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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27화 (127/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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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던 주점은 순식간에 깽판이 되었다.

유현은 부랑자들의 모든 공격을 피하며 그들을 때려눕혔다.

총알도, 몽둥이도, 날아오던 테이블과 의자까지도.

부랑자들의 공격은 무엇 하나 유현의 몸에 닿지 못했다.

“이제 내 차례냐?”

유현은 바닥에 널브러진 가구들로 그들을 두드려 팼다.

공격이 적중할 때마다 테이블이 반으로 갈라지고, 의자의 상체와 하체가 분리됐다.

“헉, 헉.”

“도, 도망쳐...”

기절하지 않은 부랑자들만이 하나씩 부러진 몸을 이끌고 주점을 나갈 수 있었다.

걷지 못하는 놈들은 유현이 직접 바깥에 내던졌다.

“......”

내부에서 생긴 소동에 잠시 밖에 있던 한서희는 바깥에 나온 유현과 눈이 마주쳤다.

쓰레기를 버리는 것 마냥 부랑자를 처리하는 그를 보며 복합적인 감정이 느껴졌다.

“설마 시체...”

“안 죽였어.”

“다행이네요. 이제 들어가도 되죠?”

“진즉에 와서 좀 보태지.”

“총 맞는 건 싫어서요. 당신은 맞아도 아무렇지 않을 거 아니에요.”

“나도 맞으면 아파.”

“전 죽어요.”

그 말에 유현은 수긍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헌터라고 해봤자 신체 강화형 헌터가 아닌 이상 결국에는 인간의 몸뚱이. 총에는 공평하게 한 방이었다.

“와.”

가게로 들어온 한서희는 난장판이 된 내부의 모습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설마 이렇게까지 난리를 피웠을 줄은 몰랐는데.

“이거 미안해서 어쩌죠? 혹시 부순 게 있다면 보상할게요.”

한서희는 곧장 점원에게 다가갔다. 점원이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괜찮아요! 저분이 없었다면 다 죽었을 거예요.”

“그래도 이건 너무….”

“정말 괜찮아요. 어차피 가게 접으려고 했으니까요.”

그 말에 반응한 건 앞에 앉아있던 남자였다.

“아까는 아버지 가게라고 떠날 수 없다며?”

“안 떠나면 이젠 정말 죽을 것 같아서요. 아까 그 사람들 봤죠? 다음에는 당신이 아니라 날 죽이려 들 거에요.”

“그럼 앞으로 어떻게 살려고?”

남자가 은근슬쩍 기대감을 담아 점원에게 물었다.

“새로운 일자리를 알아봐야죠.”

“어디서?”

“...미국에서 펍을 차리려면 어디가 괜찮죠?”

남자와는 달리 여자의 국적은 미국이 아니었다.

그런 그녀가 미국에 가서 일한다는 말은 곧 길고 길었던 프로포즈의 승낙이나 다름없었다.

“하하하! 드디어 받아들이는군!”

점원은 얼굴을 붉히며 헛기침했다.

“쉿. 손님들이 계시잖아요.”

“그게 뭐 어때서? 이봐. 지금 이 사람이 내 프로포즈를 받아들였다네.”

한서희가 느닷없는 전개에 당황하던 것도 잠시 침착하게 축하의 말을 건넸다.

“축하드려요.”

“내 한턱 쏘지! 거기 청년! 자네도 이리 와서 앉아!”

마지막 부랑자를 거리에 버리고 온 유현은 손을 탁탁 털며 한서희에게 다가갔다.

“저 아저씨가 뭐라는 거야?”

“술을 사주겠대.”

“넌 빠져라. 나 혼자 마실게.”

한서희가 태연하게 자리에 앉으려던 유현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권유는 감사하지만 저희가 아직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서요.”

“엉? 허허. 이거 아쉽게 됐군. 멜라니, 음료수는 없나?”

“저번에 당신이 사두라고 했던 콜라는 남아 있어요.”

멜라니가 냉장고에서 콜라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오, 정말 사두었군! 내가 이래서 당신이 좋다니까! 지나가듯 말해도 내 말이라면 다 해주잖아~!”

“......목소리를 낮춰요. 부끄럽게시리.”

“하하! 알겠어, 알겠어.”

남자는 두 사람에게 콜라를 들이밀며 재차 합석을 권했다.

이번에는 한서희도 유현을 막지 못했다.

