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지금? 당장?”
“두면 죽는다며.”
김풀잎은 유현의 부탁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괜히 부화에 간섭했다가는 죽을 수도 있어.”
“어차피 그대로 두면 죽는다며.”
“그렇긴 한데, 괜히 내가 잘못 건드렸다가 죽기라도 하면 죄책감이...”
“일단 시도라도 해봐. 책임 안 물테니까.”
김풀잎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알에 손을 올렸다.
“무사히 부화할 확률은 절반이야. 그리고 이게 쉬운 일은 아니라서 조금 오래 걸릴 거고.”
김풀잎이 유현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자리 좀 비워줘. 집중해야 하니까.”
“얼마나 걸리는데?”
“빠르면 내일 아침. 늦으면 더 걸리고.”
유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수고해라.”
“혹시 에너지 드링크 좀 사다 줄래? 내가 잠이 좀 많아서.”
“그래.”
“먹을 것도 좀 사다 줘. 배고파.”
유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을 나섰다.
***
유현은 김풀잎에게 필요한 것들을 사다 준 뒤 잘 준비를 마쳤다.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본 채 머릿속으로는 알 속 생명체의 정체를 추정했다.
“목과 꼬리가 긴 도마뱀. 등에는 날개가 있고 머리에는 뿔이나 기다란 귀가 달린 개체.”
길게 고민할 것도 없었다.
당장 생각나는 건 몇 개 없었다.
“우선 마물 중 하나인 드래곤.”
날개가 달린 게 아니라 날개뼈가 도드라졌다는 게 조금 특이하긴 하지만, 전체적인 특징은 마물인 드래곤과 같았다.
‘드래곤이면 길들이기 힘들지도 모르겠는데.’
드래곤은 마물이지만, 다른 마물처럼 마족들의 손에서 탄생하지는 않았다.
그 시초는 태초의 드래곤.
처음에는 그저 지능이 높고 지혜로운 인간 친화적인 몬스터였다.
하지만 인간들의 무분별한 학살 탓에 그들은 멸망의 길을 걷게 됐고, 마족들이 그런 드래곤들을 휘어잡아 직접 양육하며 대를 잇기 시작했다.
‘그렇게 탄생한 게 마물로써의 드래곤.’
판대륙을 어지럽게 만드는 데 크게 일조한 주범이다.
기존의 드래곤과 다른 점은 딱 하나, 태어났을 때부터 마족과 우호적인 관계라는 것.
그 덕에 마족과의 전쟁은 쉽지 않았다.
‘드래곤은 아무리 어린 개체라도 길들이기 쉽지 않아.’
성질이 무척 더러웠기에, 마족들도 드래곤을 쉽게 다루지 못했다.
친구는 둬도 주인은 못 두는 게 바로 드래곤들의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이었다.
물론 그 어려운 과정만 거치면 놈들은 훌륭한 전력이 된다.
말도 통하고, 마법도 쓸 줄 아는 놈들이었으니까.
그래도 역시...
“드래곤은 아니었으면 좋겠네.”
좋은 전력이 되겠지만, 솔직히 드래곤의 양육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오죽하면 마족들도 어렵다고 징징대는데, 이런 지구에서 문제없이 키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마물이 아니면 남은 건 두 가지.’
짐승과 신수.
두 분류에도 앞서 말한 생김새와 비슷한 종류의 개체가 있다.
우선 짐승일 경우에는 ‘와이번’이 비슷하다.
도마뱀과 닮았고, 날개가 달려있으며 꼬리도 기다란 녀석.
비슷한 외형 탓에 누군가는 와이번도 마물로 분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와이번은 성체도 쉽게 길들일 수 있어서 짐승으로 분류됐다.
‘와이번이면 나쁘지 않은데.’
드래곤보다 쉬운 양육.
전투력은 확연히 부족하지만, 나름 준수하다.
전투나 평상시에 유용하게 쓰일 개체였다.
‘근데 와이번이면 뿔 달린 개체가 없을 텐데….’
뿔일지 귀일지 알 수 없다고 했으니 확신할 일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신수.’
신수(愼獸).
이름대로 신의 축복을 받은 개체. 혹자는 신이 직접 하사한 생물이라고도 하지만, 실상은 신성력을 다루는 놈들을 신수라고 칭했다.
신성력은 말 그대로 신성한 힘.
마족들이 마계에서만 다룰 수 있는 마기(魔氣)와는 반대되는 개념으로, 마나와는 다른 에너지였다.
‘신성 마법사도, 교도들도, 교황도 다루지 못하는 힘이었지.’
신성력은 오직 신수만이 다룰 수 있다. 인간들이 마족을 상대하는 데 애를 먹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만약 인간이 신성력을 다룰 수 있었다면, 전투는 한결 수월했으리라.
‘신수는 숫자가 적어.’
그리고 신성력의 한계 역시 명확했다. 한 번 소진하면 며칠은 쉬어야 하고, 사용할 수 있는 한계치 역시 마나에 비해 비루하다.
물론 그조차 큰 도움이 되기에 어디서나 신수들은 극진히 모셨다.
