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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룡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제법 긴 고민이 될 것 같았다.
그 때문에 유현은 일단 등교했다.
“어제 아주 한바탕 난리를 피웠더라?”
아이들은 아침부터 유현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유현과 김풀잎의 활약은 뉴스로도 보도되었다.
동물 탈출이 흔한 일이 아닌 만큼, 많은 사람에게 두 사람의 활약이 각인되었다.
특히 유현의 이미지는 더 긍정적으로 굳어졌다.
“어제 인터넷 보는데 무슨 아이돌인 줄 알았다. 니 댓글 안봤제?”
유현은 사실상 김풀잎의 운송 수단이었지만, 그가 기존에 쌓았던 이미지 덕에 사람들에게 김풀잎 보다 많은 관심을 받았다.
[유현, 대한민국의 미래]
[현대판 히어로의 등장?]
고작 하루 만에 그를 향한 기사들이 쏟아졌다. 내용은 대부분 비슷했고, 마무리도 그랬다. 너의 활약은 훌륭했고, 지금처럼만 커달라는 내용이었다.
“다들 비행기 태우는 솜씨가 대단한데.”
한주석이 보여준 화면을 들여다본 유현은 짧게 소감을 말했다.
기사 속에 묘사된 자신의 모습은 단순히 헌터가 될 아카데미의 학생이 아니었다.
국가의 미래를 이끌어 갈 인재였으며,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사람이었고, 국가적인 재난을 해결할 영웅이었다.
“이러다 종교 같은 것도 생기는 거 아이가?”
“설마.”
유현은 김풀잎을 돌아보았다.
밤샘 작업에 지친 건지 책상에 엎드려 규칙적인 호흡을 내뱉는 초록 머리.
진짜 소프트 라이트를 받아야 할 사람은 저기 있었다.
자신은 그저 이득을 위해 김풀잎을 도와 움직였을 뿐,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영웅적인 행위를 한 게 아니었다.
“너 근데 쟤랑은 어떻게 알아? 평소에 한마디도 안 하는데.”
유현의 시선을 읽은 서혜빈이 그에게 물었다.
김풀잎. 워낙에 조용하고 잠을 많이 자서 그녀와 이야기해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 사람과 유현이 함께 움직이다니.
“그냥 우연히 만났는데.”
“우연히?”
유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서혜빈은 김이 확 빠졌다.
좀 더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상상했었는데. 예를 들어, 서로 형제나 먼 친척 같은 가족관계라든가.
“......”
눈에 띄게 실망하는 서혜빈의 태도에 유현은 데자뷰를 느꼈다.
“나중에 쟤랑 친구 해. 말 잘 통할걸?”
“쟤랑?”
유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망상하는 꼴을 보니 친해지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할 것 같았다.
***
헌터 협회에서는 주기적으로 5대 길드를 모아 회의를 개최한다.
기업의 수장을 모아두고, 산업의 미래를 논하거나 전달사항을 전하는 자리였다.
“내년도 세제 혜택은 전년과 동결입니다.”
자리에 참여한 건 각 길드의 수장. 그리고 협회장 최칠기였다.
대한민국의 정부기관인 헌터 협회. 최칠기의 입에서 나온 말은 곧 국가가 정한 사안이었다.
“작년도 동결, 재작년도 동결. 얼어 죽으라는 거야?”
소나무의 마스터 한상용의 말에 맞은편에 앉은 서동철이 입을 열었다.
“혜택이 줄어들지 않은 것에 감사해라.”
“뭐냐 넌. 누구 편이야?”
“유치하게 편 가르기는. 나는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할 뿐이다. 이 정도 세제 혜택은 다른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어.”
업계의 발전을 이유로 길드에 더 많은 수익을 안겨주기 위해 협회 측에서는 동결을 결정했다.
“미국은 작년 대비 0.5% 상승. 다른 유럽 국가들도 그와 비슷합니다.”
“...크흠. 그냥 해본 소리에요.”
한상용은 헛기침하며 입을 다물었다.
최칠기는 빙긋 웃으며 테이블에 모여 앉은 길드 마스터들을 돌아보았다.
“협회에서 발표한 내용은 이게 전부입니다. 건의 사항이나 토론 사항 있으신 분?”
이내 장내에 침묵이 찾아왔다.
잠시 기다리던 최칠기가 다시 말했다.
“없으시면 공식적인 회의는 여기서 종료하겠습니다.”
그 말에 한 여자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그... 유망주 보호 관련 법안은 언제쯤 신설될까요…?”
길드 단델리온의 마스터 한송이.
그녀의 소심한 물음에 최칠기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아직 국회에서 체류 중입니다. 관련 발표가 이루어지는 대로 공문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앗, 감사합니다.”
최칠기가 다시 다른 이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입을 다문 채, 하품하거나 지루한 얼굴로 앉은 이들.
최칠기는 거기서 회의를 끝냈다.
“금년도 회의는 여기서 종료하겠습니다.”
“흐아~”
지루한 회의가 끝나자 길드장들은 기지개를 켜거나 책상 위에 엎드리며 해방감을 표현했다.