“멜라니. 불 좀 켜줘. 오늘이 마지막이니 전기도 화끈하게 써버리자고.”

남자의 말에 멜라니가 전등을 켰다. 노란 전구에 불이 들어오며 어둑하던 실내가 환해졌다.

“자네들 술도 못 마실….”

콜라를 개봉하려던 남자는 모자를 벗은 유현의 얼굴을 보고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유, 유현?”

“아... 맞아요...”

한서희는 남자의 말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없으니 인정해도 상관없겠지.

“그럼 이쪽은...”

한서희가 모자와 마스크를 벗었다. 드러난 외모에 멜라니가 옅게 감탄했다.

“허허. 이거 경쟁자를 이런 곳에서 보게 될 줄이야.”

“...경쟁자요? 그럼 설마.”

남자가 활짝 웃으며 품속에서 명함을 꺼냈다.

“미국 서부 아카데미의 교사 제임스라고 하네. 미국 서부 팀의 인솔을 맡았지.”

미국의 아카데미는 크게 두 곳으로 구분된다.

동부와 서부.

남부는 동부에, 북부는 중부와 함께 서부에 합쳐져 있다.

어느 곳이 더 강한지는 미국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두 곳 모두 세계 최강의 반열에 오른 곳들이었으니까.

“......미국 아카데미의 교사셨군요.”

“서부. 구분은 확실히 해주게. 나야 괜찮지만, 지역 주민이나 학생들에게는 예민한 문제라서 말이야.”

“아, 네.”

제임스는 콜라를 열어 두 사람의 컵에 따라주었다.

탄산이 터지며 달콤한 소리를 냈다.

“한 잔씩 들게. 내 마누라가 쏘는 거야.”

멜리나는 이제 지쳤는지 태클도 걸지 않았다.

한서희는 약간의 미소를 지으며 콜라를 마셨다.

건강을 해치는 맛이 목구멍을 달콤하게 축였다.

“굉장히 터프하신 분이네요. 이런 곳에서 프로포즈를 다 하시고.”

“첫눈에 반한 상대를 처음 만난 장소이니 이상할 것도 없지.”

제임스는 잔을 비우고는 유현을 돌아보았다.

“저 친구는 영어 못하나?”

“아쉽게도요.”

“정말 아쉽군. 할 말이 많은데.”

“제가 통역은 해드릴 수 있어요.”

제임스의 눈썹 한쪽이 위로 올라갔다.

“그럼 좀 부탁해도 되나?”

“말씀만 하세요.”

“도와줘서 고맙다고 전해주게. 덕분에 살았어. 나는 능력도 없고, 주먹질도 못 하거든.”

한서희는 유현에게 그 말을 전했다. 유현은 콜라가 든 잔을 그를 향해 흔들었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행동은 통하는 법이었다.

“그나저나 여기까지는 무슨 일인가? 학생들이 올 만한 곳은 아닌데.”

“사람을 피해서 왔어요.”

“하기야. 자네들 같은 경우에는 맨얼굴로 돌아다니면 인파 때문에 움직이지도 못하겠군.”

미국은 스카이 아일랜드와 연결된 VIP 포탈이 있었다.

그 포탈 덕분에 미국 팀은 관제소의 으슥한 곳을 통해 스카이 아일랜드로 들어올 수 있었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제임스가 품속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들여다보았다.

“누가 오기로 했나요?”

“우리 학생들. 이쪽 구경이나 시켜주려고 모이라고 했지. 오해하지는 마. 미리 잡아둔 약속이니까.”

제임스가 그들을 일부러 부른 건 아니라며 어필했다.

한국 팀인 걸 알아보고 불렀다면, 그 의도가 그리 좋지 않게 비춰질 거라는 걸 의식한 해명이었다.

“자네들 선생은 어디 있나? 이런 곳에 학생들을 덜렁 오게 만들고.”

“아, 맞다.”

한서희가 휴대전화를 꺼내 안칠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만 흐를 뿐, 수신은 되지 않았다.

“안 받네요.”

“그러고 보니 다른 한 명도 안 보이는군. 한국 팀은 세 명이라고 들었는데.”

“아, 그게….”

한서희가 포탈 관제소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이야기를 들은 제임스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보나 마나 선생도 뒤늦게 왔다가 거기에 휘말렸겠군!”

“그런가 봐요.”

“그럼 좀 더 여기 있어. 우리 애들이랑 인사나 좀 하라고. 거기에 저 친구 팬도 있거든.”

