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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선수권은 두 가지 종목으로 구분되며, 세 개의 우승 트로피가 존재한다.
첫 번째 종목, 결투.
최강자전처럼 토너먼트 형식으로 서로의 힘을 겨루는 종목이다.
개인전이지만, 점수는 국가 합산으로 들어가기에 같은 국가는 상대로 배정되지 않는다.
두 번째 종목, 게이트.
인공적으로 제작된 게이트를 돌파하는 종목으로, 클리어 시간으로 순위를 정한다.
“각 종목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차지한 선수가 개인 우승을 차지한다.”
“그럼 국가 대항전이 아니잖아요.”
"게이트는 단체전이야. 그리고 종합 우승도 있어. 종합 우승은 개인이 아닌 국가별로 계산한다.”
종합 우승은 해당 국가 참가자들의 총합 포인트를 기준으로 한다.
“그럼 무조건 티켓 많은 쪽이 유리하겠네요?”
“꼭 그렇지만도 않아. 종목별로 우승자에게는 엄청난 포인트가 주어지거든. 2등을 백 명쯤 합친 점수지.”
참가자 숫자와 관계없이 우승하는 참가자의 국가가 종합 우승에도 가까워진다.
“만약 개별 종목을 놓치면, 약소국 같은 경우에는 역전이 쉽지 않아. 게이트 종목은 숫자가 많은 쪽이 유리하니까.”
첫 일정은 기자회견이었다.
회견이 시작되기 전 짧은 대기 시간. 유현은 안칠성에게 대회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흐음. 그럼 우리나라는 개별 종목은 무조건 우승해야겠군요."
“가능하다면 그게 가장 이상적이지. 근데 너 내가 준 건 정말 하나도 안 읽었냐?”
대회에 관한 정보는 기본 중의 기본. 선수라면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 정보다.
그래서 안칠성은 스카이 아일랜드에 도착하기 며칠 전부터 관련된 자료를 모두 넘겨주었다.
그것만 읽었어도 기본적인 것들은 알았을 텐데...
“읽으려고 했는데 못 읽었어요.”
“결국에는 안 읽었다는 소리잖냐.”
유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가족이 된 미르가 그 자료들을 모두 씹어 삼켜서 읽을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은 죽어도 말할 수 없었다.
‘얌전히 잘 있어야 할 텐데.’
미르는 급한 대로 김풀잎에게 맡겨두고 왔다.
“한국팀, 인터뷰 들어갈게요.”
다른 국가와 함께하는 공동 기자회견. 한국 팀 네 사람은 인솔자를 따라 회장으로 나갔다.
챠라락!
곧장 들려오는 셔터음.
마치 연예인의 기자회견처럼 연신 플래시가 터졌다.
“저쪽은 일본팀이다.”
안칠성이 유현을 향해 속삭였다.
반대쪽 입구로 다른 참가자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일본팀.’
이케가미에게 몇 번인가 이야기를 들었다.
아마 일본팀에 자신이 아는 놈들도 참여할 거라고.
‘가장 조심해야 할 놈은….’
검은색 머리칼에 인상이 순해 보이는 녀석이라고 했지.
워낙에 평범하여 독특한 다른 아이들 사이에서 눈에 띌 거라고 했다.
‘저놈이군.’
하나 같이 알록달록한 색으로 머리를 물들인 아이들. 헤어 스타일도 독특했다.
거기서 평범한 아이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유현은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는 이국인을 바라보았다.
이케가미의 말처럼 정말 평범함 그 자체였다.
이목구비가 뚜렷하나 머리가 조금 덥수룩하여 중성적인 느낌이 들었다.
‘왠지 어디서 많이 본 느낌인데….’
곰곰이 생각하던 유현은 언젠가 읽었던 몇 편의 만화를 떠올렸다.
검은색 머리를 가졌고, 나름 잘 생겼지만, 전체적으로 평범한 느낌이었던 주인공들. 눈앞의 소녀는 딱 그런 스타일이었다.
“반갑습니다.”
서로의 언어는 달랐지만, 귀에 착용한 동시통역기 덕분에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저는 일본 사쿠라 아카데미의 쿠로가네 잇시키라고 합니다. 유현님 맞으시죠?”
쿠로가네 잇시키.
이케가미가 말한 이름도 분명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다.
“예, 제가 유현입니다.”
소년의 얼굴로 화사한 미소가 번졌다. 봄날의 햇살같은 웃음에 유현은 흠칫했다.
“한 번 만나 보고 싶었어요. 최강자전의 전투도 몇 번이나 챙겨봤는지. 정말 멋있었습니다.
특히 톤파라는 무기를 다룰 때는 진심으로 감탄했다니까요? 가능하면 한 수 부탁드리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
“아, 저는 쿠로가네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쿠로가네는 기자들을 앞에 둔 것도 잊은 채 속사포같이 말을 쏟아냈다.
만난 지 1분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유현은 그에게 질리고 말았다.
‘이런 놈을 조심하라고?’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과 칭찬 세례. 외모는 평범했으나 성격은 친절하기 그지없었다.