다들 협회의 일 처리 방식에 큰 불만은 없었다.
협회에는 헌터처럼 직접 일선에서 뛰는 이들도 있고, 과거에 그랬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에 그들이 펼치는 정책은 업계 사람들에게 거의 호평을 들었다.
물론 간혹 헌터들에게 불리한 일이 생기기도 했지만, 다들 웬만하면 이해하고 넘어갔다.
“협회장님~ 티타임 가시죠~”
한결 누그러진 분위기.
붉은 장미의 길드 마스터 채지수가 미리 챙겨온 보온병을 꺼냈다.
각각 마스터들의 앞에 놓이는 고급스러운 찻잔과 티스푼.
회의가 끝났지만, 누구 하나 자리를 떠나는 이는 없었다.
“협회장님은 이번에도 홍차?”
“부탁하네.”
채지수가 각 사람들의 기호에 맞게 찻잔에 찻잎을 띄웠다.
다들 익숙한 일인 듯 티스푼으로 잎을 진하게 풀었다.
“다들 어제 뉴스 보셨어요?”
채지수가 차를 홀짝이며 화두를 던졌다. 언제나 회의가 끝나면 이런 식으로 사담이 이어졌다.
“빌런 습격 사건 말인가?”
“네, 그거요. 아카데미 학생 둘이서 해결했던데요?”
“유현 군과 김풀잎 양이었지.”
유현의 이름이 나오자 사뭇 분위기가 달라졌다.
채지수가 입을 가리며 호호 웃었다.
“다들 그 친구가 끌리긴 하나 봐~”
“누구나 탐낼 인재지.”
“그 친구는 아무 데도 갈 생각이 없는 것 같던데. 정환이는 그 친구 어떻게 생각해?”
박정환은 갑자기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마시려던 찻잔을 다시 내려놓았다.
“저여?”
“네, 우리 동생이요~”
“저는 갑자기 왜 걸고 넘어 져여?”
“어머~ 말하는 싸가지 좀 봐~ 왜기는? 너도 길드 제의 마다하고 창단했으니 그러지.”
박정환은 아카데미 재학 당시 꽤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5대 길드의 제의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건 직접 길드를 창단하는 것.
뛰어난 능력과 그보다 더 뛰어난 두뇌를 활용하여 그는 고작 몇 년 사이에 5대 길드라는 자리까지 올라섰다.
비록 다른 길드에 비해 한참 못 미치는 5위지만, 누구도 그런 점을 들어 그의 능력을 저평가하지 않았다.
“글쎄여. 그 친구도 누구 밑에 있기 싫으면 길드 만들겠져.”
“그러려면 우리 정환이처럼 돈이 많아야겠네?”
박정환은 엄청난 투자 수완 덕에 아카데미를 졸업하기도 전부터 막대한 부를 창출했다.
그의 길드 애니동이 눈부신 속도로 성장한 것도 그 돈의 영향이 컸다.
“걔도 돈 많을 것 같은데.”
“포션 팔아서?”
“요, 요새 중하위권에서는 다들 그 포션만 쓰는 것 같아요...”
길드 아망의 이름으로 출시된 포션 브랜드 유마망.
꾸준히 출시 제품이 늘고 있으며, 준수한 성능과 적절한 가격으로 수많은 길드의 호응을 얻고 있다.
“쓸 만하지. 가격은 싼데 성능은 좋고.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하다니까.”
비단 그녀 하나만의 의견은 아니었다. 이곳에 있는 길드 대부분이 포션 산업에 뛰어든 만큼 그 방법을 궁금해했다.
“그러고 보니 소나무도 포션 냈잖아여. 반응 괜찮던데.”
박정환이 한상용에게 물었다.
그 질문에 채지수도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건 누구 작품이야?”
“서희. 그 녀석이 힘 좀 썼지.”
“누가 그러던 데여. 유마망 포션이랑 좀 비슷한 것 같다고.”
채지수가 순간적으로 눈을 번뜩였다.
“이거 혹시 그렇고 그런 시그널?”
한상용이 채지수를 노려보았다.
채지수가 입을 가리며 크게 웃었다.
“뭘 또 그렇게까지 반응한대? 아, 웃겨라.”
눈물을 닦는 시늉을 하는 채지수. 다른 이들의 작은 웃음소리도 공간을 메웠다.
“얼마 안 남았군.”
그때, 쭉 입을 다물고 있던 서동철이 말을 꺼냈다.
주어는 없지만, 다들 그가 말하는 게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도 우승자 한 명 나오나?”
“이번이 적기이긴 하져.”
“그, 그러게요. 이번에는 나왔으면 좋겠어요….”
아카데미 세계 선수권.
유일하게 존재하는 세계 단위 대회인 데다가 전 세계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국가의 대표로 출전하는 만큼 그 위상은 남달랐다.
“선발전에는 누가 뽑힐 것 같나?”
최칠기의 물음에 길드 마스터들이 저마다 눈에 불을 밝혔다.
“그거야 당연히 우리 서희가….”
“헛소리. 내 딸이….”
“철용이도 있어여.”
서로 날카로운 시선을 주고받는 마스터들.