제임스가 유현을 턱짓했다.

유현은 스마트폰 게임에 정신 없이 몰두하고 있었다.

가게에는 딱히 구경할 구석이 없었고, 제임스와는 말이 통하지 않으니 흥미가 떨어졌다.

“뭐야. 여기 왜 문이 부서져 있어?”

그때, 부서진 문을 통해 사람들이 들어왔다.

제임스가 무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리들 와!”

주점 안으로 우르르 몰려오는 교복 차림의 학생들.

제임스가 담당한 미국 서부 아카데미의 참가자들이었다.

“뭔데 여기까지 불러요? 완전 변두린데.”

“거리에서 냄새나는 것 같아.”

“네 머저리 같은 폭탄 머리보다는 더 스타일리쉬한데?”

“싸우지마, 등신들아.”

티격태격하는 아이들을 보며 제임스가 씩 웃었다.

“싸움은 나중에 하고 인사부터 하라고. 이쪽은 한국 팀 참가자들.”

한국 팀이라는 말에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한서희는 뒤통수에 닿는 따가운 감각에 어색하게 몸을 돌렸다.

“안녕하세요.”

호기심, 호승심, 적의 등.

다양한 감정이 담긴 눈빛들이 그녀를 향했다.

“불꽃 여자야!”

“혹시 이 가게도 불태울 수 있어?”

“아드리아나. 너 쟤랑 한 번 싸워봐.”

“뭘 싸워. 보나 마나 아드가 이길 텐데.”

저마다 감탄하는 학생들 사이로 도발적인 한 마디가 들려왔다.

한서희의 미간이 저도 모르게 일그러졌다.

“어어, 기분 나쁜가 봐.”

“안톤, 빨리 사과해.”

“내가 왜? 틀린 말 아니잖아. 너희 설마 아드가 질 거 라고 생각하냐?”

그 말에 호응하는 사람은 없었다. 순간 열은 받았지만, 굳이 표출하지는 않았다.

무시당했다면 증명하면 될 일.

일일이 반응할 필요 없었다.

‘아드리아나.’

한서희는 오랜 시간에 걸쳐 선수권 참가자들의 전투 영상을 하나하나 분석했다.

특히 미국을 비롯한 강팀들의 영상은 몇 번을 반복해서 돌려보며 심혈을 기울였다.

아드리아나는 자신과 같은 화염계 특성 보유자.

만약 싸우게 된다면 상성을 떠나 순수한 실력으로 모든 게 결정될 것이다.

“그렇게 자기 위안하는 것도 나쁘지 않죠.”

다리를 꼰 채 콜라를 한 모금 들이키는 한서희. 아드리아나도 강하지만, 한서희는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그녀의 여유로운 도발에 미국 팀 사이에서 높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꺄하하하하!”

엄청난 고음.

높다 못해 광기가 느껴지는 웃음소리였다.

작게 실소하는 아이들 사이를 뚫고, 한 여자가 걸어 나왔다.

“날 이겨? 네가?”

웃음소리만큼이나 범상치 않은 외형의 소유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얗게 빛바랜 머리와 창백한 피부. 눈 밑의 다크서클 탓에 왜소한 체형이 더욱더 부각되었다.

아드리아나의 사백안이 한서희의 눈을 응시했다.

한서희는 가소롭다는 눈으로 그녀를 마주보았다.

“어허, 왜들 그러나. 이러다 싸움 나겠어?”

제임스가 두 사람 사이를 제지했다. 아드리아나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더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미안해. 이러려고 부른 게 아닌데.”

사과하는 제임스에게 한서희는 연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괜찮다는 뜻을 전했다.

“근데 이놈은 누구야?”

학생들의 관심은 이제 옆에 있던 이에게 돌아갔다.

몸도 돌리지 않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줄곧 게임만 하는 정체불명의 남자. 자신들에게는 하등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한국 팀에 누가 있었더라?”

“여자 둘에 남자 하나였던 것 같은데.”

“남잔데?”

“어, 그럼...”

“헉! 설마!”

그게 유현이라는 걸 깨달은 학생들의 반응은 단연 폭발적이었다.

“유!”

“진짜 유야!”

“이봐! 여기 좀 돌아봐봐!”

유현을 부르짖는 수많은 목소리.

그의 눈빛은 작은 화면에 쏠려 게임에 여념이 없었다.

