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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31화 (13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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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드리우자 스카이 아일랜드의 풍경은 사뭇 달라졌다.

하나둘 사라진 빌딩의 불빛들.

그 사이로 화려한 네온사인이 번쩍였다. 덩달아 거리 곳곳에서는 다양한 음악들이 들려왔다.

점잖은 양복이 사라지고, 자유와 개성이 그 자리를 채운 스카이 아일랜드의 환락.

유현과 한서희는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로 스며들었다.

“와우.”

아침과는 전혀 다른 중심가의 풍경. 거리의 전경은 물론이고 사람들의 옷차림까지 상당히 자극적이었다.

“이 시기에는 항상 축제가 열려요. 크리스마스랑 세계 대회가 겹쳐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거든요.”

“평소에도 이런 건 아니지?”

“평소에는 유흥가나 시끄럽지 이렇게 도시 전체가 소란스럽지는 않아요.”

중심가의 도로는 차단되어 차들은 다니지 못했다.

대신 그 자리를 여러 가판이 차지했다. 테이블 위에 진열된 다양한 상품들.

두 사람은 가판으로 다가가 물건들을 구경했다.

“축제 동안은 사람들이 직접 만든 물건들을 팔아요. 대부분 겨울과 관련된 아이템들인데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어요.”

루돌프 장식, 산타 모자, 스노우 볼, 미니 트리 등.

유현은 심드렁한 얼굴로 가판을 살피더니 한서희를 돌아보았다.

“먹을 건 없나?”

“아이스크림 같은 건 팔아요.”

“그걸로 배를 채울 수는 없잖아. 밥 사줘. 네가 사준다며.”

“사람이 왜 이렇게 낭만이 없어요? 구경 좀 더 하고 가요.”

유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낭만이 밥 먹여 주냐? 나 배고파.”

“......알겠어요. 가요, 가.”

유현의 재촉에 한서희는 별수 없이 자리를 옮겼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여기까지 왔으니 좀 신선한 걸 먹어봐야지.”

“그럼 저건 어때요?”

유현이 한서희가 가리킨 간판을 쳐다보더니 표정이 굳었다.

“케밥은 좀.”

“신선하지 않아요?”

“저건 간식이지 식사가 아니잖아.”

그런가?

한서희가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때. 누군가 그녀의 앞을 지나가며 무언가를 떨어뜨렸다.

“저기...!”

상대를 부르려던 한서희는 곧 그가 떨어뜨린 게 무엇인지 확인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식당 안내 책자에요.”

“식당?”

한서희가 유현에게 책자를 넘겨주었다.

책자에는 중심가에 있는 식당들에 관한 정보가 상세하게 표시되었다.

“잘 됐네. 이거 보고 가면 되겠다.”

“엄청난 우연이네요.”

“그러게.”

유현은 책자를 떨어뜨린 이가 사라진 인파 너머를 바라보았다.

이미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왠지 모를 기시감이 들었다.

"어디로 갈까요?"

한서희의 목소리에 유현은 다시 시선을 돌렸다.

"구관이 명관이지. 든든하게 한식으로 가자."

두 사람은 책자를 보며 걸음을 옮겼다.

***

-떨어뜨렸어.

“지금 확인중이네. 다들 어디로 가는지 잘 봐둬.”

서부팀은 계속 두 사람을 추적하고 있었다.

책자를 떨어뜨린 것 역시 그들이 가진 계획의 일부였다.

“다음 블록에서 왼쪽으로 빠지면 5번 구역, 오른쪽으로 빠지면 6번, 직진하면 7번이야.”

스카이 아일랜드의 식당은 대부분 분류에 따라 모여 있다.

안톤이 구역별로 번호를 붙여 식당의 위치를 구분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예상 구역은 5번이야. 이 시간에 갈 만한 한식당은 거기 밖에 없어."

안톤은 꾸준히 무전을 통해 작전의 진행 상황을 알렸다.

그의 위치는 중심가와 슬럼가의 경계에 있는 도로 위 봉고차 안.