조심하라고 하길래 성격도 개차반일 줄 알았는데.
“쿠로가네. 앉아라.”
“아, 네! 선생님!”
일본 측 인솔 교사가 쿠로가네를 데려갔다.
쿠로가네는 자리에 앉아서도 유현에게 계속 웃어 보이거나 손을 흔들었다.
“저 사람이 너 많이 좋아하나 봐.”
“말이 많긴 하더라.”
오죽하면 통역 속도가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으니 원.
“한 번 손이라도 흔들어 주는 건 어때? 계속 쳐다보는데?”
“한 번 해주면 더한다.”
“진짜 좋아하는 것 같다. 저 정도면 사랑 아니야?”
그 말에 유현의 머릿속에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설마 조심하라는 소리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뜻이었나?
유현의 등골이 서늘해지는 사이, 기자회견이 시작되었다.
“모여주신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동아시아 세 국가의 공동 기자회견을 시작하겠습니다.”
좌석 구분은 총 세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한국팀이 가장 우측, 일본팀이 중앙, 그리고 중국팀이 일본팀의 좌측이었다.
“중국 팀도 있었구나.”
“중국 팀에서는 저기 쟤가 제일 강하대. 머리 뒤로 묶은 애.”
메이블이 가리킨 건 포니테일을 한 사람이었다.
머리가 길고 상당히 중성적인 외형이었지만, 어깨가 딱 벌어져 있어 남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 참고로 여자분이셔.”
메이블의 설명에 유현이 입을 벌렸다.
“저게 여자라고? 어깨가 나보다 넓은 것 같은데?”
“응. 나도 영상으로 처음 봤을 때는 남자분인 줄 알았는데 아니셨어.”
확실히 가슴께가 튀어나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때, 유현의 시선을 의식한 건지 상대가 팔짱을 끼며 가슴을 가렸다.
유현의 눈동자가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마주친 시선.
무서우리만치 차가운 눈동자에서 엄청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확실히 세계급은 수준이 다른 건가.’
한국의 아카데미에서는 느껴본 적 없는 포스. 중국 팀의 여인에게서 위압적인 포스가 느껴졌다.
“첫 번째 질문은 한국 팀에게 하겠습니다.”
모여 있던 기자들이 한 사람씩 질문을 시작했다.
“최근에 가장 화제가 된 한국 팀인데요. 우승도 노려볼 만한 전력이라는 평가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처음부터 분란이 생길지 모르는 질문이었다.
마이크를 들고 있던 안칠성은 혀를 차고는 입을 열었다.
“한국 팀도 강하지만,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팀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안칠성은 짧고 간결하게 답했다.
싸움에 불씨를 놓을 내용은 없었다.
“혹시 다른 팀들은 한국 팀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이어지는 질문에 먼저 마이크를 든 건 중국 팀의 인솔 교사였다.
“작년과 같습니다. 그들이 강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중국 팀을 이기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감히 소국이 대국에 대항해서 되겠습니까?”
순간 장내에 정적이 찾아왔다.
도발을 넘어서 상대를 멸시하는 발언. 이윽고 셔터음이 폭발했다.
‘저 개자식이...’
안칠성은 주먹을 꽉 쥐었다.
자신은 분란을 피하고자 최대한 조심스럽게 말했는데, 그 배려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언행이었다.
“황금 세대니 뭐니 하지만, 중국은 이미 황금의 원석이 가득한 광산입니다. 한국 팀은 논의할 가치조차 없어요.”
수위 높은 발언이 이어졌다.
중국 팀의 인솔 교사 왕쓰총은 안경을 올리며 얍삽한 눈동자로 한국 팀을 훑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주먹만 부르르 떠는 안칠성을 보니 자연스레 조소가 흘러나왔다.
“일본 팀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중국 팀과 같은 의견입니까?”
기자의 말에 일본의 인솔 교사가 마이크를 들었다.
“아닙니다. 저희는 한국 팀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봅니다. 이번에 가장 경계하는 곳이기도 하고요.”
중국 팀과는 반대되는 의견.
그 말은 곧 중국 팀을 낮추는 발언이기도 했다.
“오호, 우리를 한국보다 아래로 보는군요?”
마이크를 들고 곧장 반박하는 왕쓰총.
“그쪽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 것뿐입니다.”
“그게 그거 아닙니까? 이래서 소국들은….”
“뭐요? 누가 소국입니까!”
목소리를 높이는 각국의 인솔 교사를 보며 안칠성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희미한 한숨이 입술을 비집고 빠져나왔다.
‘결국, 우려하던 상황이 터졌군.’
단체 기자회견은 언제나 이런 부분에서 조심해야 하거늘.
미리 질문을 예상하고, 논란이 없을 발언을 고민하며 기자회견을 준비한 시간이 무의미해졌다.
“진정들 좀 하시죠.”
그때,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칠성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앞에 놓여 있었던 마이크가 어느새 유현의 손에 들려 있었다.
“학생은 빠져. 어디서 감히 마이크를 들어?”
