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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26화 (126/219)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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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흘러 연말이 되었다.

아카데미 세계 선수권도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유현을 포함한 참가자 세 명은 인솔을 맡은 안칠성과 함께 미리 스카이 아일랜드에 도착했다.

“여긴 언제봐도 신기하네.”

유현은 포탈을 나와 관제소를 돌아보았다.

각 국가와 연결된 포탈을 통해 끊임없이 배출되고, 들어가는 사람들.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었지만, 여전히 진귀한 광경이었다.

“촌놈이네요.”

먼저 포탈을 통과한 한서희가 유현에게 다가왔다.

유현이 시선을 보내자 입을 가리며 살짝 웃는다.

“농담이에요.”

“진심 같았는데.”

“독심술이라도 쓰는 건가요?”

한서희가 과장스럽게 놀라며 미심쩍은 눈빛을 보냈다.

그조차도 장난일 게 뻔했기에 유현은 그냥 시선을 돌렸다.

‘애가 왜 이렇게 기분이 좋아 보이지.’

며칠 전부터 텐션이 높아진 한서희. 그 이유가 대강 짐작이 갔다.

‘서혜빈이 사과라도 한 모양이군.’

아직 교실에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이전처럼 서로를 향해 으르렁대는 일은 없어졌다.

‘잘 됐어.’

그간 들려오던 두 사람의 티격거림은 상당히 거슬리던 소음이었다.

이제는 그게 없으니 교실에서도 마음 놓고 잘 수 있었다.

“와, 사람 진짜 많다.”

세 번째로 포탈을 통과한 메이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대회가 며칠 안 남았으니 슬슬 모이는 것 같아요. 기자들이나 관계자들이요.”

“정말?!”

메이블이 기대감 어린 눈으로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유현도 그녀를 따라 다른 이들을 쭉 훑었다.

다양한 국가에서 오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교복을 입은 이들이었다.

‘누가 참가자려나.’

모든 아카데미에는 공통 적으로 교복을 착용해야 하는 규칙이 있다. 이는 교복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국가에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군복처럼 소속감을 느끼게 하여 정신의 해이해짐을 막기 위해서였다. 헌터도 결국에는 방위를 수호하는 산업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 규칙에 불만을 가지는 이들은 없었다.

“어! 한국팀이다!”

그때, 지나가던 누군가가 큰소리로 외쳤다.

유일하게 그 소리에 반응한 건 한서희였다.

한국팀은 본래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던 그룹.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황금 세대라는 말이 외국 언론에서도 사용되며 그 힘을 인정받은 지금, 한국 팀을 향한 관심도는 해외의 강팀에 못지않았다.

“자리를 옮기죠.”

한서희는 재빨리 유현의 팔짱을 끼고 그가 쓰고 있던 모자를 더 깊게 눌렀다.

“한국 팀? 어디?”

“저쪽! 저 사람 메이블이잖아!”

“방금 유현도 있었던 것 같은데?”

워낙에 사람이 붐볐고, 한서희의 대처가 빨랐던 덕에 유현과 한서희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전에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어, 어, 어... 왜 이러세요!”

그러나 혼자 남은 메이블은 수많은 관심에 시달려야 했다.

***

스카이 아일랜드는 각각 구역에 따라 용도가 달라진다.

시험의 탑을 비롯한 훈련 및 교육 시설이 존재하는 곳은 동쪽 구역.

연구소나 국제 연합군이 모인 곳은 남쪽의 넓은 구역.

북쪽에는 여러 기업의 본사가 모여 있고, 서쪽은 아직 개발 중이었다.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은 중앙 구역이에요.”

둥근 원형으로 만들어져 각 구역과 끝을 맞대고 있는 형태.

높은 아파트들이 잔뜩 늘어선 거주 구역과 다양한 문화공간이 존재하는 번화가로 구분되었다.

포탈 관제소 역시 이동에 편이하도록 중앙 구역에 만들어졌다.

“그건 둘째치고, 그래서 우리 지금 어디 가는 건데?”

“사람들 없는 곳으로요.”

“그냥 모자 눌러 쓰고 다니면 안 되나?”

“당신은 지금 당신 생각보다 더 유명해요. 지금도 못 봤어요? 여기까지 오면서 자꾸 사람들이 돌아보는 거.”

유현도 시선을 느끼긴 했다.

모자를 눌러 썼는데도 그 정도니 벗는 순간 모든 사람이 알아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헌터는 세계의 존망과 직결되는 직업이에요. 요즘처럼 헌터의 접근성이 높아진 시대에는 헌터 유망주라도 웬만해서는 알아본다고요.”