“지금 우릴 무시하는 건가?”

“그까짓 대회에서 우승한 걸로?”

“야! 누가 좀 건드려봐!”

제일 앞에 있던 금발 머리 안톤이 유현의 어깨를 흔들었다.

“어이!”

그 탓에 유현의 컨트롤이 미세하게 벗어났다.

곧 화면 위로 캐릭터가 죽었다는 표시가 나타났다.

“아, 씨바! 거의 다 깼는데!”

유현이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오, 맙소사. 저 아름다운 모습 좀 봐.”

“화면이랑 똑같이 생겼어!”

“유! 나랑 싸우자!”

유현이 잔뜩 흥분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다가 주변을 둘러싼 수많은 외국인을 발견하고는 한서희를 돌아보았다.

“당신의 팬도 있고, 싸우자는 사람도 있네요.”

“얘네가 누군데?”

“......대체 언제부터 집중을 안 한 거예요? 미국 서부 팀이에요. 세계적인 강팀 중 하나죠.”

강팀이라는 말에 유현의 눈에 총기가 어렸다.

줄곧 다른 나라의 학생들은 얼마나 강한지 궁금했었다.

그렇다고 찾아보지는 않았기에, 이렇게 만난 건 둘도 없는 기회였다.

“당장 한 판 붙자고 전해. 특히 얘. 이 오줌 색깔 머리. 이 새끼 때문에 죽었으니까 얘부터 시작이야.”

“......”

한서희는 한숨을 쉬며 그 뜻을 전했다.

“오우우어어어어어!”

“화끈한데!”

“얼마나 자신감이 넘치는 거야?!”

미국 팀이 크게 리액션 했다.

과열된 분위기.

제임스가 학생들을 진정시켰다.

“싸우는 건 나중으로 미뤄둬. 아무리 여기가 슬럼이라지만, 스카이 아일랜드에서 소동은 허락할 수 없어.”

“에이, 선생님 재미없어~”

“미리 말이라도 맞춰둔 거야? 우리가 싸움 걸면 선생님이 말리라고?”

“하하! 변방의 겁쟁이들이 그렇지 뭐!”

한서희는 그 도발에 가볍게 웃었다. 유치한 도발에는 마찬가지로 유치한 방법이 최고의 응수였다.

“당신들은 두렵지 않아요? 올해는 우리가 우승할 텐데.”

“뭐?! 이게 미쳤나!”

“엿이나 처먹어! 개년아!”

똑같은 도발이었지만, 반응은 과격했다.

한국팀의 이미지는 딱 그 수준이었다. 도발할 정도는 되지만, 도발을 듣고 싶지는 않은 수준.

“쟤네 지금 욕하는 거야?”

많은 단어 중 욕만을 알아들은 유현이 한서희에게 물었다.

“우리 보고 변방의 겁쟁이들이래요. 그래서 한 마디 해줬더니 저래요.”

“오호...”

유현이 한서희의 앞으로 나섰다.

그의 게임을 방해했던 안톤이 유현과 시선을 마주했다.

유현 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파란색 눈동자. 안톤은 고개를 치켜들어 더욱 높은 곳에서 유현을 깔보았다.

“흥, 키도 좆만하구만.”

“......”

“이 새끼는 말을 못 하나?”

“......”

유현이 계속 침묵을 유지하자, 안톤이 그를 향해 찍 하고 침을 뱉었다.

“...어머.”

한서희가 당황하여 입을 가렸다.

유현의 볼에 붙은 가래침은 그대로 흘러내려 바닥에 툭하고 떨어졌다.

“하하! 이 새끼 진짜 말을 못….”

쾅!

안톤의 머리가 땅에 처박히는 건 순식간이었다.

“에이, 씨, 더럽게 침을 뱉어.”

유현이 볼을 닦아내고는 바닥을 뚫고 들어간 안톤의 머리에 손을 쓱 문질렀다.

“......”

누구도 반응하지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 다들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잊은 채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무던히 애썼다.

“뭐, 뭐야?”

“어떻게 갑자기...”

그때, 유현의 스마트폰이 진동을 토해냈다.

안칠성에게서 온 전화였다.

태연하게 전화를 받은 유현은 한서희에게 고갯짓했다.

“가자.”

“아, 네.”

아무렇지도 않게 주점을 빠져나가는 유현.

한서희는 벙찐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다가 후다닥 자리를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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