‘그런 놈들 알이 나한테 있을 리가 없지.’
만약 신수의 알을 얻게 됐다면, 그 경로에 대해서도 확실히 기억했을 터.
아무런 기억이 없는 걸 보면 신수는 아니었다.
“만약 신수면 신룡인가?”
김풀잎이 말한 특징과 일치하는 신수종은 하나. 마물인 드래곤과 먼 친척 관계에 있다는 신룡(神龍)이었다.
“그럼 더더욱 가능성 없겠군.”
신수 중에서도 유독 적은 개체인 신룡. 천 년 동안 본 것도 손에 꼽는다.
“아, 그래도 신수였으면 좋겠다.”
신수의 탁월한 성능은 단지 신성력에 한정되지 않았다.
드래곤에 근접한 개체인 만큼, 육신의 전투력도 대단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신수는 일단 멋있지.’
신성력이라는 힘 덕분인지는 몰라도 신수들은 하나같이 고귀한 분위기를 풍겼다.
새끼 때는 어떨지 모르지만, 성체가 되고 나면 데리고 다니는 맛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바람.
“가장 가능성 있는 건 드래곤이겠지.”
드래곤.
길들이는 것 외에도 문제가 있었다.
바로 드래곤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것.
드래곤은 표피의 색에 따라 각각 다른 속성의 힘을 가진다.
빨간 놈은 불의 힘을, 파란 놈은 물의 힘을 사용하는 식이었다.
“레드 드래곤이 태어나면 자칫하다간 집 하나 태워 먹을지도 모르겠는데.”
유현은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점점 늘어나기만 하는 생각.
어차피 결과는 내일 나오니, 이대로 고민해봤자 의미가 없었다.
결국에는 직접 보고 판단하는 수밖에.
‘최악의 경우에는 죽여야겠지.’
부화한 개체를 길들일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면 죽일 수밖에 없다.
이곳이 판대륙이라면 방생하겠지만, 지구에서는 그들이 살아갈 곳이 없다.
‘그건 최대한 피하고 싶은데.’
유현은 바람을 간직한 채 잠에 빠져들었다.
***
마왕과의 전선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작은 영지 에르바헴.
군단장 하나를 격파하며 생긴 충격으로 유현은 이곳까지 떨어졌다.
사람들은 온몸이 다친 외부인을 극진히 보살펴주었다.
용사가 있다는 이야기는 알았지만, 그 용모를 파악하기에 이곳은 너무나 촌구석이었다.
유현은 사람들의 친절과 정성 속에서 유현은 빠르게 회복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감동했고, 감사를 표했다.
언젠가는 다시 돌아와서 그들에게 은혜를 갚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가 다시 전장으로 출발한 그 날.
용사를 쫓아온 마족들이 에르바헴에 도착했다.
그러나 유현은 이미 전장으로 돌아갔다. 그가 이미 떠났다는 사실에 분개한 마족들은 작은 영지를 초토화했다.
그가 마을의 멸망을 알게 된 건 그로부터 먼 훗날의 이야기.
형언할 수 없는 죄책감.
머리가 터질 것 같은 고통.
부서지라 이를 갈았던 분노.
한데 뒤엉켰던 감정들은 그곳에서 주웠던 알에 대한 기억까지도 뒤덮어버렸다.
“......”
창밖으로 아침의 햇살이 들어왔다.
유현은 조용히 눈을 떴다.
그의 눈가에는 물기가 남아있었다.
“...생각났다.”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기억이 꿈속에서 되살아났다.
더불어 그때의 감정도 함께 되살아났다.
이제는 모두 자신의 손에 지워진 존재들. 하지만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빌어먹을.”
왜 갑자기 이런 꿈을 꾸게 된 걸까. 절묘한 우연은 아닐 것이다.
유현은 침대에서 내려와 김풀잎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문에 귀를 가져다 대보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끝난 건가?’
안으로 들어가자 바닥에 시체처럼 널브러진 김풀잎이 보였다. 호흡이 규칙적인 것으로 보아 잠든 것 같았다.
“알은...”
알에는 제법 큰 균열이 가 있었다. 금방이라도 부수고 나올 것 같았다.
꿀꺽.
유현은 마른 침을 삼키며 알에 다가갔다.
조심스레 알 위에 손을 올리자 이전에는 느껴지지 않던 규칙적인 박동이 느껴졌다.
“죽진 않았구나.”
그는 진심으로 안심했다.
만약 자신의 실수로 알이 죽었다면, 마음이 꽤 아팠을 것이다.
들썩.
그때였다.
유현의 손길에 반응한 걸까.
갑자기 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좌우로 흔들리는 알.
이내 쩌적 소리와 함께 균열이 커졌다.
“삐이이!”
괴이한 울음과 함께 무언가 껍질을 튕겨냈다.
“......”
유현은 눈을 크게 뜬 채 알에서 튀어나온 것을 응시했다.
알에서 나온 놈 역시 커다란 눈동자로 유현을 바라보았다.
“삐이!”
소용돌이처럼 빙글빙글 돌며 위로 솟은 뿔이 머리 양쪽에 달려 있다. 눈은 초롱초롱했고, 눈동자는 검었으며, 표피 역시 밝은색이었다.