“그럼 넌 왜 못 알아봐? 내가 더 유명해서 그런가?”

“저는 마스크도 썼잖아요…!”

검은 마스크와 검은 모자.

옷차림 역시 교복 위에 검은색 롱코트를 걸쳐 누군지 알아보기 어려웠다.

“근데 우리 계속 가도 되는 거야? 선생님도 도착하실 텐데.”

“조금 있다가 연락드리면 돼요.”

“메이블은?”

“아.”

한서희가 우뚝 걸음을 멈췄다.

뒤를 걷던 행인이 유현의 등에 부딪히더니 옆으로 지나가며 욕을 지껄였다.

유현은 태연하게 상대의 등을 향해 중지를 뻗었다.

“어, 어떡하죠? 벌써 사람들한테 둘러싸였을 텐데….”

“운명에 맡겨야지. 다시 돌아갈 수도 없잖아.”

유현은 다시 걸었다.

팔이 엉켜있던지라 한서희도 뒤딸려 왔다.

그녀 역시 메이블을 구하고 싶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다시 가봤자 같이 둘러싸이겠지.’

유현의 말대로 운명에 맡기는 수밖에.

“여긴 하나 같이 다 높네.”

“땅이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북쪽 구역과 마찬가지로 마천루가 즐비한 중심가.

멋은 있지만, 금세 질리는 멋이었다.

“좀 조용하고 느낌 있는 곳은 없나?”

“조금만 더 가면 돼요.”

가면 갈수록 줄어드는 사람의 숫자. 어느 순간부터는 거리의 풍경이 바뀌었다.

365일 24시간 내내 거리에 사람이 있는 중심가였지만, 유독 인적이 드문 장소가 있었다.

“여긴 가장 빨리 개발된 곳이에요.”

스카이 아일랜드가 처음 공중에 떠올랐을 때.

수많은 사람이 추락을 우려하며 이주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국제 연합 기구는 이주자의 본래 국적과 관계없이 스카이 아일랜드의 영주권을 부여하는 특단의 대책을 세웠다.

그 결과, 수많은 난민이 이곳으로 몰려왔고, 그들이 처음 터전을 잡은 곳이 바로 이곳, 슬럼가였다.

“역설적이게도 가장 빨리 사람들이 모여서 더 발전을 못 했죠.”

사람들이 가장 기피하는 곳이었지만, 유현에게는 이쪽이 오히려 더 편안하고 정겨웠다.

“뭔가 뒷골목 같은 느낌이네.”

깨끗하던 중심가와는 달리 거리에는 쓰레기가 널려 있었다.

인도와 도로의 상태 역시 좋지 않았고, 그나마 이용하는 차들도 공사 차량뿐이었다.

“빈민가라고 봐도 무방해요.”

거리에는 부랑자들이 많았다.

마약을 한 건지 하나 같이 초췌한 몰골이었다.

고작 몇 분 걸었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차이가 크다니.

경악스러운 빈부격차였다.

“저기 있네요. 한적하고 조용해 보이는 장소.”

한서희가 가리킨 건 다 무너져가는 건물 1층에 있는 가게였다.

창문에는 까만 먼지가 잔뜩이었고, 간판에도 먼지가 끼어 어떤 가게인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뭐 하는 곳인데?”

“몰라요. 들어가 보고 있을 곳이 아니라면 나가죠.”

“저기가 무슨 조직들 아지트면 어쩌려고.”

그 말에 한서희가 웃었다.

“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대책 없는 행동 같았지만, 기저에는 근거가 깔려 있었다.

제아무리 슬럼가의 놈들이라고 해도 목숨 아까운 줄은 아는 법.

무장했다고 한들 헌터 유망주에게 함부로 달려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가봐요. 사실 예전에 여길 차 타고 지나가면서 한 번쯤은 이런 건물에 들어가 보고 싶었거든요.”

한서희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그 걸음마저 조금 경쾌하게 느껴졌다.

‘나도 좀 궁금하네.’

판대륙의 주점과 차이가 있을까?

한서희의 종용과 사적인 호기심이 유현의 걸음을 이끌었다.

***

어두운 촛불이 유일한 불빛인 장소. 먼지에 가려진 창문은 장식으로 전락한 지 오래였다.

“올해도 빛이 밝았군.”

허름하고 낡아 빠진 것들이 가득 한 공간. 남자는 깨끗한지 더러운지 모를 유리잔을 목 뒤로 기울였다.

“크으.”

강한 알코올이 목구멍을 따갑게 했다. 무너지는 건물에 어울리는 맛이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며칠 안 남았네요.”