여러 대의 모니터 위로 거리에 배치된 팀원들의 시야가 출력되고 있었다.

-좌측으로 빠진다. 안톤, 네 말대로야.

스카이 아일랜드에는 다양한 국가의 음식들이 있지만, 대부분은 익숙한 음식을 찾는다.

안톤은 주변의 경험을 토대로 두 사람이 결국에는 고국의 음식을 찾을 거라고 판단했다.

‘넌 내 손바닥 안이다, 유현.’

책자는 스카이 아일랜드에서 공식적으로 발행한 책자가 아닌, 직접 제작한 책자였다.

안톤은 작전의 성공을 위해 기존 지도에 있던 페이지를 복사하고, 식당 별 위치를 표시하는 등의 수고를 들였다.

굳이 그런 번거로운 일을 한 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계속 쫓아가.”

안톤은 타이밍을 노렸다.

누구도 모르게 유현을 향해 복수할 수 있는 타이밍.

책자를 만들고 그의 앞에 떨어 뜨린 것도 그래서였다.

‘사람이 적은 장소.’

사람이 많을 때는 기습이 용이하지만 퇴로가 없어 그만큼 잡히기도 쉽다.

반대로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에서는 도망치기는 쉽다.

기습의 성공률이 낮아진다는 단점이 있으나 은신 스크롤이 있으니 성공은 필연적이었다.

'가장 적절한 장소는 바로 이곳, 슬럼가.'

정확히는 슬럼가와 중심가의 경계. 모든 한식당이 이곳에 있는 건 아니지만, 24시간을 운영하는 한식당들은 대부분 이곳에 모여 있었다.

'이 시간에 한식을 먹으려면 여기 밖에 없지.'

왜 24시간을 운영하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5번 구역은 슬럼가와 인접했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통행이 적기 때문이다.

'뭔들 어때. 기습에는 딱인데.'

슬럼가와 마찬가지로 이곳에 치안은 좋지 않다.

CCTV 사이의 거리도 멀고, 가로등도 고장나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들이 많았다.

유현을 노리는 건 한식당으로 향하는 길목. 가로등의 불빛이 약하며, CCTV가 멀리 떨어진 구간이다.

-거의 다 와간다.

무전을 통해 다른 팀원의 연락이 도착했다.

안톤이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다들 준비해."

***

한식당 상가는 으슥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축제의 열기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거리의 풍경. 어둡고, 음침하며, 무서우리만치 고요했다.

간혹 가다 누더기를 입은 부랑자들이 지나다니는 것 외에는 행인도 없었다.

"여긴 왜 이렇게 사람이 없어?"

"슬럼가 근처잖아요. 시간도 많이 늦었고."

두 사람은 어두운 거리를 걸었다. 가로등이 있었지만, 중간중간 불이 꺼지거나 빛이 약한 게 섞여 있어 어둠을 완전히 몰아내지 못했다.

"뭔가 으슥하네."

유현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기이하게 느껴질 정도의 고요함이었다. 꼭 폭풍이 불기 전의 밤과 같달까.

"저기 보여요."

모퉁이를 돌자 불켜진 상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외딴 섬의 등대처럼 혼자 고고히 빛을 내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장사하면 장사가 잘 되나?"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니 장사는 되겠죠. 잘 되지는 않겠지만."

가게를 향해 걷던 유현은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지나온 거리는 여전히 어두웠고 쥐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왜 그래요?"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느낌이요?"

그때였다.

"으아아아아아아!"

불이 꺼진 건물들에서 사람들이 동시에 뛰쳐나왔다.

그들은 비명을 지르며 유현과 한서희를 향해 달려들었다.

"...!"

당황한 한서희와 달리 유현은 침착하게 반응했다.

"뒤로 와 있어."

그의 눈동자에 어리는 푸른 빛 이채. 어둡던 시야가 마법의 힘을 빌어 환해졌다.

'노숙자?'

뛰어오는 건 헤진 옷을 입은 부랑자들이었다.