녀석은 조금 화가 난 것 같은 눈으로 유현을 향해 울어댔다.
“너, 너...”
“삐! 삐!”
그가 자신을 삶으려 했다는 사실을 알기라도 하는 듯 유현의 손을 쪼아대는 녀석.
유현은 충격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드래곤이 아니야...’
김풀잎이 말한 것과 똑같은 생김새였지만, 드래곤의 뿔은 원형이다.
와이번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뿔이 없다.
남은 건 한 가지.
“미친...”
유현은 넋을 놓은 채 녀석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가장 가능성이 작았던 경우의 수. 아무래도 그게 현실이 된 것 같았다.
“대체 어떻게?”
곰곰이 아까 꾸었던 꿈을 떠올려 본다.
찾아갔던 영지는 폐허가 되었다.
이 알은 그 폐허에서 찾아냈다.
‘왜 그런 폐허에 신수의 알이 있던 걸까.’
정체를 알고 난 뒤 생각하니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심지어 알이 놓여 있던 장소는 영지의 광장이었어.’
누구의 눈에나 잘 띌 수 있는 위치. 건물의 잔해에 깔린 게 아니라 그 위에 놓여 있었다.
만약 마족들이 발견했다면 절대 그냥 두고 가지 않았을 위치였다.
‘......신수의 탄생.’
유현의 머릿속에 자연스레 한 가지 이야기가 떠올랐다.
언젠가 교황이 해주었던 신수의 탄생 이야기.
‘신수는 죽기 전에만 알을 낳아.’
알을 품고, 양육하는 개념은 그들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가까운 미래를 볼 수 있기에 그게 가능하다고 했지.’
그래서 신수가 알을 낳았다는 건 죽음이 머지않았다는 뜻이며, 그 알을 낳는 장소는 가장 안전한 장소라는 뜻이었다.
‘그런 곳이 가장 안전한 장소였을 리는 없고...’
이 알을 남기고 간 신룡은 자신이 그곳에 가리라는 걸 알고 있던 것이다.
“젠장. 그것도 모르고 나는...”
유현은 알의 남겨진 부분을 깨부수는 신수를 바라보며 자신의 행동을 반성했다.
삶을 게 따로 있지. 신수의 알을 삶다니. 알을 남기고 간 신수가 봤다면 천인공노할 일이었다.
‘그 꿈을 꾸게 된 것도 이놈이 깨어나서일까.’
신수는 어느새 알의 절반을 부쉈다. 작은 몸 절반에 자유가 생겼다.
‘그렇겠지. 갑자기 생전 안 꾸던 꿈을 꿀 이유는 없으니까.’
유현은 신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까 쪼아대던 모습은 어디가고, 얌전히 유현의 손에 몸을 맡겼다.
“미안하다, 미안해.”
사과하며 신수를 쓰다듬는 유현.
그 말을 알아들은 건지 삐이, 삐이 거리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그거 뭐야?”
그때, 뒤에서 김풀잎의 목소리가 들렸다.
유현은 잠시 고민하던 유현은 김풀잎에게 신룡을 보여주었다.
이미 몬스터의 알이라고 밝혔다.
게다가 김풀잎은 알 내부 생명체의 형태를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따. 이제 와서 숨겨 봤자였다.
“와! 되게 귀엽게 생겼는데? 알에서 나온 게 얘야?”
“응.”
김풀잎이 졸린 눈을 깜빡이며 신룡에게 다가갔다. 신룡은 그녀의 도움을 받은 것도 기억하는지 얌전히 그녀의 손을 받아들였다.
“무슨 몬스터지? 새끼 몬스터는 처음 보는데.”
“나도 잘 몰라. 알도 주운 거라서.”
굳이 신룡에 대한 정보를 밝힐 필요는 없었다.
김풀잎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세계의 수많은 게이트를 구성하는 그보다 많은 숫자의 몬스터들.
모르는 몬스터가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거 기숙사에서 키우게?”
“그래야지.”
알을 전부 깨부순 신룡은 곧장 유현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아직 새끼였지만, 크기가 웬만한 중형 성견 크기였다.
“학교에 신고해야 할 텐데. 법적으로 허락도 받아야 하고.”
몬스터를 키우는 사람들은 소수지만 존재하긴 했다. 불법인 나라들도 있으나 다행히 대한민국은 합법이었다.
“그냥 너만 입 다물고 있으면 돼.”
“...몰래 키우려고?”
“응. 다 방법이 있어.”
신룡을 공식적으로 등록하면 변수가 너무 많이 생긴다.
희귀한 몬스터인 만큼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연구소에서 요청이 들어오거나, 비싼 값에 팔기 위해 납치 시도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내가 그 정도로 비밀을 잘 지킬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싱글 웃는 김풀잎을 보며 유현도 입꼬리를 올렸다.
살기가 느껴지는 미소.
말하면 죽여버리겠다는 의도가 다분했다.
“......”
김풀잎은 굳은 얼굴로 입에 지퍼를 잠그는 시늉을 했다.