“그래. 별들의 싸움이지.”

“싸움이고 뭐고, 이런 곳에 오는 건 이제 그만하지 그래요?”

점원이 남자를 향해 타이르듯 말했다.

슬럼가의 술집은 남자가 입은 옷처럼 점잖은 이들이 오는 곳이 아니다.

도둑질이나 구걸로 한 푼 얻은 부랑자들이 미래와 꿈을 축이기 위해 찾아오는 장소일 뿐이었다.

“오호. 이런 곳도 손님을 가려서 받나?”

“당신은 이곳과 어울리지 않아요. 시비 걸려서 죽을지도 모른다고요.”

그 말에 남자가 호탕하게 웃었다.

“하핫! 아카데미 선생의 목숨을 걱정하는 주점 점원이라. 재밌는데.”

“당신은 능력이 없잖아요. 나도 그 정도는 안다고요.”

남자는 빙긋 웃더니 품속에서 꺼낸 시가를 입에 물었다.

점원은 자연스레 라이터를 켜 불을 붙여 주었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지?”

“아카데미 교사라는 걸 밝힌 날부터요. 이 근방 사람들은 다 알 걸요?”

“그렇군.”

담뱃잎이 붉은 기운 속에 타들어 갔다. 매캐한 연기가 입안을 빠져나왔다.

“그럼 같이 가주지 그래? 더 찾아올 일 없게.”

“안 돼요. 여긴 아버지가 남기고 간 곳이라서.”

“벌써 열두 번째야. 이미 신기록 갱신이라고.”

“흑철 반지를 가져오면 생각해볼게요.”

“그건 내 봉급으로 조금 벅찬데.”

점원이 피식 웃었다.

“그걸 알았으니 이제 나도 고민할 필요가 없네요.”

“꽤 돈을 밝히는 여자였군?”

“술집에서 일하는 사람이 다 그렇죠, 뭐.”

남자는 시가를 다시 한 모금 빨고 연기를 내뿜었다.

“이제야 좀 편하게 웃는데.”

“...전 늘 이렇게 웃었는데요?”

“내가 능력은 없지만, 꽤 예민해서 말이야.”

남자가 여자를 향해 상체를 기울이고는 조용히 속삭였다.

“구석에 숨어든 쥐새끼 몇 마리는 금세 눈치채지.”

여자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남자는 품속에서 수첩과 볼펜을 꺼내 말 대신 필담을 적었다.

-웃을 때는 평소처럼 오른쪽 눈을 더 찡긋거리라고. 몇 명이야?

여자의 목울대가 크게 울렸다.

그녀는 글을 보며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펜을 쥐었다.

-총 열 명이에요. 몇 명은 총을 가지고 있어요.

열 명.

메모를 읽은 남자는 쯧 하고 혀를 찼다.

“좆됐군. 난 주먹질에도 재주가 없는데.”

남자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조용한 주점 내로 울려 퍼졌다.

모두가 알아듣는 언어였기에, 숨어있던 부랑자들은 점원이 털어놓았다는 걸 깨달았다.

“에이 씨발련! 내가 이래서 그냥 죽이고 빼앗쟀잖아!”

“닥치고 잡아!”

“무기부터 뺏어야 해!”

사방에서 부랑자들이 무기를 들고 튀어나왔다.

주점의 문이 활짝 열리며 빛이 들어온 것도 그때였다.

“여! 헬로우!”

당차게 들어온 유현은 주점 안을 쓱 훑었다.

진하게 풍기는 술 냄새.

외형만큼이나 허름한 내부.

그가 생각하던 판대륙의 주점과는 조금 다르지만, 낡아 빠진 느낌은 비슷했다.

“뭐야 씨발! 문 안 잠갔어!?”

“아까 너한테 시켰잖아!”

유현은 부랑자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뭐야?”

누군가의 손에는 각목이, 누군가의 손에는 총이 들려져 있다.

그들의 용태를 본 유현은 단순한 손님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오, 거기 신사. 누군진 모르겠지만, 나 좀 도와주겠나?”

남자의 목소리에 유현은 그쪽을 돌아보았다.

뒤로 넘긴 갈색 머리와 깔끔하게 정리된 덥수룩한 수염, 거기에 코에 걸친 무테안경까지.

이런 가게와는 거리가 먼, 무척 점잖은 차림의 서양인이었다.

“유 헬프?”

“영어를 못하는 모양이군. 그래. 나 좀 도와줘.”

그나마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는 그것뿐.

하지만 의도는 확실하게 전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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