뒤집혀!”
“씨발! 지금 다 뒤지게 생겼는데 뭐라도 해봐야 할 거 아니야!”
운전대를 잡은 이가 이를 악물며 핸들을 왼쪽으로 꺾었다.
가까워지는 가로등을 보며 안톤은 질끈 눈을 감았다.
깡!
엄청난 소음이 귀를 덮었다.
안톤이 다시 눈을 떴을 때, 차량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오, 하느님, 맙소사. 감사합니다.”
유현을 성공적으로 떨어뜨렸다고 생각한 안톤은 진심으로 안도하며 털썩 주저앉았다.
“아, 안톤...!”
“그래, 우리 살았어.”
“그, 그게 아니라...”
안톤이 불길함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유현이 있었다.
“뭐가 감사해?”
유현은 이죽거리며 안톤을 향해 다가갔다.
당장 차내에만 미국 팀의 인재들이 여럿 있었지만, 누구도 꼼짝하지 못했다.
유현이 뿜어내는 압도적인 기세.
숨을 쉬기가 힘들 정도의 살기가 차내에 몰아쳤다.
유현과 마주한 순간, 안톤의 머릿속에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오래된 과거, 게이트에서 뛰쳐나온 몬스터가 집을 습격했을 때 느꼈었던 죽음의 공포.
아까 전 손의 떨림은 본능의 경고였다.
거기서 그만두었어야 했는데.
“뭐가 감사하냐고.”
유현이 쭈그려 앉아 재차 물었다. 그의 두 눈에는 명확한 살의가 담겨 있었다. 안톤의 입술이 두려움에 파르르 떨려왔다.
“사, 사, 살려줘.”
애원하는 안톤을 보며 유현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누가 보면 내가 너 죽이려는 줄 알겠다.”
말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유현의 그런 미소가 오히려 더 안톤을 공포스럽게 만들었다.
유현은 겁에 질린 안톤에게 말했다.
“기권해.”
“뭐, 뭐라고?”
“대회 기권하고 집에 가라고. 이 일에 가담한 놈들 전부.”
유현이 뒤를 돌아보며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씩 눈에 새겼다.
“예선이든 본선이든, 만나서 뒤지게 맞고 싶으면 계속 참가하든가.”
“......”
유현은 안톤의 어깨를 손으로 쥐었다.
안톤이 흠칫 몸을 떨었다.
“알아들었지?”
유현이 아귀에 힘을 쥐며 어깨를 움켜쥐자 안톤이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아아악!”
“대답을 안 하네.”
유현은 안톤의 안면에 그대로 강타를 꽂아 넣었다.
비명이 사라지고, 안톤이 그대로 차 밖으로 던져졌다.
“너희는 알아들었어?”
안톤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은 유현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미가 물음표로 끝났기에 질문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으, 응!”
“당연하지!”
유현은 대답하는 아이들의 낯짝에도 주먹을 뻗었다.
무방비한 상태로 피하기에는 지나치게 빠른 주먹. 아이들은 모두 고통에 침을 질질 흘리며 쓰러졌다.
“예스 같은 소리 하네. 한국말도 모르면서.”
유현은 혀를 차고는 달리는 차 안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곧장 발을 튕겨 한서희를 향해 뛰어갔다.
그의 마음은 어느 때보다도 초조했다.
부디 자신의 선택이 실수가 아니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