유현은 그들의 방향이 정확하게 자신들을 향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냥 스쳐지나갈 것 같은데.'

건물에서 무언가 나타난 걸까?

스카이 아일랜드라고 하여 게이트 등장에 예외는 없었다.

하지만 별 다른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걸 보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럼 대체...'

그 의문은 곧 해소되었다.

뒤통수로 느껴지는 서늘한 기운.

유현이 황급히 뒤를 돌아 전방으로 손을 뻗었다.

턱!

곧 무언가가 그의 손에 붙잡혔다. 그런 와중에도 부랑자들은 두 사람을 지나쳐 뛰어가고 있었다.

"뭐, 뭐에요?!"

한서희는 허공에서 무언가를 붙잡은 듯한 유현의 손동작에 당황하여 물었다.

"은신이야. 집중하면 느껴져."

그 말에 한서희는 마나를 끌어올려 감각을 최대로 높였다.

유현의 말대로 바로 앞에 강한 마나 반응이 느껴졌다.

"이게 무슨..."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무언가 있었다.

"너 뭐냐?"

유현의 두 눈덩이에는 이전보다 더 강한 기운이 일렁였다.

그의 시야는 어둠을 넘어 특성의 힘을 꿰뚫었다.

"이렇게 시선 끌면 내가 당할 줄 알았어?"

"이런 씨발!"

이를 악문 채 구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부랑자의 모습이 보였다.

유현은 그대로 손목을 비틀어 부랑자가 들고 있던 칼을 떨어뜨렸다.

챙!

은신 대상의 몸에서 벗어난 물체는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어 있다.

난데 없이 등장한 날붙이에 한서희가 흠칫했다.

그러나 놀란 것도 잠시, 그녀를 더 당황하게 한 건 유현의 눈이었다.

'누, 눈이...'

마나를 신체에 활용하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다.

하지만 거기에도 한계가 있는 법. 유현처럼 사용하는 건 지금껏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마치 어둠 속에서 마주한 짐승의 인광과 같은 눈동자. 평범한 헌터, 아니, 뛰어난 헌터더라도 쉽게 따라할 수 없는 기술이다.

"누구야? 누가 시켰어?"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대상으로 강한 살기를 내뿜는 유현.

날이 서린 목소리에 한서희는 저도 모르게 긴장을 삼켰다.

"놔! 놓으라고!"

"이런, 샹. 뭐라는 거야?"

한서희는 침착하게 허공에서 들려온 목소리를 통역했다.

"놓으래요."

"놓아달라고? 그래, 놓아 줄게."

유현은 남자의 손목을 그대로 부러뜨렸다.

곧 비명과 함께 바닥을 구르는 남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

한서희가 당황하여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녀는 이내 침착하게 물었다.

"이, 이게 뭐에요?"

"말했잖아. 은신이라고. 이 사람 능력은 아니고, 아마 스크롤을 빌린 것 같은데."

"이 사람이 저희를 왜..."

"당연히 누가 시켰겠지."

한서희의 눈동자에 물음표가 나타났다.

"누가 이런 짓을 해요?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우리가 아니라, 나야. 그리고 누가 했는지는 이제부터 찾아봐야지."

유현은 비명을 지르는 남자를 뒤로하고, 거리로 눈을 돌렸다.

대낮처럼 밝아진 시야.

도로변에 주차된 차량의 썬팅을 뚫고, 그 안까지 환하게 보였다.

운전석에 앉은 상대와 눈이 마주친 유현은 말없이 그쪽으로 향했다.

"어디가요?"

한서희의 말도 무시한 채 차량에 도달한 유현.

푸른빛 안광이 서서히 약해지더니 이내 처음의 이채로 돌아왔다.

똑똑.

유현은 창문을 두드렸다.

내부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이번에는 문을 열었다.

잠겨 있어 덜컹거릴 뿐이었다.

마지막으로는 주먹을 쥐었다.

그대로 창문을 깨려던 그때.

탕ㅡ!

총성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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