최칠기가 껄껄거리며 웃었다.
“누가 되든 다들 인정하자고.”
“저기... 협회장님은 누가 가능성 높아 보여요...?”
한송이의 물음에 최칠기는 턱을 매만졌다.
잠시 고민해보지만, 쉽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워낙 팽팽해서 누구 하나의 승리를 점칠 수가 없는데.”
“아~ 이러면 그냥 다 같이 나가면 좋을 텐데~”
“언젠가는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져. 미국은 엄청 많이 나오잖아여.”
누가 선발전에 뽑힐지는 서로의 의견이 갈렸지만, 모두가 원하는 결과는 하나였다.
대한민국 대표의 우승.
그것만큼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다.
***
며칠 뒤, 아카데미의 선발전이 시작됐다.
수많은 관중이 다시 한번 아카데미를 찾아왔고, 온라인으로도 생중계되며 세계 사람들의 주목을 모았다.
-아아! 완벽한 반격! 오철용 선수 휘청거립니다!
유현은 TV를 통해 선발전을 시청했다.
그가 관중석에 나오면 혼란이 생긴다며 집에서 시청할 걸 권장 받았다. 유현으로서는 환영할 일이었다.
“누가 우승하려나.”
현재까지 정해진 선수권 참가자는 두 사람.
유현, 그리고 메이블.
나머지 아이 중 한 사람만이 그들과 동행한다.
“한 명만 가기에는 아까운데 말이야.”
유현이 보기에도 모두 수준급 실력의 아이들. 황금세대라는 칭호답게 제각각 엄청난 무력의 소유자였다.
“아쉽네.”
대한민국에 주어진 티켓은 고작 세 장.
대회의 성적과 국제적인 위상을 바탕으로 티켓의 수가 정해지는만큼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받는 취급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리 낮지는 않지만, 높지도 않은 어중간한 수준이었다.
-오철용 끝내 쓰러집니다!
신가온이 쏟아내는 검격 앞에서 오철용은 결국 무릎을 꿇었다.
화면 위로 검은 그을림에 뒤덮인 신가온이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다음은 한서희랑 서혜빈인가.”
경기 시작까지 조금 시간이 남았다. 유현은 며칠 전 태어난 신룡의 보금자리로 이동했다.
옷더미와 상자를 이용해 급조한 간이 하우스.
신룡이 새액거리며 잠들어 있다.
‘잠이 많아서 다행이네.’
며칠간 신룡에 관해 파악하며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뭘 먹는지, 습성은 어떤지, 산책을 시켜줘야 하는지 등.
드래곤이나 와이번이라면 몰라도 신수에 관한 정보는 자세히 아는 게 없었기에 사실상 백지 상태에서 육아를 시작하는 수준이었다.
“네 덕에 냉장고가 마를 날이 없다.”
신룡은 잡식이었다.
고기도 먹고, 채소와 과일도 잘 먹는다.
대소변도 잘 가려서 여러모로 키우기 편한 녀석이었다.
‘뭘 조르지도 않고, 말도 잘 들어.’
유현은 기특한 눈으로 신룡을 쓰다듬었다.
신룡은 곤히 잠든 채 입맛을 다셨다.
“그러고 보니 이름도 정해야 하는데.”
언제까지고 신룡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노릇. 지구에서는 신룡이라는 이름도 고유 명사로 통하니 상관은 없겠지만, 입에 착 감기지가 않았다.
“부르기 편하고, 느낌 있는 이름….”
유현은 고민하며 방을 나와 다시 TV 앞에 앉았다.
한서희와 서혜빈의 준결승전이 막 시작됐다.
시작부터 치열하게 오가는 공방.
절대 지지 않겠다는 듯 서로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엄청난 전투입니다! 누가 이길지 가늠이 되지 않네요!
불과 얼마 전 있었던 최강자전보다 업그레이드된 듯한 두 사람의 무위.
유현의 눈은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머릿속으로는 작명에 집중하고 있었다.
-아아! 치명타! 강력한 열기의 불꽃을 뚫고 서혜빈의 무기가 작렬합니다!
휘청이는 한서희.
승기를 잡은 서혜빈이 공격을 몰아쳤다.
얇고 짧은 검 수십 자루가 허공을 춤추며 한서희에게 쇄도한다.
잠시 주춤했던 한서희도 급히 반격을 준비했다.
허공에서 맞부딪치는 검의 소나기와 화려한 불꽃.
뜨거운 불꽃 속에 검들이 하나둘 소멸했다.
서혜빈은 이를 악물며 계속 검을 생성했다.
박빙. 끝을 알 수 없는 전투.
한 치의 물러섬 없이 마나를 쏟아내는 두 사람.
과열된 힘의 충돌은 곧 폭발을 일으켰다.
펑!
경기장의 환기 시스템이 재빨리 폭발로 피어오른 연기를 가라앉혔다.
화면 위로 나타나는 경기장 내부. 유현은 그 순간 이름을 결정했다.
“펑으로 가자.”
스피커를 메웠던 거센 폭발음은 신룡의 이름이 되었다.
-결승전 진출은 한서희입니다!
사회자의 음성이 조용한 방안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