왕쓰총이 유현을 향해 쏘아붙였다.
마이크가 주어진 건 각국의 인솔 교사들뿐. 학생은 기자에게 질문을 받기 전에 마이크를 손에 들지 못했다.
“닥쳐.”
한순간 고요해진 회장.
뜬금없는 욕설에 다들 얼어붙은 것처럼 굳었다.
“뭐, 뭐?”
“닥치라고. 이건 통역 안 되나?”
“이, 이런 정신 나간 자식이!”
분개하는 왕쓰총을 향해 유현은 조소를 흘렸다.
“이런 자리에서 할 말이 있고, 못할 말이 있지. 대국? 소국? 도발이랑 무례한 건 엄연히 다르니까 구분 좀 합시다. 예?”
왕쓰총은 말문이 막혔다.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채 얼굴만 붉혔다.
“다시 진행하시죠.”
유현이 기자들에게 손짓했다.
기자들은 당황한 것도 잠시 다시 질문을 시작했다.
조금 과열된 분위기였지만, 다행히 큰 문제 없이 기자회견이 마무리되었다.
왕쓰총 역시 더 이상의 무례한 발언은 하지 않았다.
“그럼 세 팀의 성취를 기원하겠습니다.”
진행자가 공식적으로 기자회견을 종료했다.
회견이 종료되고, 팀들은 무대를 벗어나 뒤로 나갔다.
“이봐! 너!”
밖으로 나온 유현에게 왕쓰총이 직진했다.
다른 이들이 말렸지만, 그는 멈추지 않고 유현을 멈춰 세웠다.
“뭡니까?”
“이런 버릇 없는 자식이…. 어디서 그렇게 함부로 끼어들어!?”
“안 끼어들게 말을 잘하시던지.”
“하! 이래서 영토가 좆만한 나라들은... 거기 선생! 학생 관리좀 똑바로 해!”
왕쓰총이 뒤쪽에 멈춰있던 안칠성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안칠성은 한숨을 쉬며 유현과 왕쓰총 사이를 갈라섰다.
“예, 죄송합니다. 그만 고정하시죠.”
“흥! 보나 마나 하위권에서 놀게 뻔한데 사람들이 띄워주니까 콧대만 높아져서는. 다음부터는 안 봐줄 테니 조심해.”
왕쓰총은 유현에게 경고하고는 중국 팀으로 돌아갔다.
“와, 진짜 나쁜 사람이다.”
“너무 수준 낮네요.”
메이블과 한서희가 한 마디씩 내뱉었다. 안칠성이 유현의 어깨를 토닥였다.
“너무 열 내지 마라. 결과로 보여주면 되니까.”
“뭐 하러 열을 내요.”
저런 수준 낮은 언사에 진지하게 화낼 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어차피 실력을 겨루는 대회.
안칠성의 말처럼 결과로 보여주는 게 최고의 복수였다.
“먼저 가고 있을 테니, 천천히 따라와.”
안칠성이 앞장서고, 다른 두 사람도 저들끼리 떠들며 그 뒤를 따라갔다.
유현은 맨 뒤에서 혼자 걸었다.
“거기, 얘.”
그런 그에게 웬 낯선 소녀가 다가왔다.
일본 팀의 좌석에 앉아 있던 학생 중 하나였다.
“너 진짜 최고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해? 그 사람 예전에도 몇 번 그래서 구설수에 올랐거든. 근데도 계속 인솔 담당으로 나오는 걸 보면 참 신기해.”
소녀는 유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난 타치바나야. 너희 아카데미에 이케가미라고 있지? 예전에 걔랑 좀 친했어.”
이케가미의 친구에 관해서도 몇 번 들었다. 하지만 이름 같은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다들 끝이 안 좋다고 했는데.’
사건이 사건이었던 만큼, 좋지 않았던 마무리. 이케가미 역시 친구들이 싫다고 했었다.
그런데 그런 것 치고, 소녀는 너무 스스럼없이 그의 이름을 거론했다.
“그 새끼 아직도 쓰레기 짓하고 다녀?”
“...뭐?”
“저번에 최강자전 보니까 반성도 안 하는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타치바나는 곧장 이케가미의 험담을 시작했다.
“걔가 왜 거기 갔는지는 알지? 그 새끼 범죄자야.”
유현은 한숨을 쉬었다.
당사자가 이겨냈다고 한들, 그 흔적은 여전히 남아있구나.
“꺼져.”
“뭐, 뭐라고?”
“개소리하지 말고 꺼지라고. 대체 걔가 반성을 왜 해? 자기가 한 일도 아닌데.”
“와, 그걸 쉴드 쳐? 너도 똑같은 놈이구나? 쯧. 잘생겨서 좀 다를 줄 알았는데.”
타치바나는 그대로 몸을 돌려 반대편 복도로 사라졌다.
“이놈이고 저 년이고 왜 이렇게 정상이 없어?”
일본 팀이나, 중국 팀이나.
학생이냐 선생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나사가 빠진 놈들 천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